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28
훈수 두는 천마님 125편
“몬스터 웨이브 준비가 모두 끝났대.”
“드디어인가.”
아르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칭란은 구겨진 치파오 치맛자락을 단정히 하곤 다리를 꼬았다.
“그쪽으로 오라더라.”
“하하.”
“그 자식, 노인 공경도 할 줄 모르고.”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기엔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실제 나이는 일흔이 넘은 노인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녀가 가는 건 어불성설이었겠지만, 박현수라면 얘기가 다르다.
아무리 괘씸해도 현재 인류는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번 아프리카 사태만 봐도 그렇다.
사건을 종결지은 건 이번에도 결국 박현수였다.
“아프리카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들어봐야겠어.”
“그건 보고서로 이미 받아서 봤잖아.”
“그거랑 이거랑 같아?”
“하긴.”
아르망은 코트를 걸치며 웃었다.
박현수가 복귀하고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자신이 바빴던 탓도 있었고, 그 역시 딱히 자신을 만날 생각이 없었다.
좋은 기회였다.
그가 제시한 몬스터 웨이브는 상당한 리스크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현 각성자들이 크게 향상하게 될 것이다.
“그보다 학센 녀석은?
“모르겠어. 그놈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학센은 뉴 월드 초기에 잘 도와주는 듯하더니, 반년 전에 일선에 물러나 홀로 수행 중에 있었다.
타케시나 질 로드먼도 만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우리만 가는 건가 그럼?”
“박현수에게 정확한 계획을 듣고, 그걸 실행하는 건 우리니까. 따로 더 인원을 꾸릴 필요는 없겠지.”
한 걸음이면 외국으로 이동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수행원들을 잔뜩 대동할 필요는 없었다.
“출발하지.”
아르망은 코트 깃을 바짝 세우고 걸음을 옮겼다.
* * *
박현태는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잔 터라 매우 피곤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출근은 했는데 어제 겪은 일 때문에 업무에 집중이 안 되었다.
‘젠장, 대체 뭐지?’
로벤과 만나는 꿈을 꾸고부터 자꾸 이상한 광경이 제멋대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신이 몬스터 사이를 누비고 있는가 하면, 협회장님과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도 했다.
그러다가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뒹굴다가 전우애를 느끼고 있었다.
도통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게 진짜…… 전부 미래라면.’
로벤과 만났던 꿈이 전부 사실이었고,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그의 능력과 관련되었다면.
‘시공간의 도면.’
로벤 오드먼이 가지고 있던 능력.
아무래도 이젠 자신의 능력이 된 모양이다.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해야 좋을까.
아니, 말해야 할 사람은 확실히 있었다.
‘형에게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좋아할지,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분명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일단 박현태 자신부터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대부분의 생각이 두려움과 직결되어 있긴 했지만, 약간의 기대감도 있었다.
‘그럼 나도 각성자인 건가? 헌터……가 되는 거야?’
헌터가 사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 잘 알고 있었다.
당장 그의 업무가 다른 헌터들을 서포트해 주는 것이었다.
바로 옆에서 보조해 주는 서포터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자잘한 업무를 대신 처리해 주었다.
그러니 헌터들보다도 그들이 얼마나 큰 영향력이 있는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일반 사무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한 삶을 살았다.
물론, 박현태가 일반 사무직은 아니었다.
그의 뒷배가 당장 한국 협회의 주인이었으며, 친형은 지구의 위대한 영웅이었다.
웬만한 헌터들도 그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다만, 박현태는 그런 생각을 별로 한 적 없었다.
뒷배가 대단하다고 해서 그들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았다.
하유락이 낙하산으로 협회에 취업시켜 주었지만, 바닥부터 일을 배웠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로벤 오드먼의 능력을 이어받았다.
‘한때 랭킹 1위였던 헌터의 능력…….’
시공간의 도면은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엄청나다고 생각할 만큼 위대한 힘이었다.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능력이다.
아직은 조절이 되지 않지만, 만약 조절할 수 있게 된다면 어쩌면…….
‘하지만.’
박현태는 금세 시무룩해졌다.
과연 로벤처럼 이 능력을 잘 다룰 수 있을까?
대단한 만큼 아주 위험한 능력이라, 잘못하다간 큰 사달이 벌어질 수 있었다.
‘역시 형이랑 얘기를 해 봐야겠지.’
애초에 숨길 만한 게 아니었다.
박현태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때,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의장님과 부의장님이 오셨대.”
“엥? 갑자기?”
“그러니까. 비밀 회담 같은 게 잡혔나?”
“비밀 회담인데 대놓고 나타날 리가 없잖아.”
“그건 그렇지. 협회장님과 무슨 할 얘기라도 있나 보네.”
뉴 월드의 높으신 분들이 협회를 방문한 모양이었다.
무슨 일일까?
혹시 자신이 로벤의 힘을 이은 것 때문에 협회에 찾아온 게 아닐까?
박현태는 온갖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뭐 해?”
“으악!”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박현태가 비명을 지르며 양팔을 들었다.
덕분에 서류들이 허공에 흩날렸다.
모든 직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박현태는 약간 민망한 얼굴이 되었다.
“왜 그래?”
“형?”
목소리의 주인, 박현수는 생각보다 놀란 동생을 보고 오히려 놀랐다.
박현태는 그런 형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형이 이곳에는 왜…….”
“아. 오늘 회의가 좀 있어서.”
“뉴 월드의 높으신 분들이랑?”
“생각보다 빨리 왔네. 확실히 한 걸음으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시대가 됐구나.”
박현수는 약간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뉴 월드의 높으신 분들이 온 이유가 형 때문인 모양이었다.
아무리 뉴 월드가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더라도 분명 한국 협회의 상위 기관이었다.
보통은 협회 측에서 뉴 월드를 방문하는 게 옳았다.
다만, 상대가 지구의 영웅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그럼 조금 이따가 보자.”
그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박현태는 뻘쭘한 얼굴로 주변을 보았다.
직원들의 시선이 무섭게 그에게 꽂혔다.
* * *
“현수 녀석,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한다 이거야?”
“하하. 이렇게 빨리 도착할 줄 몰랐을 거예요.”
“하긴. 워프 시스템을 알고만 있지, 사용해 본 적은 없을 거야.”
아르망이 하유락의 말에 호응해 주었다.
칭란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일흔 먹은 노인이라기엔 과하게 귀여웠다.
그녀는 어깨높이의 테이블에 턱을 걸쳤다.
“늙은이를 기다리게 하다니. 천벌 받은 녀석.”
“천벌 받긴 누가 받아요?”
“박현수!”
맞은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칭란이 벌떡 일어났다.
하유락은 피식 웃었고, 아르망은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박현수는 햇볕을 등진 상태로 모두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다들.”
“너 늙은이를 오라 가라 하고! 대한민국은 동방예의지국 아니었어?”
“어차피 한 걸음으로 전 세계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데, 그거 걸었다고 그러십니까? 쩨쩨하게.”
“쩨, 쩨쩨?”
“그리고 그 모습이 어떻게 늙은이입니까? 아닌 말로, 밖에 나가서 같이 돌아다니기만 해도 저 붙잡혀 가요.”
“이 녀석이 못하는 말이 없네.”
박현수가 상상도 하기 싫단 제스처를 하자, 칭란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농담이에요.”
“그런 농담 한 번 더 하면 볼기짝을 때려 줄 거다.”
“어릴 때도 할머니한텐 맞아 본 적 없는데, 이 나이 돼서 맞으면 민망할 테니 그만하겠습니다.”
칭란은 박현수의 능글맞음에 인상을 구겼다.
우주에서 40년을 보냈다더니 완전 아저씨가 된 모양이었다.
“실없는 소리는 거기까지 하지.”
아르망이 상황을 정리했다.
그는 박현수를 보며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이야.”
“오랜만이네요, 아르망 씨.”
“이것 참…… 우주에서 40년을 보냈으면, 내 쪽에서 말을 높여야 하는 거 아니야?”
“굳이 한국식으로 할 필요가 있겠나요.”
“상당히 능글맞아졌구나.”
“사람이 한결같을 수는 없죠.”
그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모두에게 말했다.
“이곳에 여러분을 부른 이유는 몇 가지 말씀드릴 게 있어섭니다.”
“유락이한테 들었어. 몬스터 웨이브 준비가 끝났다고?”
“그것도 있고. 소개해 줄 사람이 몇 있어요.”
“소개?”
하유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얘기는 듣지 못했다.
심지어 하나도 아니고 여럿인 모양이었다.
“한 놈은 저와 같은 특이점입니다.”
특이점이란 말에 세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특히 칭란의 표정이 무척 어두워졌다.
그녀는 세 번째 특이점을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2년 전, SS등급 판정을 받았던 ‘다크 게이트’에서 끔찍한 악연으로 엮였기 때문이었다.
모드의 팔을 자른 인물.
뜬금없이 다시 나타나 모드의 팔을 고쳐 주긴 했지만, 그는 아무런 죄책감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대화를 나눠볼 새도 없이 사라졌고, 뉴 월드의 전력을 동원해 찾아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익숙한 얼굴이 있으시네.”
여전히 심드렁한 얼굴.
기분 나쁜 적황색의 오드아이.
양아치처럼 물들인 청발.
칭란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녀의 주위로 검은 난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언니!”
“란!”
하유락과 아르망이 동시에 그녀를 막으려 했지만, 공간을 뛰어넘는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
카본이 한숨을 쉬며 그녀를 피하려 하자.
그의 머릿속으로 박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내가 왜?’란 표정을 지었지만, 박현수의 날 선 눈을 보니 대꾸하기 어려워 보였다.
하는 수없이.
쩍-!
카본의 얼굴이 옆으로 휙 돌더니, 그대로 책상과 의자를 잔뜩 밀어내며 수 미터를 날아갔다.
칭란은 분이 안 풀리는지 그대로 뛰어들었지만.
“회주님도 거기까지 하시죠.”
박현수가 그녀의 작은 몸을 들어 올렸다.
졸지에 칭란은 허공에 매달린 꼴이 되었다.
“이거 놔!”
그녀는 콧바람을 씩씩 내뿜으며 발버둥을 쳤지만, 박현수는 놓을 생각이 없었다.
“안 돼요. 능력 더 쓰면 지금보다 더 어려져요.”
“분이 안 풀린다고! 저 자식 때문에, 저 자식 때문에!”
“그자의 팔은 고쳤잖아. 뭐가 문제야?”
카본은 이해 못 하겠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죽일 작정으로 쳤는지 볼이 얼얼했다.
그는 턱을 좌우로 흔들어보았다.
다행히 턱에 문제는 없었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했어!”
그와 별개로 방금 발언으로 칭란은 이성을 잃어버렸다.
검은 난이 그녀의 감정에 따라 마구잡이로 솟아나기 시작했다.
박현수는 한숨을 쉬었다.
“죽여 버리겠어……!”
“하아. 곤란한 꼬맹이네.”
“죽어!”
검은 난이 수십 갈래로 나뉘어 카본에게 쇄도했다.
“이건 못 맞아 준다.”
카본이 손가락을 펼쳤다.
마나가 몰려들며, 다섯 개의 마법진을 만들었다.
하유락과 아르망은 위기감을 느끼고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힘을 일으켰다.
하나, 그보다 먼저 움직인 이가 있었으니.
“카본 안 돼애애!”
“꺼억-!”
허공에서 뿅 하고 튀어나온 금발의 소녀가 카본의 얼굴에 무릎을 꽂아 넣었다.
금발 머리 위로 토끼 귀 같은 게 펄럭였다.
박현수가 눈을 감쌌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갑작스러운 금발 소녀의 등장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토끼 소녀, 셀리는 검지를 번쩍 들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카본에게 잔소리했다.
“잘못한 건 사과해야 해! 카본 잘못했어! 사과해!”
셀리는 그리 말하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경악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이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