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66
훈수 두는 천마님 164편
모나미는 지붕에 자리를 잡고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세상의 시간이 멈추었지만, 아이는 멈춘 시간 속에서도 자유로웠다.
그러나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아빠는 자신이 어리다며 전장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맞는 말이었다.
다른 헤츨링과 비교하면 성장 속도가 엄청나지만, 그래 봐야 헤츨링은 헤츨링이다.
10년이 지나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모나미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었다.
짐만 될 뿐이었다.
그걸 알고는 있었지만, 우울했다.
“히잉.”
모나미는 날개를 축 늘어트린 채 울상을 지었다.
그러던 중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서 굉장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노란색 털이 바짝 섰다.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장아장 지붕 끝으로 걸어갔다.
“아빠.”
아빠의 기운이었다.
뭔가 달랐지만, 분명 아빠의 힘이 분명했다.
그리고 강력한 존재감 하나가 지워졌다.
“아빠가 이겼어!”
보진 못해도 느낄 수 있었다.
아빠는 적 우두머리를 쓰러트렸다!
모나미는 신이 나서 만세와 함께 환호했다.
그러나 금세 다시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적 우두머리를 쓰러트렸지만, 다른 우두머리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남은 우두머리는 방금 쓰러트린 우두머리보다 훨씬 강하고, 위험했다.
“아빠 힘내요.”
모나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부모를 기다리는 것뿐.
아니.
“모나미도.”
헤츨링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앙증맞은 손으로 엉덩이를 툭툭 털어 내고 힘차게 날갯짓했다.
“모나미도 아빠를 도울 거야!”
무저갱의 용과 몇 차례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하다.
아빠에겐 내가 필요하다.
모나미는 열심히 날개를 펄럭여 사탄이 봉인된 장소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 * *
땀이 온몸을 적셨다.
박현태는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시간을 멈추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체력 소모로 이어졌다.
“제법이로구나.”
더 블랙은 그를 보곤 조소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견딜 수 있겠느냐?”
“시끄러워……. 넌 아무것도 못 할 거야.”
“뭐, 그것도 나쁘지 않…… 음!”
그가 여유로운 목소리로 되받아치는데, 거대한 존재감 하나가 사라졌다.
칙칙한 시선이 기울어가는 우주선으로 향했다.
‘설마!’
더 블랙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눈이 커졌다.
방금 사라진 존재감은 다름 아닌 킹!!
그가 당했단 말인가?!
더 블랙이 아는 킹은 누군가에게 질 만한 그릇이 아니었다.
연배로는 한참 앞서는 더 블랙이었지만, 네 기수 중 리더를 꼽으라면 단연코 킹이었다.
‘박현수란 자가 기어코.’
이건 예사로운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기수들도 박현수의 동료들과 상당히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킹이란 구심점을 잃는다면 그들은 제멋대로 행동할 것이고, 전쟁은 패배로 이어질 게 분명했다.
그래선 안 된다.
“더는 시간을 끌 여유가 없어졌군.”
“뭐라고?”
“장난은 여기까지다. 재능 넘치는 인간이여.”
앙상한 손은 소지를 시작으로 서서히 쥐어졌다.
검푸른 뇌기는 멈춘 시간 속에서 사정없이 튀어 올랐다.
박현태의 능력은 출중했지만, 아쉽게도 더 블랙은 그가 닿을 수 없는 영역에 존재했다.
그의 시공간 통제로는 재앙을 막을 수 없었다.
“상대해야 할 적이 많다.”
“큭…….”
멈춘 시공간이 흔들렸다.
박현태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몸이 한계에 부딪혔다.
당장이라도 의식이 날아갈 것 같았다.
참고 또 참았다.
승리해야 한다.
그 고집만큼은 꺾을 수 없기에, 박현태는 피를 토하며 견뎠다.
“수명을 단축할 뿐이다.”
“수명이…… 줄어도 좋다.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수명을 내어주마!”
“욕심이다.”
세상이 어두워졌다.
검푸른 번개가 새까매진 세상을 가로질렀다.
박현태는 오른손을 들어 공간을 뒤집었다.
“크악!”
엄청난 반발력에 오른손이 뒤로 튕겨 나갔다.
팔이 떨어져 나가는 충격이었다.
“호오.”
덕분에 검푸른 번개는 애먼 곳에 떨어져 번개의 쓰나미를 일으켰다.
“허억…….”
오른팔 전체가 경련했다.
저릿함을 넘어서 감각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걸 튕겨 낼 줄은 몰랐군.”
이 정도의 격차란 말인가?
자존심이 상하는 한편, 그를 상회하는 절망감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겠노라 호언장담을 했는데, 저자는 아무렇지 않게 힘을 쓴다.
정말 자신을 데리고 놀았단 말인가?
박현태는 가슴이 뭉개지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 버텨 낼지 지켜보고 싶지만, 말했다시피 여유가 없어서 말이지.”
마그마가 꿀렁거렸다.
몸 주위로 태풍의 씨앗이 몸부림쳤다.
흔들리는 땅은 언제라도 대지진을 일으킬 준비를 마쳤다.
그가 사용하는 기술은 하나 같이 자연계에서도 내로라하는 대재앙들뿐이었다.
하나만 해도 골치 아픈 힘이거늘.
‘괴물 자식.’
[동료들을 믿어, 현태야.]
그 순간-
귓가에 형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박현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형은 방금 저곳을 지나갔다.
마지막 상대를 쓰러트리기 위해서.
“동료를 믿는다…….”
“지금 와서 말이냐?”
더 블랙은 같잖다는 어투로 비웃었다.
“그만 죽어라.”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대재앙이 동시에 발생했다.
저것들의 시간까지 빼앗기엔 체력이 부족했다.
‘동료를.’
박현태는 팔을 내렸다.
“믿는다!”
멈추었던 시간이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불의 비.
떨어지는 불의 허리케인.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태풍과 허공을 가로지르는 번개의 세례.
갈라지는 대지.
그 안에서 솟구쳐 오르는 마그마.
“너희 인간의 무덤은 이곳이다!”
[인과역전]지잉-!
모든 재앙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아니.
더 블랙의 손에서 시작된 모든 재앙이 없었던 일이 된다.
“……누구냐!”
인과를 건드리는 힘.
이는 우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을 지배하는 능력!
“하노안 씨!”
갈색 피부의 남자, 하노안은 육공에서 피를 쏟으며 그대로 무릎 꿇었다.
4차 웨이브에서 S급으로 각성한 그는 ‘인과역전’이라는 엄청난 능력을 손에 넣었지만, 안타깝게도 능력 특성상 육체의 부담이 엄청났다.
방금과 같이 감당하기 힘든 인과를 원초 상태로 되돌렸으니 더는 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고생했다.”
누군가 하노안의 어깨를 툭 건드리고 지나갔다.
부드러운 은발이 바람이 한 올 한 올 흩날렸다.
호랑이를 닮은 거구의 수인이 그를 지나쳐 더 블랙을 향해 뛰어올랐다.
두껍고 뾰족한 발톱이 붉게 달아올랐다.
카가각-!
공간을 찢어발기는 소리와 함께 열 개의 발톱이 더 블랙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건방진 고양이 새끼가.”
그의 손이 거무죽죽하게 빛났다.
“짐승이면 짐승답게 굴어라.”
“늙었으면 곱게 죽어!”
꾸와아앙-!!
적색 광선이 더 블랙에게 직격했다.
그 위로 호왕의 발톱이 제대로 꽂혔다.
공기가 터져 나가며 주변이 하얗게 물들었다.
녹색 기운이 공간을 휘젓더니, 그대로 압축시켜 그를 속박했다.
같은 염동계인 아르망과 이민아의 합동 공격이었다.
그곳으로 번개가 꽂히고, 강력한 충격파가 폭발했다.
귀를 찢는 오르간 소리는 더 블랙의 정신을 엉망으로 흔들었다.
검은 난은 끊임없이 자라 앙상한 노인의 몸을 거칠게 난자했다.
오직 한 명만을 위한 좌표의 큐브가 짓뭉개졌다.
혼돈의 창이 그를 꿰뚫었다.
세상 그 무엇보다 단단한 주먹이 작은 몸뚱이를 후려쳤다.
멸망의 빛이 쬐어졌다.
전자기파로 만들어진 모든 힘이 그를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모든 헌터가 한마음 한뜻으로 자신의 전력을 발휘했다.
“이것들이이이이이이!!”
더 블랙은 처음으로 분노했다.
너덜너덜해진 넝마를 벗어던졌다.
몸은 앙상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위에 새겨진 타투는 누가 보더라도 끔찍한 기운을 담고 있었다.
“모두 지옥에서 발버둥이나 쳐라!”
“아무리 강해도.”
더 블랙의 것과 흡사하지만 다른 타투가 영롱한 빛을 흘렸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학센은 충만하게 차오르는 힘을 양손에 가득 모았다.
“넌 혼자 오지 말았어야 했다.”
“버러지 같은 놈이!!”
“그 버러지한테 밟혀 죽어라.”
더 블랙은 자신을 덮쳐 오는 빛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그 상황에 초월의 영역에 도달했는가? 하하, 어이가 없군.’
빛이 그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그러나 앙상한 손이 빛을 뚫고 튀어나왔다.
“역시나 부족하도다.”
박현태와 마찬가지다.
이제 막 초월자가 된 정도로는 자신을 어쩌지 못한다.
“저 사람이 말했잖아.”
더 블랙은 바로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했다.
박현태는 히죽 웃었다.
“넌 결국 혼자라고.”
“이, 이놈……!”
“당신의 동료들은 도와주지 않아.”
“머, 멈춰라.”
“당신의 동료들도 결국.”
시공간이 응축한다.
끊임없이, 또 끊임없이.
우주가 무(無)였던 시절을 향해서.
“혼자니까.”
그리고 폭발했다.
* * *
무저갱이 깨져 나가고.
까마득한 시간 동안 이어져 온 봉인이 풀리기 시작했다.
형용할 수 없는 어둠이 지상을 향해 내달렸다.
촤라락-!
터엉!!
쇠사슬이 거친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탐욕스럽게 웃는 그것은 오랜 세월 잃어버린 빛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기 위해, 단단한 흙과 바위를 부숴 나갔다.
지상은 언제 나타나는가.
왜 나타나지 않는가.
빨리.
더 빨리!
그리고, 한때 족쇄였던 것이 달린 팔이 땅을 뚫고 튀어나왔다.
손이 땅을 짚었다.
그것은 흙을 탐미하듯 부드럽게, 그리고 끈적하게 쓰다듬었다.
아- 이것이 지상이다.
아무것도 없는.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무저갱과는 다르다.
이 감각, 셀 수 없는 시간이 지났건만 여전히 생생했다.
그런가.
이것이 생명의 근원인가.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땅을 거칠게 쥐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밀어냈다.
흙바닥이 벌어지며, 서서히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창백한 피부가 정말 오랜만에 세상에 노출되었다.
흙으로 더러워진 적발은 하유락이나 레이지의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다리 하나를 꺼내 땅을 밟고, 남은 다리를 마저 꺼내 땅을 밟았다.
두 다리가 땅을 딛고 있다.
“하하…… 내가. 내가 땅에 서 있다.”
얼마 전 유다의 몸을 빌리긴 했지만, 그때 느낀 감각은 모두 가짜였다.
이게 진짜다.
이거야말로 살아 있음이었다.
붉은 머리의 남자, 사탄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한 차례 비틀거렸지만, 금방 균형을 잡았다.
“흐흐……. 흐흐흐흐흐…… 흐하하하하하하!”
그리곤 허리를 활처럼 뒤로 젖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눈 부신 태양에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았지만, 그 감각 또한 그리웠기에 미칠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곳에서 이미 미쳐 버렸을지도.
“주인이시여, 오랜만에 존안을 뵙나이다.”
작은 짐승이었다.
그러나, 지상에 이것과 닮은 동물은 없었다.
사탄은 웃음을 뚝 그치고 짐승을 보았다.
“넌 어째서 살아 있지?”
“그, 그것이.”
“너는 유다의 분신이 아니냐? 왜 넌 살아 있는지 말해 봐.”
“……드릴 말씀이.”
“아아- 다 됐어.”
“예?”
그것이 짐승의 마지막이었다.
사탄은 짐승의 머리를 한입에 우걱우걱 씹은 뒤 꿀꺽 삼켰다.
딱히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냥.
그냥 죽이고 싶었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잘 모르겠다.
“나도 날 잘 모르겠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오랜만에 지상이다.
뭘 해도 즐겁지 않을까?
그래, 일단 인간의 도시로 가서 그곳에서 좀 놀아 보자.
한동안은 심심하지 않겠지.
사탄은 히죽 웃으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도시로 날아올랐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선약 두고 어디 가?”
사탄은 웃음을 주체하지 못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아아아아아아-! 널 잊고 있었어.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그는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듯 울상을 지으며 두 손을 모아 빌었다.
남자는 파란 후드를 뒤집어쓰며 웃었다.
“연기 한번 더럽게 못 하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말이 뭐가 필요하냐.”
파란 후드의 남자, 박현수는 그리 말하면서,
“어차피 뒤질 텐데.”
그대로 사탄의 얼굴에 무릎을 꽂았다.
턱이 으스러진 사탄은 활짝 웃었다.
“이 맛이야!”
“미친놈.”
박현수는 그리 말하며 주먹을 한 대 더 꽂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