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35
훈수 두는 천마님 132편
천우진이 박현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광까지야.”
박현수는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한국 쪽 몬스터 웨이브는 그가 전담하고 있다고 들었다.
작전기획팀장이다 보니, 그런 무거운 임무를 맡은 모양이었다.
본인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지만.
“인사할 때가 아니야.”
하유락은 풍성한 붉은 머리칼을 하나로 묶었다.
뒤에 선 이민아가 어지러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다듬어 주었다.
“당장 총본부로 가야 해.”
“군세의 짓인 건 확실해요?”
“증언이 맞다면.”
“생존자가 있는 모양이군요.”
“자세한 건 나도 가서 들어봐야 해.”
“팀장님은 협회를 지켜 주세요.”
“조심해서 다녀오시길.”
천우진의 배웅을 받으며 세 사람은 지하에 있는 포탈로 향했다.
포탈은 이미 구동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담당자가 신호를 넣자 파지직- 소리와 함께 포탈이 열렸다.
“좌표 설정은 끝났습니다.”
“고생해.”
하유락은 담당자의 어깨를 가볍게 쳐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서 박현수, 이민아가 그 뒤를 따랐다.
배경이 순식간에 바뀌며 전혀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뉴 월드 총본부의 포탈 관리실이었다.
“바로 왔군.”
“안데르센 오랜만이야.”
“오랜만이에요.”
하유락과 이민아가 각각 그에게 인사했다.
박현수는 멀뚱히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만 까딱 숙였다.
안데르센은 손을 휘젓곤 세 사람을 인도했다.
“사건이 난 포탈을 조사해 봤지만, 발견된 건 아무것도 없었어.”
“시체들의 흔적은?”
“고열의 공격으로 당한 상처가 꽤 많았다.”
“광선 형태의 공격이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A급 4명과 B급 16명을 쓸어 버릴 정도면 상당한 위력이었겠군요.”
안데르센이 박현수를 쳐다보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툭툭 건들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은 사막 지대였는데, 곳곳에 쥐가 파먹은 것 같은 길이 나 있었습니다. 길은 온통 새까맸고, 규모도 상당했으니 굉장한 위력이었을 겁니다.”
“힘의 흔적 같은 건 없었습니까?”
“힘의 흔적이라는 건, 상대가 고열의 공격을 펼칠 때 생긴 흔적을 말하는 겁니까?”
“적이 나타났을 때 발생한 공간의 흔적 말입니다.”
안데르센이 이해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아아- 공간 측정계로 차원의 벽에 이상이 있었는지 확인해 봤지만, 무언가 공간을 뚫고 나타난 현상 같은 건 찾지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포탈과 함께 나타났다고 봐야 하는 건가?”
“그럴 수도 있겠네요.”
박현수는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미지의 여인이 뜬금없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여인의 힘은 공략대 전원을 궤멸시킬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가졌다.
그런 이가 굳이 모든 인원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공격할 이유가 있을까?
‘에너지 투사에 자신 있는 녀석이야.’
그 정도면, 앉은 자리에서 퍼져 있는 대원들을 모조리 살해할 수 있으리라.
‘공략대가 철수하려는 때 나타났다고 보는 게 타당해.’
공간측정계에 흔적이 잡히지 않은 이유는 그만큼 수준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생존자를 만나 봐야겠어요.”
“안 그래도 취조실에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아뇨. 먼저 만나는 건 또 다른 생존자입니다.”
현재 의식불명 상태의 생존자.
박현수가 보고 싶은 건 바로 그였다.
* * *
삑- 삑- 울리는 심박 수 측정기의 초록색 선이 불규칙하게 모니터를 지나갔다.
“……살아 있는 게 기적인데?”
하유락은 눈살을 찌푸리며 환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사지가 날아간 것도 날아간 건데, 옆구리가 텅 비어 버린 게 아주 심각했다.
치유계 각성자들의 힘으로도 재생은커녕, 목숨을 붙여 놓는 것도 버거웠다.
듣기론 길어도 3일을 넘기지 못한단다.
“얼마나 끔찍한 짓을 당했길래……. 가만둘 수 없어요.”
이민아는 안쓰러운 얼굴로 피젠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다른 생존자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대가는 너무나 끔찍했고, 그들의 가슴에 분노의 불씨를 지폈다.
박현수는 말없이 피젠을 바라봤다.
그는 두 사람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기운을 일으켜 환자의 상태를 살폈다.
‘공격은 길지 않았어.’
상처 대부분이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만들어졌다.
남아 있는 힘의 잔향도 거의 비슷한 크기였다.
이상했다.
거의 동시라고 봐도 좋을 정도의 폭격이었다.
누군가를 데리고 도망칠 여유 같은 건 없었을 것이다.
있더라도 이자의 능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했다.
‘포탈과의 거리도 그리 가까운 게 아니었어.’
사지는 공격과 동시에 사라졌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렇다면 오른팔만으로 다른 생존자를 구했다?
“다른 시체를 봐야겠어.”
“뭔가를 알아낸 거야?”
“네. 그리고 현태 좀 불러 주세요.”
“현태는 왜?”
하유락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그녀에겐 박현태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얘기하긴 너무 길었다.
“일단 불러 주세요.”
“음? 일단은 알겠어.”
박현수의 말이었기에 하유락은 바로 협회에 연락을 넣었다.
밖으로 나오자 이민아가 그 옆에 바짝 붙었다.
“뭘 알아내셨어요?”
“일단 다 봐야지 알 것 같아요.”
모든 건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추측이 틀렸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안데르센 씨, 취조실로 안내해 주세요.”
안데르센은 박현수를 힐긋 보곤 걸음을 옮겼다.
* * *
타케시는 담배를 한 개비 꺼냈다.
뉴 월드에서 중요한 직책에 오르며 많아진 업무 탓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태우게 되었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물며 아미노에게 물었다.
“담배 피우나?”
“아뇨.”
그녀는 기운 없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피워도 되겠지?”
“괜찮아요.”
각성자들에게 담배는 더 이상 해로운 식품이 아니었다.
담배 연기도 맡기 싫다뿐이지, 별 상관없었다.
타케시는 불을 붙이고 짧게 들이마셨다.
“흡연 경력이 있던데, 끊은 지는 얼마나 됐지?”
“네?”
“끊은 거 말이야.”
“아, 아. 조, 조금 됐어요.”
아미노가 살짝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살짝 이상했지만, 심적으로 지친 상태이니 충분히 이해되었다.
똑똑!
“대장님.”
그때 부하가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지?”
“연구소장님과 함께, 한국에서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
타케시가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안데르센이었고, 그 옆에서 하유락과 이민아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가장 뒤에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얼굴이 서 있었다.
“박현수!”
“오랜만이네.”
타케시는 다른 사람들을 지나치고 그의 앞에 섰다.
“한국에 돌아왔단 얘긴 들었다.”
“그럼 놀러 오지 그랬냐.”
“일이 너무 바빠서 말이지. 오자마자 엄청난 활약을 했다지?”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박현수는 타케시를 지나쳐 취조실로 들어갔다.
아미노는 그의 등장에 바짝 긴장한 얼굴이 되었다.
“잠깐. 아무리 너라도 내 허락 없이는 취조할 수 없다.”
“취조라.”
박현수는 그녀를 보며 웃었다.
그는 하유락을 돌아보며 물었다.
“현태는요?”
“딱 도착했대.”
“그 애한테 입원 중인 생존자의 과거를 들여다보라고 하세요.”
“……무슨 소리야?”
“현태 그 녀석, 로벤 씨의 능력을 이어받았어요.”
정적이 찾아왔다.
그곳에 모인 이들은 박현수의 말에 그 어떤 반응도 하지 못했다.
눈만 껌뻑거리며 서로를 돌아보았다.
박현수는 그들을 보다가 말했다.
“진짜예요.”
확인사살에 좁은 취조실에 여러 비명이 울려 퍼졌다.
충분히 놀랄 만했다.
당장 박현수 본인도,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믿기 어려웠으니까.
자신보다 로벤을 훨씬 오래전부터 안 이들이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자, 잠깐만. 현태가 로벤의 능력을 이은 게 사실이야?”
“아직 미숙하긴 하지만 사실이에요.”
“현태라면 네 동생 맞지?”
“그래.”
“세상에 이럴 수가.”
이민아는 다리가 풀렸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박현수는 그들의 충격을 헤아려 주지 않았다.
“놀랄 시간이 없어요. 한시라도 빨리!”
“……알겠어.”
하유락은 곧장 지시를 내렸다.
박현태가 입원실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잠시 후, 박현태가 취조실로 내려왔다.
그는 상당히 끔찍한 걸 본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얗게 마른 입술은 그가 얼마나 긴장했는지 역력히 보여 주고 있었다.
“현태야. 그의 과거에서 뭘 봤어?”
“……형.”
“괜찮아.”
박현태의 시선이 아미노에게 향했다.
책상에 올라간 그녀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저 여자야.”
손의 떨림이 멈추었다.
“로벤의 능력을 이은 인간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어.”
아미노의 표정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귀찮음이 가득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느낌이 세하다 싶었지.”
그녀는 주황색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그러자 머리카락은 빛 한 점 허락하지 않을 새까만 흑발이 되었다.
키가 조금 커지고, 현실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가 되었다.
퀸은 입고 있는 옷을 찢었다.
그러자 새까만 드레스가 나풀거리며 나타났다.
“박현수를 조심하란 주의는 받았는데, 이렇게 빨리 들통날 줄은 몰랐어.”
“어, 어떻게?”
타케시는 제 눈을 믿기 어려웠다.
설마 아미노가 군세의 적이었을 줄이야.
그녀의 표정과 몸의 떨림, 슬픔과 절망에 잠긴 목소리는 분명 진짜였다.
그 어디를 보아도 도저히 거짓이란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한데 모든 게 거짓이었고, 가짜였다.
‘아무리 짧은 시간이었다지만.’
충격에 빠진 타케시를 보며 퀸이 웃었다.
“당신, 꽤 좋은 사람이었어.”
“죽이겠다……!”
새하얀 검신이 검집에서 뽑혀 나왔다.
그 주변의 공간이 꿀렁이기 시작했다.
“히나린의 능력이네?”
히나린은 타케시가 가진 힘의 원주인이었다.
하지만 히나린은 퀸에게 살해당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제약 때문에 약해지긴 했지만, 너희 정도는 어렵지 않게 쓸어 버릴 자신이 있어.”
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상대는 적임에도 그 미소는 모두의 시선을 빨아들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분노한 타케시마저도 한순간 멍한 얼굴이 될 정도의 미혹이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시선은 빼앗지 못했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주절주절 떠드는 거야?”
“박현수.”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가 혼자만 동떨어져 있는 듯한 사내를 향했다.
그가 서 있는 자리는 왜인지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타케시가 능력으로 공간을 꿀렁이게 만드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튈 자신이 있어서 그렇게 입을 놀리는 거야?”
“킹께선 널 조심하라고 하셨지.”
“그럼 조심했어야지, 왜 나대.”
박현수가 한 걸음 걸어 나왔다.
그녀는 다시 히죽 웃으며 양손을 들었다.
“생각보다 실망스러워서 말이야.”
아무래도 킹이 오해를 한 모양이다.
바이스와 레이지는 힘이 다 돌아오지 않아서 패배한 것이다.
아무리 제약 때문에 약화된 상태라도 상대의 수준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박현수는 그리 강하지 않았다.
겁을 낼 정도는 전혀 아니었다.
엄청난 에너지가 양손에 모이기 시작했다.
공략대를 궤멸시킨 공격이었다.
“모두 피해!”
그때, 칭란이 검은 난을 흩뿌리며 나타났다.
그녀는 계속해서 아미노에게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느낌은 들어맞았다.
약간 늦긴 했지만, 아직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필로나인가?”
퀸은 칭란이 가진 힘의 원주인을 떠올리며 오른팔을 그녀에게 겨눴다.
“필로나는 조금 골치 아프니까.”
“언니!”
정신을 차린 하유락이 불꽃을 일으켰다.
하지만 불꽃은 넓게 번지지 못했다.
“됐어요.”
허공에 떠 있던 칭란이 거짓말처럼 박현수 옆으로 이동했다.
그녀는 놀란 얼굴로 자신의 손목을 보았다.
박현수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작은 손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뭘 다 나서. 번잡하게.”
다리가 바닥에서 살짝 떨어졌다.
그리고 살포시,
“혼자면 충분해.”
땅을 찍었다.
[천마군림(天魔君臨)]퀸의 입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는 역전되는 하늘과 땅을 보며 박현수를 바라보았다.
“……너 뭐야?”
“나?”
그 질문에 박현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천마다.”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