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45
훈수 두는 천마님 142편
루치엘은 대신관의 명령으로 아스테리아로 파견됐다.
아주 아주 귀찮은 일이었다.
타 행성 파견은 말단 혹은 평범한 가문의 천사들에게나 내려지는 임무였다.
명망 높은 12 가문 중 하나인 ‘루’ 가문의 후계자인 그에게 내려올 임무가 아니었다.
그러나 대신관은 12 가문 위에 선 존재.
굳이 따지자면 왕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위대한 천사였다.
아무리 12 가문의 후계자라도, 임무를 거부했다간 큰 벌을 받았을 것이다.
루치엘은 한숨을 내쉬며, 광활한 천상의 보호를 받는 아스테리아 땅을 살폈다.
[그래도 아름다운 걸 보니 마음이 편해지긴 하는군. 세피로트 만큼은 아니지만.]아스테리아는 성역 세피로트 만큼은 아니었지만, 푸르름이 살아 있는 멋진 세상이었다.
이슬진 녹색 초목의 풀 내음은 까다로운 루치엘마저 평온하게 만들었으니, 무얼 더 설명하랴.
루치엘은 임무를 위해 아스테리아의 왕성으로 향했다.
대신관이 내린 명령은 아스테리아의 왕에게 ‘열광의 재해’를 받아오는 것.
열광의 재해는 오래전, 성역 세피로트가 아스테리아에 빌려준 강력한 천상의 무기였다.
이유는 아스테리아의 신화와 관련되어 있는데, 그것까진 관심 없었다.
신화란 어차피 여러 과장이 섞여 있는 것이고, 이유가 뭐가 되었든 열광의 재해만 돌려받으면 그만인 것이다.
아스테리아의 수도는 긴 역사만큼이나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
마법과 과학의 결합은 아스테리아를 한층 눈부시게 만들었으며, 고도로 발전된 문명은 아스테리아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했다.
루치엘은 아스테리아 왕성 입구로 하강했다.
입구를 지키던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경계 태세를 했다.
“누구냐!”
“하늘에서 나타나다니, 외인인가?”
푸른 빛이 흐르는 창극을 들이미는 병사들을 보며 루치엘은 어이가 없었다.
[건방지게, 감히 인간 주제에 이 몸에게 무기를 겨누는가?]“저, 정체를 밝혀라!”
병사는 루치엘의 위압에 움찔했지만, 성문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만큼 책임감이 남달랐다.
[용기가 가상하도다.]“정…… 정체를…….”
[그만 되었다. 너희 같은 자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니, 왕을 불러오라.]루치엘은 팔짱을 낀 채, 하늘에서 오만하게 내려보며 명령했다.
병사들은 그 모습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루치엘이 천사라는 걸 모르지만, 아스테리아는 광활한 천상에 보호받는 세계.
종족 간의 위계가 DNA에 새겨져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단 말이지. 나란 존재를 봤다면 천사임을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
천상이 아스테리아에 간섭하지 않은 지 수백 년이 지났지만, 그렇다고 해도 몰라선 안 되었다.
이건 개가 주인을 못 알아보는 격이었다.
루치엘이 목에 핏대를 세울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수도 전체에 쩌렁쩌렁 퍼진 목소리엔 강한 힘이 담겨 있었다.
평범한 인간은 길을 가다 무릎을 꿇을 정도였다.
눈앞에 병사들은 어떻겠는가.
“허억!”
“큭……!”
그들은 가슴을 움켜쥐며 그대로 쓰러졌다.
상위 존재의 외침.
고작 그것뿐임에도, 하위 존재는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성문이 열리며 붉은 망토를 두른 노인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노인은 비뚤어진 왕관을 고쳐 쓰지도 못하고 하늘에 떠 있는 루치엘을 발견했다.
“허억!”
그러곤, 숨이 멎을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과, 광활한 천상의 신민이 위대한 천사를 뵙습니다.”
[그래도 왕은 알아보긴 하는군.]“소, 송구하옵니다.”
[되었다. 나야, 필요한 것만 받고 가면 되니.]“필요한 거라고 하시면……?”
왕이 엎드린 자세로 고개만 들었다.
[열광의 재해를 돌려받으러 왔다.]“?!”
왕의 얼굴이 당황으로 가득 찼다.
루치엘은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여, 열광의 재해는 어째서…….”
[네가 알 거 없다. 내놓거라.]“바, 반환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기간을 조금만 늦출 수 있겠습니까?”
[뭐라?]루치엘이 알기로, 열광의 재해를 대여해 준 지 5천 년을 넘겼다고 들었다.
충분히 써먹을 대로 써먹었을 터.
인제 와서 기간을 늦춰 달라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설마 망가트리기라도 한 것일까?
‘말도 안 되는 일. 인간이 어찌 천상의 물건을 망가트리겠어?’
루치엘은 하늘을 올려봤다.
대신관은 딱히 언제까지 가져오란 말은 하지 않았다.
단지 그 스스로 빨리 일을 마치고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매정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
아스테리아는 광활한 천상의 보호를 받는 몇 안 되는 세상.
즉, 신성한 나무 세피로트가 아끼는 곳이라 할 수 있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침략자가 나타났사옵니다.”
[뭐라? 침략자?]아스테리아는 행성 전체가 하나의 국가였다.
그러니 침략자라면 외우주의 존재였다.
감히 광활한 천상의 보호 아래 있는 이 땅을 누가 겁 없이 침략하려는가?
“그는 자신을 킹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곤 다짜고짜 행성 전역에 포탈을 만들었습니다.”
[포탈? 어떤 종류의 포탈인지 말하라.]“몬스터가 우글거리는 포탈이옵니다. 그것을 공략하지 못하면 개방되어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밖으로 분출되는 구조이옵니다. 그것은 재앙이었사옵니다.”
벌써 몇 개의 도시가 함락되었다.
수도를 비롯한 주변 대도시들은 충분한 병력에 방비도 출중하여 피해가 없었지만, 이것도 시간문제였다.
“3번 도시 로아에 포탈이 만들어졌습니다.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규모이며, 그 안에 존재하는 몬스터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하옵니다. 열광의 재해가 아니라면 공략이 불가하옵니다.”
루치엘은 눈을 감고, 신성력을 행성 전역에 퍼트렸다.
아스테리아는 큰 행성이 아니었기에 그의 역량으로 충분히 가능했다.
신성력에 걸리는 사악한 무리가 연달아 포착되었다.
포탈이라 불리는 사특한 것 역시.
그리고 어느 한 군데에서 의식이 멈췄다.
그곳은 3번 도시 로아의 한복판이었다.
새까맣고, 거대한 포탈이었다.
하늘까지 닿아 있는 것이 만약 개방된다면, 도시 하나 박살 나는 정도로 끝나지 않으리라.
‘대신관께서 나를 이곳에 보낸 이유가 있었구나.’
아무리 아스테리아가 고도로 발달한 문명국이라 하여도 명백한 한계가 존재했다.
[이 내가 도와주지.]“저, 정말이시옵니까?”
왕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하니 천사가 도와주겠다고 나설 줄은 몰랐다.
광활한 천상, 성역 세피로트의 천사가 어떤 자들인가.
비록 백성들은 그 존재를 잊었다지만, 왕족에게만큼은 그들의 신화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단신으로 하나의 세상을 멸할 힘을 가진 종족.
모든 사악한 것을 벌하기 위해 존재하는 종족.
그들이 바로 천사!
“위대하신 분께서 저희를 도와주신다면 평생을 감읍할 따름입니다!”
[좋다, 안내해라.]킹이란 놈이 뭐 하는 놈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걸린 걸 후회하게 될 것이다.
* * *
[그땐 딱히 위험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그러니까 너 혼자면 충분히 될 거라고 생각한 거네?”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지.]카본은 그 당당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외우주에서 온 침략자라고 했다며. 거기 왕이.”
[그렇지.]“우주를 돌아다닐 정도의 세력이면 감이 안 오냐, 닭대가리 자식아?”
[닭대가리?? 네놈이 정녕 죽고 싶은 거냐?]“죽여 보든가.”
루치엘과 카본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박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둘 다 그만. 지금 시답잖은 이유로 싸울 땐가?”
“하지만 이 멍청한 자식이!”
“그만.”
박현수가 눈을 차갑게 내리깔고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천사와 마법사는 서로를 노려보다가 콧방귀를 끼며 고개를 돌렸다.
열 살 먹은 꼬맹이도 아니고.
싸우는 게 더럽게 유치했다.
“그 이후로 어떻게 됐는데?”
[포탈을 공략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아무리 S급 포탈이라도 초월자 앞에선 장난감에 불과했다.
‘낙원’처럼 제례용이 보스 몬스터로 있는 특이 케이스가 아니라면 말이다.
* * *
[흥. 별것도 아니군.]루치엘은 박살 난 거대 거북이 등껍질에 앉아 있었다.
무척 싱거웠다.
인간들에게나 버거운 상대지, 날개 두 쌍의 천사인 그에겐 매우 손쉬웠다.
한편으론 이런 것에 위협받는 아스테리아인들이 불쌍했다.
힘이 없으니, 이런 쓰레기 같은 것에게 당하는 게 아닌가.
약한 행성만 골라 가며 침략했을 것이다.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그 같잖은 힘만 믿고 나대는 것들은 위대한 12 가문의 일원으로서 용납할 수 없었다.
루치엘은 사라져가는 이계를 보며 포탈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왕과 신하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하셨사옵니다.”
[쉬운 일이다. 다음은 어디인가?]“위험한 것은 대부분 위대한 분께서 처리해 주셨사옵니다. 자잘한 것은 저희가 마무리할 수 있사오니, 푹 쉬셔도 되옵니다.”
[그렇다면 킹의 군세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라.]“예에?!”
루치엘의 명령에 아스테리아 왕은 크게 당황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 하오나 위대한 분이시라도 홀로 그곳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옵니다.”
[별걱정을 다 하는구나. 이 몸이 자랑을 싫어하여 말하지 않았다만, 나는 천상의 12 가문 중 한 곳인 루의 후계자다.]“헛!”
왕 역시 천상의 12 가문을 알고 있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들이 성역 세피로트의 실질적인 주인이란 것 정돈 알고 있었다.
평범한 천사라도 우러러볼 마당에, 그런 곳의 후계자라면 신적 존재라고 봐도 무방했다.
루치엘은 경외심 가득한 왕의 얼굴에 왠지 어깨가 으쓱해졌다.
[안내하라. 이 내가 감히 천상의 보호를 받는 이 땅을 침략한 장본인의 목을 칠 것이니.]“명을 받들겠나이다.”
왕은 킹의 군세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땅으로 루치엘을 안내했다.
군세는 지상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대기권 너머에 자신들만의 이계를 구축한 상태였다.
이러니 신성력에 감지되지 않은 것이다.
굳이 시간 끌 필요는 없었다.
그래 봐야, 같잖은 자가 만든 이계.
헤일로 거대해지며, 성전이 전개되었다.
루치엘이 입을 크게 벌렸다.
몸 주변으로 황금빛 신성력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악을 단죄하기 위한 최강의 기술.
‘세크리파이스 신’이 천지를 휩쓸었다.
―――――――――――――――!!!!!!!!
강렬한 신성의 광선에 이계에 거대한 균열과 함께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내부의 이계가 눈 부신 빛에 휩싸였다.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갔다.
킹의 군세가 사라졌다!!
……같은 전개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빛은 죽음에 삼켜졌고, 수많은 재앙이 세상을 집어삼켰다. 온갖 질병이 창궐했고, 끔찍한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었다.]루치엘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아스테리아는 하루아침에 멸망했다.]박현수와 카본, 학센은 어두운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