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60
훈수 두는 천마님 158편
갑자기 하늘이 새까맣게 물들자, 인간이건 몬스터건 할 것 없이 고개가 위로 향했다.
먹처럼 퍼져 나가는 어둠은 하늘과 땅에 유형의 경계를 세웠다.
“저건 뭐야?”
어둠의 발원지를 모르는 헌터들은 불안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불안함과는 달리 어둠은 천지의 균형을 무너트렸다.
오직 적에 한해서만!
“크워어어?!”
“케에에엑!!”
헌터들은 갑자기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몬스터들을 보며 당황했다.
모두가 당황한 건 아니었다.
실력 있는 헌터들은 몬스터들의 행동이 이상해지자마자 곧장 공격에 들어갔다.
“다 죽어 버려!!”
박현태는 실핏줄 터진 눈을 부릅떴다.
황금빛 안광과 함께 시곗바늘 돌아가는 소리가 귓가에 잔뜩 들렸다.
몬스터 군단의 시간이 가속한다.
그것은 킹이 로벤의 시간을 가속시켜 늙어 죽게 만든 것과 흡사한 힘이었다.
다만, 많은 생명의 시간을 빼앗는 능력인 만큼 부담이 엄청났다.
코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크윽.’
현기증이 밀려왔다.
박현태는 코피를 대충 훔쳐내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코피든, 현기증이든, 그딴 건 중요하지 않다.
수명이 얼마나 줄어들던, 살아만 남는다면 되는 거다.
시공간의 도면이 출렁였다.
그가 양팔을 넓게 펼쳤다.
보이지 않는 공간이 수백 개로 분열했다.
그곳에 갇힌 몬스터들이 바둥거리며 탈출하려고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탈출할 수 없다.
팔을 있는 힘껏 당겼다.
분열한 공간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팔을 쉽게 당겨지지 않았다.
팔에 보이지 않는 추가 달린 것처럼 무겁다.
‘그래선 안 돼……!’
저것들을 박살 내려면 팔이 뽑히더라도 해야만 한다.
“크아아아아아압!”
우드득-!
콱!
공간에 거센 균열이 일었다.
안에 갇힌 몬스터들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모두 죽어어어어어!”
분노에 찬 외침.
콰가가각!!!
모든 공간이 유리처럼 깨져 나갔다.
안에 있는 모든 몬스터가 갈기갈기 찢겼다.
사방이 몬스터의 피로 얼룩졌고, 피는 샘을 이루어 점점 넓게 퍼졌다.
“허억, 허억, 허억, 허억.”
박현태는 한쪽 무릎을 꿇곤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주변에서 시끄러운 전투 소리가 한창이었지만, 방금 그 공격으로 눈앞이 어두워졌다.
그때 누군가 어깨를 짚었다.
“고생했다, 현수 동생.”
몇 번 들어 본 목소리였다.
야마모토 타케시.
자신과 겹치는 공간계 S급 헌터.
“잠깐 쉬어라.”
그의 발소리가 멀어진다.
박현태는 숨을 푹 내쉬며 편하게 주저앉았다.
타케시는 달려드는 몬스터를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베었다.
대부분이 하급에서 중급 몬스터였다.
능력을 쓸 필요도 없었다.
목을 베고, 가슴을 찌르고, 팔과 다리를 갈랐다.
그것으로 충분했지만, 타케시는 그 정도만 하지 않았다.
상대해야 할 적은 많다.
주변에 입체도면의 선이 그려졌다.
그 안에서 타케시의 도는 어디로든 향하고, 무엇이든 벨 수 있었다.
빠르게 뽑혀 나온 도가 허공을 그었다.
푸확!!
달려들던 여러 마리 몬스터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동시에 나뉘었다.
재각성 이후 공간을 더욱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잘려나간 몬스터들을 짓밟고 새로운 몬스터들이 몰려온다.
그 몬스터들의 처치도 앞선 몬스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방에서 피가 솟구쳤다.
입체도면이 닿는 모든 공간은 타케시의 완벽한 영역이었다.
그곳에서 타케시는 가히 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쓸 만하군.”
머리를 꿰뚫린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싸늘한 사체가 되었다.
그는 실제로 찌르지도 않았건만, 괜히 도를 한 번 털어 냈다.
마치 심검과도 같았다.
실제로 심검의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진짜 심검이었다면 ‘공간’ 따위에 구애받지 않았으리라.
일종의 ‘한정 심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직도 한참 남았어.”
군세가 쏟아낸 몬스터 군단은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 듯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그때, 저 멀리서 굵직한 번개가 몬스터를 사정없이 휩쓸었다.
새까만 중력장이 몬스터를 짓누르기도 하고, 강력한 지진이 몬스터 군단의 한복판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마치 신화에서나 볼 법한 짐승이 활보하며 몬스터를 물어뜯었고, 기괴한 오르간의 음이 몬스터들을 무릎 꿇렸다.
새로이 각성한 S급 헌터들의 활약이었다.
그들은 기존의 S급들에게 밀리지 않겠다는 듯 전장을 휩쓸고 다녔다.
“훌륭해.”
타케시는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전쟁.
느낌이 좋다.
뭐가 좋냐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왠지 질 것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박현수.”
그는 서서히 흩어지는 하늘의 어둠을 보았다.
저것은 분명 박현수가 한 짓일 거다.
박현수는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저 위에 볼일이 있다는 뜻이겠지.
‘부탁하마.’
킹을, 그리고 그 동료들을 잡을 수 있는 건 솔직히 말해서 박현수와 그의 동료들뿐이었다.
타케시는 그의 동료가 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러기엔 실력이 부족했다.
재각성을 했는데도.
아니, 재각성을 하면서 더 넓은 세상을 봤기에 그가 얼마나 위에 서 있는지 알게 되었다.
어쩌면 보이는 그 부분도 일부일지 몰랐다.
그러니까 진짜로 지구를, 그리고 인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박현수뿐이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
은색의 도면이 차가운 빛을 띠었다.
그는 몬스터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킹의 병사들은 언데드이되, 언데드가 아니다.
그들은 죽음을 거슬렀지만, 역천(逆天)하지 않았다.
루치엘은 그들을 벌레 보듯 보며 쌍검을 쥐었다.
저들을 상대로 고귀한 성전까지 전개할 필요 없다.
두 쌍의 날개가 활짝 펼쳐지며 그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킹의 병사들은 시뻘건 안광을 흘리며 좌우를 둘러봤다.
한 줄기의 섬광처럼 루치엘은 지그재그 궤적을 그리며 병사들의 목을 베었다.
여섯 개의 머리가 떨어지기까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루치엘은 별거 아니라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향했다.
그러나 걸음을 금방 멈추어야만 했다.
잘린 목에서 흘러나온 검은 연기가 머리와 연결되며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킹의 병사들은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다.
루치엘의 헤일로가 넓게 펼쳐지며 위로 떠올랐다.
아름다운 오로라가 그를 부드럽게 감싼다.
킹의 병사들이 움직였다.
루치엘은 몰려오는 그들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두 자루의 검이 눈 부신 빛에 휩싸였다.
[통째로 소멸시켜 주마.]빛이 폭발했다.
* * *
아이작은 멀리서 들려온 폭발 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루치엘 녀석.”
[시끄러운 비둘기 자식. 그보다 파트너, 저놈들.]마검이 눈동자로 전방에 선 새까만 무리를 가리켰다.
킹의 병사들이었다.
“재밌는 놈들이군.”
[굴레에서 벗어난 놈들이야. 쯧쯧, 불쌍한 놈들.]“어째서 불쌍하지?”
[어째서 불쌍하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반편이가 됐으니 당연히 불쌍하지.]킹은 죽음을 지배하는 왕.
그는 자신의 병사들에게서 삶과 죽음을 모두 빼앗았다.
이는 우주의 법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로 아주 악독한 행위였다.
“딱히 강하진 않은 것 같은데.”
[강함과는 별개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것들은 일단 체력이 무한하거든.]고통을 느끼지 않는 절대 죽지 않는 전투 인형.
“흔적도 남기지 않고 소멸시키면 되살아나나?”
[글쎄. 그건 잘 모르겠는걸.]“해 보면 알겠지.”
아이작은 페이스 가드를 내리고 마검을 양손으로 쥐었다.
저런 상대에겐 심검은 오히려 무의미하다.
마음으로 적을 완전히 지워 버리는 수준에 오른다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은 마검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편이 나았다.
“간다.”
[오랜만이로구만!]마검이 핏빛으로 물든다.
갑옷의 모든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최대 출력!”
[오우!]마기를 한껏 두른 대검을 일직선으로 내리그었다.
동시에 모든 입에서 붉은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킹의 병사들이 불나방처럼 광선에 달려들었다.
콰아아아앙!!!
커다란 폭발과 함께 우주선의 넓은 복도가 부서져 나갔다.
아이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실패군.”
“크어!”
폭연을 뚫고 검은 팔이 튀어나왔다.
심검으로 팔을 잘라냈다.
잘린 팔이 거짓말처럼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갔다.
“방어력이 평범하지 않아.”
[튼튼하게도 만들어 놨구만, 킹 녀석.]원래라면 먼지도 남지 않아야 하는데.
킹의 병사들은 아무 일도 당하지 않았다는 듯 멀쩡한 모습으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아직 기수와 붙지도 못했는데, 이곳에서 진을 다 빼게 생겼다.
‘그래선 안 되지.’
이곳에 킹을 죽이러 왔다.
고작 그의 병사들 따위에게 발목을 붙잡히는 건 사양이다.
그때, 어떤 생각 하나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봐.”
[왜?]“심검으로 킹이 저들에게 걸어놓은 주박을 벨 수 있지 않을까?”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심검은 단순히 보이지 않는 검이 아니다.
마음으로 이루어진 검이다.
마음이란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
그러니 킹의 주박을 느낄 수만 있다면 심검은 그것을 충분히 벨 수 있다.
아이작은 몰려오는 병사들을 보며 눈을 감았다.
마음 위로 한 자루의 검을 세운다.
심(心).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벨 수 있지만, 벨 수 없는 것.
모든 것은 마음이 향하는 대로.
[심검술]‘너희의 주박을 깨 주마.’
[명경(明鏡)]스윽-!
병사들이 도달하기 직전.
아이작은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아아.”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진짜로 킹이 그들에게 걸어놓은 주박을 벤 것이다.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하셨군요.”
그때,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작은 몸을 비스듬히 돌려 상대를 확인했다.
그곳엔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가녀린 여자가 다소곳하게 서 있었다.
그녀를 알고 있다.
“후훗.”
바이스가 작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킹의 동료이자, 4명의 기수 중 백마의 기사.
“당신이 킹의 병사들을 쓰러트릴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답니다. 천사분께선 아직도 고전하고 계시는데 말이죠.”
그녀의 시선이 루치엘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아이작은 알 바 아니라는 듯 검을 고쳐 쥐었다.
“놈은 알아서 할 거다. 그보다 아주 잘 되었어.”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때의 굴욕, 갚아 줄 수 있겠군.”
“그런가요?”
바이스는 눈을 가린 천을 조심스럽게 풀었다.
기다란 속눈썹이 나타났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아이작을 보았다.
“그때보다 더욱 처절한 꼴을 당하실 텐데.”
“글쎄.”
“죄송하지만, 이곳에서 죽어 주세요.”
감겨 있던 눈이 서서히 떠진다.
아이작은 그녀의 눈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마검이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하며 말했다.
“심안.”
“당신의 심검과 제 심안. 무엇이 뛰어난지 한번 겨뤄 볼까요?”
바이스의 우주를 담은 눈동자가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