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43
훈수 두는 천마님 140편
2차 몬스터 웨이브 당일이 되었다.
대부분의 참가 인원들이 긴장한 상태로 포진해 있었다.
1차보다 난이도가 확 어려워진 2차 몬스터 웨이브였다.
1차에서도 죽은 자는 없었지만, 중상을 면치 못한 이가 꽤 되었다.
그게 자신이 되지 말란 보장이 없었다.
운이 나쁘면 죽을지도 몰랐다.
급이 낮은 헌터들은 긴장을 넘어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용이냐고…….’
D급 헌터 헤멜도 그중 하나였다.
아무리 C급 이하는 후방에서 지원하는 형식이라지만, 어떤 종류의 몬스터가 나올지 아무도 몰랐다.
후방이라고 안전한 건 아니다.
애초에 안전할 수 없는 ‘실전’이 몬스터 웨이브였다.
아무리 까라면 까야 하는 사회라지만, 대놓고 죽을 장소를 깔아 주는 건 아니지 않나?
“그만 좀 떨어라. 떨면 뭐가 바뀌냐?”
“너, 넌 뭐야?”
붉은 기가 감도는 머리칼을 가진 기생오라비였다.
헤멜은 가뜩이나 기분이 안 좋았는데, 갑작스럽게 훅 들어온 시비에 화가 났다.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나?”
기생오라비는 피식 웃으며 장대 같은 창을 어깨에 짊어졌다.
창날 바로 아래엔 보라색과 주황색을 꼬아놓은 수실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이번에 최고가 될 사람.”
“하아?”
“이번 웨이브로 전과를 오질라게 올려서.”
그가 창대를 양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한 몫 단단히 챙기려는 사람이다.”
“……뭐라는 거야?”
“아무튼, 떨어 봐야 뭐가 되겠냐고. 괜히 긴장하면 몸이 굳어서 몬스터한테 죽을 확률만 올라갈 거다.”
“……기분 나쁜 놈.”
헤멜은 그가 짜증 났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서 더 짜증이 났다.
긴장하면 오히려 움직임이 뻣뻣해진다.
그 역시 3년 차에 접어든 헌터였기에, 경험만큼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다.
‘뭐 하는 놈인지 모르지만, 긴장은 좀 풀렸네.’
화를 내서 그런가?
요동치던 심장이 조금 진정되었다.
옆을 힐끗 보니, 기생오라비는 실실 웃으면서 거대한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놈, 진짜 미친놈이었네.’
방금 했던 말은 허세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실제로 그렇게 할 거라는 믿음.
헤멜은 고개를 저었다.
인생이 영화처럼 흐르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주인공을 따라 하려다가 개죽음을 맞이한다.
기생오라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마도 그 누구보다 빨리 죽을 게 훤했다.
‘내 알바는 아니지.’
자신은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
긴장도 좀 풀렸겠다.
등허리에 교차로 맨 통파를 양손에 쥐었다.
휘리릭- 소리와 함께 통파가 손에서 빙빙 돌았다.
“모두 전투 준비!!!”
지휘관이 커다란 목소리로 모두에게 준비를 명했다.
게이트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꿀꺽- 저도 모르게 목구멍으로 침이 넘어갔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끠로오오오오오옷!!!!
기괴한 비명과 함께 게이트에서 대량의 몬스터들이 튀어나왔다.
* * *
박현태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전장을 보았다.
거대한 몬스터가 팔다리를 크게 휘두를 때마다 수십의 사람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몇몇 몬스터는 입이나 등에서 강력한 광선을 내뿜거나, 독가스를 뿌렸다.
물론, 헌터들이 당하고만 있는 건 아니었다.
B급 이상의 헌터들은 최소한 한 명에서 최대 다섯 명까지 무리 지어 몬스터를 사냥했다.
그러나 쉬워 보이지 않았다.
C급 이하의 헌터가 문제였다.
그들은 겁에 질려 도망 다니기 바빴다.
후방 배치란 게 의미가 없었다.
“으아아아…….”
형의 입김으로 사무직 공무원에서 헌터로 이직한 지 얼마 안 된 박현태에게, 이곳은 생지옥이었다.
능력을 써야 하는데, 극심한 공포 때문에 몸이 잘 안 움직였다.
‘싫어…….’
형은 왜 이곳에 나를 보냈을까.
그전에, 난 이게 뭔지 알고 동의한 걸까.
박현태는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머리가 어지러웠고, 몸이 힘이 빠져 주저앉을 것 같았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극.
‘으어.’
몸살이 난 것도 아닌데 몸이 왜 이러는지.
무릎을 짚고 정면을 보았다.
뿌연 먼지가 피어오르며, 이곳으로 뭔가가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다들 피해!”
“저건 못 막아! 피해!!”
피하란 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쾅!
“으아아아악!”
사람 하나가 수십 미터 가까이 날아올랐다.
박현태는 멍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쥐고 있던 총이 박살 난 채 허공에서 분해되고 있다.
‘저건…… 뭐지?’
코뿔소인가?
어렸을 때 부모님 손 잡고 형과 함께 동물원에서 본 적 있었다.
그런데 조금 다르다.
크기는 그때보다 더 커 보였고, 뿔도 훨씬 거대한 것이 콧등을 따라 다섯 개나 솟아 있었다.
다리도 네 개가 아니라 여섯 개였다.
쾅쾅 소리를 울리며 무섭게 돌진하는 그것은 몬스터였다.
“으어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그것을 도저히 멈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몇 명의 헌터가 코뿔소 같은 몬스터에게 치였다.
“으아아아!”
코뿔소가 지척까지 다가왔다.
저 속도로 보건대, 아마 1~2초 후면 자신도 허공에 붕 뜬 헌터들과 같은 꼴이 될 것이다.
결국, 아무것도 못 해 보고 이렇게 가는 건가?
그 짧은 순간, 주마등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붉은 기가 감도는 머리를 가진 미남이 피를 흘린 채 무릎을 꿇었다.
“젠장……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거야?”
이마에서 시작된 피가 눈을 가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숨은 점점 거칠어지고, 강한 현기증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웃기지 마…….”
바닥에서부터 이곳까지 기어 올라왔다.
아득바득 살아남기 위해, 강해지기 위해, 한계를 넘기 위해.
“시발, 그래! 나 D급 헌터다!”
벌떡 일어난 남자가 비명이라도 지르듯 소리치며 몬스터에게 달려들었다.
척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몬스터였다.
D급 따위가 어찌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다.
“저 미친놈!”
근처에 통파를 든 헌터가 인상을 구기며 그 뒤를 쫓았다.
“인마! 그러다가 개죽음당하는 거야!”
목소리는 남자에게 닿지 않았다.
남자는 창을 머리 위로 회전시키며 높이 뛰어올랐다.
창날에 진한 녹색 기운이 맺혔다.
“죽어라아아앗!”
있는 힘껏 몬스터의 머리에 창을 찔러넣었다.
팅-!
그러려고 했다.
“아…….”
-크아아아아아아아!
몬스터의 괴성과 부러져 나간 창대.
거대한 꼬리가 채찍처럼 날아들었다.
“이봐!”
뒤에선 통파를 든 헌터가 손을 뻗었지만, 닿을 거리가 아니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착각.
코앞까지 다가온 꼬리는 도저히 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난 주인공이 아니었구나.’
빌어먹을 세상.
남자가 눈을 감았다.
퍽-!!
허공에서 핏물이 튀었다.
통파를 든 헌터는 달려가는 걸 멈추고 제자리에 섰다.
고깃덩이를 반죽한 것처럼 뭉쳐진 육신이 강력한 힘으로 흔적을 잃었다.
“하. 별 희한한 새끼라고 생각은 했는데.”
통파를 든 헌터는 그리 중얼거리며 날뛰는 몬스터를 보았다.
몬스터는 주변 헌터들을 모조리 쓸어 버리기 시작했다.
마치, 그 녀석 하나 죽은 건 신경도 안 쓴다는 것처럼.
“짜증만 돋우길래 뭐 하는 놈인가 싶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간다고?”
그가 통파를 꽉 쥐었다.
“그게 말이 되냐, 이 개자식아아아아아!”
남자, 헤멜이 악을 쓰듯 소리쳤다.』
저 멀리서 자주색 빛이 기둥처럼 솟구쳤다.
박현태는 주마등이 아님을 깨달았다.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사람이 죽는 걸 보았는데, 이런 기분을 느낄 줄이야.
‘사이코패스라도 된 건가.’
그건 잘 모르겠다.
앞을 응시했다.
코뿔소 몬스터는 어느새 코앞에까지 와 있었다.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 불가능하지 않아!’
박현태의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것은 로벤과 같은 눈이었다.
키이이잉-!!!!!!!!!!!!!!!!!
매섭게 달려오던 몬스터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졌다.
마치 체감 시간을 현저하게 줄인 것처럼.
이윽고,
허공에 얕게 뜬 상태로 멈춰 보이게끔.
각성이란 건, 마치 이런 순간을 위해 존재하듯-
[역전(逆轉)]요동치던 마음을 한없이 고요하게 만들었다.
콰아앙-!!!
분명 미친 듯이 돌진해 오던 코뿔소 몬스터였다.
그런데 눈을 한 번 깜빡이니 거꾸로 뒤집힌 채 바닥을 쓸었다.
주변에 있던 헌터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벙찐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박현태의 눈은 어느 때보다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저 멀리서 솟구친 빛의 기둥을 바라보다가 다시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된 거지?”
마음은 어느 때보다 고요해졌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건 여전했다.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박현태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의 눈이 다시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 * *
“확실히 2단계부터 ‘재각성’하는 자들이 나타나네.”
카본은 드높은 상공에서 열 군데의 격전지를 커다란 화면으로 띄워 살펴보고 있었다.
열 군데 전부 재각성한 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말이 재각성이지, 기존의 등급을 뛰어넘는 힘을 손에 넣은 것이다.
박현수는 그를 두고 잠재력이 개방됐다고 표현했다.
“흠, 그래도 생각보다 별론데?”
카본은 옆에서 같이 보고 있는 박현수에게 말했다.
“성급하게 굴지 마. 이제 2단계야. 재각성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성과는 충분해.”
“그건 그렇지.”
재각성한 자들은 전부 C급 이하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도 재각성한 각성자들은 최소 B급은 되어 보이는데?”
“A급 정도 되는 이들도 꽤 돼.”
극한에 몰린 이들은 공포가 되었건, 분노가 되었건, 슬픔이 되었건, 어떤 감정 중 하나가 방아쇠가 되어 기존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손에 넣었다.
대부분 잔인한 짓이라고 비난했지만, 결과적으로 몬스터 웨이브는 성공적이었다.
“3단계부턴 C급 이상의 헌터 중에서도 재각성자가 발생할 거야.”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절망이 발생할 것이다.
어쩌면 S급 수준의 힘을 각성하는 이가 나타날지도 몰랐다.
아니,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S급들도 3단계부터 투입할 거야?”
“아니. S급들은 4단계부터.”
3단계까지는 그들에게 위협도 안 될뿐더러, 다른 헌터들이 S급 헌터의 존재로 위기감을 못 느낄 가능성이 컸다.
그래선 안 된다.
재각성에 필요한 것은 처절함.
그 속에서 깨어나는 순수한 감정이다.
“……잔인한 놈. 그보다 네 동생, 꽤 괜찮아졌어.”
“응.”
박현수는 화면 속에서 시공간 능력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았다.
공포에 덜덜 떨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마치 당연하다는 듯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다.
그것도 압도적인 힘으로.
“로벤의 눈을 개안했구나.”
로벤을 떠올리게 하는 황금색 눈은 동양인의 것이 아니었다.
“이제 슬슬 끝나간다.”
카본의 말처럼 2차 몬스터 웨이브도 얼마 안 돼서 마무리되었다.
이번엔 1차와 달리 상당한 피해가 있었다.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다음 웨이브에 참전할 수 없는 중상자가 대거 발생한 것이다.
치료진은 한정적이니, 다음 주까지 전부 회복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3단계는 좀 미뤄야겠는데.”
“예정대로 간다.”
“아무리 그래도 좀 쉬어야 하지 않겠어? 분명 반발이 나올 거야.”
“어쩔 수 없어.”
박현수의 눈은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감정이 사라진 사람 같았다.
카본은 고개를 저었다.
결단을 내린 박현수는 누구도 막지 못한다.
“극한이란 건 그런 거야.”
궁지에서 다시 궁지로 내모는 일이었다.
목 아래 칼이 닿는 걸 넘어 반쯤 찔러 들어올 때까지.
그것이 죽음이 될지라도.
‘이대로면 어차피 다 죽어.’
그럴 거면, 잔혹한 짓이더라도 인류를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네가 그런 거라면 그런 거겠……!”
“……!”
그때였다.
머나먼 땅에서 거대한 존재감이 갑자기 나타났다.
박현수와 카본은 서로를 바라봤다.
“초월자!”
“초월자!”
두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
그리곤 존재감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단숨에 이동했다.
“넌……?”
“학센?!”
“박현수!”
그리고, 천사 하나와 사람 셋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