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63
훈수 두는 천마님 161편
재앙(災殃).
뜻하지 아니하게 생긴 불행한 변고.
또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불행한 사고.
그런 것을 한 몸에 지닌 존재가 있다면 어떠할까?
“시작은 그래.”
더 블랙의 뼈밖에 남지 않은 손가락이 위를 향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의 비가 좋겠군.”
「그날.
세상은 불탔다.
쏟아지는 불의 비가 모든 것을 불태웠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불의 비가 내리지 않는 곳은 없었다.
나의 나라가 새까만 숯덩이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하늘이 석양 지듯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박현태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입이 벌어졌다.
“다, 다들.”
다른 사람들은 몬스터와의 전투에 정신이 팔려 하늘을 못 보고 있다.
“다들, 하늘을 좀…….”
시끄러운 전장에서 쥐꼬리만 한 목소리가 닿을 리 없었다.
크게 외치고 싶지만, 심장을 조여오는 압도감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하늘에 새빨갛게 물들었다고.
새빨갛게 물든 하늘에서.
“부, 불이!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다!!!”
화르륵-!
화르르르르륵-!
그 옛날 소돔과 고모라에 떨어진 유황불처럼.
이곳 전장 위로 불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뜨, 뜨거워!”
“이게 무슨 일이야!”
“피, 피해! 모두 피해!”
“보호막! 모두 보호막을 펼쳐!”
“내 팔!”
전장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인간, 몬스터 가릴 것 없이, 하늘의 재앙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물 계열 헌터들이 불을 끄고, 보호막이 가능한 헌터들이 불의 비를 최대한 막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하유락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녀에게 불은 통하지 않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분명 원인이 있을 것이다.
‘적의 소행인 건 확실해.’
그렇다면 근원지는 어디일까?
하유락은 정신을 집중하고 근원지를 찾으려고 했지만, 그녀에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답답함이 커졌다.
그때, 누군가 그녀에게 달려왔다.
“협회장님!”
“현태야!”
박현태는 숨을 몰아쉬며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 위에 있는 놈이요!”
“위에?”
위를 봤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하늘에선 불의 비만 쏟아질 뿐이었다.
박현태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일단 이 현상의 근원지를 찾아서 어떻게든 해야 해.”
“그러니까 그 근원지가 저 위에 떠 있는 이상한 놈이라구요!”
“……우주선 안에 뭐가 있다는 거야?”
불의 비는 신기하게도 우주선을 통과해 지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박현태가 거세게 고개를 흔들었다.
“협회장님도 안 보이시는군요.”
“그게 무슨 말이야?”
박현태가 그녀에게 오기 전 다른 이들에게도 검은 로브를 두른 기분 나쁜 노인을 가리켰지만, 모두가 노인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목소리도 나한테만 들렸어.’
위를 보았다.
거무죽죽한 안광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
“어디 한번, 짐을 막아 보거라.”
도발하는 듯한 목소리.
박현태는 이를 갈았다.
“……뭔가 느껴지는구나.”
“아무래도 이건 저만이 해결할 수 있는 모양이에요.”
이유는 모른다.
저 노인의 계략일 가능성이 크지만, 불의 비를 막을 방법이 자신 말고는 없다.
“오너라.”
더 블랙의 입꼬리가 위로 솟았다.
“다녀올게요.”
박현태의 몸이 붕 떠올랐다.
시공간의 도면을 완벽하게 다루게 된 이상, 비행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그는 불의 비를 뚫고 위로 날아올랐다.
“짐의 공포를 오로지 독식하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개소리…….”
째깍-!
째깍-!
시곗바늘이 돌아간다.
“집어치워!”
더 블랙의 시간이 가속했다.
“킹과 같은 능력인가! 크하하하하!”
그러나 그의 시간이 아무리 빨리 흘러도 변하는 건 없었다.
박현태는 믿기 힘든 눈으로 더 블랙을 보았다.
더 블랙이 자신을 소개했다.
“반갑구나. 짐은 네 기수 중 하나이자, ‘판테온 제국’의 마지막 황제, 더 블랙이니라. 그리고.”
더 블랙이 앙상한 손을 펼쳤다.
“한때 이 땅을 멸망으로 물들인 재앙이니라.”
불로 뒤덮인 하늘이 소용돌이쳤다.
그곳에서 새빨간 허리케인이 지상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불의 허리케인은 피아를 막론하고 지상을 헤집었다.
박현태는 허망한 얼굴로 절망적인 광경을 보았다.
“아…… 안 돼.”
“절망에 굴복하라! 공포에 무릎 꿇어라! 짐이 신이니라! 으하하하하!”
“안 돼애애애애!”
뚝-!
모든 게 일시에 정지했다.
지상을 뒤집어엎던 불의 소용돌이가,
쉼 없이 쏟아지던 불의 비가 모두 멈추었다.
인간도, 몬스터도.
전부 움직이지 않는다.
“뭣이?!”
더 블랙은 세상의 시간이 멈춘 걸 보고 눈을 부릅떴다.
‘저놈이 한 짓이라고?’
시공간 능력자라는 건 눈으로 봐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시간을 정지시킬 정도일 줄은 몰랐다.
‘무의식의 발현인가?’
가끔 사람은 큰 위기를 느낄 때 평소보다 수 배는 강한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해도 시공간을 정지시킨 건 충분히 경악스러웠다.
‘정지한 건 지구의 시간뿐이로군.’
우주까진 닿지 않았다.
하긴 우주까지 정지시켰으면 그건 진짜 ‘신’이리라.
“허억, 허억.”
박현태는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보았다.
모든 게 멈췄다.
‘이게 무슨 일이지?’
그는 시간이 정지한 걸 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그를 본 더 블랙이 조소했다.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는 모양이군.”
“……내가?”
“그놈들 말고 인간 중에 이만한 놈이 또 있을 줄은 몰랐군. 크크큭.”
지상에서 초월에 가까운 인간이 몇 느껴지긴 했지만, 앞에 있는 놈만큼 노골적이진 않았다.
초월의 영역에 발 한쪽을 들였다.
아니.
금방이라도 장벽을 찢고 마저 들어올 기세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도다.”
이제 막 초월에 진입하는 수준이라면,
“개죽음당하지 않도록 노력해 보거라.”
더 블랙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박현태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왜인지 가슴이 간질거렸다.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지금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겠단 직감이 들었다.
“두 번째 재앙을 맞이하거라.”
멈춘 세상에서 우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넌 아무것도 못 할 거다.”
우박의 시간이 멈추었다.
“절대로.”
박현태는 황금빛으로 물든 눈으로 부릅뜨며 경고했다.
그를 본 더 블랙은 조소했다.
“어디, 즐겨 보도록 하지.”
꽈르릉-!
붉은 번개가 둘 사이를 가로질렀다.
* * *
“현태야.”
박현수는 시간의 흐름이 멈춘 걸 깨닫고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지금 시간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은 그의 동생인 박현태가 유일했다.
“초월에 발을 들였구나.”
그가 능력을 수월하게 다루는 걸 보고 머지않았다고 생각했다.
‘상대는 기수 중 한 명인가.’
만나 본 적은 없지만, 그로 인해서 바깥이 엉망으로 변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으러 가지 않았다.
다른 이들을 믿는 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이유가 컸다.
“킹.”
“만나는 건 처음이군.”
백발에 검은 털 망토를 두른 노인이 보석이 박힌 지팡이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는 우묵한 눈으로 박현수를 보았다.
“퀸을 결국 죽였더군.”
“내 힘을 어디서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힘도 결국엔 내 힘이니까.”
“자네가 그쪽으론 천재라는 걸 잊고 있었군.”
박현수는 마음먹으면 모든 기운을 원하는 대로 다루는 재능을 타고났다.
“바이스는 마검의 주인과 싸우고, 레이지는 마법사, 황제는 자네의 동생과 싸우는군.”
“그자가 황제인가?”
“오래전에 존재했던 마지막 제국의 주인이었지. 황제는 그를 대우해 주는 호칭에 불과하다네.”
“그런가.”
“그보다 천사는 왜 데려오지 않았지?”
킹은 박현수가 루치엘을 데려오지 않은 게 의아했다.
그들에게 이 전쟁은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전쟁일 터였다.
그렇다면 혼자보단 둘이서 덤비는 게 승산이 높다.
하지만 박현수는 그러지 않았다.
“설마 짐 정도는 혼자서 잡을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킹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더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서 이곳은 전장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를 거머쥐어야 하는 장소다.
아무리 혼자 쓰러트릴 자신감이 있더라도 더 수월한 방법이 있다면 그걸 채택했어야 한다.
“억측하지 마. 그놈은 다른 곳으로 보냈으니까.”
“다른 곳이라?”
“그건 네가 알 바 없고.”
박현수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킹은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다.
질 생각은 없지만, 상황이 어떻게 흐를지는 모를 일이었다.
“전력을 다할 거다.”
이마 위로 정복의 문장이 떠올랐다.
흑강기가 마기와 뒤엉켰다.
새까만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킹은 로브 바깥으로 손을 꺼냈다.
그의 손엔 죽음이 담겨 있었다.
“이기리라 생각하나?”
“이겨야지.”
“반드시 이겨야지.”
박현수의 몸이 벼락처럼 쏘아졌다.
순식간에 킹의 지척에 도달한 그는 일직선으로 주먹을 꽂아 넣었다.
꿀렁-!
킹의 몸이 액체처럼 녹아내렸다.
팔이 불쾌한 액체로 적셔졌다.
‘흠.’
박현수는 땅을 짚고 두어 바퀴 돌아 바닥에 착지했다.
검은 증기가 팔에 닿은 액체를 증발시켰다.
피부가 거멓게 죽었다.
“죽음의 왕이라는 이명이 과장된 건 아니군.”
“그 순간에 피부가 썩는 걸 최소화하다니. 놀랍구나.”
바닥에 쏟아진 액체가 솟구치면서 킹의 모습이 되었다.
그의 머리는 검게 젖어 물방울을 뚝뚝 흘렸다.
킹의 능력은 ‘노화’.
노화란 결국 시간으로 죽이는 걸 의미했다.
로벤 역시 그렇게 죽었다.
쉽지 않은 상대라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런 것쯤이야.”
박현수의 몸에서 이전과 다른 하얀 기운이 흘러나왔다.
팔의 썩은 부분이 다시 제 색을 되찾았다.
“……생명의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건 조금 놀라운걸.”
하얀 기운.
그것은 박현수가 가진 선천지기였다.
그는 회복된 팔을 몇 번 흔들어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네.”
“생명의 힘을 불태워 죽음에 저항하는 건 어리석은 짓일세.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테니까.”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상단전이 어느 때보다 활짝 열렸다.
“방금은 시험 삼아 한 번 맞아 본 거야.”
[의념 전면 개방] [각성]“지금부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거야. 킹.”
[사상 붕괴]한순간, 킹은 박현수의 움직임을 놓쳤다.
그리고 다시 그를 찾아냈을 때.
“……!”
커다랗게 변한 손바닥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이미 코앞인가.’
“타천!”
쩡-!
킹의 고개가 뒤로 꺾였다.
퀸을 일격에 보낸 기술이었다.
하나, 킹은 달랐다.
그는 꺾였던 고개를 다시 앞으로 당겼다.
“그럴 줄 알았어.”
퀸과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박현수는 웃으며 두 주먹을 장전했다.
“아플 거다.”
꽝!!!
주먹이 킹의 배를 꿰뚫었다.
강기가 소용돌이쳤다.
“커헉!”
킹은 액화되지 않는 몸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한 번 당했던 걸 두 번 당하겠냐?”
박현수는 조소하며 그의 턱에 주먹을 작렬시켰다.
그의 몸이 뒤로 날아가는 걸 천마신회류로 끌어당겨 가슴을 무릎으로 찍었다.
킹이 발버둥 치며 사방을 노화시켰지만, 가속하는 시간마저 천마신회류 앞에선 잔잔한 물결에 불과했다.
“크윽.”
킹은 피를 토하며 죽음의 사슬을 꺼냈다.
저 사슬에 할리도, 강서일도 굴복했다.
박현수는 사지를 묶는 사슬을 보았다.
“벗어나지 못한다!”
“이깟 거.”
정복의 문장이 그 어느 때보다 불길한 빛을 내뿜는다.
“애들 장난에 불과하다.”
쩌적-!
모든 사슬에 실금이 그어졌다.
킹은 경악한 눈으로 박현수를 보았다.
여태껏 그 누구도 자신의 사슬에서 자의로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강한 존재라도 결국엔 죽음 앞에 정신적으로 무너져 굴복했다.
한데, 저 녀석은 무어란 말인가.
“넌 진정한 지배를 몰라.”
모든 사슬이 깨져 나간다.
킹은 귀화를 풀풀 풍기며 다가오는 박현수를 피해 뒷걸음질을 쳤다.
대체 이런 괴물이 어떻게 탄생했단 말인가.
“우, 웃기지 마라.”
“겁에 질렸군.”
“너, 너 따위에게 겁을 먹었다? 짐이 말이냐?”
그 말에 박현수는 코웃음을 쳤다.
“지금 네가 어디에 서 있는지나 보고 말해.”
킹은 자신이 선 곳을 보았다.
주름진 눈이 흔들렸다.
“……언제 여기까지.”
분명 저 앞에 서 있었는데.
지금은 벽에 찰싹 붙어 있지 않은가.
‘이 몸이 겁에 질렸다고?’
순간,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존재가 떠올랐다.
모든 걸 파괴하고, 혼돈으로 물들인 괴물.
그가 느꼈던 최초의 공포는 오로지 그뿐이었다.
그리고 여러 차원과 행성을 침략한 이유도 언젠가 다시 나타날 그에게 대적하기 위함이었다.
한데 고작 박현수에게 겁을 먹었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인정해선 안 되었다.
“짐은!”
킹이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다.
죽음이 사방에서 들끓기 시작했다.
“짐은 혼돈의 마왕을 쓰러트릴 존재다!”
오래전, 자신의 고향을 멸망시킨 그 끔찍한 괴물을 직접 쓰러트리기 위해서라도 이곳에서 쓰러질 수 없다.
“오라, 박현수여-! 짐의 진정한 힘을 깨닫게 해 주마.”
분위기가 급변한다.
박현수는 꿈틀거리는 반지를 엄지손가락으로 붙잡았다.
‘걱정하지 마, 할리.’
망토를 벗어 던진 킹.
그의 몸은 시커먼 불길로 일렁이고 있었다.
‘반드시 쓰러트릴 테니까.’
반지는 더 이상 꿈틀거리지 않았다.
박현수는 숨을 들이마시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사탄이 깨어나기 전에.”
쿠구구구구구구구궁-!
거대한 우주선이 뒤흔들렸다.
“네놈을 쳐 죽여 주마, 침략자.”
환각일까?
킹은 박현수의 뒤로 어떤 노인이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노인은 흐뭇한 얼굴로 자신의 제자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