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34
훈수 두는 천마님 131편
“A 포인트 클리어.”
-B 포인트 클리어!
-D 포인트도!
-C 포인트 극적 클리어!
“다들 집합.”
A급 헌터 에인젤은 헤드폰을 벗어던지고 모랫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주변으로 다섯 명의 헌터가 무장을 해제하며 다가왔다.
“후,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약한 놈들 주제에 머릿수는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약하니까 뭉치는 거지.”
파란 머리 헌터의 투덜거림에 흑인 헌터가 대꾸하며 에인젤 옆에 자리를 잡았다.
“몬스터 웨이브 끝나자마자 임무에 나서려니 죽을 맛입니다.”
“그거에 비하면 여긴 천국이지.”
“맞습니다, 맞아요~!”
찰리란 이름의 헌터가 맞장구치며 그대로 드러누웠다.
전신이 땀범벅에 고된 노동으로 진이 빠졌다.
파란 머리 헌터 피젠은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면서 옆에서 부럽다는 듯 보는 홍일점 아미노에게 한 개비를 건넸다.
“피우실?”
“돼, 됐어요.”
아미노는 격하게 고갤 저으며 에인젤 옆에 앉았다.
그러면서 힐긋 담배를 바라보더니 침을 꼴깍 삼키곤 눈을 감았다.
피젠은 어깨를 으쓱이곤 불을 붙였다.
“이번 건은 좀 별로네요. 아이템도 안 뜨고, 스킬북도 안 뜨고.”
“B급치고 별로긴 해.”
“대장 다음 웨이브에도 참가할 거예요?”
피젠의 물음에 에인젤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모래더미에 파묻혀 있는 작은 돌을 집어 저 멀리 집어던졌다.
“까라면 까야지.”
“젠장. 그 지옥으로 또 가라고? 다음 건 더 빡세다면서요?”
“마리 당 B급 헌터 5마리가 붙어야 잡을 수 있는 녀석이 게이트 당 오백 마리였다고 했나?”
“미친. 오백 마리?”
“상부는 우릴 다 죽일 셈이야?”
지금 이곳에 모인 헌터들은 에인젤을 제외하고 모두 B급 헌터였다.
2단계 몬스터 웨이브에 나오는 몬스터 한 마리조차 사냥할 수 없었다.
물론, 실제로 그 정도 강함은 아니겠지만, B급 헌터 다섯이 필요한 시점에서 상대 몬스터가 오백 마리라는 건 죽으라는 것과 똑같았다.
“대가리들이 미친 거 아냐?”
“말조심해라. 그러다 그분들 귀에 들어갔다간 경칠라.”
“말조심이고 자시고 우릴 다 죽일 셈인데, 욕이 안 나옵니까?”
“그래도 불가능한 건 아니야.”
“네?”
피젠은 에인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불가능하지 않다니.
B급 다섯이 있어야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가 오백 마리란다.
자긴 A급이라고 저런 말을 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에인젤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게이트 당 배치되는 헌터는 약 만 명이야. 그중 C급 이상이 대충 4할이지. 4할 중 대부분이 C급이긴 하지만, B급만 해도 천 명은 되고, A급 역시 백 단위는 될 거야.”
“으음…….”
“1단계는 처음 해 보는 거라 우리가 긴장했던 탓에 어려웠던 거야. 2단계는 오히려 쉬울지도 몰라.”
그건 아니었다.
몬스터의 수준 차이가 극심하다.
어려우면 어려웠지, 절대 쉽단 말은 못 한다.
하지만 에인젤의 말이 영 틀린 건 아니었다.
이미 한 번 겪어 본 헌터들은 충분히 각오할 것이기에, 어쩌면 더해 볼 만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쳇.”
피젠은 영 마음에 안 드는지 다 핀 꽁초를 퉤 뱉었다.
“다들 오네요. 슬슬 일어납시다.”
저 멀리 동료 헌터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미노가 손을 번쩍 들어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헌터들은 그녀의 부름에 가벼운 발걸음이 되었다.
그것도 잠깐.
헌터들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가볍던 발걸음은 족쇄라도 단 것처럼 바닥에 고정되었다.
그중 하나가 에인젤 무리에게 소리쳤다.
“도, 도망쳐!”
“음?”
“갑자기 왜들 저래? 무슨 장난이라도 치려는 건가?”
피젠이 피식 웃으며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입가에 맺힌 웃음이 거짓말처럼 지워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장인 에인젤부터 말단 헌터까지.
“……저 여자는 누구야.”
높게 쌓인 모래 산 위에 흑발의 여인이 고고한 자태로 서 있었다.
문제는 누구도 그녀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A급 탐지 능력자인 에인젤조차도 말이다.
아무리 방심하고 있었다곤 해도, 저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모르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모두가 침묵 속에 여인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 여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피해!”
연녹색의 광선 수십 줄기가 모래로 덮인 땅을 매섭게 훑고 지나갔다.
광활한 폭발이 일어났다.
황색 먼지가 허공을 가득 뒤덮었다.
“꺄악!”
“다, 다리가!”
“레드록! 일어나, 레드록!”
사방에서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여인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리며 한 번 더, 연녹색 광선을 흩뿌렸다.
절망이 펼쳐졌다.
* * *
B급 포탈 공략대가 포탈 내부에서 공격당했다.
총 20명으로 구성된 공략대는 대부분 죽음을 피하지 못했으며, 두 명만이 살아남아 간신히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중 한 명은 의식불명 상태로 현재 뉴 월드 직속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역시 군세가 나선 걸까요?”
“남은 한 명의 증언이 맞는다면.”
현재 뉴 월드의 방위를 책임지고 있는 타케시는 의식불명 상태의 헌터가 입원한 병실로 향하고 있었다.
“의식불명 상태인 헌터의 신상정보를 알려 줘.”
“이름은 피젠 브로란. 나이는 스물셋이고, B급의 화염 능력자입니다. 국적은 영국으로, 에인젤 마르노가 이끌었던 공략대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에인젤이 사망해 공략대가 해체된 상태입니다.”
“에인젤 그 친구…….”
“아시는 분입니까?”
“알다마다.”
그는 한때 E.S 길드 소속이었다.
능력 있는 길드원으로 상당한 전적을 쌓은 인물이었다.
그런 자가 허무하게 당했다.
타케시는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생존자는 어디 있는지 아나?”
“비교적 상태가 괜찮아서 취조실에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환자인데 취조실? 담당이 누구야?”
“부, 부의장님이십니다.”
“그 여자 진짜……. 후우, 취조는 내가 한다고 전해.”
아무리 칭란이 부의장이라고는 해도, 방위 담당은 그였다.
방위를 담당하는 이보다 먼저 취조를 하겠다는 건 월권 행사였다.
“알겠습니다.”
부하는 대답과 함께 어딘가로 연락을 취했다.
그러던 중, 병실 앞에 도착했다.
타케시는 병신을 지키고 있는 가드의 인사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살아 있는 게 기적이군.”
오른팔을 제외한 사지가 모두 잘렸다.
왼쪽 겨드랑이부터 옆구리까지 뜯겨나간 것처럼 비어 있었다.
타케시는 호흡기를 통해 간신히 호흡하는 생존자, 피젠을 보며 입을 가렸다.
대체 어떤 공격을 당했기에 이런 꼴이 되었을까.
“고생했다.”
그는 들리지 않을 말을 남기고 병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아직 통화 중인 부하에게 다가가 핸드폰을 뺏었다.
“대, 대장님?”
“방위대장 야마모토 타케시입니다. 지금부터 취조는 제가 할 생각이니, 그만 빠져 줬으면 좋겠군요.”
-하? 타케시? 하면 같이 하는 거지, 뭐라고 하는 거야?
수화기 너머에서 어이없다는 칭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자리를 비워 뒀으면 좋겠군요.”
-이봐, 타케시!
“공적인 자리에서 그렇게 부르기 있습니까? 부의장님.”
-이 녀석이?
“끊겠다.”
-공적인 자리라면……!
타케시는 끝까지 듣지 않고 통화를 종료했다.
핸드폰을 받은 부하는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자신의 상사를 보았다.
“가자.”
“네, 네.”
* * *
“아직도 안 갔습니까?”
“너 왜 그러는데?”
칭란은 갑자기 이상하게 구는 타케시가 못마땅했다.
“불만이라도 있는 거야?”
“불만이라면 있지.”
타케시는 더 이상 존대하지 않고, 평소처럼 그녀를 대했다.
“첫째로 이번 사건은 방위대의 장인 나에게 조사권이 있다. 그런데 당신은 제멋대로 조사대상을 취조했지.”
“왜 이렇게 깐깐하게 구는 건데?”
“조사대상은 환자다. 아무리 다른 생존자에 비해 멀쩡하다고 해도 많은 동료를 잃은 시점이다. 정신적으로 피폐한 상태일 텐데 그렇게 막무가내로 취조해도 되는 건가?”
타케시가 마음에 안 드는 건 그 부분이었다.
속사포 같은 항의에 칭란은 움찔했다.
틀린 말이 하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키 차이도 상당하고, 아래에서 확 내려다보는 구도라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져 꽤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인정하지.”
“취조 내용은 보고서 형태로 올려보내겠다. 그러니 자리를 비켜라.”
“통화로 그렇게 말하면 됐잖아!”
칭란이 까치발을 들고 소리쳤다.
그래 봐야 타케시의 허리밖에 안 되었다.
타케시는 그녀를 무시하고 취조실로 들어갔다.
칭란은 인상을 찌푸리며 닫힌 취조실 문을 바라보다가 감시원에게 말했다.
“계속 지켜봐. 혹시 모르는 거니까.”
뭘 모르겠단 건지 모르겠지만, 감시원은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 * *
그녀가 떠난 걸 확인한 타케시는 고개를 저으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성 헌터, 아미노에게 물었다.
“좀 괜찮나?”
“아…… 네.”
그녀는 초췌한 몰골로 몸을 잔뜩 웅크린 것처럼 앉아 있었다.
“상처는 거의 없어 보이는군.”
“……피젠 씨가 지켜 줬어요.”
피젠이라면 현재 의식불명 상태인 헌터의 이름이었다.
어쩐지 상태가 너무 심각하더라니, 아미노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모양이었다.
“피, 피젠 씨는 좀 괜찮나요?”
“그 여자가 피젠의 상태도 안 알려 줬나?”
“여쭤봤는데 상태를 잘 모르신다고……. 나중에 알려 주겠다고 했어요.”
“일단은 살아 있다.”
“정말요?!”
아미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감격에 찬 눈물을 똑똑 흘리며 어깨를 떨었다.
“어, 어떤가요? 많이 다쳤을 텐데…… 저, 절 구하려고, 저따위를 구하려고 많이 다치셨을 텐데…….”
타케시는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에게 피젠의 상태를 전부 말하는 건 너무 잔인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는 조금 고민하다가 도저히 솔직하게 말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중상이다. 안정을 취하고 있는 상태야.”
“목숨엔 지, 지장 없는 거죠?”
“그건 모르지.”
아마 살기 어려울 것이다.
살더라도 차라리 죽는 게 낫단 생각이 들지도 몰랐다.
그런 잔인한 현실까진 말하지 않았다.
“그보다 그때의 상황을 좀 말해 줄 수 있나?”
“……네.”
아미노는 결의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떠올리는 것만으로 두려운지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지만, 흐르는 눈물을 훔쳐낸 그녀는 말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한 여자가 나타났어요.”
* * *
동생을 집에 보냈다.
박현수는 방 중앙에 앉아 벽을 노려보고 있었다.
킹이 누군가를 지구로 보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몬스터 웨이브를 저지하려는 속셈이 분명했다.
‘문제는 우주선에 포착되지 않았다는 거야.’
우주선만이 아니다.
그의 기감에도 포착되지 않았다.
지구 전역에 그의 기가 퍼져있는 이상 웬만한 수로는 절대 숨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했을까?
‘포탈.’
박현수의 눈이 번뜩였다.
포탈을 통해서라면 자신에게 들키지 않고도 충분히 지구에 진입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밖에서 열린 포탈 한정이었다.
아직 공략되지 않은 포탈에서 누군가 밖으로 나온다면, 장담컨대 무조건 잡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럼 아직 공략되기 전인 포탈에 숨어 있다는 게 되는데…….’
“삐.”
박현수가 한창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모나미가 무릎을 타고 올라왔다.
“아빠~!”
“…….”
“무서운 얼굴.”
모나미는 노란색 머리를 갸우뚱하며 손으로 박현수의 얼굴을 가리켰다.
아무래도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애한테 보여 줄 만한 건 아니었다.
박현수는 웃으며 모나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녀석.”
“꺄르륵!”
모나미를 한참을 쓰다듬어 주고 있을 때였다.
핸드폰이 진동했다.
화면을 보니 하유락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여보세요?”
-현수야, 큰일이야.
“무슨 큰일이요?”
-군세가……. 공격을 시작했어.
“자세히 얘기해 봐요.”
“끠!”
박현수가 벌떡 일어나자 모나미가 땅바닥을 굴렀다.
모나미는 머리를 문지르면서 아빠를 보았다.
자신은 신경도 안 쓰고 통화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심각한 일일까?
짧은 날개를 열심히 파닥거려 아빠의 얼굴 옆까지 날아올랐다.
“……바로 갈게요.”
통화를 끊은 박현수는 옆에 날아오른 모나미를 보다가 휙 지나쳤다.
“다녀올게.”
그리곤 그 말만 남기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모나미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삐이…….”
아이는 아빠가 사라진 방향을 보면서 울먹이더니, 이내 울음을 터트리려 했다.
“모나미.”
“빠?”
“미안, 모나미. 아빠가 너무 급했어.”
어느새 돌아온 박현수가 모나미를 품에 안아 들고 사과했다.
그게 또 서러웠는지, 모나미는 박현수의 품에서 엉엉 울었다.
박현수는 어색하게 웃으며 아이를 달래 주었다.
‘삐 소리를 못 들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너무 급한 나머지 아이를 무시하고 말았다.
모나미를 처음 받아올 때 용왕과 약속했다.
최선을 다해 키우겠다고.
“혼자서 놀고 있어. 알았지?”
“녜!”
기분이 풀린 모나미가 방실방실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조급함이 사라졌다.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다급했다.
‘초월자가 되어도 아직 멀었어.’
스승님이 계셨다면, 똥 마려운 개처럼 굴지 말라고 뒤통수를 후렸을 것이다.
어쩐지 스승님이 보고 싶은 날이었다.
‘이 일만 끝난다면.’
박현수는 피식 웃으며 다시 집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