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33
훈수 두는 천마님 130편
카본은 박현수의 나체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한숨을 쉬었다.
“정신 나간 놈. 기압 천 배? 어쩐지, 우주선이 엄청나게 흔들린다더라니. 망가진 줄 알았잖아!”
“미안, 미안.”
“넌 안 말리고 뭐 했어!”
“말렸다 뭐…….”
셀리가 축 처진 귀를 하곤 시무룩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 정확히는 시무룩한 척하면서 힐긋힐긋 박현수를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저 변태 토끼 녀석.
한숨을 그만 쉬고 싶은데 저런 걸 보면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온다.
지금처럼.
“하아……. 사내놈 알몸을 내가 왜 봐야 해?”
“자주 봤잖아.”
“개 같은 소리 하지 마!”
카본이 버럭 외치며 손을 휘젓자, 박현수의 알몸에 옷이 입혀졌다.
“마법은 역시 편리해.”
“내가 네놈 옷이나 입히려고 마법을 익힌 줄 알아?”
“좋은 게 좋은 거지.”
“빌어먹을! 개 같은! 엿 같은!”
박현수는 쾅쾅 소리를 내며 멀어지는 카본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카본 예민해. 예민!”
“아냐. 이번엔 저럴 만해.”
“그래?”
“그래.”
“카본 그럴 만해!”
더는 혼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셀리의 텐션이 돌아왔다.
“방금 뭐였지?”
그때, 바닥에 정사각형으로 빛이 들어오더니, 아이작이 머리부터 튀어나왔다.
박현수가 주선해 그는 현재 우주선에서 레비니안들의 훈련장을 이용하고 있었다.
2단계 몬스터 웨이브까진 그에게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게 분명해서 3단계 전까진 혼자 수련하게 할 생각이었다.
“뒤늦게도 나오는구나.”
“집중을 깨고 싶지 않았다.”
천 배 기압으로 우주선 전체가 격동했을 텐데, 그런 상황에서 집중했단 사실이 놀라웠다.
집중력이 좋다고 해야 할지, 무식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이작! 몇 단계?”
“6단계에서 실패했다.”
“우와.”
셀리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지하에 있는 레비니안들의 훈련장은 총 10단계로 이루어졌는데, 난이도가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다.
특히 5단계를 넘어가면 그때부턴 목숨이 위태로운 수준이었는데, 일주일도 안 돼서 6단계에 도달한 건 꽤 대단한 것이었다.
“아직 멀었어. 더, 더, 더 해야 해.”
아이작의 눈에 일순 광기가 스쳐 지나갔다.
[파트너, 쉬엄쉬엄하라고.]“닥쳐라. 별일 아닌 것 같으니 다시 내려가 보겠다.”
그는 마검을 툭 쏴붙이곤 다시 아래로 사라졌다.
그의 열망이 어느 정도인지 그날 확인했다.
훈련을 해도 해도 부족하게 느껴질 것이다.
아이작이 원하는 건 자신과 같은 수준이었으니까.
물론, 그 수준이 되려면 고작 레비니안의 훈련장이나, 몬스터 웨이브만으로 부족하다.
‘나와 동급이 되려면.’
박현수는 굳은살 박인 손을 보다가 꽉 움켜쥐었다.
“집으로 가 볼게.”
“벌써 가?”
“잠깐 확인할 겸 온 거니까. 동생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동생도 데리고 와!”
“안 돼. 그 녀석은 여길 보면 충격받을 거야. 그리고 한창 집중하고 있을 테니.”
박현수는 일전에 아이작을 테스트했던 흰 공간에서 고생하고 있을 동생을 떠올렸다.
* * *
박현태는 커다란 도면 위에 서 있었다.
그 도면엔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그래프가 그려져 있었다.
처음엔 그래프를 보는 법조차 몰라서 몇 시간이 헤맸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젠 그래프를 볼 줄 알았다.
“저곳이 뉴욕, 저곳이 워싱턴, 저곳이 켈리포니아.”
박현태 앞엔 세계가 놓여 있었다.
정확히는 세계를 나타내는 공간이 점선 그래프 같은 형태로 복잡하게 얽히고설켰다.
현재 그가 보고 있는 곳은 미국이었다.
“이제 바로바로 찾아지네.”
그의 형인 박현수는 다른 것보다도 일단 시공간의 도면을 기본적으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숙제를 하나 내주었는데, 공간 도면 사용법 깨우치기였다.
처음엔 형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 보니 무시는 자신이 한 거였다.
“로벤 씨가 존경스러워질 것 같아.”
“그러냐?”
“우왓!”
박현태는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박현수 덕분에 까무러치듯 놀랐다.
“형! 기척 좀 내라니까!”
“이거 꽤 재밌다?”
“난 재미없어!”
얼마나 장난기가 많은지 다양한 방법으로 동생을 놀린다.
박현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몬스터 웨이브는?”
“잘 끝났어.”
“네 번 남은 거지?”
“2단계부턴 너도 본격적으로 참가할 거야. 숙제는 다 끝냈어?”
“공간 도면은 얼추.”
원하는 지역을 공간 도면으로 어렵지 않게 찾아낸 정도였지만, 그 정도만 해도 합격점이었다.
“그럼 이젠 네가 해당 공간을 디테일하게 파악하는 것과 그곳의 과거와 미래를 읽는 연습을 해.”
“끄응.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너무 어려울 것 같은데.”
“로벤 씨가 생전에 다 할 줄 알았던 것들이야.”
실제로 가능했던 것들이니 노력만 한다면 박현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무엇보다 박현태의 말에 따르면 로벤은 자신보다 그가 더 시공간의 도면 쪽 재능을 타고났다고 했다.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으니 그 말은 사실일 터였다.
“다음 주까지 어느 정도는 사용할 수 있는 레벨이 되어야 해. 그래야 몬스터 웨이브에 참가할 수 있어.”
“……그거 진짜 해야 해?”
“능력이 없었다면 모를까, 로벤 씨의 유지를 이은 이상 도망칠 곳은 없어.”
“…….”
“알고 있어. 네가 부담을 느낀다는 거. 하지만 현태야. 운명이라는 건 거부하고 싶다고 거부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한 번.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 발버둥을 친 적 있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런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장 소중한 걸 가져갔다.
그로 인해 미래를 얻었지만, 역시나 운명은 잔인하다고밖에 표현이 안 되었다.
“……알았어.”
“조금만 더 고생하자. 놈들만 몰아내면 우린 행복해질 수 있어.”
형이 동생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것이 몹시 부담스러웠지만, 동생은 티를 내지 않았다.
박현수는 부드럽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고프지?”
“그러고 보니 벌써 시간이.”
“오랜만에 윤이네 가자.”
박현수가 먼저 흰 공간, 큐브를 빠져나갔다.
박현태는 형이 나간 방향을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과연 이게 맞는 걸까.
그리고 형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
눈살이 찌푸려졌다.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 건지 모르겠다.
“밥이나 먹자.”
그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간 순간이었다.
『“널 믿는다.”
검은 털 망토를 두른 노인이 굉장히 긴 흑발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에게 말했다.
여인은 고혹적인 미소를 그리며 노인의 턱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었다.
“절 깨웠으면 믿으세요.”
“너만큼은 짐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죽음과 정복과 파괴와 재앙이 저를 만들었어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답니다.”
“이제 그만…… 음?”
노인이 여인의 흑발을 조심히 뒤로 넘기다가 갑자기 좌우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여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죠?”
“뭔가, 우리를 보고 있다.”
검은 털 망토가 곤두서며 노인의 눈이 칙칙한 어둠으로 물들었다.
박현태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는 억지로라도 눈에 보이는 것을 지우려고 했지만, 능력은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노인이 가까이 다가온다.
주름진 손을 뻗으며 얼굴을 감싸려 한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얼굴을 최대한 뒤로 뺐지만, 손은 멈출 줄 모르고 다가왔다.
‘안 돼.’
그렇게 생각한 순간.
“현태야!”』
“허억!”
박현태가 바닥을 뒹굴었다.
“박현태!”
박현수는 동생의 머리를 받치고 상태를 확인했다.
상당히 놀란 것뿐 몸에 이상이 있진 않았다.
박현태는 숨을 껄떡이며 시선을 한곳에 두지 못했다.
“모나미.”
“녜!”
모나미의 몸에서 따뜻한 기운이 흘러나와 박현태를 감쌌다.
박현태의 경련하던 눈이 점차 차분해지며,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잘했어.”
“헤헤.”
칭찬을 들은 모나미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박현수는 동생을 업고 밖으로 나왔다.
일단 한동안은 자게 둬야 할 것 같았다.
‘대체 뭐지?’
박현수가 큐브로 돌아온 건 박현태가 늦게 나와서가 아니었다.
뜬금없이 느껴진 불길한 직감.
오로지 그것 때문에 다시 큐브로 들어왔다.
그리고 동생이 괴로워하면서 쓰러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깨어나 보면 알겠지.”
박현수는 그리 말하며 동생 옆에 앉았다.
모나미는 분위기를 살피며 아빠의 무릎 위로 올라왔다.
* * *
“왜 그래요?”
“아니, 아니다.”
킹은 손을 거두며 말했다.
방금 그건 뭐였을까.
익숙하면서도, 절대 느껴져선 안 될 것 같은 무언가가 손에 잡힐 것 같았다.
하나, 잡히지 않았다.
중요한 건 결국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킹은 오랜만에 찝찝함을 느꼈다.
‘별것 아니겠지.’
과연 그럴까?
생각은 그렇게 해도 킹은 여전히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나저나, 제약이란 게 꽤 심하긴 하네요.”
긴 흑발이 매력적인 아름다운 여인이 길고, 얇은 손을 쥐락펴락 반복하며 불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다른 이들을 알까?
저 고운 손으로 수억에 달하는 생명이 꺼졌다는 것을.
킹은 인자하게 웃어 보였다.
“퀸, 네게 내려진 임무는 지금의 힘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퀸이라 불린 여인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비단결 같은 흑발이 부드럽게 찰랑거렸다.
“그런 건.”
허공에 지구와 이어진 포탈이 열렸다.
“걱정하지 말라구요.”
포탈이 그녀를 집어삼켰다.
킹은 그녀가 서 있던 곳을 쳐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퀸은 갔나요?”
바이스가 언제 왔는지 다소곳하게 입구에서 서 있었다.
“그렇다.”
“걱정되시나요?”
“걱정? 크크큭.”
보기 드문 킹의 웃음소리였다.
그는 저벅저벅 바이스의 옆을 지나쳤다.
“그녀는 퀸이다. 우리가 만들어 낸 결전 병기.”
제약으로 묶여 있다 한들, 그녀가 가진 힘은 여타의 간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
‘그래. 걱정이 된다면 한 명뿐이지.’
박현수.
그의 기감에 포착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보냈다.
영원히 속일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수준은 자신들에게 밀리지 않으니, 그가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에 모든 걸 끝내야만 한다.
그리고 킹이 장담하건대 퀸에겐 그만한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그만 가자. 우리도 마저 준비해야 하니.”
바이스는 멀어지는 그의 등을 보다가 천천히 쫓아가기 시작했다.
* * *
늦음 밤이 되어서야 박현태는 눈을 떴다.
“깼어?”
“형.”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무슨 일……?”
박현태는 머리를 부여잡고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곤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분명 뭔가를 봤는데, 기억이 잘 안 나.”
“음?”
“분명, 굉장히 중요하고, 위험한 느낌이었는데…… 기억이 안 나, 형.”
“차분하게 생각해 봐. 분명 떠오를 거야.”
“차분하게.”
형의 말대로 박현태는 최대한 차분해지려고 숨을 크게 들이켰다가 내뱉는 걸 반복했다.
그러자 답답함이 살짝 가셨다.
그렇다고 기억이 떠오르는 건 아니었다.
“충격받아서 일시적으로 그런 걸 거야. 떠오를 테니까 걱정하지 마. 좀 더 쉬어.”
“알았어.”
“뀨우.”
박현태가 다시 이불에 눕자, 모나미가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들어 누웠다.
그는 모나미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만져 주며 계속해서 떠올리려고 애썼다.
“배고프지?”
“배? 음…… 조금 고픈 것도 같고.”
“고플 거야. 꽤 오래 굶었으니까.”
박현수는 동생에게 간단히 뭐라도 해주려고 부엌 앞에 섰다.
동생은 형의 뒷모습을 보다가 눈을 번쩍 뜨며 벌떡 일어났다.
“형!”
“왜 그래?”
“떠올랐어.”
“갑자기? 뭔데.”
라면 봉지를 막 뜯은 박현수가 라면을 내려놓고 동생에게 한걸음에 다가왔다.
박현태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움켜쥐고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곤 형의 눈을 보며 떨리는 입을 천천히 열었다.
“검은 털 망토를 입은 노인.”
“검은 털 망토를 입은 노인?”
“그리고 긴 흑발이 매력적인 미인.”
“현태야.”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 널 믿는다고. 그러니까 죽음과 정복과 파괴와 재앙이 자길 만들었으니 걱정말라고…… 누군가 느껴진다고 했어. 누군가 보고 있다고. 그래서 내게 다가왔어. 내게 손을……!”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떠오르는 기억들이 거칠게 뒤섞여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머리가 새하얘지며 불안함이 등골을 타고 오싹하게 얼굴을 감싸왔다.
손이 덜덜 떨렸다.
노인과 여인의 대화.
다가오는 노인.
뻗어오는 주름진 손.
“현태야!”
박현수가 동생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박현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박현태!”
“어…… 어?”
“괜찮냐?”
“형?”
“갑자기 왜 이래?”
“형…… 알았어. 나 알았어.”
로벤의 오래된 기억이 퍼즐처럼 다가와 뒤섞인 기억에 끼워 맞춰졌다.
“검은 털 망토를 입은 노인.”
“그 노인이 왜?”
“그자가 킹이야.”
“……?”
“킹이, 누군가를 지구로 보냈어.”
박현수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동생의 멱살을 놓더니 양쪽 어깨에 손을 올렸다.
“수고했다, 현태야.”
형의 뒤에 기묘한 무언가가 서 있는 것 같은 건 착각일까?
동생은 형의 눈에 타오르는 검은 귀화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