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2
훈수 두는 천마님 11편
하루가 지났다.
소식을 접한 많은 길드가 박현수에게 러브콜을 보내 왔다.
개중엔 날로 먹으려는 자도 있었고, 어떻게든 영입할 생각으로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민 자도 있었다.
해외 측에서도 어떻게 알았는지 높은 계약금을 제시하며 오퍼를 보냈다.
박현수는 싹 다 거절했다.
굳이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생각은 없었다.
협회 아니면 레드 라이온.
가게 된다면 둘 중 하나다.
그것도 아니라면.
‘만약의 경우는 그때가 되면 생각하자.’
박현수는 현재 수련장에서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행하고 있었다.
[영약이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너에겐 운기조식 말고는 내공을 늘릴 방법이 없다. 그러니 시간이 날 때마다 꾸준히 행해라.]스승의 명령이었다.
지루한 작업이었다.
처음엔 이걸 몇 시간 동안 대체 어떻게 하지 싶을 정도로 미칠 것 같았다.
그것도 한계점을 지나니 생각보다 괜찮아졌다.
박현수는 현재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점에서 무한히 내공을 회전시키고 있었다.
단전에서 꿈틀거리는 천마신공의 내공은 기분이 좋은지 보통 때보다 활발하게 움직였다.
몸이 뜨끈해지는 것 같았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천경은 속으로 생각했다.
운기조식을 한다고 해서 내공이 눈에 보일 정도로 늘어나진 않는다.
운기조식이란 꾸준함이다.
1갑자의 내공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1갑자는 60년을 뜻하고, 그 말은 다르게 풀이하면 60년 동안 꾸준히 운기조식을 해야 그만큼의 내공이 쌓이는 것이다.
한데 박현수의 단전에 내공이 생각보다 많이 모이고 있었다.
눈에 보일 정도는 아니어도 남들보다 최소 두 배, 어쩌면 세 배 이상 빨랐다.
천경은 의문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들판.
흘러넘치는 기운.
언젠 한번 날 잡고 끝까지 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건 나중의 일이었고, 당장만 봤을 때 이건 아주 좋은 희소식이었다.
박현수는 자신을 만났다.
자신의 도움으로 각성이란 걸 했고, 남들과 비교해도 확실히 우월한 힘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방 안에 생긴 구멍을 통해 입장 가능한 세상은 기가 넘쳐나는 곳이었다.
넓은 공간에는 방해 요소가 존재하지 않았고, 기는 넘쳐 숨만 쉬어도 내공이 증가했다.
하늘은 상시 맑고, 습도도 적당해 활동이 매우 쾌적한 공간이었다.
바닥은 부드러운 잔디로 뒤덮여 넘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았다.
천경은 그리 생각하며 운기조식 중인 박현수를 보았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후우.”
[끝났느냐.]“몇 시간 지났나요?”
[그건 나야 모르지.]이곳에선 시간을 확인할 수 없고, 천경은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그러니 시간을 알 수가 없었다.
“다음부턴 시계도 좀 들고 들어와야지.”
[그건 네 알아서 하고. 일어나거라.]박현수는 스승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최소 몇 시간은 이러고 있었을 텐데, 뻐근하긴커녕 몸뚱이가 가벼워 날아갈 것 같았다.
“엄청 개운한데요?”
[운기조식은 내공 증진의 목적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내공을 돌려 몸에 쌓인 불순물을 빼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피로가 싹 가셨겠지.]“이거 완전 만능 아닙니까?”
[무인은 일반인보다 건강하고, 병에도 잘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적은 아니다.]“그 정도만 해도 장난 아니네요. 세상 사람들이 운기조식을 할 줄 알면 의사 대부분이 바닥에 나앉겠어요.”
[허튼소린 그만하고. 천마출도와 천마비행이나 수련하거라. 아직 갈 길이 멀다.]“옙.”
고유 능력의 힘으로 천마군림보의 1보와 2보는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아직 이해력이 부족해 완벽하진 않았지만, 떠오르는 대로 수련한다면 언젠가 마스터할 수 있으리라.
박현수는 자세를 잡고 천마출도를 사용했다.
경쾌하며, 가볍게.
박현수의 몸이 여느 때와 달리 부드럽게 땅을 밟으며, 자유롭게 움직였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발이 꼬이지 않는 것이다.
천경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이런 식으로.’
한 발을 내디디고, 다른 말을 내뻗으며, 반 박자 빠르게 가속했다.
나풀거리듯 방향을 선회하며 유하게 몸을 틀었다.
천경의 천마출도와 비교하면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처음 시도치고는 상당했다.
천경 역시 살짝 놀란 눈치였다.
그러나 여기서 칭찬하면 안 된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이 안 따라주는 걸 어떡한단 말인가?
박현수는 억울했지만, 이를 악물고 천마출도에 집중했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천경에게 혼났고, 나중엔 못 참겠다며 뒤통수까지 때렸다.
* * *
“……아니, 처음인데 못하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흥. 본좌의 제자는 완벽해야 한다.]“쳇.”
박현수는 혼자 구시렁거리며 옷을 다 벗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몸이 땀에 절어 씻지 않으면 찝찝해 죽을 것 같았다.
천경은 그런 제자의 뒷모습을 보다가 툭 던지듯 말했다.
박현수가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곤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살짝 드러난 거울 속 비친 그의 얼굴엔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 * *
다음 날 박현수는 가볍게 몸을 씻고, 밥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라면은 안 먹냐?]“그걸 어떻게 매일 먹습니까?”
[왜 못 먹어.]“그건…….”
막상 설명하려니 아는 게 없어 설명할 수가 없었다.
박현수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냥 못 먹어요. 질려요. 그래, 질린다고 칩시다.”
사실은 전혀 질리지 않지만.
천경이 뭐라 뭐라 더 말하긴 했지만, 박현수는 가볍게 무시하고 자주 가는 샌드위치 가게에 들어갔다.
“어, 오빠 오셨어요?”
머리를 한쪽으로 땋은 여고생 알바가 박현수를 반갑게 환영했다.
그녀의 이름은 차윤으로, 이곳에서 1년째 알바 중인 학생이었다.
사실 말만 학생이지, 포탈의 시대가 열리며 정부는 제 기능을 상실했다.
당연히 의무 교육 시스템은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며, 급히 설립된 협회가 정부의 일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협회는 포탈의 위험성 등을 제기하며 세계가 안정기에 접어들기 전까지 모든 학교를 일시적으로 폐지, 홈스쿨링을 기획해 교육을 재시작하였다.
그렇다 보니, 차윤처럼 학교 가야 할 시간에 알바 등을 하며 돈을 버는 10대들이 많았다.
홈스쿨링이야 스마트폰만 있으면 어디서라도 들을 수 있으니까.
“여지없이 주 7일 일하는구나?”
“헤헤. 어쩔 수 없죠. 제가 일 안 하면 동생들 누가 먹여 살려요?”
차윤은 박현수와 마찬가지로 고아였지만, 아래에는 살아남은 동생이 있었다.
그것도 둘이나.
그나마 박현수는 성인이라도 됐지, 차윤은 당시 중학생이었다.
심지어 고아가 됐다고 도와줄 사람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의 한국은.
아니, 전 세계는 혼돈의 도가니였다.
“햄 치즈 하나랑 아메리카노 한 잔.”
“넵. 금방 해서 갖다 드릴게요. 앉아 계세요.”
박현수는 그녀를 뒤로하고 구석진 곳에 자리 잡았다.
얌전히 있던 천경은 차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 치는 거죠. 그래야만 이 엿같이 힘든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저 아이에 대해 잘 아느냐?]“저처럼 2년 전에 몬스터로부터 부모를 잃은 아이예요. 밑으로 동생 둘이 있는데, 아직은 많이 어리다고 하더라고요.”
차윤과는 1년 동안 봐 왔기에 사정 정도는 대충 알고 있었다.
박현수도 여유가 없어 크게 도와주진 못했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동생들이 매장에 놀러 올 때면 용돈 한 푼 정도는 챙겨 줬었다.
그럴 때마다 차윤은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박현수는 환한 얼굴로 열심히 일하는 차윤을 보았다.
안 힘든 세상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때, 차윤이 웃는 얼굴로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를 박현수 앞에 내려놨다.
“맛있게 드세요.”
“오냐.”
박현수는 햄 치즈 샌드위치를 크게 물었다.
채소가 두툼하게 들어가 있어 한입에 간신히 들어갔다.
천경이 멍하니 제자가 먹는 꼴을 지켜봤다.
그러다 물었다.
“어마어마하게.”
[젠장.]“우물우물, 아. 이것 참 한입 드리고 싶은데.”
박현수는 히죽 웃으며 샌드위치를 반으로 뚝 잘랐다.
그리곤 천경에게 내밀며 놀리듯 말했다.
“차암~ 아쉽네요. 좋은 건 나눠 먹어야 하는데, 정말 아쉽습니다. 정말로.”
[이이익!]참다못한 천경이 샌드위치에 손을 뻗었다.
박현수는 어차피 손이 샌드위치를 관통할 걸 알았기에 가만히 있었다.
우직-!
“…….”
[…….]박현수와 천경이 서로 못 믿겠단 눈으로 샌드위치를 보았다.
분명 통과되었어야 할 샌드위치가.
“……어?”
박현수가 쥐고 있던 샌드위치를 천경이 그대로 뺏었다.
빵부스러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작은 소란에 차윤이 다가왔다.
“오빠 뭐 하고 있어요? 허공에 손 뻗고?”
“어…… 어?”
“뭐하냐고요.”
“안 보여?”
“뭐가요?”
천경은 샌드위치를 들고 있었다.
방금 반으로 뚝 뗀 샌드위치를.
박현수의 멍청한 표정에 차윤이 고개를 기울였다.
“이상한 짓 마시고 어서 드세욧!”
차윤은 새침한 얼굴을 하고 카운터로 돌아갔다.
박현수는 천경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히죽 웃고 있었다.
“……네.”
[잘 먹으마.]“그러시던가요…….”
박현수의 손을 통하면 천경 역시 쥘 수 있다.
두 사제는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었다.
박현수에게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 * *
박현수가 떠나고 차윤은 퇴근할 준비를 했다.
오늘도 아침 7시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달렸다.
오후 늦게 카페 아르바이트를 나가야 하지만, 그동안 여유가 있으니 집에 가서 쉴 생각이었다.
“으으으, 빨리 가자!”
대타 알바가 오자마자 바로 샌드위치 가게를 나섰다.
그녀의 집은 강동구 길동의 주택 단지에 있었다.
다행히 집은 부모님 소유라 거주 문제는 없었다.
“가는 길에 만두 좀 사 가야겠다.”
동생들은 만두를 좋아했다.
버스를 타고, 환승하기 위해 천호역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리고 사건은 발생했다.
콰앙-!!
멀리서 굉음이 들려왔다.
차윤은 비롯한 많은 사람이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저 멀리에서부터 대량의 급류가 무서운 물살을 이끌고 들이닥치고 있었다.
아파트부터 빌딩, 작은 상가 건물, 도로 위 차량까지.
모든 게 무너지고, 파괴되고, 뒤엎어졌다.
끝도 없이 밀려 들어오는 물은 온갖 찌꺼기를 대동한 채였다.
2년 전, 그날처럼.
재앙이 한국을 덮쳤다.
차윤은 급히 몸을 돌려 도망치려다가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아, 안돼.”
집에 동생들이 있었다.
* * *
이민아는 야근 중이었다.
그녀의 백옥같던 피부는 스트레스로 다 일어났고, 눈 밑은 까무잡잡하게 물들어 있었다.
“하아.”
그럼에도 한숨 소리마저 고왔다.
이민아는 앞에 놓인 한 헌터의 프로필을 보고 있었다.
어제. 아니지, 이젠 엊그제 헌터가 된 박현수의 프로필이었다.
“참 다루기 어려운 사람이네.”
그녀는 턱을 괸 채 프로필 종이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레드 라이온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지 못하면, 계약은 성사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상부에선, 오케이 사인도 내주지 않았으면서 어떻게든 도장을 받아내라고 압박했다.
웃긴 일이었다.
자기들이 할 일 아니라고, 억지를 부린다.
“체계란 게 없으니까.”
말이 좋아 헌터 협회지, 만들어진 지 이제 1년 조금 넘은 집단이었다.
그전까진 포탈대책위원회의 임시 본부를 통해 헌터들이 활동했다.
그것도 사적인 이익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싸움이었다.
헌터들이, 세상이 나름 여유로워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직 과도기인 세상이었다.
“모르겠다. 그 여자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움직여야지.”
다른 길드는 안중에도 없었다.
경쟁자는 오로지 레드 라이온의 하유락뿐.
“집에나 갈래.”
이틀 가까이 사무실에만 지냈으면 족하다.
몸에서 슬슬 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 몸도 찌뿌둥해 침대에서 편히 자고 싶었다.
이민아는 혼자 남은 사무실을 짧게 정리하고 이만 퇴근할 준비를 끝냈다.
그리고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이이이이이잉-!!
빨간불이 들어왔다가 나가길 반복.
이민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포탈이 열렸다.”
그녀는 넋 놓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자리로 돌아가 다급하게 전화기를 들었다.
누군가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고, 상대는 신호음에 세 번 가기 전에 받았다.
이민아는 다급하게 전화 속 너머의 상대에게 물었다.
“어느 포탈입니까?!”
아직 개방이 예정된 포탈은 없었다.
아니, 하나 있었다.
새로운 타입으로 추정되는 일자산의 B등급 포탈.
거기는 현재 트리플 서클의 공략대가 들어가 있었다.
개방이 예정되어 있다 해도 공략대가 안에 있다면 개방되지 않는다.
실패하지 않는 이상은.
수화기 너머에서 떨리는 음성이 답변으로 돌아왔다.
-이, 이, 일자산 포탈입니다.
이민아는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아마 강동구 방향으로 추정되는 곳을 쳐다보았다.
-거대한 급류가, 강동구 일대를 휩쓸어 버렸습니다. 마치 댐이 터진 것처럼.
이민아는 저도 모르게 수화기를 놓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