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72
훈수 두는 천마님 170편
“세계수?”
하유락에겐 생소한 이름이었다.
소설이나 영화 등 판타지 요소가 들어간 콘텐츠는 거의 즐긴 적 없었기에, 그녀는 박현수의 말에도 동그란 눈을 껌뻑거리기만 했다.
“네, 세계수요. 처음 들어 봤어요?”
“응. 처음 들어 봐.”
“한 그루만 심어도 지구는 천 년 동안 산소가 끊기지 않을 거예요.”
“……그게 진짜야?”
“우주에서 자라는 특이 식물인데, 그들은 세계수를 신의 나무라고 불러요.”
신의 나무.
루치엘의 고향이었던 세피로트도 세계수였다.
지금은 불타 없어졌지만, 세피로트는 세계수 중에서도 ‘천계’로 사용될 정도로 아주 거대했다.
이 씨앗도 언젠간 세피로트처럼 거대해질 것이다.
다름 아닌, 세피로트가 남긴 씨앗 중 하나였으니까.
‘루치엘 녀석한테 이걸 보여 줬어야 했는데.’
사탄은 그에게 세피로트의 씨앗을 얻게 해 주겠다고 유혹했었다.
그땐 나중을 기약할 수 있으니 굳이 말하지 않았다.
말할 상황도 아니었고.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말해 줄 걸 그랬다.
말할 기회는 많았다.
박현수는 쓰게 웃었다.
“갑자기 왜 그래?”
“아니에요. 아무튼, 이것만 심으면 지구는 서서히 원래 모습을 회복할 거예요.”
“정말, 넌 날 매번 놀라게 하는구나.”
하유락이 웃으며 씨앗을 받았다.
지금 지구는 황폐해지다 못해 3분의 1가량은 사용할 수 없는 땅이 되었다.
아프리카는 초토화 수준을 넘어, 군세가 사라진 지금도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게 있으면 정말, 정말로 지구는 원래 모습을 되찾는 거지?”
“모습은 다를지언정, 인류가 살아갈 근원은 되어줄 거예요.”
“그러면 됐어. 바로 가져다주고 올게!”
하유락은 곧장 지하실로 향했다.
뉴 월드의 총본부로 달려간 것이다.
박현수는 피식 웃으며 창가로 걸어갔다.
“흠.”
그는 미소를 거두고 손을 펼쳤다.
그곳에 검은 구슬이 떠올랐다.
“……사탄의 심장.”
다른 말로는 드래곤 하트.
평범한 드래곤 하트는 아니었다.
마기로 범벅이 된 마왕이자, 고룡의 심장이었다.
그만큼 엄청난 힘이 잠재되어 있었다.
섭취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커다란 힘을 손에 넣을 터.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이야.’
여기서 더 늘어나 봐야 과할 뿐이다.
과한 힘은 오히려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남을 주기에도 뭐한 게,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마왕의 마기를 감당하진 못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하유락에게 줄 생각이었다.
그녀의 힘의 근원은 드래곤이니, 잘하면 초월에 입문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직접 보니 역으로 마기에 잡아먹혀 마룡이 될 가능성이 커 보였다.
일단 사탄의 심장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만 돌아가자.”
더는 자신이 할 게 없었다.
앞으로는 지구에서 살아갈 모든 인류가 헤쳐나갈 문제였다.
옅은 바람 소리와 함께 박현수의 신형이 사라졌다.
* * *
집으로 돌아오니, 모나미가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모나미는 일주일 전, 작은 날개를 열심히 움직여 사탄과 자신이 싸우는 장소까지 날아왔다.
도착하자마자 다행이라며 엉엉 울었고 달래느라 진땀을 뺐지만, 그만큼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했다.
‘그러고 보니, 많이 컸단 말이지.’
모나미 앞에 쪼그려 앉은 박현수는 양손으로 아이의 몸을 재보았다.
확실히 엄청나게 컸다.
매일 보느라 잘 못 느꼈는데, 손대중으로 확인하니 체감이 확 되었다.
“내 새끼긴 하지만 귀엽단 말이지.”
물론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박현수는 모나미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그게 기분이 좋은지 자면서도 방실방실 웃었다.
말도 똑바로 잘하지만, 애는 애였다.
“현태한테도 가 봐야지.”
그의 동생 박현태는 현재 의식불명 상태였다.
한 번도 경험하기 어려운 걸 두 번이나 겪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저번처럼 답이 없는 상황이 아니란 점이었다.
과도한 힘의 사용으로 의식을 잃을 것뿐이었다.
어제 기의 흐름도 확인했으니, 조만간 깨어날 것이다.
“미래 하니까 생각났는데, 마레 자식은 어디서 뭘 하는 거야?”
마레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누구보다 기뻐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마레 본인이었다.
모습을 드러낼 만도 하건만, 그는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약간 서운하려고 한다.
“언젠가는 나타나겠지.”
박현수는 모나미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한산했다.
대한민국은 거의 반대편이라 전쟁의 여파가 닿지 않은 덕분이었다.
가장 높은 층에 있는 1인실 라인에 들어서자, 불빛이 들어온 방이 하나 있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오는구나.’
박현수는 병문안의 주인공을 떠올리며 크큭 웃었다.
그는 슬쩍 문에 달린 창으로 병실을 살폈다.
어깨선을 살짝 내려오는 머리카락이 보였다.
똑똑-
가볍게 문을 두드리자, 머리카락이 들썩이는 게 보였다.
“누, 누구.”
“하이.”
“오빠!”
차윤은 깜짝 놀랐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뭘 그렇게 놀라.”
“그러게요. 고작 노크인데 왜 놀랐지.”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박현수는 그녀 맞은편 자리에 대충 앉았다.
“가게는?”
“조금만 더 있다가 다시 나가야죠.”
“고생이 많네.”
“고생은 오빠들이 더 했죠.”
차윤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박현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박현수는 딱히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차윤이 자신의 행동을 깨닫곤 움찔했다.
“왜?”
“아, 아녜요.”
어색한 얼굴로 떨리는 손을 회수했다.
박현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나 없을 때 많이 쓰다듬었었나 봐?”
“네?! 그, 그럴 리가요. 하하하.”
차윤의 얼굴이 익은 사과처럼 새빨개졌다.
아니라고 할 거면 표정 관리라도 하던가.
박현수는 오랜만에 느끼는 풋풋함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옛날 생각나네.”
“옛날 생각이요?”
“그때도 너한테 부탁했었잖아. 동생 좀 봐달라고.”
그녀의 동생들을 회복시켜 주는 조건으로 박현태의 병간호를 부탁했었다.
그땐 조금 친한 샌드위치 가게 알바와 손님이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부담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간절한 상황이어서 거래는 성사됐었다.
“그게 벌써 40…… 아니, 3년 전이네.”
“그러게요. 그때는 아직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사장님이네. 차 사장!”
“하하하, 놀리지 마세요.”
“잘 부탁한다.”
“네?”
뜬금없는 박현수의 부탁에 차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박현수는 자신의 동생을 보았다.
“착한 녀석이야. 나보단 네가 더 잘 알려나? 아무튼, 어릴 때부터 나랑 다르게 착실한 놈이었어. 공부도 열심히 했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듣고. 내 말은 잘 안 듣긴 했지만, 그거야 뭐, 형제니까.”
“오빠.”
“부모님을 여의고, 친형마저 사라진 세상에서 기댈 곳은 너밖에 없었을 거야. 알아. 너한테 부담이 되었던 거. 혹시 지금도 현태가 부담이니?”
그 말에 차윤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한테 하나뿐인 사람이에요.”
“그러면 됐어.”
“오빠도 참 치사하네요. 먼저 그런 말을 꺼내고. 만약 저한테 생각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미안.”
박현수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웃었다.
“잘 부탁할게.”
“저도 잘 부탁드려요.”
박현태를 사이에 두고 미래의 아주버님과 제수씨가 손을 맞잡았다.
차윤이 민망한지 혀를 빼꼼 내밀었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어디 또 가세요?”
“그건 왜 물어봐?”
“뭔가, 그냥 그런 촉……? 멀리 가는 사람처럼 구는 것 같아서요.”
박현수는 피식 웃었다.
차윤은 그가 왜 웃는지 알지 못했다.
“그만 가 볼게.”
“벌써요?”
“의식도 없는 녀석 옆에 있어서 뭐 해?”
“그럼 제가 뭐가 돼요.”
“미래에 결혼할 사이?”
“아주버님!”
“하하하! 자연스러웠어. 그럼 갈게.”
박현수는 손만 가볍게 흔들어 주고 병실을 빠져나갔다.
차윤은 닫혀 가는 문을 바라보며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진짜 어디 가시나?”
* * *
해가 지고, 달이 떴다.
박현수는 우주선 위에서 모나미와 함께 앉아 있었다.
“시원해요.”
모나미는 눈을 감고 바람을 만끽했다.
슬슬 여름이 가고, 가을이 찾아오고 있었다.
둘 다 더위를 타지 않지만, 여름의 습함은 끔찍하게 싫어했다.
“여기 좋지?”
“네!”
모나미가 힘차게 대답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손발과 함께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박현수는 피식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은 여느 때보다도 큰 보름달이었다.
일명 슈퍼문.
살면서 여유를 가져본 적이 없어서, 슈퍼문이 뜬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제대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름답구나.’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뒤로 기울였다.
쭉 편 다리는 발만 살짝 꼬았다.
모나미가 꼼지락거리며 배 위로 올라왔다.
“헤헤.”
그러면서 방긋 웃는다.
“부녀가 여기서 뭐 해?”
“야호!”
카본이 로브를 펄럭이며 우주선 위로 올라왔다.
그뒤로 셀리가 펄쩍 뛰며 나타났다.
그녀는 카본의 등에 매미처럼 매달렸다.
“으악! 뭐 하는 거야, 기지배야!”
“야호! 야호!”
“모, 목 졸려! 숨 숨!”
카본의 낯짝이 보랏빛으로 물들자 그제야 목을 놔준 셀리였다.
그는 헉헉 거칠게 숨을 내쉬며 셀리를 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히죽 웃으며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셀리!”
그때 모나미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버럭 소리쳤다.
“으, 응?”
셀리는 울상을 지으며 모나미를 보았다.
여전히 모나미에게 약했다.
태생이 파충류를 두려워하는 종족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면 못 써!”
“미, 미앙…….”
“잘한다, 모나미. 역시 내 조카!”
“모나미가 왜 네 조카야?”
언제 옆에 왔는지 카본이 모나미를 응원하자, 박현수가 그를 쏴붙였다.
“네가 아빠면 내가 삼촌 해야 맞지! 그치, 모나미?”
“삼촌 아냐.”
모나미가 단호함에 카본이 울상을 지었다.
셀리가 꺄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모나미를 보고는 입을 틀어막았다.
정작 모나미는 가만히 있는데 말이다.
박현수는 참지 못하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다.
과거에 그러했듯 개변의 시기엔 많은 갈등이 생기겠지만, 그것은 더 큰 발전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더는 외세의 침략 같은 건 없다.
‘적어도 지구에만큼은 없게 만들 거야.’
군세와의 싸움은 완전히 끝났다.
그러나 박현수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사탄을 쓰러트린 후부터 정확히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들려온 목소리.
-현수.
박현수의 일부가 된 할리만이 그 목소리를 같이 듣는다.
그는 티를 내지 않았다.
그저 내면에서 깨어나려는 조짐을 보이는 정복의 마왕을 응시할 뿐.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는,
[우주를 물들일 것이다.]최후의 전쟁을 예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