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51
훈수 두는 천마님 148편
하유락은 어색하게 웃고 있는 박현수를 보며 나직이 한숨 쉬었다.
“대체 왜 그랬던 거야?”
“나도 모르게 그만.”
“그렇게 말하고 땡 할 생각은 아니지?”
“그랬으면 모른 척했겠죠. 하하.”
잠깐의 선택이 세계를 대공황에 빠트려 버렸다.
이건 웃고 넘어갈 게 아니었다.
하유락은 입술을 새로 바르며 박현수를 찌릿 노려봤다.
“내 선에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사람들은 제2의 포탈 임팩트라면서 도망치고 난리 났어. 통제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이라구.”
“통화 내용 들어서 알고 있어요.”
“해결 방법은 있니?”
“달리 방법이 있나요. 언론사들 불러 주세요. 이참에, 평화에 젖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줄 좋은 기회기도 하고.”
차라리 잘 되었다.
이번에 S급으로 각성한 하이덴은 현재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진대, 일반인들은 어떻겠는가?
당장 생활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위기를 잊었다.
“……막 하면 안 된다?”
“그건 좀 보고.”
박현수는 히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한국 협회장의 부름에 크고 작은 언론사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국내 언론사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한 걸음으로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시대.
세계적으로 유명한 언론사의 기자들도 대한민국을 방문했다.
그들은 급하게 해야 할 질문들을 작성하며, 박현수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영웅의 기자회담이라니.”
“무슨 말을 하려고 모두를 부른 거지? 언론 노출을 꺼리던 거 아니었나?”
친분 있는 기자 둘이 마이크로 도배된 단상을 보며 쑥덕였다.
“우리야 좋게 됐지.”
“영웅을 실제로 보는 건 또 처음인데. 이게 뭐라고 가슴이 떨리냐.”
“기자가 돼선 떨리긴 뭐가 떨려? 우리한텐 그냥 특종감일 뿐이야.”
“그것도 그래. 크크큭.”
그들이 계속 잡담을 하고 있을 때, 풍성한 붉은 머리칼과 빨간 원피스, 빨간 힐로 치장한 하유락이 단상 위로 올라갔다.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모든 기자가 그 모습을 1초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눈부신 셔터 빛에 눈살을 찌푸릴 만도 하건만, 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한국 협회장 하유락입니다. 오늘 여러분을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고, 모두가 아시는 지구의 영웅 박현수 씨께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여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 얘기는 사전에 들었기에 달리 질문하는 기자는 없었다.
하유락은 아래에서 신호를 보내는 스태프를 한번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가 끝난 모양이군요.”
그녀의 말과 함께 슈트를 갖춰 입은 박현수가 포마드로 머리를 올린 채 나타났다.
그는 꽤 갑갑한 얼굴이었는데, 하유락이 얼굴로 ‘인상 그렇게 하지 마!’라고 말을 하자 어색하게나 마가 웃어 보였다.
얼마 전에 뉴 월드 본부에서 간부들을 상대로 비슷한 자리를 가지긴 했지만, 이번 자리는 그때와는 꽤 달랐다.
공식적으로 대중 앞에 서는 자리다.
“아아-.”
찌이이잉-!
마이크가 시끄럽게 울었다.
박현수는 당황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자, 옆에 있던 하유락이 피식 웃어 버렸다.
기자들도 곳곳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진정되고 박현수는 모여 있는 기자들을 보았다.
“반갑습니다. 박현수라고 합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일단, 이번에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암전 현상과 지진은 제가 벌인 일입니다.”
…….
잠깐의 정적.
그리고.
“에에에?”
“저, 전화!”
“왜 안 받아?!”
“속보야, 속보!”
장내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박현수가 시작부터 폭탄 발언을 할 거라고 모두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뉴 월드 본부에서 가졌던 회담은 외부로 유출되지 않았기에 그의 성향을 아는 기자가 있을 리 만무했다.
“시작부터 크게 터트리는구나.”
“말 그대로, 이제 시작이에요.”
박현수는 그리 말하며 곧 닥쳐올 거대한 위기를 단 한 글자도 빠짐없이 마이크를 통해 기자들에게 전달했다.
그 뒤에 펼쳐진 상황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 * *
전 세계가 박현수의 기사로 도배되었다.
피난 가던 사람들은 기사를 접하고 얼떨떨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갔다.
물론, 그런 이들보다 화를 내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러나 욕한다고 달라질 상황도 아니었고, 상대가 지구의 영웅인 박현수였기에 큰 뜻이 있었을 거라며 스스로 위로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결과적으로 현 사태는 하루도 가지 않아 종식되었다.
그러나 전 세계를 강타한 충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하나의 언어만 다른, 똑같은 내용의 헤드라인을 읽었다.
「대전쟁까지 앞으로 5개월!」
차윤은 앞치마를 입은 채로 기사를 읽고 있었다.
“현수 오빠…….”
그녀 역시 갑작스러운 이상 현상에 가게를 버리고 동생들과 도망쳐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다.
그런데 박현수가 벌인 일이란다.
다행이었다.
……라고 생각하던 차에 두 번째 폭탄이 터졌다.
“5개월 후에 대전쟁이라니.”
지구의 영웅이라 불리는 박현수의 말이니 확실할 것이다.
그녀는 신문을 내려놓고 조용한 고개를 둘러봤다.
전쟁이 나면 어디로 가야 할까?
안전한 곳이 있기나 할까?
포탈 임팩트 때가 떠올랐다.
그때 부모님을 잃고 동생들과 고아가 되었다.
끔찍한 기억이었고,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다.
‘……대전쟁은 그보다 더하겠지.’
기사 내용을 읽어보니 아마도 곧 다가올 전쟁에 의해 인류의 미래가 결정되는 모양이었다.
끝이 멀지 않았다.
“왜 혼자 울적하게 있어?”
“어?”
차윤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언제 왔는지 박현태가 피곤한 얼굴로 서 있었다.
“내가 온 것도 모르고.”
“언제 왔어? 그보다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그러게. 오랜만이네.”
마지막으로 차윤의 식당에 온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마 형이랑 같이 온 게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그냥 일이 바빴어.”
차윤에게 각성자가 됐단 얘기를 하지 않았다.
걱정을 끼치고 싶진 않았다.
2년 동안 자신의 뒷바라지를 했으니, 이젠 편하게 살 때도 됐다.
“오빠 기사 봤어?”
“봤지.”
박현태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곳에 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반드시 할 말이 있다.
“사실이야. 그 기사.”
“역시 그렇겠지……. 우린 어째야 해?”
‘그걸 나한테 물어봐야…….’
차마 그렇게 대답할 수 없었다.
박현태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괜찮을 거야.”
“인류의 존망이 걸린 대전쟁이라는데, 괜찮을 수 없지 않을까?”
“괜찮을 거야. 괜찮게 만들 거야.”
“오빠?”
차윤은 그제야 박현태의 분위기가 이전과 많이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는데. 배고프면 라면이라도 끓여 올게.”
“윤아.”
차윤이 막 일어나는데 박현태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어?”
평소에 이런 행동을 한 번도 한 적 없는 박현태였다.
차윤은 당황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박현태는 아무 말 없이 그녀 얼굴을 보았다.
“왜, 왜 그래?”
그렇게 물어봤지만, 박현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빤히 그녀를 보더니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을 살짝 벌렸다.
하지만 결국 말은 나오지 않았고, 붙잡았던 손목을 조심스럽게 놓았다.
“끄, 끓여 올게.”
차윤이 막 주방에 들어가려는 순간.
“윤아.”
“……응?”
“내가 살아남으면, 있잖아.”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내가 살아남는다면.”
박현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윤은 왠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가 말한다.
“나랑 같이 살래?”
“어? 그, 그게 무슨 소리야? 같이 살자는 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차윤.
그녀는 박현태가 하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살아남는다는 건 대전쟁 이후를 말하는 것 같은데, 마치 전장에 나가기 전 병사 같은 얼굴이었다.
“오빠가 위험할 게 뭐가 있어. 오빤 헌터가 아니잖아.”
자신보다야 협회에서 일하는 박현태가 위험하겠지만, 경력도 얼마 안 된 사람 사람을, 그것도 각성자가 아닌 사람을 전방에 내보낼 리 없었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
“말을…… 설마.”
차윤은 쓰게 웃는 박현태를 보며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니지?”
“미안해.”
“장난하지 마. 오빠가…… 각성자가 됐다고?”
예전에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눈 적 있었다.
오빠는 각성하더라도 모른 척 굴라고.
괜히 위험한 곳에 가서 호된 꼴 당하는 것보다 숨어 사는 게 낫다고.
그래서 알겠다고.
윤이 말대로 살겠다고.
그런 대화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때 나눴던 대화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지, 지금이라도 모른 척해. 현수 오빠가 힘쓰면 그런 건 일도 아니잖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을 고르라면, 뉴 월드 의장인 아르망보다 박현수가 꼽힐 것이다.
그도 그럴 게, 그는 지구의 영웅이면서 지구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2년 동안 의식 불명으로 지내고, 또 2년을 가족 없이 혼자 견뎌온 동생을 매정하게 전장을 내보내지 않으리라.
“그럴 수 없어.”
“오빠가 뭘 할 수 있다고! 아직 재활도 완벽하게 끝난 게 아니잖아.”
차윤도 알고 있다.
지금 하는 말이 모두 개소리란 걸.
각성자가 된 시점부터 나약한 몸은 초인 수준으로 격상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소심하고, 또 남 눈치도 많이 보는 사람이 무슨 전쟁이야, 전쟁은. 나랑 같이 있어. 괜찮으니까. 현수 오빠한테 말하면 다 괜찮을 테니까.”
박현태도 더는 그녀가 알던 약자가 아니다.
소심하고, 눈치를 볼지언정 책임감을 져버리고 뒤로 내뺄 성격이 아니다.
차윤도 알고 있다.
“웃기지 마. 현수 오빠는 처음부터 강했으니까. 처음부터 영웅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괜찮아. 근데 오빠는, 오빠는…….”
“윤아.”
“이 멍청아!”
“내가 돌아오면 그때 같이 살자.”
박현태는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내가 없으면 안 돼.”
“안 되긴 뭐가 안 돼……. 흐윽…….”
차윤은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펑펑 흘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박현태는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5개월 후.
모든 게 끝이 난다.
과연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래서 윤이에게 다시 올 수 있을까?
“다녀올게.”
“이 멍청이……. 흐윽…….”
박현태는 식당을 빠져나왔다.
‘하고 싶은 말은 했어.’
차윤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녀는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또 걱정해 주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왠지 매일 자신을 괴롭히던 번뇌가 더는 찾아오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곧 4차 웨이브가 시작된다.
“5개월.”
모든 웨이브를 마치고 형에게 갈 것이다.
이곳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당당하게 차윤 앞에 서기 위해서.
* * *
4차 몬스터 웨이브 당일이 되었다.
오늘은 어쩐지 하늘에 먹구름이 자욱하고, 찬 바람이 유독 뼈를 시린 추위였다.
“4단계는 A급 헌터 셋 이상이 뭉쳐야 한 마리를 사냥할 수 있는 난이도……. 제정신이 아니야.”
“오늘 죽겠네.”
“시발! 죽긴 누가 죽어?! 우린 전부 살아서 돌아갈 거야. 5개월 후, 대전쟁에서도 우린 살아남을 거야. 반드시.”
박현수에 의해 인류의 운명이 고작 5개월밖에 남지 않았단 사실이 알려지며, 사람들 대부분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4차 몬스터 웨이브가 펼쳐지는 열 곳의 게이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실을 모르던 때와 달리 지금은 헌터들이 어떻게든 재각성을 성공하기 위해 각오를 다졌다.
“우린 살아남는다.”
“그래. 까짓거 살아 보자.”
“살면 좋긴 하겠네.”
헌터들이 준비를 끝냈다.
게이트에서 불길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