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32
훈수 두는 천마님 129편
박현수는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옆엔 카본이 의자에 앉은 것처럼 떠 있었다.
“이렇게 보니 꽤 장관이네.”
그는 귀여운 천사 날개 달린 망원경으로 지상을 보며 히죽 웃었다.
천여 마리의 몬스터와 만 단위의 헌터가 격돌하는 광경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C급 헌터 다섯을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가 천 마리.
그 힘은 비교 대상이 C급 헌터일 뿐 B급 헌터라도 쉽게 사냥하지 못했다.
“그래도 순항이네.”
C급 미만의 헌터들은 뒤에서 보조하고, C급 이상의 헌터들은 전방에서 몬스터들과 치열하게 사투를 벌였다.
놀라운 것은 저 많은 수가 어렵지 않게 통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허울뿐인 군대가 아니었어.”
“인간의 가장 큰 힘은 뭉치는 데서 나오니까.”
인간이 유독 그렇다.
단일 개체로는 야생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정도로 약하지만, 군집을 이루었을 때 그 어떤 생물체보다도 강해지는 게 인간이었다.
심지어 지금의 인간들은 아무 힘도 없던 때와 달리 이능력을 각성했다.
아무리 강한 몬스터라도 그들의 단합된 힘은 막기 어려웠다.
“여기까진 극적인 상황 자체가 연출이 안 되는군.”
“아무리 인류가 허접하더라도 저것들하고 비교하긴 조금 그렇지.”
카본은 언제 꺼냈는지 도넛을 입에 물었다.
허접이란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머릿수가 많아도 5단계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마무리되었다.
문제는 4단계부터였다.
지금이야 몬스터들의 수준이 낮으니 크게 어렵진 않았을 터.
하지만 2단계부턴 B급 헌터 다섯이 붙어야 사냥이 가능한 몬스터가 총 오천 마리였다.
게이트 당 오백 마리인 셈이니, 난이도가 확 오른다고 볼 수 있었다.
“되겠어?”
“방금은 오로지 물량과 힘으로만 승부를 본 거잖아. 전략 전술이란 게 없는 전투였어.”
“확실히.”
군대의 무서운 점은 명령이란 걸 통해 그 많은 수의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데 있다.
그것만으로도 강력한데, 전략을 통한 전술까지 발휘된다면 공격력은 적게는 수 배에서 많게는 수십 배로 뛰게 된다.
물론, 엉성한 전략 전술은 군대를 사지로 몰아넣겠지만, 뉴 월드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4단계에 어떤 몬스터가 나오는지 인간들은 모르잖아?”
“그럼 모르는 적을 상대로 쓰는 전략을 짜겠지.”
“너도 엄청 냉정하다. 그거 알려주는 게 뭐 어렵다고.”
“한계에 한계까지 몰렸을 때 영웅은 탄생하는 거야.”
바람에 박현수의 머리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의 마무리 된 전장을 보았다.
인간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놈들도 알고 있겠지?”
“이렇게 요란한데 모른다면 그게 이상하지.”
“킹 녀석.”
카본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 하늘 너머 어딘가에 거대한 이계가 숨어 있다.
놈들은 쥐새끼처럼 그곳에서 이곳을 숨죽여 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토깽이 깼겠다.”
“밥 제때 안 주면 큰일 날 수 있으니까 빨리 가 봐.”
“내가 무슨 보모도 아니고. 짜증 나 죽겠네.”
그는 파란 머리를 거칠게 긁으며 텔레포트로 사라졌다.
박현수는 조금 더 마무리되는 광경을 지켜보다가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 * *
“놀라워.”
한국 협회 작전기획팀장 천우진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천 마리의 몬스터라든가, 그에 맞서는 각성자 군대라든가, 그런 것에 놀란 게 아니었다.
천 마리의 몬스터를 단숨에 뿜어낸 거대한 게이트.
천우진은 그 놀라운 기술력에 놀랐다.
인류도 포탈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지만, 눈앞의 게이트와 비교하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박현수는 저런 걸 대체 어디서 구한 거지?’
그는 한 번도 자신에 대해 깊게 얘기한 적 없었다.
대부분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상관들은 상대가 박현수다 보니 캐묻진 않았지만, 천우진은 캐묻고 싶었다.
과연 그는 무엇일까.
도대체 우주에서 어떤 삶을 보냈는지, 어디까지 능력이 닿아 있는지.
그에 대해 알고 싶었다.
친해진다면, 그는 전부 말해 줄까?
‘흠.’
천우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때.
“팀장님?”
“아, 이 부장님.”
“이곳에서 뭐 해요?”
이민아는 약간 피곤한 얼굴로 천우진 옆에 섰다.
이곳 게이트는 한·중·일이 협력했는데, 이민아가 한국의 각성자들을 총괄했다.
지휘 체계야 따로 있지만, 윗선이다 보니 해야 할 일이 상당히 많았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 4단계에선 어떻게 할지 생각을 좀 하셨나요?”
“대충은 파악했습니다. 적의 정보가 없다시피 하지만 게이트에서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 확인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역시 유능하셔.”
이민아가 배시시 웃었다.
“그러고 보니 부장님.”
“네?”
천우진이 고개를 휙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왜, 왜 그러세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이민아는 몸을 뒤로 뺐다.
천우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부탁했다.
“혹시 박현수 님과 식사 자리를 마련해 주실 수 있을까요?”
“혀, 현수 씨랑요? 어쩐 일로.”
“몬스터 웨이브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요.”
“듣기론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을 거라고 했다던데.”
박현수의 목적은 모든 윗선엔 전달되었다.
인권을 뭐라고 생각하냐고 따지는 자도 있었고,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나서는 자도 있었다.
이민아는 굳이 따지자면 전자였지만, 지금 상황에선 인권을 운운하다가 멸망을 초래할 수도 있기에 군말 않고 있었다.
“몬스터의 정보 같은 걸 묻고 싶은 게 아니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흠.”
천우진은 유능한 남자다.
2년 동안 성과를 보여 왔고, 앞으로도 계속 보여 줄 것이다.
그렇다고 박현수와 식사 자리를 만들어 주는 건 별개의 얘기였다.
‘일단 나부터가 그런 자리를 못 만드는 걸…….’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시무룩해졌다.
그녀의 어깨가 축 처지자, 천우진이 당황했다.
“아, 무리한 부탁이라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그게 아니라요…….”
“예?”
“밥 먹자고 할 만큼 막역한 사이가 아니라서…….”
예전이라면 눈 딱 감고 ‘밥 한 끼 먹읍시다!’라고 했겠지만, 2년이 지난 만큼 많이 어색해졌다.
그런데 밥을 먹자고 부탁한다?
이민아에게 그런 용기가 있었다면, 박현수가 떠나기 전에 데이트를 제안했을 것이다.
“아…….”
천우진의 썰렁한 반응에 이민아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어졌다.
“괘, 괜찮습니다. 제가 알아서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아녜요!”
그때, 이민아가 음식을 잘못 먹기라도 했는지 주먹을 불끈 쥐고 상체를 곧게 폈다.
“갑자기 뭐가 아니라는 건지.”
“제가 부탁해 볼게요.”
“가능하시겠습니까?”
“이, 인류를 위해서라면.”
방금 그녀의 눈동자가 미세하지만 흔들렸다.
이 기회를 틈타서 연락이나 한 번 시도해 보려는 게 분명하다.
‘인기가 많군.’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젊은 여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고 생각하니. 약간의 부러움이 생겼다.
천우진은 피식 웃으며 앞을 바라봤다.
* * *
“현수! 현수!”
집으로 돌아오니 셀리가 껑충하고 품으로 안겨 왔다.
가볍게 몸을 숙이는 것으로 피해 주고 신발을 벗었다.
“아빠!”
“잘 있었어, 모나미?”
“녜!”
박현수는 모나미를 품에 안고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현수 너무해! 너무해, 너무해!”
“끠잉!”
셀리가 방방 뛰자 모나미가 성을 냈다.
그러자 엄청난 속도로 구석에 쭈그러든 셀리는 겁먹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히익-! 자, 잘못했어…….”
“셀리도 잘 있었어?”
“응!”
물론, 박현수가 인사해 주니,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펄쩍 뛰었다.
이젠 익숙해진 광경이라, 모나미도 그녀가 단순히 뛰는 정도로는 뭐라 하지 않았다.
“그보다 우리 딸 좀 컸네?”
“커써! 모나미 커써!”
드래곤은 성장이 빠른 종이다.
특히 모나미의 경우는 ‘용왕’의 자식.
태어난 지 이제 보름 정도인데 1m까지 자랐다.
말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 이젠 문장을 말할 지경이 되었다.
“놀고 있어.”
“녜!”
“셀리. 우주선으로 가 보자.”
“응응!”
셀리가 단숨에 달려와 팔짱을 꼈다.
그게 꽤 과격했는지, 모나미가 눈을 빛냈다.
“히익…….”
둘은 꽤 친해지긴 했지만, 약간 상하 관계가 명확해진 것 같았다.
물론 상은 모나미였고, 하가 셀리였다.
셀리는 울상을 지으며 주머니에서 작은 열쇠를 꺼냈다.
열쇠에 힘을 불어넣자.
“삐이?”
모나미는 텅 빈 방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왔냐?”
“군세 쪽은?”
“아무런 반응도 없어.”
카본은 껌을 쫙쫙 씹으며 모니터를 살피고 있었다.
녹색 바탕엔 세계 지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수많은 동심원이 지도 전역으로 넓게 퍼지고 있었다.
“뭔가 움직임이 있을 줄 알았는데 묵묵부답이야.”
몬스터 게이트는 그들에 분명 큰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행동을 보일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어서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아니면 이미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우리 쪽에 잡히지 않을 가능성은?”
“없다곤 못하지. 놈들은 우주에서도 활약한 해적이니까.”
어쩌면 우주선도 파악했을지 모른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알아챘다면 어떤 방향에서라도 공격해 왔을 것이다.
우주선을 봤다면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졌다는 걸 인지했을 테니까.
신중한 걸 수도 있겠지만, 카본은 그건 아니라고 확신했다.
“지구로 침입하거나, 뜬금없이 발생한 이상 현상은 모두 체크해.”
“어련히 하려고.”
“뭐, 이건 네 전문분야니까. 믿는다.”
“오케이~!”
카본은 대충 대꾸하면서 커다란 버튼을 연달아 눌렀다.
박현수는 우주선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몸 좀 풀게?”
“없으면 모르겠는데, 있는데 굳이 안 쓸 이유는 없지.”
“히히! 구경할래. 구경!”
“마음대로 해.”
허락하자 셀리가 신나서 방방 뛰었다.
그 높이가 엄청났는데, 우주선의 천장에 닿을 정도였다.
반지하 집에선 그녀가 얼마나 자제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박현수는 우주선 중앙실에 도착했다.
‘다른 사람들도 목숨을 걸고 노력하는데, 그걸 지시한 내가 가만히 있는 건 말이 안 되지.’
그는 상체를 탈의하고 중앙실의 문을 열었다.
“셀리. 신호 보내면 최대치까지 올려 버려.”
“으, 어? 최대치? 그건 몸 푸는 거 아닌데……. 그럼 현수 죽어. 현수라도 죽어!”
“안 죽어.”
그가 중앙실 안으로 발을 들이자, 문은 매정할 정도로 빠르게 닫혔다.
셀리는 발을 동동 굴렀다.
“죽는데…….”
중앙실 벽 전체가 투명하게 물들었다.
그 중심에 선 박현수는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셀리는 손톱을 깨물며 조작판 앞에 섰다.
“셀리, 시작해.”
스피커를 통해 박현수가 신호를 보내 왔다.
셀리는 울상을 지으며 조작판을 보았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강도 조절기를 우측을 회전시켰다.
쿵-!!
커다란 진동이 중앙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안을 살피자 딱히 변화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변화가 없진 않았다.
박현수의 전신이 뭔가 압박받는 것처럼 꽉 짓눌리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머리에 찰싹 붙고, 옷이 진공포장이라도 된 것처럼 잔뜩 찌그러졌다.
하지만 표정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조절기를 조금 더 돌렸다.
“음.”
안에서 박현수의 작은 신음이 들려왔다.
셀리가 눈을 잔뜩 찡그려졌다.
공간이 일그러졌다.
“혀, 현수.”
“괜찮아. 끝까지 올려.”
“지금도 지구의 100배야…….”
현재 박현수가 들어가 있는 장소는 다름 아닌 ‘기압 조정실’.
공간의 기압을 조정할 수 있는 곳으로 타고난 신체를 가진 초월종 레비니안이 육체를 단련하기 위해 만들어진 훈련장이었다.
현재 박현수가 견디고 있는 기압은 지구의 100배!
지구보다 90배가 높다고 알려진 금성보다도 10이 높은 수치였다.
인간이었다면 이미 찌그러져 흔적도 남지 않았을 터.
하지만 박현수는 초월자.
이 정도는 그에게 별 무리가 아니었다.
‘맥시멈이 된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전신에 힘을 주었다.
흑강기가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셀리는 그를 보곤 조금 더 기압을 올렸다.
이젠 공간이 형상을 만들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지구 기압의 300배.
이것도 아직 절반이 되지 않는다.
레비니안도 여기부턴 쉽지 않았다.
셀리도 300배 이상은 경험해 보지 못했다.
“더 올려……?”
“셀리!!”
“아, 아라써!”
그녀는 눈을 감고 조절기를 최대치까지 올렸다.
기압조정실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현수!”
최대 기압은 지구의 천 배!
우주상에 있는 생물 대부분은 이곳에서 한 줌의 재도 존재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이미 기압의 단위가 아니었다.
작은 블랙홀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
‘이건 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몸이 짓눌리다 못해 찢겨 나갈 것만 같았다.
입 뻥긋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흑강기가 없었다면 아무리 초월자의 육체라도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찌그러져 사라졌을 것이다.
맥시멈 수치 천 배는 그로서도 처음 도전해 보는 영역이었기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방심하면 끝이다.’
단전이 꿈틀거렸다.
기혈이 바짝 긴장하며 내공을 천천히 운반하기 시작했다.
조금 다리를 벌렸다.
천 배의 기압에서 움직이는 건 쉽다거나 어렵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기마 자세를 취하고, 양팔을 들어 자세를 잡았다.
단순히 견디는 것은 수련이 아니다.
박현수는 새까만 어둠 속에서 무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 * *
셀리는 지금이라도 훈련을 멈춰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
“후아!”
기압조정실을 덮은 어둠이 은하수처럼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셀리는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놓고 쳐다봤다.
그녀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다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둠이 서서히 걷혔다.
그리고.
“죽을 뻔했는데?”
박현수가 즐거운 얼굴로 웃었다.
천 배의 기압은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