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67
훈수 두는 천마님 165편
사탄은 주먹이 꽂힌 상태에서 히죽 웃었다.
턱뼈가 부서졌고, 이빨이 대부분 뽑혀 나간 탓에 몰골이 흉하기 짝이 없었다.
박현수는 손을 거두고 뒤로 가볍게 뛰었다.
“주먹이 맵네?”
“나도 알아.”
“흐음.”
사탄은 턱을 문질렀다.
생각해 보니, 턱이 작살났는데 발음이 좋았다.
입으로 말하는 게 아닌 건가?
‘이런 상황에 시답지 않은 생각을.’
박현수는 피식 웃었다.
왠지 긴장이 안 된다.
상대는 어쩌면, 과거 자신의 스승을 떠나보내게 한 ‘소설가’란 놈과 동격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실력으론 이기는 건 불가능.
패배할 가능성이 훨씬 컸다.
그런데도, 어느 때보다 마음이 평온했다.
뚜둑-!
사탄은 부러진 턱을 제자리로 되돌렸다.
“이제 좀 편하네.”
그는 기분 좋게 웃으며 입을 쩍쩍 벌렸다.
그리곤 기분이 좋은지, 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자 실실 웃어 댔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아득한 시간을 홀로 보내면 어떨 것 같아?”
“안 궁금한데.”
“답답해서 죽어 버릴 것 같아. 근데 죽지도 못해. 개 같은 것들이 자살도 못 하게 막아 놨거든.”
“안 궁금하다니까.”
“지상이 궁금해도 보지도 못해. 그냥 아무것도 없는 암흑 속에서 멍하니. 그래. 진짜 멍하니 있는 거야.”
“…….”
“미쳐 버려. 그곳에선 누구도 미쳐 버린다고. 미친다는 게 뭔지 알고 있어?”
박현수는 사탄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그러나 웃는 것은 입뿐.
부릅뜬 눈은 굉장히 또렷해,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많은 생각을 했어. 진짜 말 그대로 많은 생각이었지. 생각해 봐. 내가 그 무저갱에 갇힌 지 셀 수 없는 시간이 지났다고. 내가 했던 생각을 무게로 잴 수 있다면, 태양계 정도는 그 무게에 짓눌려 사라져 버릴 거야.”
녀석은 미쳤다.
그냥 미친 것도 아니었다.
수천 년, 어쩌면 수만, 혹은 수십만 년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지냈다.
그 안에서 쌓인 광기는.
아니.
그걸 광기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광기’라는 단어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을 뿐, 이미 사탄은 그것을 넘어섰다.
“외로웠지. 나 지금 너무 즐거워. 유다의 몸을 빌렸을 때도 그랬지만, 누군가와 대화하는 게 정말. 정말로 오랜만이야. 오랜만? 단순히 오랜만이란 말로 표현이 되나?”
“그만.”
“아아- 이게 대화라는 거구나. 그래. 넌 오늘 뭐 먹었어? 잠자리는? 씻긴 했나? 킹과의 싸움은 어땠어? 우주는 좀 지낼 만하던가? 너는…….”
“그만!!!”
박현수의 사자후가 천지를 들썩거리게 했다.
사탄의 위로 올라가 있던 입꼬리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입을 다물고 박현수를 쳐다봤다.
박현수는 단전에서 서서히 내공을 일으켰다.
“닥치고 덤벼.”
놈이 그곳에서 뭘 하고 싶었고, 또 뭘 생각했는지는 관심 없었다.
그걸 들어줄 생각도 없었다.
그냥 싸우고 싶을 뿐이었다.
승리를 거두고, 놈에게 최후를 선사해 주고 싶을 뿐이었다.
흑강기가 피부를 타고 올라왔다.
“무저갱에선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었다고 했지?”
[천마신공]“내가 그 소원을 이뤄 줄게.”
[흑륜(黑輪)]흑강기가 크게 부풀어 오르며, 거대한 바퀴가 되어 땅을 헤집었다.
몸이 찢겨나가는 고통에, 사탄은 다물었던 입술을 서서히 위로 끌어당겼다.
점점 커지는 눈과 축소하는 동공.
붉은 머리카락이 강기의 폭풍에 사정없이 휘날린다.
“이런 것도 좋지이이이!!”
콰아아아앙!!
흑륜이 그를 사정없이 갈아 버렸다.
뻥!!
그와 동시에, 공기가 폭발했다.
흑륜의 절반이 그대로 소멸했다.
박현수는 흩어지는 강기를 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흩어지는 강기들이 크고 작은 구체로 뭉쳤다.
검지를 아래로 떨구자, 모든 루천이 사탄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폭발을 일으켰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폭발이었다.
사탄은 끊임없는 강기의 폭발에 웃으며 그사이를 빠져나왔다.
수십 개의 루천이 짝을 이루어 선을 그렸다.
사탄의 몸뚱이에 수많은 구멍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구멍을 관통한 강기의 선은 한 줄기의 번개가 되었다.
꽈르릉!!
사탄의 사지가 쭉쭉 펴졌다.
감전 현상이었다.
피부가 검게 탔다.
그 위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푸-!”
사탄이 숨을 내뱉었다.
검은 연기가 만화처럼 튀어나왔다.
“짜릿해.”
웬만한 초월자라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강기의 폭격이었다.
나름 신경 쓴 공격이었다.
자신 있는 강기공을 연달아 퍼부었다.
하지만, 사탄에겐 고작 짜릿한 정도였다.
과연 마왕은 마왕이었다.
‘알고 있었잖아.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거.’
천마신공도 극성으로 펼치지 않았다.
‘정복의 힘’도 쓰지 않았다.
한 자릿수 천마들의 비전도 쓰지 않았다.
각성, 의념, 사상 붕괴도 사용하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방금은 몸풀기 정도였다.
“제대로 해봐, 박현수.”
사탄이 즐겁다는 얼굴로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천마신공.’
흑강기에 서서히 별빛이 담겼다.
그것은 유유히 흐르는 물처럼 점점 번져 가더니, 어느샌가 아름다운 은하수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화르륵-!
이마에 불꽃이 튀며 정복의 문장이 떠올랐다.
“호오.”
사탄이 흥미로운 목소리를 내었다.
“재밌는 걸 가지고 있구나?”
그렇게 말한 사탄은 오른손등을 들어 보였다.
거기엔 정복의 문장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새빨간 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오직 마왕만이 가질 수 있는 문장.
데몬 타투(Demon Tattoo).
“마왕도 아니면서, 어째서?”
“궁금해?”
박현수는 호신강기를 어느 때보다 단단하게 둘렀다.
“날 쓰러트려 봐. 그럼 알려 줄지도 모르지.”
“하하. 퀘스트라.”
사탄이 못 말리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메마른 얼굴로 박현수를 쳐다봤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 짧은 순간에 살기가 이 지역 전체에 깔렸다.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마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그때가 떠오를 정도야.’
세피로트가 멸망하던 날.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느껴졌던 남자.
정복의 마왕, 오베르크.
지금은 자신의 심상 세계에 봉인되어 있지만, 그 힘은 초월종 중에서도 강하다고 정평 난 천사들의 세계를 멸망시킬 정도였다.
사탄에게서 그와 비슷한 냄새가 났다.
“재밌는 놀이가 될 것 같아.”
그가 손을 털자 검붉은 창 한 자루가 쥐어졌다.
“놀이라.”
박현수는 손에 감은 붕대를 더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네가 진심으로 울상 짓는 표정이 보고 싶어졌다.”
마지막으로 붕대를 잡아당긴 순간-
쿵-!
두 사람의 주먹이 충돌했다.
* * *
루치엘은 멀리서 박현수와 사탄의 공방을 지켜보고 있었다.
눈으로 좇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다.
공간이 흔들리는 것으로만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충돌이 이어질 때마다 피부가 저릿저릿 울렸다.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벌어졌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싸우기엔, 둘의 힘의 크기가 상상을 초월했다.
세피로트의 관리자였던 천사장이 나서도 저들에게 상대나 될 수 있을까?
루치엘은 아니라고 호언장담할 수 있었다.
‘진짜 신이라도 되려는 거냐?’
탈각을 통해 신적 반열에 올라 초월자가 된 존재들은 대부분 행성 혹은 차원의 신이 되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진정한 신’은 아니었다.
그저 관리자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신이란 무엇인가.
루치엘이 그걸 알 리 없었다.
그저 저 둘의 강함에 도취했을 뿐이었다.
쩌엉-!
창과 다리가 부딪혔다.
풍경이 노랗게 물들었다.
박현수는 다리를 거두며 오른팔을 출수했다.
창이 뱀처럼 휘었다.
창극이 주먹을 찔렀다.
그러나 호신강기를 뚫지 못했다.
사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생각보다 꽤 하는구나?”
박현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호신강기가 뚫리지만 않았을 뿐, 충격은 팔 전체에 전해졌다.
뼈와 신경과 근육이 모두 파괴되는 느낌이었다.
왼팔을 뻗어 일장을 펼쳤다.
타천이 사탄의 머리를 노렸다.
붉은 막이 튀어나와 손바닥을 가로막았다.
쩡-!
막의 표면이 물결처럼 일렁였다.
“충격이 대단한걸?”
샤아악!!
샥!
붉은 막의 일렁임이 멈추자 좌우 위아래에서 독사가 튀어나왔다.
하나같이 영화에서 보던 아나콘다보다 10배는 거대했다.
네 마리의 독사가 박현수를 물어뜯기 위해 독니를 바짝 세웠다.
“받은 충격에 비례해서 거대한 독사가 소환되거든.”
사탄이 얄밉게 웃었다.
누가 선악과의 뱀이 아니랄까 봐.
박현수는 놈과 거리를 벌렸다.
뱀들이 몸을 구불거리며 매섭게 돌진해 왔다.
두 손을 합장했다.
은하수가 둥글게 뭉치며 바람을 넣은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점점 거대해지는 은하수는 서서히 길어지더니, 네 마리의 뱀을 합친 것보다 더 커졌다.
므오오오오오오오-!
끄트머리가 갈라지며 거친 울음을 토해냈다.
천마신공으로 만들어진 고래가 모든 뱀을 집어삼켰다.
우드득-!
안에서 살벌한 소리가 들렸다.
사탄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박현수가 팔을 휘젓자, 강기가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그 안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의 뱀들을 먹어 치웠구나.”
사탄은 코피를 흘렸다.
네 마리의 뱀은 그의 일부였다.
일부를 잃었으니, 그에게 상처가 나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팔등으로 대충 피를 닦았다.
“점점 더 재밌어져.”
“그럼 더 열심히 해봐.”
어느새 다가온 박현수가 사탄의 가슴을 뒤돌려 찼다.
빠르게 쫓아가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떨어지려는 걸 머리채를 붙잡고 끌어당겼다.
팔꿈치로 광대를 함몰시켰다.
주먹으로 이빨을 모두 박살 내고, 눈덩이를 사정없이 찍었다.
한 손으로 머리를 잡고 바깥쪽으로 잡아당겨, 다리로 목을 후려쳤다.
사탄은 저항하지 않았다.
눈으로 박현수의 공격을 하나하나 응시했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머리카락을 뭉텅이로 뽑아 버렸다.
발꿈치로 그곳을 내려찍었다.
피융-!
쾅!!
탄환처럼 빠르게 땅으로 떨어졌다.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박현수는 손을 뻗어 강기탄을 사정없이 갈겼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강-!
폭발 위로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나며 먼지는 더욱 자욱하게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마지막이다.”
손을 위로 뻗었다.
단전이 꿈틀거리며 내공이 기혈을 타고 맹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자연의 마나가 손안으로 몰려들었다.
크고 작은 것을 구분하지 않았다.
거대한 바다부터, 발아래 찌부러진 잡초 하나까지.
그것들이 가진 모든 힘이 박현수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좀 얼얼하네.”
사탄은 머리를 문지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역시 날 실망하게 하지 않는 녀석이라니까.”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마나 덩어리가 태양처럼 떠 있었다.
저것을 떨어트릴 속셈인가?
“저건 아무리 나라도 조금 아플 것 같은데.”
사탄이 고민하는 얼굴로 턱을 문질렀다.
그러나 그의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마나 덩어리는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크하하하하! 박현수! 네 녀석은 정말이지!!”
거대한 마나가 박현수의 몸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지구 전역에서 끌어모은 저것을 말이다!
아무리 그라도, 저딴 걸 몸에 허용했다간 과부하로 터져 죽을 것이다.
한데, 사탄은 저 상황이 흥미롭기 짝이 없었다.
“박현수는 불가능한 짓은 하지 않아.”
거대하던 마나 덩어리가 박현수의 몸으로 완전히 흡수됐다.
몸이 푸른빛으로 물들며 발광했다.
“큭.”
박현수는 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신음을 삼켰다.
이 정도면 싸게 먹히는 것이다.
본래라면 몸이 터졌어야 했다.
극성에 이른 천마신회류와 한계까지 개방한 의념 덕분이었다.
‘엄청나.’
금방이라도 기혈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그만큼 말도 안 되는 힘이 느껴졌다.
‘이 힘이라면.’
이럼에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전보단 확실히 나을 것이다.
박현수는 주먹을 꽉 움켜쥐고 빛을 사그라트렸다.
엄청난 총량 때문인지 피부에 자국이 새겨졌다.
“하하하! 박현수! 넌 정말 대단해! 내 평생 너 같은 놈은 처음이라고!”
사탄이 흥분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럴수록 박현수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주먹을 풀고 다시 부드럽게 쥐었다.
“조심해라. 나도 감당 안 되니까.”
“걱정하지 말…… 커억!”
“그러니까 조심 좀 하지.”
박현수는 사탄의 가슴을 뚫고 등 뒤로 뻗어 나온 자신의 주먹을 보았다.
“이제야 좀 표정이 볼 만하네.”
“이, 이 자식.”
“진지하게 가자고. 애들 싸움도 아닌데.”
박현수의 팔이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했다.
사탄은 쓰게 웃었다.
“훌륭해.”
빛의 기둥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