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50
훈수 두는 천마님 147편
박현태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딱히 큰 활약이라든가,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저번처럼 그런 느낌으로 능력이 나오진 않았지만.’
2차 웨이브 때처럼 원래 내 것인 것처럼 능력을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예전에 비하면 제 한 몸 간수할 정도는 되었다.
“피곤해.”
이번 3차 웨이브는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장난 아니었다.
인류를 위해서라지만, 이건 결국 제 살 깎아 먹기가 아닐까.
박현태는 형의 의중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좀 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옛날의 형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이제 그런 걸 따져 봐야 무의미하다.
형인 박현수는 우주에서 40년을 보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40년이면 사람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모르겠다.”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박현태는 허기나 달랠 겸 수납장에서 라면을 꺼냈다.
그때였다.
――――――――――――――――――――――――――!!!
창밖이 어둠으로 물들며, 회색 그림자가 집을 덮쳤다.
박현태는 흔들리는 거실에서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어정쩡한 자세로 라면들 들고 서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지?
그보다, 이 경악스럽고도 경이로운 기운은 대체 누구의 것일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약 1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거대한 떨림도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박현태는 천천히 뒤돌아 창밖을 확인했다.
“……뭐야.”
까맣게 물들었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창창했고, 회색 그림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는 라면을 내려놓고 창가로 걸어갔다.
“형……?”
왠지 모르겠지만, 박현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방금 그것은 형의 힘이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대체 형은 뭐하는 사람이야?”
박현태는 더욱 형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 * *
“이 미친놈아!”
카본이 허공에 뿅 하고 나타났다.
그는 만년설 위에 태평하게 서 있는 박현수를 보며 빼액 소리쳤다.
“갑자기 무슨 짓거리야?!”
“왜 왔어?”
“갑자기 힘을 개방하면 어쩌잔 거야? 지구를 네 손으로 파괴하려고?”
“오버하지 마.”
“오버 같은 소리 하네!”
박현수가 힘을 개방한 순간, 카본은 세상이 멸망하는 줄 알았다.
그 정도였다.
무슨 정신머리로 그런 짓을 한 지 모르겠다.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카본은 뒤따라온 루치엘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언제 따라왔는지, 조금 높은 곳에서 서서 오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내려와라.”
[알았다…….]그리고 역시나, 뒤따라온 아이작의 말에 대꾸도 못 하고 내려왔다.
카본은 그게 너무 한심해 보였다.
박현수는 이곳에 온 셋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별일 아니니까 그만 돌아가.”
“별일 아니기는. 지구 전체가 어둠으로 물들었었…… 그런데 저자는 누구야?”
박현수의 말에 따지고 들던 카본은 앞에 있는 파란 불꽃의 사내를 보며 물었다.
이곳에 있기엔 굉장히 이질적인 외형이었다.
능력을 쓴 지구인……이라기엔 품고 있는 힘이 상당히 컸다.
“적은 아닌 것 같은데.”
“당신은.”
알아본 건 아이작이었다.
“1년 전에 내 앞에 나타났던, 자신을 아리스의 신이라고 했던 자로군.”
“아리스의 신?!”
아리스의 신이라면 손수 특이점을 선발한 존재 아닌가?
카본의 눈이 돌아갔다.
그는 스태프를 소환하고 곧장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카본, 진정해.”
“넌 빠져!”
촤라락-!
다섯 개의 은빛 사슬이 솟구치며 마레를 향해 쏘아졌다.
묶이는 순간, 힘의 차이가 세 배 이상 나지 않는다면 풀 수 없는 절대 봉인 마법!
“미안하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다.”
박현수는 의념으로 사슬들을 하나씩 포착한 다음, 이기어의 수법으로 손으로 끌어당겼다.
“박현수!”
카본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왼손을 옆으로 슥 밀었다.
공간이 꿀렁이며 박현수를 집어삼켰다.
박현수는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공간을 보며 공력을 끌어올렸다.
흑강기에 스파크를 튀며 공간을 깨부쉈다.
“너는 날 막으면 안 되는 거잖아!”
카본은 분기탱천하며 악을 썼다.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지극히 당연했다.
외로운 이세계에서 누구보다 끔찍한 경험을 겪었으니까.
그러나 대상이 잘못되었다.
“마레가 아니야.”
“닥쳐!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는 마나를 최대로 전개했다.
“아무리 너라도, 막아서겠다면.”
파란 머리가 은빛으로 물들었다.
그가 두른 로브에 초승달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달의 마력.
카본이 가진 마법의 근원이자, 바탕이 되는 힘.
그가 달의 마력을 사용했다는 것은 진심이라는 뜻이었다.
“…….”
루치엘은 크게 당황했다.
약간이지만, 루치엘은 그를 무시하고 있었다.
한데, 이런 엄청난 힘을 숨기고 있을 줄이야.
그건 아이작도 마찬가지였다.
‘강하단 건 알고 있었지만.’
카본이 이 정도 수준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마레는 박현수 옆에 서서 그를 뒤로 밀어냈다.
“박현수. 괜히 나서지 않아도 된다.”
“쟨 널 죽일 생각인 것 같은데.”
“살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마레는 은빛으로 번쩍이는 카본에게서 조금의 살기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분노하고 있을 뿐이었다.
“네가 그렇다면야.”
처음에 너무 강압적으로 나와서 막긴 했지만, 그 역시 카본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일단, 싸우기 시작하면 산 전체가 사라질 것이고, 저 상태라면 승부를 내기도 쉽지 않았다.
박현수는 손을 들고 뒤로 물러났다.
“굳이 그럴 필요 없지. 네가 날 죽일 생각이 없으니까.”
대답은 마레가 대신했다.
카본은 뇌기가 튀어 오르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마레를 노려보았다.
“아니다.”
“일단, 나는 널 마르카나에서 처음 발견했다. 지구인이라는 건 뒤늦게 알게 되었다.”
콰르르릉-!!!
은빛 기운이 번개 줄기처럼 움직이며 만년설을 거칠게 헤집었다.
“증명할 방법 같은 건 없다.”
카본이 당장이라도 마레를 숯덩이로 만들려고 스태프를 위로 올린 순간.
“넌 증명할 수 있나?”
“내가 널, 그리고 다른 99명의 아이를 마르카나로 전이시켰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느냐고.”
“말장난이 아니다. 넌 마법의 극의를 깨닫고, 초월적인 힘을 손에 넣었다. 한데도 널 마르카나로 보낸 존재를 찾아내지 못했지.”
마법으로 일가를 이뤘을 뿐 아니라, 초월의 영역에 도달했다.
마법 한정으론, 대적할 수 있는 존재는 우주 전역을 뒤져봐도 그리 많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대실종의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다.
“강함을 떠나서, 내 전성기 시절은 지금의 너보다 못하다. 그런데도 넌 내게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어.”
카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한테 물어도 알 수 없다. 말했듯, 난 마르카나에서 널 처음 발견했다.”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도 알지 못했다.
카본은 한숨을 쉬며 아래로 내려왔다.
초승달 문양이 사라지며, 은빛 기운이 거짓말처럼 흩어졌다.
그는 마레를 무섭게 노려보다가 뒤에 선 박현수를 휙 쳐다봤다.
“됐냐?”
“됐다.”
그리곤 텔레포트로 자리를 떴다.
루치엘과 아이작은 왠지 민망해져서 우주선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의혹이 풀려서 다행이야.”
“그건 그렇고, 정말 누군지 궁금하군.”
“대실종의 원인 말이지?”
예전에 마레와 이것으로 짧게 얘기를 나눈 적 있었다.
그땐 당장 한 치 앞이 중요했기에, 깊게 생각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우주에 불필요한 인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면, 카본이 마르카나로 전이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난 이만 돌아간다.”
“그러도록 해라. 난 조금 피곤하군.”
많이 지쳤다.
이렇게 지친 건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아니면 우주선에 같이 가든가.”
“괜찮다. 혼자가 편하다.”
“그러든가.”
박현수는 주저앉은 마레를 힐끗 보고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마레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자신의 가슴을 내려보았다.
“곧 꺼지겠군.”
그는 그리 중얼거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 * *
세상이 깜깜해지며, 지구 전체가 흔들린 사건은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다.
멸망의 징조가 아니냐는 속보가 전파를 탔고, 짐을 싸고 대피하려는 움직임도 전 세계에서 보였다.
박현수가 표출한 분노와 자신감의 여파였다.
“흠.”
“미친놈.”
카본이 턱을 긁적이는 박현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래도 오버냐?”
“심하긴 했네.”
“심했어! 현수 심했어!”
“아빠한테 뭐라 하지 마!”
“으응…… 미안.”
모나미가 허리에 손을 얹고 혼내듯이 말하자, 셀리가 귀를 축 늘어트리며 사과했다.
“음. 이걸 어째야 하지? 해명을 해야 하나…….”
“마음대로 해.”
카본은 그리 말하곤 방으로 들어갔다.
안 그래도 몬스터 웨이브 때문에 세간의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그런데 이 난리가 났으니, 사람들은 군세가 공격해 온 것이라고 믿었다.
현재 많은 이들이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나쁜 사람이겠지?”
“응! 아빠 잘못은 아빠가 해결해야 해요!”
“맞아 맞아!”
똑 부러진 모나미의 말에 셀리가 힘차게 호응했다.
“그게 맞겠지.”
박현수는 모나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머리도.”
셀리가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박현수는 한숨을 쉬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우주선 입구로 걸어갔다.
“다녀올게.”
“안녕히 다녀오세요.”
모나미가 짧은 다리로 걸어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자 질 수 없다는 듯, 셀리도 후다닥 달려왔다.
그러다 모나미와 거리가 너무 가깝다고 판단했는지, 움찔하며 옆으로 한 걸음 떨어져 인사했다.
“다녀왕!”
“그래. 둘 다 쉬고 있어.”
박현수는 바로 협회로 향했다.
협회는 모든 직원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유는 당연히 박현수 때문이었다.
그는 이마를 짚고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협회장실 앞에 서자, 다급한 하유락의 통화 소리가 들렸다.
“일단 사람들 통제해! 뭐? 그냥 뚫고 지나가려고 한다고? 어떻게든 막아! 통제 벗어나면 더 힘들어지니까! 잠깐, 영국에서 전화 왔다. 조금 있다 연락해. 여보세요? 여긴 지금…….”
박현수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는데도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흠흠.”
어쩔 수 없이 소리를 내었다.
하유락은 그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그리곤 수화기를 내려놨다.
“너도 아까 느꼈지? 세상이 어두워지고, 지구 전체가 흔들린…….”
“그거 나예요.”
“그래, 너겠지. 너 말곤 없겠지. 아무튼, 사태가 심각해. 아무래도 군세에서…… 뭐라고?!”
하유락이 얼굴을 와락 구기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