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49
훈수 두는 천마님 146편
“S급들 상태가 그리 좋진 않네요.”
“재각성자들 대부분이 그런 모양이더라고.”
칭란은 박현수와 마주 보며 차를 홀짝였다.
“한계를 넘어서까지 몰아붙였으니, 이런 반작용은 있을 수밖에 없어.”
그녀의 말대로였다.
애초에 뉴 월드 측에선 이런 부분까지 고려했다.
함께 있던 동료가 크게 다치거나, 심하면 사망까지 이르렀다.
거기다 자신까지 위협당하니, 심적으로든 신적으로든 벼랑 끝에 몰리게 되었다.
그런 절망 속에서 각성자는 재각성을 한다.
그러니 정신 상태가 망가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오히려 페링클 로치 같은 경우가 특이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지.”
살육 자체에 희열과 쾌락을 느끼는 미치광이.
다른 말로는 사이코패스.
이런 방식의 재각성이 이루어질 거라곤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이런 케이스는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더구나.”
“아무래도, 아군까지 피해 입힐 수도 있으니까요.”
박현수도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페링클 로치는 확실히 위험했다.
혹시 몰라서 그녀의 ‘본능’에 강한 위압을 주긴 했지만, 두려움이란 감정도 결핍되어 있다면 두려움 자체를 못 느낄 가능성이 컸다.
“정 통제가 안 된다면 제가 어떻게 할게요.”
“굳이 너까지 나설 필요는 없지 않겠니?”
“회주님은 능력 쓰면 안 되잖아요. 거기서 더 어려졌다간 정말 사라질 수도 있어요.”
칭란은 찻잔을 휘휘 돌리며 웃었다.
“더 살아서 뭐 하겠어. 이 한목숨, 세계를 위해 바치는 거지.”
“세상이 평화로워지면,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야죠.”
“평화라.”
포탈 임팩트 이후 벌써 5년 가까이 흘렀다.
엊그제 일 같으면서도, 벌써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게 놀라웠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것이다.
죽음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5개월 후면 모든 게 끝나겠지?”
“네. 아마도요.”
킹은 제약이 풀리면 곧바로 총공세를 시작할 것이다.
그로선 더 지체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전쟁은 길지 않으리라.
어쩌면 하루 이틀 만에 종결이 날 수도 있었다.
“제가 킹을 잡을게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현수야.”
“인류는 다시 평화를 되찾을 거예요. 제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박현수는 꽉 쥔 주먹을 보았다.
남은 몬스터 웨이브는 두 번.
더 많은 재각성자가 나타날 것이다.
곧 다가올 대전쟁의 준비로는 충분할 터.
‘병력은 완성됐어.’
각성자들의 혼란이 걱정되긴 하지만, 그들 또한 이해해 주리라.
결국, 인류의 주적은 킹과 그의 군세니까.
박현수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 온 목적은 재각성한 S급 두 명을 보기 위해서였다.
“문제가 있으면 연락 주세요.”
“다른 사람들은 안 보고 가도 되니?”
“다들 바쁠 텐데 굳이 뭘.”
“그래라.”
칭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현수는 그녀에게 손을 저어 보이곤 한국으로 돌아갔다.
“평화로운 세상이라.”
과연 박현수의 말처럼 될까?
칭란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해 미래를 준비할 뿐이었다.
* * *
포탈을 통해 한국 협회로 돌아온 박현수는 앞에 선 이를 보곤 걸음을 멈추었다.
“자기 필요할 때만 나를 찾아오는 것 같은데?”
“오해다.”
“지금까지 어디 있었던 거냐? 마레, 어째…… 더 왜소해진 것 같은데.”
박현수의 말처럼, 마레의 크기는 한 달 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작아져 있었다.
파란 불길 같던 몸의 일렁임도 잔잔한 물결처럼 변해 있었다.
“이곳에서 할 얘기가 아니다. 조용한 곳으로 가지.”
마레의 몸이 불꽃처럼 픽 꺼졌다.
무슨 경험을 하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매우 중요한 일인 건 확실해 보였다.
박현수는 곧장 그의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만년설이 가득 뒤덮인, 이름 모를 산의 정상이었다.
자욱하게 깔린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것은, 산 정상에 드넓게 펼쳐져 신비로운 광경을 연출했다.
차디찬 눈보라가 불어닥쳤지만, 둘에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멸망룡이 봉인된 장소에 다녀왔다.”
“?!?!”
마레가 그곳의 위치를 알고 있을 줄 몰랐다.
박현수는 너무 놀라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이용할 수 있을까 싶어서 말이지.”
“그곳이 어디지?”
“말해 봐야 소용없다. 이미 막기엔 글렀으니.”
“도대체 거기서 뭘 겪은 거냐, 마레!”
“내 몸이 왜소해진 것 같다고 했지?”
마레는 몸을 돌려 박현수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자신의 팔다리를 보며 비관적인 미소를 지었다.
“멸망룡의 종자들이 하나둘 부활하기 시작했다.”
“종자?”
“지상에 끔찍한 분노를 품고 있는, 그 사악한 괴물들이 눈을 뜨기 시작했단 말이다.”
“……이해가 안 된다.”
“이해할 수 없어도 이해해야만 한다. 신화시대의 지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마레는 힐긋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누군가가 들어선 안 된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킹과 그 동료들. 그들이 왜 붉은 용을 부활시키려는지 알아냈다.”
“혼돈의 마왕을 막기 위해서?”
“……혼돈의 마왕? 그는 적(赤) 세계의 지배자잖나. 킹이 그 강대한 존재를 왜…….”
“적 세계가 어디 박혀 있는지 모르겠지만, 너도 혼돈의 마왕은 아는 모양이군.”
“알다마다. 모를 수가 없지.”
‘혼돈의 마왕’이 등장한 것은 벌써 까마득한 과거였다.
마레가 아리스란 행성을 막 관리하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했다.
“혼돈의 마왕. 그는 내가 막 아리스를 관리하게 된 무렵, 막 우주에 등장한 초신성 같은 존재였지.”
아직도 그때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리스의 주민들이 제대로 된 문명을 갖추지 못하던 시절, 혼돈의 마왕에게 아직 ‘혼돈’이란 이명이 붙지 않았던 때였다.
그는 처음 서쪽 대은하를 단신의 힘으로 침략했다.
“수많은 초월자가 소멸했다. 여러 문명이 종말을 고했다. 우주 전체가 두려움에 떨던 시절이었다.”
서쪽 은하가 완전히 그의 손아귀에 떨어졌을 때, 비로소 혼돈의 마왕은 ‘혼돈’이란 이명을 손에 넣었다.
그다음은 추풍낙엽이나 다름없었다.
남쪽 대은하가, 그다음은 북쪽, 마지막을 동쪽까지.
중앙 대은하를 제외한 모든 대은하가 손아귀에 들어갔다.
아리스도 당시에 혼돈의 마왕의 지배를 받았다.
말이 지배였지, 그의 영토에 소속돼 있을 뿐 실제론 그를 본 적 없었다.
그가 이끈 마왕군도 아리스엔 딱 한 번 방문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을 것 같던 그의 진군도 누군가에 의해 가로막혔다.”
혼돈의 대군이 중앙 대은하를 막 공격하던 시기.
엄청난 힘을 가진 초월자가 나타났다.
그의 힘은 혼돈의 마왕에게 밀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세한 건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박빙.
싸움은 수십 년 동안 이어졌다.
마침내 싸움의 종지부가 찍혔고, 혼돈의 마왕은 자신이 기존에 지배하던 ‘적 세계’로 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 존재 역시 혼돈의 마왕과 싸우며 엄청나게 약해졌다고 하더군. 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여러 소문은 있었다.
죽었다더라, 혹은 아무도 모를 외딴 별로 떠났다거나 하는 등의 소문이었다.
누구도 그의 행적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고, 킹의 군세가 등장했다.
그리고 킹이 수많은 차원과 행성을 약탈하는 이유가 혼돈의 마왕에게 대항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
“나도 이유까진 모르지만, 네가 자리를 비웠을 때 퀸을 죽이는 데 성공했다.”
“퀸을?! 그들이 퀸을 내려보냈다고?”
사정을 모르는 마레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퀸은 군세의 강력한 결전 병기였다.
무엇의 결전 병기인지 몰랐지만, 제약이 걸려 있는 이상 그녀도 제힘을 발휘하지는 못할 터.
“녀석은 죽기 전, 미친 것처럼 군세의 목적을 모두 떠들었다. 자신의 존재 이유까지 말이다.”
“허.”
“퀸은 혼돈의 마왕을 막기 위한 결전 병기였고, 군세가 행성과 차원을 침략하며 빼앗은 강력한 병기는 마왕의 군대와 맞서기 위함이라더군.”
“하! 하하하! 크하하하하하!!”
마레가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박현수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그를 보았다.
“그래서였나! 그래서였어!”
“뭐가?”
“내가 알아낸 걸 말해 주지.”
마레는 웃는 걸 멈추고 킹과 그 동료들, 그리고 붉은 용의 진실을 말했다.
* * *
“뭘 하고 있는가.”
“오래된 기억을 살피고 있었소.”
킹은 옆에 다가온 더 블랙을 보며 그리 대답했다.
“지금 와서 그리움이라도 느끼는 것이냐?”
“그러진 않소. 본인에게도 충분히 오래된 기억이니, 그리움 같은 감정이 남아 있을 리 없지.”
“그렇다면 어째서 푸른 행성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지?”
더 블랙은 킹이 바라보는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엔 아름다운 푸른 행성 지구가 있었다.
“많이 바뀌었소, 저 땅도.”
“흥. 그리움이 맞지 않나.”
“그리움이 아니오. 그립다기엔 너무 끔찍했던 기억이니까.”
“사탄이 어리석었지.”
더 블랙의 입에서 의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는 침침한 눈으로 지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준비가 더 필요했었다. 후회만 남을 뿐이야.”
“그로 인해 우린 손해를 보았지만, 결국은 이렇게 다시 찾아오게 됐지.”
“어쩔 수 있는가. 사탄은 ‘조건’이 갖춰졌을 때 ‘신’조차 끌어내릴 수 있는 강대한 존재니, 혼돈의 마왕에게 당한 수모를 갚기 위해선 그의 도움이 절실하다.”
“우리를 보면 죽이려 들지도 모르오.”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으니, 그에게도 우리가 필요하지.”
더 블랙이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킹은 그를 고약한 늙은이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 강대하던 행성이 이런 꼴로 전락할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둘은 신화시대의 지구를 기억했다.
사탄의 밑에서 그를 도와 적들과 맞서 싸웠었으니까.
비록 패배란 결과를 낳았지만, 중요한 건 그때의 강대한 적들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귀찮은 방해꾼이 있긴 하지만, 우리 힘이 모두 돌아온다면 혼자선 무력할 뿐이지.”
“박현수를 무시하지 마시오.”
“그에게 겁을 먹었는가?”
더 블랙은 비웃는 얼굴로 힐끗 킹을 쳐다봤다.
“겁을 먹지 않았다면 그것이 멍청한 게 아니겠소?”
“뭣이?”
“박현수로 인해 많은 걸 잃었소. 본인은 더 잃고 싶은 마음이 없소이다, 황제여.”
“……흥.”
할 말이 없다는 듯 더 블랙은 다시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다 해도 우리의 승리가 바뀌진 않을 것이다.”
“그 말엔 동감하오.”
“추잡은 그만 떨게나. ‘기적’이 발생했으니, 대적자의 완성이 멀지 않았다.”
“알겠소.”
킹은 떠나가는 더 블랙을 보다가 코웃음 쳤다.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모양이군.”
그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지구를 보았다.
[빨리 오라. 그리고 나를 깨워라.]킹은 귓가에 울리는 오래된, 그러나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며 대답했다.
“기다리시오. 사탄.”
* * *
“기수들이 멸망룡의 수하였다고?”
“수하였는지, 동료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곳에서 멸망룡의 중얼거림을 들을 수 있었다.”
부활이 곧 도래하니, 사탄의 의식이 되살아났다.
그는 좁은 공간에서 답답함을 호소하며, 계속해서 부활의 징조를 무한히 불러 댔다.
“그것이 킹, 그리고 그를 포함한 세 명의 기수였다.”
“……3명의 기수까지 깨어나면서 멸망룡이 반응한 모양이야.”
“멸망룡의 종자들이 그 증거다. 4년 전에 처음 그곳에 갔을 땐, 종자들은 존재하지 않았어.”
그것들의 모습은 일정하지 않았다.
온갖 짐승이 뒤섞인 것 같으면서도,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일그러지기도 했다.
문제는, 그 힘이 마레로선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오직 도망치는 데 힘을 썼고, 그 결과 지금 수준으로 왜소해지고 말았다.
“놈들의 모든 제약이 끝났을 때 상상을 초월할 지옥이 펼쳐질 거다.”
얘기를 끝까지 들은 박현수는 멍하니 하늘을 쳐다봤다.
이곳의 하늘은 왜인지 칙칙한 느낌이었다.
지구의 미래라도 암시하는 걸까?
“개소리.”
그는 그리 중얼거리며 내공을 일으켰다.
새까만 기운이 단전에서부터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순식간에 만년설을 집어삼켰고, 하늘까지 솟구쳐 칙칙한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뭐, 뭘 하는 것이냐?”
“잘 봐둬.”
박현수는 전력을 다해 기운을 일으켰다.
대기가 덜덜 떨리다 못해 뒤흔들렸다.
콰아앙-!!
두껍게 쌓인 눈에 금이 가며, 곧 산 아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압!”
새까만 어둠에 우주가 펼쳐졌다.
마레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것이 박현수란 인간이 가진 힘-?!
“나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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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를 중심으로, 빛마저 빨아들일 것 같은 어둠이 기둥처럼 치솟았다.
그가 가진 전력.
막강한 폭력!
그 거대함에서 마레는 느꼈다.
‘지구가 격동한다……!’
그는 생각했다.
이 사내라면 모른다고.
그가 지구를 떠났던 세월은 고작해야 2년.
우주에선 40년이라지만, 이건 40년이란 세월로도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드높은 세계!
“봐라, 마레!! 이것이 나 박현수다!!”
박현수는 위로 펄럭이는 옷과 머리칼의 흔들림을 느끼며 히죽 웃었다.
“지옥? X 까라 그래.”
꿈틀-!
박현수 안에 웅크리고 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몸을 폈다.
“내가 다 쳐 죽여 줄 테니까.”
검게 타오르는 귀화엔 강한 자신감이 맺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