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29
훈수 두는 천마님 126편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여기 이놈이 저와 같은 특이점 카본, 그 옆이 카르마 차원의 지배자 필리포스의 외동딸인 셀리입니다.”
“셀리입니당! 반가워요! 반가워요!”
셀리가 눈을 빛내며 신난 목소리로 모두에게 인사했다.
반면 카본은 무릎으로 찍힌 볼을 문지르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박현수는 한숨을 내쉬며 카본을 불렀다.
“이봐, 카본.”
“젠장, 뭐 어쩌라고, 나 보고?”
“네 소개 정도는 해라. 앞으로 함께 일할 사인데.”
“함께?”
카본은 세 사람을 둘러보았다.
하유락과 아르망은 무표정한 얼굴로, 칭란은 아직 죽일 기세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방금 못 봤어? 상식적으로 어떻게 같이 일을 해?”
“네가 잘못한 거잖아.”
“팔은 고쳐 줬어.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니야?”
“뚫린 입이라고!”
“참아, 란.”
칭란이 다시 자리를 박차려는 걸 아르망이 막았다.
“나도 네까짓 놈이랑 같이 할 생각 개미 똥만큼도 없어!”
“잘됐네. 서로 의견이 맞으니 난 이만 가지.”
“카본.”
박현수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카본이 움찔했다.
그는 목소리만큼이나 가라앉은 눈으로 카본을 응시했다.
“네가 잘못한 게 맞잖아.”
“맞아! 카본 잘못했어. 카본 잘못…….”
“셀리, 내가 말하잖아.”
“우웅…….”
셀리는 박현수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날뛰려던 흥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화가 난 박현수가 얼마나 무서운지 직접 옆에서 봤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박현수가 다시 카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카본이 따지듯 입을 열었지만.
“그래서 팔을 고쳐 줬…….”
“카본.”
“젠장! 알았어, 알았다고!”
숨 막히는 시선과 목소리에 카본도 두 손을 들었다.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칭란을 보았다.
“그땐 미안하게 됐습니다.”
“엎드려 절 받는 건 사양하겠어. 그리고 그 말투, 그게 사과냐?”
“사과해도 지랄, 안 해도 지…….”
그는 말을 잇다가 옆에서 쏘아져 오는 눈빛에 급히 말을 멈추었다.
카본은 아랫입술을 깨물다가 졌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뭐, 그땐 내가 당신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아서 막 나갔습니다. 그 부분은 사과합니다.”
이 역시 탐탁지 않은 사과였지만, 아까보단 한결 나았다.
그렇다고 칭란의 분이 풀리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쌍심지를 켜며 손가락으로 카본을 가리켰다.
찰랑거리는 흑발이 그녀가 내뿜는 기세에 부채꼴로 펼쳐져 펄럭거렸다.
“너.”
칭란이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모드에게 찾아가서 제대로 사과해야 할 거야.”
“하?”
“그렇지 않으면 넌 절대 우리와 함께할 수 없어. 아무리 현수가 데리고 왔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뭔데…….”
“의장으로서 부의장의 말에 동의한다.”
“한국 협회장으로서 동의.”
아르망과 하유락이 합세하자, 카본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그는 짜증 난 얼굴로 박현수를 돌아봤다.
그러자 박현수가 말하길.
“나도 동의.”
“인마!”
“셀리도 동의!”
“넌 뭐야?”
카본은 주변에서 쏘아져 오는 시선에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런 취급 받자고 지구로 귀환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지구 시간으로 2년 전에 저지른 짓은 저들이 충분히 화낼 만했다.
왠지 이 상황이 귀찮아졌다.
“나중에 보면 사과하지.”
“잘했어, 카본.”
“흥. 난 먼저 일어난다.”
카본은 그리 말하곤 감쪽같이 사라졌다.
박현수는 작게 한숨 쉬며 모두에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적당히 미쳐야 하는데, 완전히 맛이 간 놈이잖냐?”
“나는 그를 처음 보지만, 란의 말처럼 정상으로는 안 보여. 예전의 학센을 보는 것 같군.”
“카본은 이상해. 근데 나름 착해. 장난 잘 받아 줘.”
칭란과 아르망이 카본을 안 좋게 말하자, 셀리가 그를 변호해 주었다.
그 변호란 게 크게 의미가 없긴 했지만.
박현수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저 녀석이 저렇게 된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에요.”
“그게 무슨 말이야?”
하유락이 호기심을 갖고 물었다.
“다들 대실종 알죠?”
“12년 전에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그 사건?”
“카본은 대실종의 당사자이고, 수십 년 동안 이세계에서 살다가 지구 시간으로 2년 조금 더 전에 지구로 귀환한 귀환자입니다.”
세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듣고도 믿지 못할 얘기였지만, 박현수가 얼마 전까지 우주를 배회했다는 걸 알기에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박현수를 드넓은 우주로 이끈 자가 다름 아닌 카본이었다.
“그곳에서 카본은 생존하기 위해 많은 걸 포기했어요. 그중엔 인간성도 있었죠.”
어린 소년이 이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무엇이든 해야 했다.
그것이 범죄여도 말이다.
카본은 이세계에서 겪은 일을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 했다.
대부분이 안 좋은 기억이었으니, 그에겐 추억 같은 게 없었다.
“그래도 저게 많이 괜찮아진 거예요.”
“저게?”
하유락이 믿지 못하겠단 얼굴을 했다.
“처음 저 녀석은 꼴통이란 말로도 설명하기 어려웠거든요. 억지로라도 사과한 건 카본의 인간성이 어느 정도는 돌아왔다는 증거죠.”
칭란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카본이 저지른 잘못은 잘못이지만, 그의 상황이 딱한 건 사실이었다.
어린아이가 혼자서 수십 년을 외로운 곳에서 싸웠다는 사실은 쉽게 생각할 게 못 되었다.
심지어 그곳은 지구와 비교하면 한없이 흉악했다.
마법이 발달했지만, 문명은 저급했고, 길거리에서 살인과 성폭행 등이 난무했던 세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놈의 잘못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야.”
“맞아요. 그러니까 제가 억지를 부려서라도 사과하게 만든 거잖아요. 카본 성격상 끝까지 아니었으면, 제가 억지를 부렸어도 사과하지 않았을 거예요.”
40년을 함께 우주에서 생활했다.
카본에 관한 거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카본이란 자는 이 회의에 안 끼는 건가?”
“제게 전부 일임했거든요. 애초에…….”
“애초에 뭐?”
“아녜요.”
여기서 카본의 생각을 말했다간 기껏 나아진 이미지가 다시 박살 날 게 분명하기에, 박현수는 말을 아꼈다.
“아무튼, 카본 때문에 이야기가 길어지긴 했는데, 아까 말했듯 셀리입니다.”
“셀리에요!”
셀리가 신나게 손을 번쩍 들었다.
토기 귀가 쫑긋 솟았다.
“토끼…… 인간?”
“셀리는 레비니안!”
“레비니안?”
“카르마 차원을 다스리는 초월종이에요.”
“초월종은 또 뭐야?”
지구엔 초월종이 없었기에 그들에겐 생소한 단어였다.
박현수는 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쉽게 말해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초월자가 될 가능성이 큰 종족이에요.”
“노력하지 않아도 초월자가……?”
초월자에 대해선 알고 있었다.
제례용이 그러했고, 다크 게이트에서 박현수와 싸웠던 괴물도, 그리고 박현수 역시 그 영역에 발을 걸쳤다.
지금은 어느 정돈지 모르겠지만, 우주에서 40년이 지났다면 자신들에게 말하지 않을 뿐 완전한 초월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괴물 같은 힘을 지닌 존재가 되는데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불합리의 극치였다.
“셀리의 나이는 올해로 열일곱.”
세 사람은 누구 할 것 없이 셀리를 돌아봤다.
시선이 집중되자, 셀리는 민망한지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녀가 아까 카본을 무릎 한 방으로 제압한 광경은 모두가 지켜봤다.
“참고로 카본 역시 초월자입니다.”
초월자를 무릎 한 방으로 제압했다.
카본이 봐준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가 느낀 고통은 분명 진짜였다.
칭란, 아르망, 하유락은 S급 헌터였지만, 왠지 모를 허탈감을 느꼈다.
그들 역시 하루아침에 힘을 손에 넣은 케이스였지만, 그 이후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분명 2년 전보다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셀리를 보니 자신들의 성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허탈함만 있는 건 아니었다.
“엄청난 전력을 데려왔구나!”
칭란이 짧은 팔로 테이블을 세게 치며 벌떡 섰다.
그래 봐야 키가 안 돼서 의자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초월종이라니. 심지어 그 초월종들의 왕이신 분의 따님이라고?”
“군세의 제약이 풀리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주 잘 됐어. 잘 데리고 왔다.”
“제가 데리고 온 게 아니라 자기가 왔어요.”
“네! 셀리가 현수 보고 싶어서 왔어요!”
“……현수를 보고 싶어서?”
“현수 좋아!”
셀리가 양팔을 벌려 박현수를 껴안으려고 했다.
그보다 먼저 박현수가 피한 탓에 껴안는 건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 말랬지?”
“히잉.”
“……현수야?”
박현수가 셀리를 다그칠 때, 옆에서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유락은 눈꼬리를 축 늘어뜨린 채 박현수를 무섭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이 사자 갈기처럼 붕 떠올랐다.
축 처졌던 눈꼬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활처럼 휘며 미소로 변했다.
“여자 친구?”
“여, 여자 친구라뇨.”
“그럼 썸녀?”
“누나!”
“여자 친구? 썸녀?”
셀리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토끼 귀가 그에 따라 살랑살랑 따라 흔들렸다.
그리곤 두 단어를 이해했는지,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말했다.
“짝짓기!”
“박현수!!!”
“오해예요!!”
칭란은 박현수에게 달려드는 하유락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닌 척하더니, 질투는.”
“부럽나?”
“이 나이 먹고?”
칭란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짓자, 아르망은 어깨를 으쓱였다.
저런 얼굴로 저런 말을 해 봐야 이상하게 보일 뿐이란 걸 그녀만 몰랐다.
* * *
오해가 풀리고 나서야 하유락은 진정할 수 있었다.
그녀는 헛기침을 하며 민망한지 볼을 붉혔다.
“……이제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하죠.”
박현수는 엉망이 된 머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셀리는 옆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냥 별다른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는 괜히 기침 한 번 하고 황금 링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이게 몬스터 웨이브를 작동시키는 장치입니다.”
“이게? 구조가 어떻게 되길래.”
하유락은 황금 링을 만져 봤지만, 특별한 건 없어 보였다.
다시 받아든 박현수가 웃으며 황금 링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웅웅-!
링이 황금빛을 내뿜더니 그곳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우리’는 1~5단계까지 총 다섯 개로 구성되어있으며, 단계별로 몬스터들이 강해집니다.
*1단계 : C급 헌터 다섯 이상이 뭉쳐야 사냥할 수 있음
*2단계 : B급 헌터 다섯 이상이 뭉쳐야 사냥할 수 있음
*3단계 : B급 헌터 스물 이상이 뭉쳐야 사냥할 수 있음
*4단계 : A급 헌터 셋 이상이 뭉쳐야 사냥할 수 있음
*5단계 : S급 헌터가 최소한 한 명 이상 포함되어야 사냥할 수 있음
-카본 제작-
원래 황금 링은 필라포스가 만든 것이라 레비니안을 기준으로 되어 있었지만, 카본이 보기 쉽게 인간 기준으로 업데이트해 놓았다.
인류는 도움이 안 된다고 한 것치고 열심히 준비했다.
‘가만 보면, 이 녀석도 츤데레야.’
입으론 싫다고 하는 주제에 할 건 다 해 놨다.
박현수는 피식 웃으며 모두를 보았다.
“이런 식입니다.”
“단계를 정한다고 치면, 보통 1회에 몇 마리씩 나오는 거지?”
“1단계는 일만 마리, 2단계는 오천 마리, 3단계는 천 마리, 4단계는 오백 마리, 5단계는 삼십 마리.”
“……!!”
세 사람은 순간 잘못들은 줄 알았다.
분명 단계별 몬스터의 강함 수준을 본다면 쉽게 생각할 난이도는 아니었다.
한데, 그 수가 많게는 만 단위에서 적게는 수십 단위였다.
1단계는 그렇다고 쳐도 2단계부터는 긍정적으로 봐도 절대 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포탈에도 저 정도 수의 몬스터가 있진 않을 것이다.
특히 5단계의 경우는 S급 헌터가 최소 하나는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 게 30마리라는 건, 단순히 한 마리당 최소 S급 헌터가 셋 이상은 붙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닌 말로 특이점들이 아니라면 인류는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모두가 당황해하고 있을 때 박현수는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 계속해서 말했다.
“게이트는 총 열 군데. 각각의 위치는 여러분들이 정해 주세요. 게이트마다 골고루 분배할 생각이니까, 최대한 전력을 맞춰 주셔야 합니다.”
“수가…… 너무 많은 것 같은 거 아니야?”
아르망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질문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란 얘긴 들었지만, 저건 아무리 봐도 너무 심했다.
하유락과 칭란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급한 건 알지만, 저래선 모두 죽을 거야.”
“몬스터 수를 조정할 수 없나?”
“제가 알기로 뉴 월드에 소속된 헌터 수는 자그마치 10만에 달한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아무리 10만이라고 해도 헌터 등급이 F부터 시작하는 건 너도 알잖아. C급 이하의 헌터가 절반을 넘어가.”
박현수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마인드가 안 된다는 겁니다.”
“뭐……?”
“저는 각성자들을 한계까지 몰고 갈 겁니다. 그들이 죽음의 위협을 느낄 때까지, 실제로 죽음이 코앞까지 닥쳐오더라도 말이죠.”
“너 그게 무슨 뜻이야?”
“그리고 그렇게 몰린 이 중 누군가는 분명.”
박현수가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한계를 돌파하는 사람이 나타나겠죠.”
“잠깐. 몬스터 웨이브의 목적은 전체적인 전력을 향상시키는 ‘훈련’ 아니었나?”
“훈련이요? 몬스터 웨이브가?”
그 말에 박현수는 피식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웃음을 거두며 말했다.
“모든 건 실전입니다. 머릿수는 의미 없어요. 초인의 싸움에서 전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건 강력한 존재 하나죠.”
40년.
우주를 돌아다니며 그는 꽤 많은 전쟁을 목격했다.
행성이 파괴되고, 은하가 무너지는 것만 한두 번 본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대게 그런 전쟁은 물량으로 시작해서 강력한 전사를 하나라도 더 보유한 쪽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그런 것들을 보며, 박현수는 생각했다.
어차피 쪽수는 킹에게 안 된다.
그렇다면 잠재력을 가진 이를 찾아내 강력한 전사로 성장시켜야 한다.
“각성자 중에 아직 제힘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거나, 높은 잠재력을 가졌으나 깨우는 법을 모르는 이가 있을 겁니다. 몬스터 웨이브는 그런 자들을 찾아내는 실전 프로젝트입니다.”
“……나머지는 방치하겠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방치가 아닙니다. 처음 목적대로 전체적인 전력을 상승하게 될 겁니다.”
“현수야, 하지만 이건 너무 잔인한…….”
“잔인해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어요.”
하유락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어떤 말로도 박현수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만큼 인류가 처한 상황은 심각했다.
2년 동안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고 해도, 반년 후 군세의 제약이 풀린다면 절망이 시작될 것이다.
그렇기에 박현수의 말은 잔혹할지언정 정론이었다.
“그들은 다가올 전쟁에서 크게 빛날 겁니다.”
“그런 이들이 탄생할 거라고 확신하니?”
“그들이 인간이기 때문에 반드시 한계를 초월해 강력한 힘을 손에 넣는 전사가 탄생할 겁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칭란은 그 울림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작은 얼굴을 끄덕였다.
“좋아. 네 말에 따르지. 두 사람은?”
그녀가 하유락과 아르망을 보았다.
“저도 따를게요.”
하유락까지 박현수의 의견에 동의했다.
아르망은 달랐다.
“결국, 희생은 불가피하겠군.”
“불가피할 겁니다.”
아르망은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박현수는 그를 기다려 주었다.
그는 뉴 월드의 현 의장이었고, 그의 선택에 따라 많은 희생이 발생할 것이다.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인류의 대표는 박현수가 아니다.
다름 아닌 아르망 본인이 인류의 대표였다.
많은 짐이 어깨에 걸렸으니, 그로서는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군.”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알고 있어.”
아르망은 그리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이 시간에 확답을 주지.”
“기다리겠습니다.”
아르망은 잠시 선 채로 박현수를 쳐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내일 보지.”
아르망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
직후 칭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그만 가 보마.”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녀는 박현수를 잠시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떠나고 회의실엔 박현수와 하유락, 셀리만이 남았다.
셀리는 웬일로 대화가 오가는 동안 조용히 있었다.
그리고 대화가 끝난 것처럼 보이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끝나써?”
“응. 일단은.”
“휴우.”
그녀는 답답했는지 크게 숨을 뱉었다.
하유락은 그녀를 보다가 박현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걸로 된 거니?”
“일단은요.”
“그래. 그러면 됐어.”
“고마워요.”
“고맙기는.”
하유락이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도 그만 가 볼게요.”
“……저희?”
“이, 일단 카본에게 가 봐야 하니까.”
“흠흠. 그건 그렇지. 나중에 봐.”
“쉬어요.”
박현수는 한쪽 눈을 찡긋하고 셀리와 함께 사라졌다.
혼자가 된 하유락은 괜히 얼굴을 붉히며 옷 안으로 고개를 파묻었다.
* * *
셀리는 우주선으로 돌아갔다.
박현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불청객을 마주했다.
“말도 없이 남의 집엔 웬일이지?”
“그 계획, 재밌어 보이더군.”
아이작은 어디서 구했는지 장난감 낚싯대로 모나미와 놀아 주며 대꾸했다.
“끵! 끵!”
모나미는 즐거운지 낚싯줄을 잡기 위해 열심히 점프하고 있었다.
박현수는 고개를 저으며 맞은편에 앉았다.
“얘기를 다 들은 거냐?”
“다 들리더라고.”
“그 얘기 때문에 날 찾아온 거야?”
“그것도 있고, 따로 부탁할 것도 있고.”
“부탁?”
아이작이 부탁이란 걸 해 올 줄은 몰랐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낚싯대를 흔들며 말했다.
“나를 수련시켜 줘.”
“……뭐?”
“날 너만큼 강하게 만들어 달란 말이다.”
아이작은 선택해야 했다.
마왕을 만날지 말지.
처음 박현수의 힘을 직접 봤을 때는 조급한 마음에 무작정 마왕을 만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마검의 유혹이었고, 두 번 다시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로 다짐했기에 그 선택지는 제외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강해질 수 있을까.
아이작은 고민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한 명의 인물을 제외하곤.
“자존심까지 다 내려놓고 내게 수련받겠다는 거야?”
“자존심?”
아이작이 피식 웃었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저 그 자존심보다 중요한 게 있을 뿐이다.
“나는 킹을 죽일 거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로벤의 모습이 2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으론 한참 부족해.”
아이작이 결의로 가득 찬 눈을 한 채 말했다.
“그러니까 내게 힘을 줘.”
그 말에 박현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흐를 거란 예상은 하지 못했다.
‘마치 나를 위해 세상이 움직이는 느낌이군.’
박현수는 별다른 고민 없이 대답했다.
“환영한다, 아이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