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52
훈수 두는 천마님 149편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삐걱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광활하게 펼쳐진 우주의 별빛이 어느 한 점에 모여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곳엔 칠흑 같은 흑발이 몸을 덮은 나체의 여인이 웅크리고 있었다.
“완성되었군.”
더 블랙은 뒷짐을 지고 거대한 유리관 액체 속에서 자고 있는 새로운 퀸을 보았다.
새로운 퀸은 순조롭게 별빛의 힘을 흡수하고 있었다.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군.”
레이지는 우묵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박현수의 흔적을 긁어모아 만들었다고 했나?
‘과연’이라 할 만했다.
“이 개체는 제약이 없는 거겠죠?”
“그렇다.”
대답은 킹이 했다.
그는 뽀글뽀글 올라가는 기포를 보다가 몸을 휙 돌렸다.
검은 털 망토가 펄럭 소리를 냈다.
“하지만 내려보내진 않을 것이다.”
“그게 맞긴 하지.”
레이지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괜히 내려보냈다가, 또 박현수한테 당하기라도 했다가는…….”
“박현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다들 느꼈죠?”
박현수가 자신의 힘을 표출하던 날, 당연히 네 기수도 그것을 느꼈다.
전율적인 힘이었다.
레이지는 당장이라도 내려가서 싸워야겠다며 난동까지 부렸다.
“그는 확실히 저보단 강합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바이스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힘을 회복해도 박현수는 이길 수 없다.
그리고 그녀가 보건대 이곳에서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존재는 단 한 명뿐이었다.
“킹. 당신밖에 없어요.”
네 기수의 리더는 언뜻 보기엔 더 블랙 같았지만, 실제로 모든 걸 주도하는 이는 킹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가장 강하고, 가장 똑똑하니까.
“어이, 바이스! 날 못 믿는 거야?”
레이지가 한쪽 얼굴을 과장된 게 찡그리며 물었다.
바이스는 그를 쳐다도 안 보고 확답했다.
“당신의 힘으론 절대 안 돼요. 냉정하게 얘기해서 힘을 회복해도 저희 둘로는 박현수를 못 잡아요.”
“바이스가 옳은 얘기를 하는군.”
“이 영감이?”
더 블랙은 뒷짐을 진 채 유리관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그게 전력이란 보장도 없지 않나?”
“끄응.”
박현수가 표출한 힘은 막대했지만, 과연 그가 생각 없이 전력을 냈을까?
더 블랙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킹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게 보여 주기 위한 쇼라면, 절대 전력일 리가 없다.”
“쳇. 이럴 땐 동지를 챙겨 주면 어디 덧나오?”
레이지가 투덜거렸지만, 위로해 주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전 이만 나가 보겠어요.”
바이스는 이곳에 더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밖으로 나오니 그녀의 기사가 다가왔다.
“얘기는 끝나셨습니까?”
“네, 돌아가죠.”
퀸의 상태를 확인했고, 다른 기수들의 박현수에 대한 감상을 확인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다들 사탄님의 얘기는 왜 하지 않는 걸까요.’
목소리를 들었다면 더 블랙이든, 레이지든, 말이 많은 자들이 먼저 얘기를 꺼냈을 것이다.
특히 레이지라면 신나서 떠들었을 것이다.
사탄을 특히 잘 따랐으니까.
한데도 말이 없는 걸 보면, 목소리를 못 들었을 가능성이 컸다.
‘킹은.’
그가 못 들었을 리 없다.
의중이 무엇인가.
바이스는 머리가 복잡함을 느꼈다.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뭔지 모르겠어요.’
고민해 봐야 답은 나오진 않는다.
“그러고 보니 인간들 그 몬스터랑 싸우는 훈련 말입니다.”
“아, 오늘인가요?”
벌써 세 차례 진행됐고, 곧 다음 차례가 온다는 건 알고 있었다.
저번 차례에서 인간 기준으로 S급에 달하는 각성자가 둘이나 탄생했다.
“끝났습니다.”
“벌써 말인가요?”
“네. 그 결과로 이번에 인간 중에서…….”
* * *
4단계 몬스터 웨이브부터는 S급 헌터도 참전한다.
특이점을 제외하면 S급은 총 열 명.
게이트별 한 명씩 배정되었다.
하유락은 동남아시아 쪽인 5번 게이트 담당이었다.
“언니, 괜찮겠어요?”
“넌 괜찮니?”
“하하…….”
이민아는 초췌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그녀는 이번이 벌써 네 번째였다.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하유락은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곤 가장 앞으로 걸어 나갔다.
“오, 하유락 협회장님이시다.”
“대한민국의 암사자……!”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군.”
한국 헌터부터 다양한 국가의 헌터들까지.
모두 경외심 가득한 눈으로 하유락을 보았다.
그들에게 S급 헌터는 지고한 존재였으며, 총 전력의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 인간 병기였다.
그런 존재가 가장 앞에 섰다.
“A급 헌터 세 명이 붙어야 한 마리 간신히 사냥 가능한 몬스터가 총 50마리.”
숫자만 보면 별것 없어 보이지만, 숱한 경험을 가진 하유락은 알고 있다.
2마리는 단순히 1+1이 아니라는 걸.
A급 헌터 넷이 모여도 2마리를 잡아내진 못한다.
그런 것이 50마리라면, 하유락이 이 자리에 있어도 절대 만만한 게 아니었다.
“언니가 강한 건 알지만 조심하세요. 절대 쉬운 게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
게이트가 불길한 빛을 내뿜었다.
곧 전투가 시작되리란 걸 알 수 있었다.
“전투 대기!”
“전투 대기!”
지휘관들의 목소리가 조용한 전장에 넓게 퍼졌다.
5번 게이트는 다른 게이트보다 성적이 좋은 편이었다.
이유는 지휘 체계가 확실하게 잡혀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 협회 작전기획팀의 활약이었다.
‘그렇다고 방심할 수 없어.’
5번 게이트의 성적이 제일 좋다고 해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유락은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길게 내뱉었다.
‘내가 할 일은 명확해.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게 한다.’
아무리 4단계 난이도가 어렵다고 해도, S급이 하나라도 끼면 밸런스가 꽤 기울게 된다.
그리고 하유락은 S급 중에서도 강한 축에 속했다.
그러니 다른 각성자들의 성장 발판을 놔둔 채 사망자가 속출하지 않도록 전장을 관리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다.
“나와요!”
이민아의 다급한 외침과 동시에 게이트에서 거대한 몬스터들이 이곳으로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하유락의 전신이 불길에 휩싸였다.
그리고 드높은 상공에서 두 사람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네 여자친구다.”
“시끄러워.”
박현수는 팔짱을 낀 채 무감정한 얼굴로 전장을 보고 있었다.
하유락은 불길을 다섯 개로 나눠 땅에 그었다.
몬스터들을 분산시키기 위함이었다.
한곳으로 뭉치면 헌터들에게 큰 피해가 갈 게 분명하니까.
‘좋은 선택이에요.’
4단계부터 S급을 포진시킨 이유는 그들을 성장시키기 위함이 아니었다.
애초에 4단계 전력으로는 S급이 포함된 이상 극적인 상황이 연출되지 않는다.
S급은 최대한 사망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다른 헌터들을 서포트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물론, 모두가 하유락 같은 건 아니었다.
특히나 새로 S급에 합류한 페링클 로치.
“저 녀석은 진짜 제대로 미쳤는데?”
카본은 그녀가 웃긴 지, 크큭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페링클은 현재 최전선에서 미친 듯이 벼락을 뿌려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얼굴을 붉히며, 쾌락에 젖은 듯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피아식별을 똑바로 하라고 했는데.”
그녀의 번개는 적도 아군도 없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적 쪽을 노리려고 애쓰긴 하는 모양이었다.
“카본 저 여자 번개가 애꿎은 사람 맞지 않도록 해 줘.”
“귀찮게.”
말은 그렇게 해도 츤데레처럼 해 줄 건 다 해 주는 카본이었다.
그는 마법진 두 개를 연성해 그녀의 번개가 아군 헌터에게 도달하지 못하는 술식을 전개했다.
“마법은 정말 편리하단 말이지.”
“너도 배워 보라니까? 마나의 사랑은 넘치도록 받는 녀석이 대체 왜 마법을 안 배우는 거야?”
“본질을 잃어선 안 돼.”
“그놈의 본질, 본질. 귀에 딱지가 붙겠다.”
카본도 그 말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마법 좀 익힌다고 무공이란 본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박현수에겐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럴 거면 보조 마법도 배우지 말던가.”
“그건 내 전투관에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않잖아.”
“쓰기 나름이지.”
“닥쳐.”
“할 말 없으면 맨날 닥치래.”
카본은 툴툴대며 다시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S급이 제대로 나서지 않는 곳은 저번보다 빡세 보이긴 하네.”
“그렇겠지.”
하유락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처럼 굴면서 실제론 요란한 기술만 사용할 뿐이었다.
박현수는 염동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투석기처럼 돌을 집어 던지는 이민아를 보았다.
A급이지만, S급에 한없이 가까운 그녀였지만, 상당히 지친 얼굴이었다.
마치 이곳에 더 있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계속해서 능력을 사용하고 있다.
“반 발짝 남았어요.”
“뭐?”
“아냐.”
뜬금없는 박현수의 중얼거림에 카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이민아는 지쳐서 쓰러질 것 같았다.
힘을 전부 소진한 건 아니었다.
그냥 피로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느낌이다.
왜 이곳에서 이래야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5개월 후에 대전쟁이 시작되니 그전까지 강해져야 하니까?
만약 그렇다면 너무 끔찍한 현실이 아닐까?
‘울고 싶어.’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한다.
외롭게, 쓸쓸히.
그녀는 죽은 눈으로 기계처럼 능력을 사용했다.
달려오는 몬스터에게 염동탄을 쏜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쐈다.
하늘에선 하유락이 불을 뿜으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도 언니처럼.’
언니처럼 될 수 있긴 한가?
저번 웨이브에서 두 명의 S급이 탄생했다고 들었다.
난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정신적인 피로가 이만큼 쌓였는데.
괴로운데.
‘난 어째서, 왜?’
딱히 S급이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이런데도 난 선택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혐오스럽다.
이민아는 쓸쓸히 웃었다.
시끄러운 전장 속에서 그녀는 외롭게 서 있었다.
그때였다.
“민아야!”
하늘에서 하유락의 외침이 들렸다.
그러나, 소리는 전장의 소음에 묻혀 버렸다.
그냥 누군가 자신을 부른 것 같단 생각만 들 뿐이었다.
콰가가가가가가-!!!!
옆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듯이 커져 갔다.
이민아는 기계처럼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크와아아아아아!!!!!!!!!!!!”
비슷한 동물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엄청나게 큰 몬스터였다.
헌터들을 짓밟고, 밀어내며 몰려오는 그것은 자신보다 수십 배는 거대했다.
“아.”
“민아야!!”
그제야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이미 늦은 게 아닐까?
이민아는 앞으로 손을 들어 염동력을 사용했다.
거체가 녹색빛으로 물들었지만, 돌진은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A급 헌터 둘이면 사냥할 수 있다면서.
A급 두 명분의 힘을 가진 자신은 왜 한 마리도 막지 못하는가.
“거기 서!!”
하유락의 손에서 시퍼런 화염의 창이 몬스터를 향해 쏘아졌다.
푸른 궤적이 광선처럼 허공에 그어졌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화염의 창보다 몬스터가 이민아를 밟고 지나가는 게 빨라 보였다.
‘안 돼.’
하유락의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몬스터들에게서 헌터들이 죽는 걸 막겠다고 다짐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아아아아아아아악!!!”
하유락이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현수 씨.”
이민아는 왠지 박현수가 자신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건 무슨 감각일까?
아니, 감각이 어떻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아아.”
이대로 죽을 수 없단 사실 하나뿐.
콰아아아아아――――――!!!
눈부신 녹색 빛이 그녀에게서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하유락은 덮쳐 오는 빛을 양팔로 가로막았다.
그러나, 빛은 그녀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았다.
그러긴커녕 온몸이 따뜻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설마.’
이 빛.
이민아가 분명하다.
그렇다는 것은……!
“크어어어어!”
거대한 몬스터가 허공에서 발버둥 쳤다.
비단, 그 몬스터만이 아니었다.
인근에 있던 몬스터가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이민아가 홀로 서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현수 씨, 고마워요.”
무엇이 고마운지는 모르겠다.
그녀는 온몸에 넘치는 활력을 느끼며 전장을 휩쓸었다.
그날, 모든 게이트를 통틀어 총 6명의 S급 헌터가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