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47
훈수 두는 천마님 144편
박현태는 협회로 돌아와 제 손을 보고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몬스터 웨이브가 마무리됐는데도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뭘 했는지 모르겠다.
강제적으로 누군가의 각성 현장을 지켜본 후,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이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그리곤 마치 익숙한 듯 능력을 사용해 몬스터들을 제압했다.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어.’
머릿속이 새하얬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아까 전엔 세상 전체가 흐물흐물 기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박현태는 그것이 시공간 도면의 진정한 힘이란 걸 깨닫지 못했다.
“현태.”
“…….”
“박현태!”
“네, 네엡!”
박현태는 누군가의 부름에 벌떡 일어섰다.
앞을 보니, 이글이글 타오를 것 같은 붉은 머리카락이 가장 먼저 보였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 헙! 소리가 절로 났다.
“혀, 협회장님.”
“여기서 뭐 해?”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하아.”
하유락은 시무룩한 박현태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따라와.”
“네?”
“차나 한잔하게.”
이제 협회 직원은 아니지만, 얼마 전까진 직원이었던 데다, 그의 뒤를 봐줬던 사람이 하유락이었다.
그녀의 말을 거스를 수 없었다.
박현태는 쭈뼛쭈뼛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은 협회의 가장 끝에 있는 협회장실로 들어갔다.
하유락은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상석에 자리했다.
“앉아라.”
“네.”
박현태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옆 소파에 앉았다.
하유락이 수화기를 들어 차를 주문하곤 박현태를 바라봤다.
“봤어.”
굳이 어떤 걸 봤냐고 물을 필요는 없었다.
S급 헌터는 몬스터 웨이브에 참전하지 않았다.
대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장을 지켜봤다.
각자 담당한 지역이 있었고, 하유락은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일부를 전담했다.
“이젠 능력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거야?”
박현태가 보여 준 모습은 한때 전장의 가장 앞에서 활약하던 로벤을 떠올리게 했다.
특히 황금색으로 물든 눈은 피부색만 달라진 로벤인 줄 알았다.
박현태는 그녀의 질문에 우물쭈물 답했다.
“잘은 모르겠어요. 그냥 어쩌다 보니까…….”
“인지하지 못했구나.”
“네. 정신을 차리니까 자연스럽게…….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어요. 그때만 그런 느낌이 들었어서.”
“아니야. 그것만으로 충분해.”
박현태는 한평생 싸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그런 사람에게 갑자기 전문가 수준을 요구하는 건 말이 안 되었다.
전장에서 보여 준 모습 이전에 그는 2년이란 시간을 잃어버리고, 다음 2년은 가족 없이 살아온 외로운 소년이었다.
나이를 떠나서 그에게 급변한 세상은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게 못 되었다.
능력을 각성하고 많은 부담감을 짊어지고 있으리라.
“고생했어.”
‘고생했다’라는 그 말에 박현태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말은 한 번도 들은 적 없었다.
형조차 해 주지 않았다.
세상은 그의 등을 떠밀었다.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박현태가 느끼는 심적 부담감은 일반인이 짊어질 게 못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는 천금 같았다.
“끄흑…….”
하유락은 억지로 울음을 참는 박현태를 보며 금방 나온 커피를 홀짝였다.
* * *
“재각성자는 총 2,300명에 달합니다.”
“그중 A급 각성자가 240명 정도이고, B급 680명, C급 1480명입니다.”
아르망은 연달아 들려오는 보고에 미소를 거둘 수 없었다.
박현수의 계획대로 되었다.
극한에 몰린 헌터 중 일부는 한계를 뚫고 새로운 힘을 손에 넣었다.
고작해야 2단계 몬스터 웨이브였다.
앞으로 세 단계의 웨이브가 남았으니, 재각성을 더 기대해 볼 수도 있었다.
‘전력이 확 올라갔어.’
D급 이하의 헌터에게서만 재각성이 발현되었다.
잔인한 말이지만, 전력으로 쓰기 힘든 수준의 헌터들이 최소 1인분은 할 수 있게 됐단 뜻이었다.
3단계부터는 C급, 어쩌면 B급 헌터에게서도 재각성 현상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
새로운 S급 헌터의 탄생을 기대해 볼 만했다.
“기분이 좋은가 봐?”
칭란은 흑룡이 새겨진 치파오를 입은 채 문에 기대고 있었다.
최근 꾸준한 힘의 사용으로 그녀는 이제 8살 정도의 어린 소녀가 되었다.
그녀는 어린 모습이랑은 정말 어울리지 않게 곰방대를 입에 물곤 아르망에게 다가갔다.
“처음엔 반대했잖아.”
“반대라기보다는 걱정이었지.”
결국, 헌터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 아닌가.
모든 헌터를 총괄하는 입장에서 그런 섣부른 선택은 쉬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좋은 방향으로 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사실 아직도 걱정은 되었다.
2단계가 그러했듯, 3단계 역시 전 단계와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를 자랑할 것이다.
B급 헌터 스무 명이 힘을 합쳐야 한 마리를 토벌할 수 있는 레벨.
그런 몬스터가 게이트 당 100마리였다.
A급 헌터 한 명이 B급 10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지금, 달리 보면 위기와 다름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웃는 얼굴 뒤에 수심이 가득해 보이긴 해.”
“안 그러는 게 이상하지.”
“그래도 전보단 나아.”
많은 재각성자가 탄생했고, 무엇보다 박현수의 친동생인 박현태가 ‘시공간의 도면’을 제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수 동생 녀석, 저번에 봤을 땐 엄청나게 소심한 성격인 것 같더니.”
“이렇게 잘해 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어.”
“결국 현수랑 같은 핏줄이라는 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로벤이 우리가 모르는 안배를 깔아 놨을지도.”
박현태라는 안배를 마련해 놨으니, 그 이후의 일도 관여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그보다, 학센이 돌아왔어.”
“그 녀석이?”
칭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젠가 사표를 툭 던지고 사라진 학센은 미친 사람처럼 포탈을 공략하고 다녔다.
“생각이 바뀌었다는 건 좋은 거지.”
S급 전력이 밖으로 나도는 건 그리 좋은 게 아니다.
“하나둘 퍼즐이 맞춰져 가는 느낌이네.”
“후후.”
아르망은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틀어졌던 것들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어.”
지구를.
그리고 인류를 위한 전쟁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 같이 힘내자고.”
그는 칭란의 작은 어깨에 손을 올리곤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혼자가 된 칭란은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진짜로 우리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네.”
그녀는 소녀 같은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연륜 있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 *
[더럽고 추잡한 것과 함께 있을 수 없다!] [키히히히! 고결한 척하는 역겨운 종족을 코앞에서 보는 건 또 처음이네.] [도구 따위가 징그러운 눈깔을 부라리는구나? 오냐, 이 몸이 네놈의 눈깔을 뽑아 정화하리라.] [뒤지게 맞아서 눈탱이 밤탱이가 된 네 얼굴부터 정화하지 그래? 캬하하하하!]루치엘과 마검이 서로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박현수는 둘을 보며 혀를 찼다.
한 지붕 아래 천사와 마왕의 피조물이 같이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걸 간과한 게 잘못이었다.
‘그래도 다행인가.’
처음엔 루치엘이 제대로 발광했지만, 큰 싸움으로 번지진 않았다.
첫째로 박현수가 나선 게 컸고, 둘째론 아이작이 이런 상황에 별시답잖은 거로 따지지 말라고 일축한 게 컸다.
한순간에 소인배가 되어 버린 루치엘은 어버버 거리다가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그리곤 괜히 마검과 입씨름 중이었다.
“시끄러운 녀석들.”
카본은 쇼파에 비스듬히 누운 채 짜증 어린 목소리를 내었다.
“정 쌈박질을 하고 싶으면 아래에 내려가든가. 왜 여기서 입으로 싸우고 지랄이야?”
우주선엔 초월자의 힘도 충분히 감당할 수련장이 존재했다.
그 말에 루치엘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특유의 오만한 얼굴로 아이작을 내려보았다.
그 시선이 기분 나빠 아이작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딴 눈으로 보지 말지?”
[크크큭. 마검과 그 하수인. 정말이지 견딜 수가 없단 말이지.]“하수인?”
[그래, 하수인. 선과 악, 무엇이 우월한 지 이 내가 손수 체감시켜 주마.]“제대로 미친 닭대가리군.”
난데없는 비난에 아이작이 입꼬리를 씰룩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냄새 날 것 같은 날개 베어 버리자고, 파트너!!] [내, 내 날개를 보고 뭣이 어째?]“말이 많다. 따라와라. 그 높은 콧대를 제대로 낮춰 줄 테니.”
새빨간 마기가 피부 위로 일렁거렸다.
루치엘은 악취 난다는 듯 코를 틀어막았다.
“역한 건 네 말투고. 닥치고 따라와.”
“구경해도 돼???”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셀리가 작은 솜 꼬리를 열심히 흔들며 물었다.
자리에 모인 이들 전부가 그녀를 이상한 얼굴로 쳐다봤다.
눈치가 없는 셀리는 당연히 그 시선들을 느끼지 못했다.
박현수는 한숨을 쉬며 아이작과 루치엘을 가로막았다.
그는 루치엘을 휙 돌아보며 쏴붙였다.
“이럴 거면 내가 널 설득하는데 왜 열을 올린 거야?”
[……흠흠.]할 말이 없는지 루치엘이 허공을 보며 헛기침을 했다.
박현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된 거, 서열 정리를 하자. 대신, 절대 목숨을 해하면 안 되고, 패자는 적어도 군세와의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승자의 말에 전적으로 따르기.”
[목숨을 해하면 안 된다고? 저런 사악한 것과 싸우면서?]“아까 뭐 들었어?”
박현수가 인상을 팍 구기며 루치엘을 노려봤다.
한 번 얻어터진 전적이 있었기에, 루치엘은 괜히 몸을 움찔했다.
“이 시국에 그런 시답잖은 것부터가 아주 마음에 안 들어.”
“그게 내 알 바야?”
천사가 악을 싫어하는 건 잘 알겠다.
악을 보면 단죄하고 싶어 미치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어쩌라고?
“적어도 군세와의 전쟁이 끝나기 전까진, 패자는 승자의 말에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 둘 다 동의하나?”
“동의~!”
셀리가 히죽히죽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녀를 가볍게 무시해 주고 아이작과 루치엘을 번갈아 보았다.
“동의.”
먼거 아이작이 동의했고,
[동의!!]루치엘이 괴상하게 웃으며 동의했다.
이놈은 천사인지, 악마인지.
외형만 보면 천사가 맞는데, 하는 짓이나 가끔 뒤틀리는 표정을 보면 악마 뺨칠 정도였다.
박현수는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초월자 둘이면 수련장이 망가질 수도 있으니.”
그는 큐브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일전에 아이작의 힘을 테스트하는 데 썼던 하얀 공간이었다.
“들어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여전히 넓은 하얀 공간이 나타났다.
“삐.”
셀리는 작은 날개를 펄럭펄럭 열심히 움직이며 하얀 공간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곤 신나는지 삐삐 웃어 댔다.
박현수가 내려오라고 손짓하자 아빠 어깨에 부드럽게 착지했다.
“이젠 비행 고수네 우리 딸?”
“녜! 히히히.”
모나미는 방실방실 웃으며 박현수 뺨이 얼굴을 비볐다.
[흥.]루치엘은 그를 지나쳐 하얀 공간 한복판에 섰다.
그가 양손을 털자 각 손에 검이 한 자루씩 쥐어졌다.
두 쌍의 날개가 활짝 펼쳐지며, 헤일로에서 성전이 전개되었다.
아이작도 마검을 바짝 움켜쥐고 배틀 폼으로 변신했다.
눈부신 신성력과 새빨간 마기가 정중앙에서 충돌하며 강렬한 스파크를 발산했다.
“모나미 셀리한테 가 있어.”
“나, 나, 나, 나, 나한텡?”
셀리가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대답도 하지 않고 모나미를 그녀에게 보냈다.
모나미는 셀리가 어떤 반응을 보이건 시큰둥한 얼굴로 그녀 품에 안겼다.
셀리는 바짝 얼어 커다란 눈으로 정면만 응시할 뿐이었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닌지, 모나미 전용 가구처럼 보일 정도였다.
‘친해진 것 같다가도, 이렇게 보면 아직도 많이 무서워하는 게 보이네.’
매일매일 모나미에 관한 생각 같은 게 리셋이 되는 걸까?
박현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거리를 두고 인간 하나와 천사 하나를 보았다.
“준비는?”
“바로 가능.”
두 기운이 난폭하게 꿈틀거렸다.
박현수는 피식 웃으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두 개의 시선이 손끝에 집중되었다.
“준비-!”
올라갔던 손이.
“파이트!”
아래를 향해 떨어졌다.
동시에.
“더럽게 시끄러운 녀석!”
신성력과 마기가 거세게 충돌했다.
박현수는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싸움 구경이 재밌긴 해.”
“동감.”
언제 왔는지 카본이 팝콘을 씹으며 대꾸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