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54
훈수 두는 천마님 151편
마지막, 5차 몬스터 웨이브 당일이 되었다.
S급 헌터가 한자리에 모였다.
그 수가 총 열일곱이었다.
과거엔 상상도 못한 수치.
협회의 의장인 아르망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들을 보았다.
“다들 사전에 인사는 했겠지?”
4차 웨이브가 끝나고 이틀 후, S급 헌터만을 위한 자리가 만들어졌다.
모두가 초췌한 상태였기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안면을 익히기엔 충분한 자리였다.
“네, 뭐.”
‘장’이란 이름의 흑인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벽에 비스듬히 기댄 그는 그다지 의욕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표정이 괜찮은 이는 몇 명 되지 않았다.
“다들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로군.”
“없으면 그게 말이 안 되지.”
총대는 자기가 메겠다는 듯, 장이 연이어 대꾸했다.
“몇 명이나 죽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 말에 대부분 싸늘한 시선이 되었다.
아르망은 그 시선이 심란했지만, 이미 마음먹지 않았던가.
“이런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있지.”
“그게 뭐죠?”
“대를 위한 소의 희생.”
“그걸 말이라고!”
머리를 보라색으로 염색한 여자가 아르망에게 달려들려는 걸 주변 사람이 간신히 붙잡았다.
‘세턴’이란 이름의 여자는 호랑이처럼 흉포한 눈을 부릅뜬 채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너흰 박현수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나?”
박현수를 언급하자 모두가 움찔했다.
그들 역시 그날의 속보를 보고 들었기에 알고 있었다.
5개월 후 군세에서 본격적인 침공을 시작할 거라고.
그때가 되면 인류는 살아남든지, 멸망하든지 선택하게 될 거라고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래, 아무리 그래도 잔인한 건 알고 있다. 충분히 감수할 생각이었고.”
“감수한 건 당신네가 아니라 우리 같은 아랫사람이잖아!”
“맞아! 내 동료가…… 친구가! 몇 명이나 죽어 나갔는지 알고 있어?!”
“당신이 그 분노를 알아?”
이번에 재각성한 자들은 특히 분노하고 있었다.
너무 끔찍한 일을 겪었다.
3차 때도 그랬지만, 4차는 아비규환이었다.
S급 헌터들이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그들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논리는 잘못되었다.
“우리가 그 분노를 모른다고 생각해?”
입을 연 건 하유락이었다.
그녀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어이.”
뒤에서 타케시가 불러세웠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아르망 옆에 섰다.
“여기서 포탈 임팩트가 벌어졌을 때 각성한 자가 있나? 있으면 손들어 봐.”
아무도 손들지 않았다.
“그럼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고, 얼마나 많은 헌터가 희생되었는지 자세히 아는 사람이 있나?”
이번에도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왜 저러냐는 시선으로 그녀를 볼 뿐이었다.
“총 사천이백칠십팔만여 명이 사망했다. 모두 각성자였다.”
고작해야 5년 언저리 되었을 뿐이다.
지옥이었다.
그땐 누구도 희망을 품지 못했다.
희생이란 고귀한 것은 누구도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개죽음당하지만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우리가 분노를 몰라? 슬픔을 몰라?”
하유락은 기가 찼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각성하기 전부터 S급이었던 자들은 누구보다 가슴 깊은 상처가 있었다.
“함께 지내온 친한 동료가 다음 날 사라졌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매일매일 한 명씩, 두 명씩, 열 명씩, 어느 날은 백 명이.”
정신을 차릴 때마다 옆이 하나둘 비어가던 그 끔찍했던 시절.
“너희가 겪은 슬픔을 낮출 생각은 없어. 하지만 지금의 감정으로 우리를 깎아내리려고는 하지 마.”
하유락의 말이 끝나자, 항의하던 목소리도 침묵했다.
아르망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동료를 잃은 슬픔, 우리가 모르는 건 아니야. 유락이 말대로 우리 역시 많은 걸 잃어 봤으니까.”
“그렇지만, 우린…….”
“그래. 너희에겐 우리가 자신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괴물처럼 보이겠지.”
몬스터 웨이브는 간부진 사이에서도 여러 말이 오갈 정도로 문제가 많은 훈련이었다.
아니, 사실은 훈련이 아니었다.
박현수가 말하길 몬스터 웨이브는 목숨을 건 실전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인원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
하지만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강해졌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절대 좋은 말은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세상이란 건 잔혹한 법이지. 그들의 희생에 너희가 분노하고,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면 과연 5개월 후 인류는 어떻게 될까?”
“우리가 S급으로 각성했다고 승리하리란 보장은 없잖습니까.”
장도 머리론 알지만, 가슴으론 도저히 받아드릴 수 없었다.
“우리가 실패하면 결국 개죽음 아니냐구요…….”
그는 무릎을 꿇으며 흐느꼈다.
옆에 있던 사람이 그를 다독여 주었다.
“패배하면 그걸로 끝.”
그때였다.
조용히 구석에 앉아 있던 학센이 입을 열었다.
“복잡할 필요가 있나? 모 아니면 도다. 앞서 죽은 자들? 승리하면 그들은 인류의 발판이 된 것이고, 패배하면 그들이건 우리건, 결국 죽는 건 똑같다.”
학센은 자리에서 일어나 장 앞에 섰다.
그는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 품고 있는 감정은 당장은 무의미하다. 누군가를 위해 슬퍼하는 것, 분노하는 것 전부 당장 우리가 살아남은 뒤에 하면 되는 거야.”
“하지만.”
“왜 자꾸 부정하려고 하는 거지?”
학센은 2년 동안 온갖 잡념에 집어 삼켜져 지냈다.
많은 번뇌가 있었고, 삶을 포기하며 포탈을 전전하던 시절만 해도 불과 얼마 전이었다.
그러다 결국 이곳에 돌아왔다.
“나는 많은 걸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다면 ‘의미’란 무엇일까.
학센은 박현수가 떠나기 전에 해 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살아남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자. 생각은 그다음 평화가 찾아온 뒤에 하는 거다.”
살아남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의미가 아니겠는가.
* * *
하유락은 옆에 선 이민아를 보며 미소 지었다.
“너랑 이렇게 나란히 서게 되는구나.”
“저번 웨이브 때도 같이 나란히 서긴 했거든요.”
“그땐 급이 다르긴 했잖니.”
“이런 상황에 농담이 나와요?”
이민아가 한쪽 눈을 찡그리자, 하유락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풉. 푸흐흐흐!”
“하하하!”
그러자, 이민아도 참지 못하고 웃기 시작했다.
심각한 분위기가 흐르는 전장에 두 여인의 웃음은 집중 받기에 충분했다.
둘은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둘의 웃음 덕분에 전장의 분위기가 조금이지만 완화되었다.
정작 그녀들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시작된다.”
하유락이 말했다.
게이트에서 불길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광경은 이미 익숙했다.
“떨려요?”
“조금.”
지금까지의 웨이브와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였다.
“가자.”
“네.”
게이트에서 열 마리의 몬스터가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왔다.
하유락과 이민아는 놈들이 나옴과 동시에 앞으로 몸을 날렸다.
마지막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었다!
* * *
“하나하나가 S급 포탈 정도는 감당할 그릇들이로군.”
아이작은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프리카에서 2년 동안 지낸 만큼, 꽤 많은 S급 포탈이 그의 손에 공략되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도저히 좋은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S급 포탈의 주인쯤 되면 단순히 강하기만 한 게 아니다.
모두가 특별한 능력이 하나씩은 있었다.
“그런 게 열 마리라.”
심지어 순차적으로도 아니고, 동시에 등장했다.
“엄청나게 죽어 나가겠군.”
S급들이 포진해 있다지만, 역으로 S급이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30퍼센트 이상이 죽으면 나서라고 했는데, 금방 나서야 할 것 같은데?]“지켜보면 알겠지.”
수가 늘어난 건 S급만이 아니었다.
A급도 웨이브 이전과 비교하면 세 배 이상 증가했고, C급 이상은 최소 열 배 이상 증가했다.
전력 자체가 다르다.
어쩌면 자신이 나설 것도 없이 마무리될 가능성도 있었다.
아이작은 허공에 정좌를 한 채 지상을 내려다봤다.
전투는 언뜻 보기엔 몬스터가 헌터들을 학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인간 측에선 사망자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여러 전략을 통해 몬스터들을 밀어붙였다.
“육참골단이라. 괜찮군.”
헌터들은 상대와 자신들의 전력 차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사용했다.
바로 육참골단이다.
피해를 최소화하며 몬스터에게 공격을 가한다.
치명타가 되지 않더라도, 피해가 누적되면 아무리 강한 존재라도 쓰러지기 마련.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오랜, 오랜만에 피 맛을 좀 보고 싶다구!]마검은 우주선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피를 한 번도 마시지 못했다.
한데, 저 아래선 쉴 새 없이 피가 흘러내려 벌써 웅덩이를 이룰 지경이었다.
피 금단증상이 와도 진즉에 온 마검에겐 도저히 참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그러나 아이작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왜애애애! 너도 피가 고프잖아!]“난 안 고프다.”
심검에 도달하고부터 거짓말처럼 피를 갈구하지 않게 되었다.
그전까진 마검처럼 일정량의 피가 없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떼를 써도 안……!”
아이작이 단호하게 말하려는 데, 멀지 않은 곳에서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그를 덮쳐왔다.
666
사악하고도, 불길하기 짝이 없는 숫자가 눈에 보인 것은 착각일까?
‘착각일 리가.’
아이작은 마검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그는 한 치의 고민 없이 심검을 꺼냈다.
그리곤 존재감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가차 없이 휘둘렀다.
한데,
끼이이익-!!!
누군가 칠판을 사정없이 긁는 소리가 나는 것은 어째서일까?
마음이 닿는 곳이라면 반드시 도달하는 칼날일 터였다.
“……닿지 않았다.”
[심상치 않아. 도망쳐야 해, 파트너.]답지 않게 마검이 진중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도망을 친다?
‘도망칠 수 있는 거냐?’
아이작은 가부좌를 풀었다.
가까워져 온다.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아른거리는 ‘666’이라는 존재감이.
“도망치지 않은 것에 칭찬하마.”
세상의 모든 악이 한데 뭉친 듯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아이작의 가슴에 한 자루의 검이 세워졌다.
세상이 넓어진다.
드넓은 수평선이 한눈에 떨어졌다.
하늘 역시 마찬가지.
보지 않음에도 모든 게 보인다.
그것이 바로.
心(마음).
[심검 – 변형]마검이 동그란 궤적을 그렸고, 검극이 하늘을 향했다.
세계를 보는 마음이 노리는 것은 단 하나.
푸욱-!!
무형의 기가 허공을 꿰뚫었다.
그리고 아이작의 눈이 떠졌다.
“하잘것없도다.”
거대한 황금색 왕관이 눈에 들어온다.
다음 보이는 것은 기괴하게 뒤엉킨 듯한 짐승의 머리.
한없이 거대한 네발짐승의 몸통.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왕관 위로 솟구친 붉은색 뿔.
“용기가 가상하여 고통 없이 보내 주리니.”
[파트너!!!!!!!!!]아이작의 몸이 찢어발겨진다.
“다음 생엔 태어나지 말라.”
의식이 푹- 꺼졌…….
……
“뭔가 했더니.”
검은 것이 뿔을 움켜쥐었다.
흩어지던 아이작의 육신이 다시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검은 것은 귀화를 풀풀 흘리며 짐승을 내려보았다.
“너는 뭐냐?”
“……그렇군. 지상에서 날뛰는 강자가 너로구나?”
“지상? 아아.”
검은 것이 미소 지었다.
몸을 덮은 어둠, 흑강기가 퍽- 하고 꺼졌다.
박현수가 씩 웃으며 말했다.
“조용한 곳으로 가자.”
둘의 신형이 휙 하고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