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46
훈수 두는 천마님 143편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 넷을 혼자 상대하는 건 도저히 무리였다.]킹을 포함한 네 명의 기수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죽음을 지배하는 킹.
재앙을 일으키는 더 블랙.
질병의 정복자 바이스.
폭력의 정점 레이지.
아무리 12 가문 후계자인 루치엘이라도 그들을 전부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나씩이라면 모를까.
사실 이것도 자존심 때문에 부리는 고집이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기수 하나도 벅찼다.
“알아낸 것?”
[그들의 목적이다.]루치엘은 레이지와 싸우게 되었다.
폭력의 화신 같던 레이지는 광기에 휩싸인 상태였다.
만약 상대가 다른 기수였다면 알아내지 못했을 정보였다.
그러나 이성보다 감정으로 움직이는 괴물인 레이지는 해도 되는 말과 안 되는 말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학센과 만났을 때, 루치엘이 열광의 재해에 관한 안부를 물은 것이다.
[열광의 재해는 천상의 빛을 내리쬐는 무기다. 원래는 세계의 창조를 위해 만들어진 도구지만, 파괴력이 상상을 초월한 탓에 무기로 변질한 케이스지.]“열광의 재해?”
“그거 혹시.”
박현수와 카본이 서로를 돌아봤다.
그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엄청나게 뜨거웠던 그 빛인가?”
“범위도 작살 났지.”
루치엘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박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에 한 번 당했었거든.”
퀸의 시체를 회수하려고 군세가 쐈던 강렬한 빛.
덕분에 등이 새까맣게 탔었다.
이것도 카본이 재빨리 방어벽을 친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상당한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
“아무튼, 놈들을 피해 다니다가 포탈에 숨어들게 된 거냐?”
[그렇다. 성역에서도 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면 지원군을 보내올 테니까. 아무리 네 명의 기수가 막강해도 천사의 군대 앞에선 비루할 뿐이니.]잠깐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천사도 아니고 12 가문 후계자라면 반드시 구하러 오리라 확신했다.
이계에 동화되는 그 순간까지도.
“미안하지만 개소리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냐.”
카본은 짜증 섞인 눈으로 루치엘을 노려봤다.
박현수가 팔로 그를 제지하고, 루치엘에게 말했다.
“세피로트는 멸망했어. 정복의 마왕이란 놈의 손에.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피로트는 광활한 천상 천사들의 터전이다. 아무리 마왕이라도…….]“그래. 그곳의 천사들. 특히, 12 가문의 천사들은 엄청나게 강하지. 아무리 강대한 마왕이라도 노릴 수 없을 만큼.”
카본이 괜히 사서 걱정한 게 아니었다.
대신관과 천사의 군대는 초월자들이라도 피하고 봐야 하는 강한 세력이었다.
특히 대신관을 포함한 12 가문의 가주들은 세피로트의 선택을 받은 이들이었다.
어지간한 마왕은 단독으로 처단할 힘을 가졌다.
상대가 정복의 마왕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천사니까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왕의 이명이 뭘 뜻하는지.”
정복.
세피로트를 멸망시킨 마왕의 이명.
직관적인 이명의 마왕일수록 강하다는 것은 우주의 상식이었다.
그러니 정복의 마왕이 얼마나 강대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명은 그 마왕의 본질을 상징했다.
“그는 타고난 정복자였고, 어떤 방법으로 정복해야 좋을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어.”
[큭…….]루치엘은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말을 부정하고 싶지만, 모든 정황이 진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카본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정복되진 않았어.”
[그렇다면 멸망시켰단 말은 무슨 뜻이냐?]“박현수가 정복의 마왕을 쓰러트려서 마족에게 정복되는 건 막을 수 있었어. 하지만 이미 세피로트는 유지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고, 결국 멸망을 면치 못했지.”
정복이든, 멸망이든.
결국, 성역 세피로트는 사라진 셈이었다.
그나마 멸망 쪽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마에 굴복하지 않은 셈이니까.”
마(魔)의 대척점으로 탄생한 종족이 바로 천사들이다.
그들에게 마에 대한 굴복은 자결하는 게 나을 정도로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박현수의 활약으로 죽음이 나을 정도의 치욕은 면할 수 있었다.
천사들에게 박현수는 은인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떠나기 전 박현수 안에 마왕이 잠들었단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뿐이었다.
“너처럼 말이지.”
[…….]“장난이야.”
카본이 혀를 쏙 내밀었다.
루치엘은 저 혀를 뽑아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었기에 참았다.
고향을 잃은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자신감 넘치던 천사는 믿기 힘든 현실에 날개를 축 늘어트렸다.
“아까도 말했지만, 모든 천사가 사라진 건 아니다.”
세피로트가 사라지고, 살아남은 대신관과 천사의 군대는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딱히 그들과 교류할 생각은 없어서 위치는 묻지 않았지만, 알 만한 토끼 하나를 알고 있지.”
카본이 스태프로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토끼?]“그래, 토끼.”
[그곳으로 안내해라.]“그전에.”
박현수가 검지를 그 앞으로 내밀었다.
[뭐, 뭐냐.]“우리랑 약속 하나 해 줘야겠는데.”
그가 씩 웃으며 말하자, 루치엘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 * *
“네가 한 건 했다.”
“한 건, 인가.”
학센은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았다.
박현수는 힐긋 그를 보곤 한숨을 쉬었다.
“얘긴 들었다. 자리를 내려놓고 홀로 포탈을 공략하고 다닌다지.”
“보다시피.”
“왜 자리를 내려놓은 거야?”
학센 정도면 S급 헌터 중에서도 세 손가락에 꼽는 실력자였다.
과거엔 잘못된 사상을 가진 적 있지만, 지금은 오직 인류의 미래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박현수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내 존재 이유를 알고 싶어서.”
“……뭐?”
“네게 패배한 이후 난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뉴 월드의 중책을 맡은 이유도, 자리에서 내려온 이유도, 혼자 이렇게 떠도는 이유까지 전부.
오직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 알아내지 못했어.”
학센의 눈은 죽었다.
2년 전, 박현수에게 패배한 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똑같은 눈이었다.
“박현수. 난 쓸모가 있는 인간인가?”
“…….”
“난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나?”
박현수는 2년 전을 떠올렸다.
‘내가 약할 리가 없다! 내가 최강이다! 나야말로 인류의 구원자다!’
패색이 짙어지자, 학센은 울부짖는 것처럼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주인공인 줄 알고 살아온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니 그로선 존재 이유를 상실한 셈이었다.
“도움이라.”
박현수는 주머니에 손을 꽂고, 학센이 보는 방향을 똑같이 바라봤다.
“넌 오늘 내게 도움을 줬어.”
“……?”
“저 천사. 네가 그 포탈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거 아니야.”
학센이 아니었다면 루치엘이란 귀중한 ‘전력’을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게 도움이 아니면 뭐지?”
“그건 운이 좋았을 뿐이잖나.”
“운도 실력이란 말은 못 들어봤어?”
“…….”
“예전엔 그냥 미친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확실히 2년이란 시간이 널 많이 바꿔 놓긴 했군.”
과거엔 지나칠 정도로 독선적이었다면, 이젠 지나칠 정도로 소심한 사람이 되었다.
“몬스터 웨이브는 알지?”
“모를 리가. 오늘도 있었던 거로 아는데.”
포탈에 있는 터라 몬스터 웨이브를 직접 보진 못했다.
“4단계부턴 S급 헌터도 참전할 거야. 그곳에서 활약해.”
박현수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몸을 돌렸다.
“그곳에서 너 스스로에게 자신을 증명해 봐.”
“난.”
“나한테 쓸모가 있는가, 같은 쓸데없는 생각은 때려치우고.”
학센은 멀어지는 박현수의 등을 보았다.
그가 향하는 곳엔 루치엘과 카본이 서 있었다.
머릿속으로 루치엘의 음성이 들렸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학센에게 말했다.
두 사람과 천사 하나가 빛무리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홀로 남은 학센은 다시 바닷가로 고개를 돌렸다.
“나 스스로에게 증명.”
어느새 노을은 사라지고, 사무친 어둠이 해안가에 드리웠다.
* * *
“압빠!”
“그래, 그래.”
모나미가 품에 안겨 왔다.
박현수는 모나미를 쓰다듬으며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는 셀리를 보았다.
마치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것처럼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있다.
“…….”
“헤헤.”
하는 수없이 셀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귀도.”
“그, 그래.”
손님(?)의 요구에 따라 귀도 살짝 매만져 주었다.
‘읏흥~’ 같은 야릇한 소리가 나왔지만, 박현수는 못 들은 척 손을 떼었다.
“잘 있었어?”
“녜.”
밖에 나갈 일 있으면 항상 집에 혼자 놔둔 터라, 며칠 전부턴 나갈 때마다 모나미를 우주선에 맡겨 두었다.
[허. 드래곤에 레비니안이라니.]루치엘은 어이없는 얼굴로 셀리와 모나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건 셀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셀리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루치엘을 보았다.
“천사가 왜 있엉?”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네가 말한 토끼가 레비니안을 뜻하는 것이었나?]“보다시피.”
카본은 평상복으로 돌아간 후 푹신한 소파에 드러누웠다.
“날개 예뻐.”
“예뻐.”
셀리와 어느새 아빠 품을 벗어난 모나미가 작은 날개를 열심히 움직이며 루치엘의 날개를 보았다.
루치엘은 괜히 뿌듯함을 느끼며 자신의 날개를 만졌다.
“만져 봐도 돼?”
“만져도 돼여?”
셀리는 다이렉트로 루치엘에게, 모나미는 아빠를 통해서 물어봤다.
루치엘은.
라고 대답했고.
박현수는.
“만져.”
[안 된다니까?!]“그거 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애가 만지고 싶다는데.”
무슨 진상 부모도 아니고, 애가 원하면 다 들어줘야 하는 줄 아는 건가?
루치엘은 자신의 날개를 폭 감싸며 뒷걸음질 쳤다.
“에잉~ 함 만져 보장~!”
“날개! 폭신폭신 날개!”
셀리와 모나미가 루치엘의 날개로 달려들었다.
루치엘은 헉 소리를 내며 피하려고 했지만, 둘의 속도가 예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무엇보다 셀리의 눈이 돌아갔다.
“만질 거얌!!”
커다란 눈이 무섭게 반짝이는 것 같은 건 착각일까?
루치엘은 셀리가 레비니안의 지배자의 외동딸이란 걸 알지 못했다.
그러니 폭발적인 속도가 나오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모나미 역시 마찬가지였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헤츨링이었지만, 무려 용왕의 핏줄인 모나미였다.
루치엘이 다급히 외쳤지만, 둘에게 그 외침은 무시해도 좋을 것이었다.
결국-!
“보드라워!”
“푹신푹신!”
셀리와 모나미가 날개를 각 두 개씩 붙잡고 볼을 비볐다.
루치엘은 어울리지 않게 얼굴을 부여잡고 무릎 꿇었다.
“미친 토끼와 쌩쌩한 헤츨링 앞에선 12 가문의 후계자도 별 볼 일 없네.”
카본은 아몬드를 질겅질겅 씹으며 조소했다.
박현수는 피식 웃곤 옆을 돌아봤다.
그곳엔 마검을 등에 진 아이작이 서 있었다.
“……아, 까먹고 있었다.”
“무슨 소란이지?”
아이작은 한창 수련을 방해하는 소음에 막 위로 올라온 상태였다.
“젠장.”
박현수가 눈을 감쌌다.
카본 역시 아몬드를 씹다 말고 루치엘을 보았다.
셀리와 모나미는 눈치 없이 열심히 날개를 만지작거렸다.
마지막으로 루치엘은.
“잠깐, 일단 오해거든.”
[나를 기만했겠다!]“쉣.”
우주선에서 큰 소란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