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6
훈수 두는 천마님 15편
차윤은 천천히 눈을 떴다.
맑게 갠 하늘이 보였다.
고개를 돌리자 그와 상반되는 처참한 광경이 보였다.
다 무너진 건물들과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차들.
그리고 아스팔트 도로 위로 흥건한 물웅덩이와 그 위에 기괴한 자세로 누워 있는 시체들까지.
‘꿈이 아니었어.’
차윤은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쓰나미를 보는 것 같은 급류가 도시를 덮쳤다.
엄청난 속도였고,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었다.
그녀는 최대한 몸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달렸다.
그곳이 이 건물 앞이었고, 바로 옆에 툭 튀어나온 건물 외벽을 붕괴시키며 나타난 물 폭탄에 그대로 얻어맞았다.
그 이후부턴 기억이 없었다.
차윤은 멍하니 있다가 집에 있을 동생들이 떠올랐다.
“내, 내 동생들…… 으윽!”
그녀는 다급하게 일어나려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본인은 모르지만, 물보라에 휩쓸린 건물 벽에 그대로 처박혔다가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가뜩이나 제대로 먹지 못해 허약한 몸이었다.
뼈 몇 개가 박살 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이전에 살아 있는 게 기적이었다.
“동생들…… 내 동생들한테 가야 하는데.”
차윤은 울먹이며 바둥거렸다.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가 원망스러웠다.
지금도 공포에 떨며 누나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배도 고플 텐데…… 누나가 가야 밥 먹을 텐데…….”
차윤은 동생들이 죽었을 거란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방어였다.
만약에라도 동생들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면, 그녀는 절대 버틸 수 없을 것이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체 수습은 나중이다. 최대한 빨리 생존자를 찾도록!”
“네!”
한두 명이 아닌지 많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차윤은 다급하게 외쳤다.
“여기요! 여기 살아 있어요! 이쪽…… 윽!”
목소리를 높이자 흉부가 아파 왔다.
아무래도 갈비뼈가 부러지며 흉부를 찌른 모양이었다.
다행히 목소리는 사람들에게 닿았다.
“저쪽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어!”
“다시 한번 말해 주십시오!”
“여기요! 여기에 있어요!”
“찾았다!”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 두 명의 남자가 급하게 달려왔다.
“움직일 수 있습니까?”
“아, 아뇨.”
“들것 준비해.”
“넵!”
부하로 보이는 남자가 급히 챙겨 온 들것을 조립해 바닥에 내려놨다.
두 사람이 조심히 차윤을 들것에 실었다.
차윤은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지금 아픈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제, 제 동생들이 살아 있어요.”
“어디입니까?”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인데…….”
차윤은 자신의 집 주소를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얘기를 듣던 구조대원들은 심각한 얼굴로 서로를 보다가 다시 차윤을 보았다.
“……알겠습니다. 빠르게 대원을 출동시키겠습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맙습니다!”
안심한 차윤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감사를 표했다.
구조대원들은 씁쓸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차윤은 그들의 눈빛을 보지 못했다.
* * *
꿈을 꾸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아른거렸다.
그 빛이 정확히 뭔진 모르지만, 왠지 따라가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어둠 속을 걸었다.
빛은 가까워졌지만, 그만큼 멀어졌다.
손이 닿을 것 같으면 반 뼘만큼 뒤로 물러났다.
아직 내겐 자격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빛은 나의 손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눈을 떴다.
* * *
낯선 천장이었다.
주변을 보니 아무래도 병실처럼 보였다.
박현수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비명을 질렀다.
“으악!”
누가 전신에 칼을 꽂아 넣은 것 같은 통증에 그대로 다시 드러누웠다.
[쯧쯧.]그때, 옆에서 익숙한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박현수는 고통에 찡그린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천경이 허공에 가부좌를 튼 채 자신을 한심하게 내려보고 있었다.
“스, 스승님. 계셨습니까?”
[그래. 스승님 여기 계시다.]“어떻게 된 겁니까?”
박현수의 물음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천경은 웃긴 놈을 본다는 듯 픽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러니까, 그걸 물어본 거잖아요.”
[그러니까 물어볼 게 뭐가 있냐 이 말이다. 본좌가 말하지 않았더냐. 후폭풍을 견뎌야 하는 건 오로지 너의 몫이라고.]천경은 박현수의 힘을 강제적으로 끌어냈다.
그 덕에 일시적으로 천마지체를 손에 넣었지만, 강제로 성장한 그의 육체는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의 힘의 반동을 견디지 못했다.
박현수는 잠깐이나마 손에 넣었던 커다란 힘을 떠올렸다.
그때만큼은 세상에 적수 따윈 없다고 생각들 정도로 광오한 기분을 느꼈다.
한데, 기억이 흐릿했다.
뱀을 맨손으로 쳐죽인 건 기억나지만, 기억을 되새겨 봐도 어떻게 죽였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나, 나는 어떻게 뱀을 죽인 거지?”
박현수는 혼란스러웠다.
천마지체란 걸 각성하며 엄청난 힘을 손에 넣은 건 분명했다.
그다음 분명…….
“종파……. 종파가 뭐였지?”
그렇게 외쳤던 것 같다.
천경은 박현수가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스승님.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뭔가 잊힌 것처럼 답답한 게…… 종파가 뭔지 아십니까?”
[파천마권 제1식 종파. 네가 뱀이 쏘아낸 물줄기를 꿰뚫는 데 사용한 초식이다.]설명을 듣자,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여전히 흐릿하긴 했지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쉽게 말해, 너는 천마지체가 되며 천마신공에 대대로 이어져 온 무공의 기억을 습득했다. 하지만 천마지체가 풀리며 그 반동으로 습득한 기억을 대부분 날렸다는 말이다.]“잠깐, 잠깐. 천마신공에 대대로 이어져 온 무공의 기억이라고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해서 너한테 말할 생각은 없었지만, 기억이 모두 날아간 것도 아니고 흐릿하게나마 남았다면 자격은 충분하겠지.]의미심장한 스승의 말에 제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천경은 문득 뻣뻣하게 굳은 것처럼 누워 있는 제자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농담 따먹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름 진지한 얘기를 하려는데 분위기가 안 산다.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본교의 중대한 비밀을 후인에게 전해야 하는 상황인데, 격식 하나 없이 일어나지도 못하는 제자에게 설명하는 게 맞냐, 이 말이다.]“그래서 말씀 안 하시려고요?”
[그런 건 아니다만, 뭔가. 참. 본좌는 천마신교라는 무림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의 수장이었는데, 첫 번째 제자란 놈이 이토록 한심한 줄은 몰랐다.]“아니, 그 얘기가 갑자기 왜 나옵니까? 제가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닌데.”
[말은 똑바로 하자 제자야. 본좌는 분명 쉬라고 했다. 나댄 건 너란다.]“그, 그건 제 사냥감을 뺏기고 싶지 않아서.”
[그런 마음가짐은 좋다만. 됐다. 더 무슨 말을 하겠느냐. 그저 한풀이에 불과하거늘. 귀나 쫑긋 세우고 하는 말이나 잘 듣거라.]“아니, 그렇게 끝내면 제가 진짜 못난 제자 같잖……!”
그때, 누군가 문을 쾅! 하고 박차며 들어왔다.
“여, 슈퍼 루키!”
탐스러운 적색 머리카락과 여전한 복장의 하유락이었다.
그 뒤로 단아한 정장 차림의 이민아가 인상을 쓰며 따라 들어왔다.
“좀 조용히 들어가요! 여기 병원이에요, 병원.”
박현수는 뜬금없이 나타난 두 여인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 * *
이민아는 침대 옆에 얌전히 앉아 사과를 깎았다.
반면 하유락은 맞은편에 앉아 침대에 팔을 걸치고 턱에 꽃받침을 하고 있었다.
박현수는 심기 불편한 얼굴로 천장을 보고 있었다.
박현수는 스승에게 제발 조용히 좀 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양쪽에 사람이 있어 대답하지 못했다.
“사과 하나 드세요.”
이민아가 예쁘게 자른 사과를 박현수의 입에 갖다 댔다.
“잘 먹을게~”
그걸 하유락이 재빠르게 낚아채 제 입에 쏙 넣었다.
이민아가 혐오스러운 얼굴로 쏘아봤지만, 하유락은 모르는 척 사과를 씹을 뿐이었다.
그녀가 다시 사과를 입에 넣어 줬다.
문제가 있다면.
“우어어으으어어어!”
사과가 너무 컸다.
“아, 미, 미안해욧!”
이민아가 다급하게 사과를 꺼냈다.
박현수는 지금 목소리 말고는 꼼짝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큼지막한 사과로 입을 틀어막으면 어떻게 씹으라는 말인가?
“콜록콜록!”
“여, 여기 물.”
다급하게 뚜껑을 열어 박현수에 입에 물을 흘려 넣었다.
아니, 흘려 넣으려고 했다.
“푸확!”
“꺄악! 미, 미안해요!”
이번엔 물이 왕창 쏟아져 얼굴 전체를 적셨다.
눕고 있던 베개와 이불보도 함께 젖었다.
지켜보고 있던 하유락은 어이없는 눈으로 이민아를 보았고, 천경은 껄껄거리며 폭소했다.
“너 뭐 하니?”
“아, 아니 그게.”
박현수는 스승의 입을 주먹으로라도 틀어막고 싶었다.
“……닦아 주세요.”
“진짜 미안해요.”
이민아는 당황한 얼굴로 박현수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하아. 간호사 불러서 베개 좀 바꿔 달라고 해 주세요. 찝찝해서 못 누워 있겠으니까.”
“네네!”
“그대로 말만 하고 돌아가도 돼!”
“시끄러워욧!”
하유락의 말에 이민아가 빼액 소리쳤다.
이민아가 병실에서 나가자 박현수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니?”
“괜찮아 보여요?”
“아니.”
그러면서 큭큭 거리며 웃는 하유락.
“그래도 착한 아이야. 저런 걸 거의 안 해 봐서 서툴러서 그래, 서툴러서.”
“악의가 없다는 건 압니다.”
악의가 있었다면 사과를 깎아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 왜 찾아온 겁니까? 두 분이 같이.”
“할 말도 있고, 전해 줄 것도 있고 해서.”
“할 말이야 뻔할 테고, 전해 줄 게 있다고요?”
“녀석이 챙겨 왔으니 오면 물어봐.”
하유락은 미소를 지으며 문 쪽을 바라봤다.
곧 이민아와 간호사가 함께 들어왔다.
간호사는 박현수의 꼴을 보곤 두 여인에게 한소리하고, 베개를 바꿔 주었다.
하유락은 억울했지만, 그녀 역시 살짝 민폐를 끼쳤기에 항변할 수 없었다.
박현수는 다시 세 사람만 남자, 본론을 꺼냈다.
“저한테 줄 게 있다고요?”
“아, 언니가 미리 말했나 보군요.”
이민아가 째려보자, 하유락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저희가 드리는 선물 같은 건 아니고요. 전리품이에요.”
“전리품?”
“네. 현수 씨가 쓰러트린 거대 몬스터에게서 나온 전리품.”
그녀는 두꺼운 헝겊 주머니를 침대에 올려놨다.
끈을 풀자 묶여 있던 주머니가 열렸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주머니 속 내용물을 꺼냈다.
주먹 정도 크기의 영롱한 빛을 흘리는 구슬이었다.
그걸 본 천경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것도 최소 100년 이상 묵은 영물의 내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