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64
훈수 두는 천마님 162편
은빛으로 탄탄히 빛나던 금속이 검게 썩어 문드러졌다.
가속하는 시간은 모든 것을 노화시켰다.
박현수는 천마신회류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정신이 흐트러지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은하수가 펼쳐진다.
“루천.”
은하수에서 떨어져나온 알갱이가 킹을 향해 쏘아졌다.
죽음의 냄새가 모든 루천을 휘감았다.
초월에 이르고, 의념이 담긴 강기라도 수명은 존재하는 법.
박현수는 사라져 가는 루천을 보며 혀를 찼다.
“이런 공방은 무의미하다.”
킹은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까처럼 오라.”
박현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킹의 기세가 바뀌면서 섣불리 달려들기 어려워졌다.
그의 몸 주변을 감싸고 있는 반투명한 회색 장막 때문이었다.
‘닿으면 아무리 나라도 위험해.’
천마신회류를 극성까지 펼치더라도, 저것에 닿는다면 피부가 썩는 걸 막지 못할 것이다.
육참골단을 노린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적은 킹뿐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한 적이 아직 지하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육체는 놈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보존해야 했다.
“그 방법밖에 없겠군.”
“방법이라. 궁금하구나.”
“궁금해하지 않아도 알게 될 거야.”
이 방법은 몸에 무리가 와서 웬만하면 쓰지 않으려 했지만, 회색 장막을 뚫으려면 이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몸에 무리가 심하게 가긴 하지만, 피륙을 잃는 것보단 나으리라.
공기의 흐름이 뒤바뀐다.
[천마신공]박현수의 몸 주변을 흐르던 모든 기운이 일순간 정지했다.
그리고 서서히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우득,
우드득-!
뼈마디가 무섭게 울부짖었다.
펼쳐진 은하수가 빠르게 단전으로 회수되기 시작했다.
그 주변으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武)가 무(無)로 돌아간 상태.
그 변화는 평범해 보였지만, 킹의 눈엔 아니었다.
“……네놈.”
“지금도 궁금한가?”
박현수는 전신 기맥이 뒤틀리는 고통에도 억지로 웃어 보였다.
모든 기운이 반대로 흐른다는 건, 체내의 내공 또한 마찬가지.
기존의 순환 구조가 바뀐 기혈은 뜬금없는 역회전에 엄청난 과부하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기맥과 기운을 역전시켰다는 것은, 이전까지 할 수 없었던 걸 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었다.
반대로, 할 수 있는 걸 할 수 없게 됐지만, 지금 상황에선 불필요할 뿐이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킹은 눈을 부릅떴다.
그는 자신의 진력을 끌어올렸다.
도사리는 죽음이 그의 손에 몰려들었다.
고약한 악취의 연기가 박현수를 향해 질주했다.
그러나 죽음의 손길은 그의 지척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천마군림은 천지의 균형을 깨트리는 힘.
그 반대가 된다면?
“박현수……!”
천지가 조화를 이뤘다.
오로지 단 한 점으로.
단전으로 숨어든 천마신공의 내공이,
눈 부신 빛이 되어 폭발했다-!
“삶도, 죽음도.”
박현수는 발끝으로 몰려드는 삼라만상을 본다.
“태초엔 하나였지.”
조화의 끝은 무엇인가.
모든 것이 하나 되는 것?
그 길이 태초로 이어지는가?
잘 모른다.
다만, 발끝에 걸린 하나의 점은 자연 현상의 최종 단계.
“죽음이 섭리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박현수의 눈에 푸른빛이 서렸다.
“내게서 벗어나지 못해.”
반투명한 회색 장막이 점으로 빨려 들어갔다.
킹은 인지를 초월한 현상에 침음성을 흘렸다.
이것이 박현수의 힘.
3년 전의 그 인간이 맞단 말인가?
도대체 무슨 일을 겪어야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런 성장을 보일 수 있는지.
킹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하나, 짐은 녹록지 않으리라!”
까마귀 떼가 넓은 복도를 가득 메웠다.
까악!
까악!
귀를 찢는 울음소리는 삶의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
킹은 죽음을 두르고 박현수에게 몸을 날렸다.
검은 그림자가 날개처럼 활짝 펼쳐졌다.
마치 천사의 그것처럼.
‘천사?’
박현수는 가까워지는 킹을 보며 자세를 잡았다.
새하얀 백강기가 손끝에 맺혔다.
역 천마신공은 3대 천마가 창안한 천마신공의 변형식이었다.
예전엔 10대 이전 천마들의 기억을 볼 수 없었지만, 경지가 오르며 자연스럽게 그들의 기술까지 섭렵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째서 그들의 기억이 10대 이후 천마들과 달리 봉인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어설픈 경지로 시도했다간 전신 기혈이 모두 터져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높은 수준을 요구했다.
그러나 감당할 수만 있으면, 그 힘은 보통의 천마신공과는 궤를 달리했다.
“가까이 온 건 네 실수야.”
어째서 검은 천사처럼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내 영역이거든.”
[역 천마신공] [의념기]“발(發).”
꽝-!!
킹은 전신을 덮쳐 오는 커다란 충격에 죽음의 날개로 몸을 감쌌다.
그런데도 피부가 저릿저릿했다.
박현수는 땅을 박차고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까마귀가 그에게 돌진했지만, 순백의 강기가 모든 까마귀를 원초의 상태로 되돌렸다.
‘내 힘과 완전히 반대되는…… 아니다. 저것은 내 힘마저 포용하는가.’
흩어지는 까마귀를 보며 킹은 혀를 내둘렀다.
손에 감긴 죽음의 기운이 길게 내려왔다.
그대로 채찍처럼 휘둘렀다.
박현수가 오케스트라의 마에스트로처럼 손을 휘젓자, 죽음의 채찍이 그의 손가락으로 빨려 들어왔다.
천마군림 때와 마찬가지였다.
극한의 조화.
골치 아픈 능력이다.
근접도, 원거리도 힘들다면 강제로 되게 만들면 되었다.
킹을 중심으로 둥근 파동이 우주선 전체로 퍼져 나갔다.
천마신회류로 파동을 최대한 억제했지만, 규모가 남달라 전부 막는 건 불가능했다.
사방에서 불길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그어어어-!
게겍!
그르르칵칵!
새까만 생물들이 우주선 벽과 천장, 바닥을 통과하여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들은 입을 제외하면 얼굴 전체가 썩은 달걀 같았다.
‘언데드?’
아니다.
그들에게서 나는 죽음의 냄새는 언데드의 것과는 달랐다.
이와 비슷한 걸 여기까지 오면서 몇 번 느꼈다.
“네놈의 병사들이냐?”
“병사라기보단 더미 같은 것이지.”
“더미라.”
킹의 의도를 알겠다.
이것들을 방패 삼아 자신에게 접근하려는 것이다.
가소로웠다.
고작 생각해 낸 방법이 이딴 것일 줄이야.
“순환의 굴레를 벗어났다고 방패막이로 쓸 수 있을 것 같으냐?”
“충분히 될 것 같다만?”
촤아악-!
죽음의 날개가 거세게 검은 입자를 내뿜었다.
더미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박현수는 쯧 혀를 차며 백강기를 둥글게 폭발시켰다.
케에에에에-!
커거거거거!!!
더미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순환의 굴레를 벗어났다면, 조화를 통해 다시 굴레에 포함하면 되는 것.
“그렇게 쉬울까?”
“아니?!”
더미들이 거짓말처럼 재생했다.
역 천마신공으로 분명 먼지로 만들었을 터였다.
박현수는 다시 한번 백강기를 휘저었다.
그러나 사라진 더미들은 돌진해 오는 형태로 다시 재생되었다.
그것들이 몸에 하나둘 찰싹찰싹 붙었다.
“너는 짐의 힘을 이해하지 못했노라.”
어느새 가까워진 킹이 서서히 손을 뻗어 왔다.
더미들은 서로의 손을 이어 하나가 되었다.
빠져나갈 수 없었다.
“너도, 너의 조화도 결국.”
킹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죽음으로 오라.”
* * *
루치엘은 메마른 황토색의 땅을 위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박현수의 명령 같은 요청으로 이곳에 오긴 했는데, 피부를 저릿하게 만드는 불길한 기운 때문에 약간 후회 중이었다.
‘이곳에 타락의 마왕이란 놈이 있단 말이지?’
땅속 깊은 곳에 있을 무저갱에 타락의 마왕, 사탄이 봉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봉인은 깨지기 직전이었다.
박현수는 그에게 봉인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고 오라고 했다.
“확인하고 말고를 떠나서…….”
그는 찝찝한 얼굴로 땅에 착지했다.
손가락으로 푸석한 땅을 툭툭 건드렸다.
“깨지기 직전인데?”
막거나, 다시 봉인하기엔 이미 늦었다.
생각해 보면, 사탄의 수족이라는 유다가 이미 밖으로 나온 전적이 있었다.
그것부터가 봉인은 글렀다고 볼 수 있었다.
이르면 내일.
봉인은 반드시 풀릴 것이다.
“그 전에 전쟁을 끝내야 해.”
네 명의 기수와 사탄까지 함께 상대하게 된다면 인류는 절대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사탄 하나만으로도 버거울 테니까.
그때였다.
오싹-!
루치엘은 당황한 눈으로 주변을 보았다.
그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수백 미터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이성이 본능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내 목소리가 잘 들리는 모양이구나.]
선명하게 말을 전해 올 정도일 줄이야.
‘내일이 아니라 당장 오늘이라도…….’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한편으론 이런 괴물이 어째서 이런 작은 행성에 봉인되어 있는지 의문이었다.
‘적개심조차 들지 않아.’
악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죽이려 드는 종족이 바로 천사였다.
비록 지금은 그 악의 주인들과 공존하고 있지만, 그건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그들 또한 죽이리라 다짐했다.
그걸 그들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타락의 마왕은 그럴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힘의 격차가 너무…….’
부당하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겁먹지 마라, 어린 천사야.] “난…… 어리지 않다.”[그런가? 크큭.]
비웃는 목소리.
그러나 항거할 수 없다.
또한, 목소리에서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사탄은 끔찍할 정도로 강력한 악이었지만, 그것 말고도 왠지…….
‘동족의 향기가 나잖아?’
설마 타천사인 걸까?
천사란 종족은 유일하다.
변종 개체가 따로 없는 종족.
그렇기에 타 종족보다 우월했다.
다만, 변종 개체까진 아니어도 천사 자체가 변질되는 경우는 있었다.
그것이 바로 ‘타락 천사’, 줄여서 타천사였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극한의 선을 추구하는 천사는 계기만 있다면 순식간에 악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마왕이 된 사례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타천사 중 마왕의 힘을 손에 넣었단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확실히 천사답군. 동족을 알아보다니.] “진짜 타천사인 거냐?”[크크크큭! 타천사라. 그 말도 무척 오랜만에 들으니 묘한 기분이야.]
반응을 보아하니 사실인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좋아. 그보다 너, 세피로트의 천사로구나?] “……내 소속까지 아는 거냐?”[알다마다. 세피로트가 비교적 최근에 한 마왕에게 멸망했단 사실도 알고 있지.]
루치엘의 눈이 커졌다.
사탄은 무저갱에 봉인되었다.
바깥의 소식을 알고 싶어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세피로트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다.
[뭐, 어떻게 아는지야 사소한 문제지. 그보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 “세피로트는 존재하지 않아.”
[‘씨앗’이 남아 있다면?] “?!”
세피로트는 우주에서 독보적인 크기의 세계수였다.
그렇기에 성역이라 불렸고, 신성함의 상징이었다.
정복의 마왕에 의해 세피로트는 불타 사라지면서 이젠 존재하지 않게 되었지만, 만약.
만약에 씨앗이 남았다면?
달콤한 속삭임.
루치엘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사탄은 세피로트 출신이 아니다.
출신이었다면 자신이 모를 리 없었다.
사탄은 세피로트에서 벌어진 참극을 보지 못했다.
그러니 씨앗의 존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친히 씨앗으로 인도해 준다고 속삭였다.
어떻게?
여러 의심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모순. 너의 친구들은 악을 지녔잖아.]
박현수와 아이작.
그들은 각각 속에 마왕을 품고, 마왕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마검의 주인이었다.
속마음이 어떻건, 현재 그들과 함께한다는 것부터 악과 타협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불편했지? 가문의 위세 때문에 함부로 행동할 수 없어서 힘들었잖아.]
아니다.
언제나 12 가문의 영광에 어깨가 으쓱했다.
그 휘광을 등에 얹을 수 있어서 매번 기뻤다.
어딜 가도 대우받을 수 있어 좋았다.
‘아니다.’
12 가문의 영광은 무거웠다.
그들의 휘광은 짐이었다.
누군가의 선망은 부담이었다.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가문의 힘이 아닌 내 힘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스테리아에 있을 땐 처참한 결과를 낳았을지라도 행복했다.
그곳에서 난 나로 있을 수 있었으니까.
[내가 도우마. 세상은 꽉 막혀선 살아남을 수 없어. 타협해라. 더 좋은 세상을 위해서.] “더 좋은 세상…….”
[그래. 더 좋은 세상.]
루치엘의 눈이 꺼멓게 죽었다.
그는 ‘좋은 세상’이란 말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루치엘!!!
그때, 고막을 찢을 듯한 목소리가 머리에서 쨍하게 울렸다.
탁해진 눈이 원래 색을 되찾았다.
“나, 나는.”
[아쉽군. 거의 다 됐는데.]
“사탄……!!”
루치엘은 자신을 현혹한 사탄에 크게 분노했다.
그리고 자신을 일깨운 목소리에 감사했다.
“고맙다, 박현수!”
-놈의 목소리에 현혹되지 마. 놈이 ‘타락의 마왕’이란 걸 잊지 말라고.
[이 순간에 네가 껴들 줄은 몰랐네? 하하하하하!]
-아, 조금 여유가 생겨서.
웃음기 있는 박현수의 목소리.
“지금.”
그는.
“싸움이 끝났거든.”
축 늘어진 킹의 얼굴을 부술 듯 꽉 쥔 채 말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