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44
훈수 두는 천마님 141편
박현수는 학센 옆에 선 존재를 보았다.
저 복장을 한, 등 뒤에 날개를 단 자를 지구에서 보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건 카본도 마찬가지였다.
“천사가 여기 왜 있어? 잠깐, 저 심볼은.”
그는 대천사 루치엘의 토가 어깨 부분에 달린 황금색 배지를 보았다.
황금색 배지엔 아름다운 나무가 새겨져 있었다.
그 나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세피로트……?”
[세피로트를 아느냐?]루치엘이 눈을 치켜떴다.
두 쌍의 날개를 펄럭여 카본과 박현수의 높이까지 올라갔다.
밝은 햇빛에 머리 위에 달린 황금색 링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루치엘은 두 사람을 가까이에서 보며 한쪽 눈을 찡그렸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카본은 스태프를 소환했다.
거대한 마나가 그의 의지에 따라 고동치기 시작했다.
“이곳에 왜, 멸망한 세피로트의 천사가 있는 거지?”
성역 세피로트.
광활한 천상의 천사들이 살아가는 세계.
그리고.
박현수의 몸속에 잠든 마왕이 멸망시킨 세상.
“대신관은 살아남은 천사의 군대를 데리고 꽤 먼 곳으로 떠났다고 들었는데?”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마법사. 멸망한 세피로트?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망발을 내 앞에서 지껄여?]루치엘의 몸에서 눈부신 신성력이 뿜어져 나왔다.
[오냐. 뭐 하는 놈들인지 모르겠지만, 죽고 싶어서 환장한 모양이구나? 감히 내 앞에서 세피로트를 들먹이는 걸 보면.]황금색 링, 헤일로가 위로 높이 떠 오르며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헤일로 안에서 무지갯빛 오로라가 흘러나와 허공을 뒤덮었다.
전투 천사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고유 기술 ‘성전(聖戰)’이었다.
성전 안에서 천사의 힘은 적게는 수 배, 많게는 수십 배로 뛰어올랐다.
루치엘의 양손에 검 두 자루가 쥐어졌다.
“진짜 모르는 거야, 아니면 트라우마가 심한 녀석인 거야?”
카본은 스태프를 빙빙 돌리며 마나를 전개했다.
스태프를 쥐지 않은 왼손 손가락 전부에 마법진이 연성되었다.
“둘 중 뭔지 모르겠지만, 두 쌍짜리에게 무시 받을 짬은 아닌데.”
[일단 그 주둥이부터 어떻게 해 주마!]루치엘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졌다.
신성력의 빛이 수많은 잔상을 그리며 스펙트럼을 발생시켰다.
카본은 손가락의 마법진을 하나로 뭉쳤다.
일촉즉발의 상황!
두 힘이 충돌하기 직전,
“누구도 지구에서 행패를 부릴 순 없어.”
[천마신공]흑강기가 천사와 마법사를 가로막았다.
루치엘은 그대로 꿰뚫을 작정으로 흑강기를 찔렀다.
파지직-!!
하얀색과 검은색이 뒤엉키며 매서운 스파크를 일으켰다.
그러나 뚫리지 않았다.
오히려 강한 반발력이 루치엘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저놈은 대체?’
루치엘은 제자리에서 손만 뻗고 있는 박현수를 보았다.
천사가 눈을 개안했다.
천사의 눈은 만물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
그건 박현수라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복부 아래에서 새까만 힘이 몸 전체로 뻗어 나가고 있다.
내공을 모르는 그에게 박현수의 몸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놀라움도 잠시.
그 무엇보다 어둡고, 칙칙한-
두 눈을 당장이라도 씻고 싶은 악이 똬리를 틀고 있다.
루치엘의 동공이 흔들렸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저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어째서?
이해가 안 되었다.
왜 인간이 몸속에 마왕을 품고 있는지를.
신성력이 등 뒤로 거대한 날개처럼 펼쳐졌다.
성스러움이 하늘과 바다, 땅을 휘감았다.
루치엘은 두 눈에서 눈부신 안광을 번쩍이며, 당장이라도 박현수에게 달려들 자세를 취했다.
“이래서 천사들이 짜증 나.”
흑강기 반대편에서 카본이 구시렁거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 막을 생각은 하지 마.”
카본의 옷이 화려한 수실로 치장된 보라색 로브로 변했다.
강렬한 마나가 녹색 스태프를 휘감았다.
그는 나풀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흑강기를 뛰어넘었다.
스태프를 휘젓자, 공간이 꾸불꾸불하더니 마치 커튼이 펼쳐진 것처럼 루치엘을 뒤덮었다.
[나를 방해하지 마라!]헤일로의 성전이 더욱 강렬한 오로라를 내뿜었다.
“칫!”
두 쌍의 날개가 깃털을 흩날리며 펄럭였다.
천사의 비행 속도는 우주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빠르다고 소문났다.
텔레포트로 루치엘의 머리 위로 이동했다.
손바닥을 펼쳤다.
흠칫!
카본이 팔을 재빨리 회수했다.
눈앞으로 빛이 스쳐 지나갔다.
하마터면 팔이 잘려나갈 뻔했다.
그러나 거기에 집중이 팔린 터라, 다른 걸 보지 못했다.
“큭!”
등 뒤에서 묵직한 충격이 일었다.
신성력의 광탄이었다.
이런 뻔한 기습에 당했단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카본은 멀어지는 천사를 보며 혀를 찼다.
“아이 씨……. 알아서 하겠지.”
* * *
루치엘의 조각 같은 얼굴은 분노로 잔뜩 일그러졌다.
이런 곳에 마왕이 있다니.
세피로트의 천사이자, 광활한 천상에 소속된 자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박현수는 검을 내지르는 루치엘을 보며 어떤 말부터 꺼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이럴 때는 억지로 오해를 풀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대화는 천천히 해도 된다.
‘어차피 나도 저 천사에게 묻고 싶은 게 많으니.’
멸망한 세피로트의 천사 중에도 생존자는 있었지만, 지구에 있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들이 떠난 방향은 태양계와 반대되는 곳인 데다, 혹시라도 지구에 온 게 사실이라면 무리 짓는 특성상 혼자만 있을 리 없었다.
박현수는 호흡을 가다듬고.
“흡!”
눈을 부릅떴다.
검은 귀화가 불타올랐다.
흑강기가 은하수처럼 둥글게 펼쳐졌다.
왼손을 말아쥐고 허리춤에 바짝 대었다.
주먹에 공력이 들끓는다.
천사의 검이 은하수를 가르며 낙하한다.
박현수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디고, 오른팔을 아래로 바짝 내리뻗었다.
천사란 본디 초월종 중에서도 독보적인 힘을 가진 종족.
그중에서 날개 두 쌍이라는 것은 작지 않은 위상을 가졌다는 뜻이다.
웬만한 초월자는 두 쌍의 천사 앞에서 무릎 꿇을 것이다.
웬만하다면 말이다.
[파천마권]들끓던 공력이 한 줌으로 뭉쳤다.
난폭한 바다가 잔잔해지듯이.
떨어지는 검에 맞춰 주먹을 앞으로 찔렀다.
따앙-!!
[윽!!]루치엘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른손 손아귀가 찢어진 것 같았다.
그는 칼날에 부딪힌 작은 인간의 주먹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주먹에서 보이지 않는 파동이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왼쪽 검을 사선으로 그었다.
검의 흐름에 맞춰 몸이 흔들렸다.
[이이익!!]쌍검이 허공을 무자비하게 격했다.
강함과 부드러움이 반복되며 쉴 새 없이 휘몰아쳤다.
그러나, 박현수에겐 단 한 번의 참격도 닿지 않았다.
평온한 얼굴로 검의 흐름을 고스란히 받아 흘렸다.
마왕을 따위라고 하기엔 그들이 가진 힘이 우주를 들썩일 정도였지만, 흥분한 그에게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일단 첫 번째.”
[죽어라아앗!]교차한 검이 공간을 찢어발겼다.
그 역시 극한의 탈력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흘려 보내졌다.
“나는 마왕이 아니야.”
검극이 눈부시게 번쩍이며 찔러 들어왔다.
손등으로 칼날을 받아 그대로 뒤로 보냈다.
루치엘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루치엘은 균형을 잃은 상태에서 반대쪽 검을 휘둘렀다.
[말이 되는 소리를 지껄이도록!!]날개가 펄럭이며, 순백의 코트가 관성에 옆으로 푹 꺾였다.
허공에 거꾸로 선 루치엘이 입을 크게 벌렸다.
꽈아아앙!!
“이런 큰 공격은.”
[천마신회류] [오의]박현수는 눈부신 광선을 바라보며 주변의 기운을 움직였다.
“하지 말라니까.”
[마(魔)-상천(上天)]하늘보다.
마가 더 위에 있다.
그러니 하늘 아래 모든 것은.
“내 통제하에 존재한다.”
눈부신 광선의 궤도가 박현수를 기점으로 유턴했다.
루치엘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세크리파이스 신은 죄를 벌하는 힘.
악한 것에 물러남이 없는 강력한 공격이었다.
한데, 그의 손짓 한 번에 속수무책으로 궤적이 뒤틀렸다.
“크게 들을 생각이 없어 보이니까 지금부터는.”
박현수는 광선을 조종하며 귀화의 크기를 부풀렸다.
“강제로 제압하겠다.”
펑-!!
소매가 터질 듯이 부풀었다.
검은 잔상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루치엘은 검을 X자로 교차시킨 채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천사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건 초월종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힌다.
하물며 마왕이라지만, 인간 따위 속도로는 절대 지지 않는다.
……라고 생각했다.
“느려.”
빡-!
무릎이 조각 같은 턱을 올려쳤다.
입이 꽉 닫힌 터라 비명도 안 나왔다.
루치엘은 눈을 파르르 떨며 박현수를 보았다.
그러나 뒤로 넘어가던 몸이 뭔가에 묶인 것처럼 앞으로 휙 당겨졌다.
공력으로 만들어진 끈이 루치엘의 목을 둘둘 감싸고 있었다.
박현수는 끈을 거칠게 잡아당기며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몸이 기역 자로 꺾이며 피가 한 움큼 쏟아졌다.
끈을 오른쪽으로 당겼다.
오른발을 들어 몸통을 걷어찼다.
아래로 당겨 무릎으로 가슴을 찍고, 왼쪽으로 당겨 손등으로 왼쪽 광대를 주저앉혔다.
복날 개 맞듯, 루치엘은 박현수에게 사정없이 두들겨 맞았다.
‘이 내, 내가 이런 꼴을……?’
검은 예전에 손에서 벗어나 아래로 떨어졌다.
팔로 얼굴을 감싸도 그 위를 두드리는 주먹은 미치도록 고통스러웠다.
여기서 한 대라도 더 맞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양팔을 들고 있는 것도 이젠 버겁다.
큰 뜻을 품고 밖으로 나왔건만, 결국 마왕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는가.
루치엘은 파랗게 죽은 팔을 내렸다.
몸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헤일로는 진즉에 꺼져 머리에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목소리에 힘이 없다.
박현수는 그를 보며 주먹을 털었다.
“천사는 천사인 모양이군.”
고고함이 하늘을 찌르는 족속들.
그래서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 하나 정도는 있었다.
“이 정도면 살려 달라고 애걸할 법도 한데.”
[죽으면 죽었지 마왕에게 굴복하지 않는다!]이것이다.
천사들의 마음에 드는 부분.
악에 굴복하지 않는 것.
문제는 이 악이란 것이 오로지 자신들의 주관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지금도 보라.
마왕이 아니라는 데도 마왕으로 단정을 짓지 않았는가.
카본이 괜히 천사와 마주하면 그들이 죽이려 들 거라고 말한 게 아니었다.
“뭐, 그래도 이젠 대화가 될 것 같은데.”
[대화……? 신성한 나무에서 태어나 신의 축복을 받는 내가, 사악한 것과 대화를 할 것 같으냐?]“하는 게 좋을걸.”
카본이 아주 귀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냐면, 네가 죽이려는 그 녀석도 세피로트를 지키기 위해 천사의 군대와 함께 싸운 용사거든.”
[……아까부터 자꾸 뭐라는 것이냐? 세피로트가 멸망했다고 하질 않나, 이 자가 세피로트를 지키려 했다지 않나.]“말 그대로야. 그래서 의문인 거라고. 생존한 대신관과 그의 군대는 다른 곳으로 떠났는데, 왜 넌 혼자 지구에 있냐고.”
[그러니까 자꾸 말이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느냔 말이…….]“그러니까 넌 왜 자꾸 헛소리로 치부하냔 말이야.”
루치엘의 동공이 크게 떨렸다.
[미친…… 것이냐?]“기억이라도 보여 줘?”
[…….]“저 녀석은 말이야.”
카본이 박현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너희를 위해 세피로트를 무너트린 ‘정복의 마왕’을 쓰러트리고, 자신의 몸에 봉인시킨 장본인이란 말이다.”
루치엘이 흠칫하며 박현수를 보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사실……이냐?]
“믿고 말고는 네가 선택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얘기를 듣고 보니, 확실히 그는 마기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사악한 것도 별다른 변화를 안 보였다.
그런데도 자신을 압도하는 강함.
심지어 전력도 아니었다.
루치엘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에 대해선 어느 정도 납득한 것 같으니, 이젠 내가 질문해도 되겠지?”
[……이 몸이 이곳에 있는 이유 말이냐?]“그래. 자세히 들려줬으면 좋겠는데. 그게 싫다면, 억지로라도 들어야겠어.”
박현수는 주먹으로 우드득 소리를 내며 루치엘을 보았다.
루치엘은 그 주먹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 뜻은?”
[아직 너흴 완전히 믿지 않지만, 대화는 할 만한 것 같군.]“떡이 되도록 처맞은 놈이 인제 와서 무게 잡아 봐야 멋도 없다, 인마.”
[아래로 내려가지.]루치엘이 지상으로 내려갔다.
박현수와 카본은 서로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곤 루치엘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 * *
학센은 하늘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격전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특히 루치엘을 압도적으로 두들겨 패는 박현수의 모습은 2년 전이 우스워질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전투는 일방적인 박현수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리고 파란 머리의 마법사가 다가가 뭔가 대화를 나누더니, 세 사람이 이곳으로 내려왔다.
루치엘은 학센을 보더니 민망한 듯 얼굴을 가렸다.
신나게 두들겨 맞은 터라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뒤이어 박현수와 카본이 착지했다.
박현수는 학센을 보더니 말했다.
“넌 왜 이곳에 있지?”
“A급 포탈을 공략했다.”
“저자와는 그곳에서 만난 거냐?”
“그래. 포탈 안에 잠들어 있었는데, 내 존재를 느끼고 잠에서 깼다고 했다.”
학센에겐 숨길만 한 게 아니었기에 사실대로 말했다.
박현수가 루치엘을 보자 그가 마음에 안 드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싹 다.”
[나한테 명령하지 마라!]“괜히 소리치고 지랄이야.”
카본은 귀를 틀어막으며 투덜거렸다.
루치엘은 헛기침을 하곤 박현수를 돌아봤다.
“운이 나빠?”
[그래. 난 대신관님의 명령으로 아스테리아란 행성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킹의 군세가 침공해 왔다. 내 천생 최악의 날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