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73
훈수 두는 천마님 171편
“이곳이 지구로군요.”
성녀는 빛으로 된 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푸른 별을 보았다.
까마득한 과거, 거대한 흐름이 시작되고, 종결된 땅.
그리고 최근에 다시 한번 거대한 흐름이 종결된 땅.
이런 외진 은하에서 두 번이나 거대한 흐름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강한 기운은 총 여섯. 이 자그만 행성에 초월자가 여섯이라니.”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한 은하에서도 초월자가 여섯인 경우는 희귀한 건 아니지만 흔하지도 않았다.
따로 행성의 관리자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한때는 존재했지만, 과거 거대한 흐름이 끝나며 지구의 관리자는 이곳을 떠났다.
“놀라운 세계예요.”
동쪽의 외지다 못해 시선조차 닿지 않는 작은 행성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두 행성은 큰 공통점을 가졌다.
둘 다 관리자가 없으며, 다수의 초월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전력 자체는 동쪽의 행성이 더 크긴 하지만.
‘단독 전력이긴 하지만요.’
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닌 인간.
이번 지구에서 발생한 거대한 흐름을 종결시킨 인간도 엄청나게 강하다지만, 그 인간은 ‘소설가’를 죽였다.
소설가가 누구인가.
제멋대로 순환에 간섭에 기존의 미래를 입맛대로 바꾸는 사상 최악의 범죄자였다.
초월자로서의 격도 엄청나게 높은 탓에 우주 경찰 코스모스도 그를 함부로 잡을 수 없었다.
‘궁금하네요. 도대체 그 인간은 어떻게 소설가를 죽였고, 또 어디서 죽였는지.’
소설가가 죽은 것은 코스모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코스모스는 자신들이 지정한 범죄자의 생사를 알 수 있었는데, 살해당했다면 누구에게 살해당했는지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죽은 장소를 아는 건 불가능했다.
소설가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자취를 감춘 범죄자였다.
코스모스에서도 추적하려고 애를 썼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 모든 게 최후의 흐름으로 가는 여정인 걸까요?’
성녀는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모시는 신은 광활한 우주에 순환을 만들어 낸 라베녹스다.
흐름 역시 순환의 일부라면, 과연 라베녹스께서는 무엇을 바라시는 걸까?
오랜 삶을 살아왔지만, 그분의 뜻이 이해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 보면 알겠지요.”
과연 이번 흐름을 종결한 주인공은 어떤 자일지, 그녀의 눈이라면 모든 걸 꿰뚫어 볼 수 있으리라.
성녀의 몸이 빛에 휩싸였다.
* * *
아르망은 신기하다는 듯한 눈으로 세계수의 씨앗을 보았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하나만 심으면 진짜 지구가 활력을 되찾는다고?”
“현수 말이니까 사실일 거야.”
하유락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고개를 대답했다.
준 건 박현수인데 어째서 그녀가 저런 얼굴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갔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프리카에 심으면 딱이겠어.”
칭란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지구에서 가장 피해가 큰 대륙.
그곳은 사람은커녕, 다른 동식물도 살아갈 수 없는 땅이 되어 버렸다.
인류는 가능성 넘치는 광활한 대지를 잃게 된 것이니 엄청난 손해였다.
그곳에 씨앗을 심는다면?
“박현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프리카는 세상에서 가장 활력이 넘치는 땅이 될 거야.”
“아프리카 말곤 딱히 심을 곳도 없다.”
구석 벽에 기대고 있던 학센이 특유의 저음으로 파고들었다.
타케시가 피식 웃었다.
“너도 이리 와서 회의에 제대로 끼지 그래?”
“이곳이 편하다.”
“부끄러워하기는.”
“누가 부끄러워해!”
“부끄러우니까 괜히 버럭하지.”
칭란의 놀림에 학센이 발끈했지만, 그렇다고 회의 좌석에 앉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5년 동안 가장 많이 바뀐 사람은 학센이었지만, 특유의 성격까지는 바뀌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들 모두 알고 있었기에 다시 회의를 진행했다.
“그럼 세계수의 씨앗은 아프리카에 심는 거로 하지.”
“도시 계획도 확실하게 짜야겠어.”
“기존에 있던 국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분야에 전문가들이 있으니, 그 사람들을 믿어 봐야지.”
“할 게 많겠어.”
“우린 아마도 죽을 때까지 바쁠 거야.”
평화가 찾아왔다.
절망이 끊이지 않던 세상에.
이 시대의 주역들은 아직도 그런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많은 갈등이 있을 것이다.
분열이 생길 수도 있다.
때론 화합도 하겠지.
그래도 상관없다.
모든 건 역사가 말해 주고 있다.
과거 그러했듯 미래 역시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저, 흐름이 이끄는 대로 그곳에 몸을 맡길 뿐이었다.
* * *
박현수는 이제 곧 변화할 세상을 상상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가 만들어 낸 평화.
그가 만들어 낸 안정.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두 눈으로 보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어려울 것 같았다.
사탄을 쓰러트리고 잠들었다.
잠에서 깼을 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최후의 흐름을 깨달은 존재여.”
박현수는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하얀 천을 두르고 있는 여자가 두 손을 맞잡은 채 서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전 라베녹스 교의 성녀 아이센트입니다.”
라베녹스 교.
X를 교단의 상징으로 삼는 종교.
박현수도 그곳을 알고 있었다.
우주를 활보해 봤다면 모를 수가 없었다.
라베녹스 교는 우주에서 가장 거대했으니까.
라베녹스 교는 가장 강성한 세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어떤 우주보다 강력했다.
킹의 군세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니.
절대 적으로 둬선 안 되는 세력이 바로 라베녹스 교였다.
그곳의 성녀라면, 엄청나게 높은 사람이었다.
“라베녹스의 성녀가 이 외딴 행성에까지 찾아온 이유가 뭐지?”
“알고 있잖아요?”
그녀의 감겼던 눈이 떠졌다.
눈 전체가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다.
4명의 기수 중 홍일점인 바이스는 심안을 가지고 있었다.
저 눈 역시 심안이었다.
그러나 세상이라는 게 그러하듯 심안에도 수준이란 게 있었다.
바이스가 가진 심안은 절대 약한 게 아니었다.
아이작의 심검에 막혔지만, 그것은 아이작의 심검이 뛰어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센트가 가진 심안은 격이 달랐다.
“그 눈은 감아 줬으면 싶은데.”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니라서.”
아무래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발동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성녀 자리를 꿰찼다는 것이 저 심안의 수준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내 속이 다 까발려지는 건 안 좋아하는데.”
“겸손하시네요. 놀란 건 바로 저랍니다. 제 눈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있어요.”
아이센트는 티를 내지 않을 뿐 속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그녀의 심안은 박현수의 생각처럼 우주에서 손에 꼽히는 수준이었다.
대종교의 성녀가 된 것도 심안의 지분이 5할은 되었다.
한데, 박현수의 속을 들여다보는 건 어려웠다.
‘아무래도 좋아요.’
한 흐름을 종결시킨 자이다.
오히려 더 믿음직스러웠다.
그만큼 더 강하다는 증거니까 말이다.
“이제 이유를 말해 주면 안 될까?”
“굳이 제 입으로 듣고 싶은 건가요?”
“정확한 사정을 알고 있으니까.”
“아하.”
아이센트가 미소 지었다.
핑크빛 입술이 아름답게 반짝였다.
“적 세계가 본 우주를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어요.”
적(赤) 세계.
예전에 마레를 통해 한 번 들은 적 있었다.
‘혼돈의 마왕’이 지배하는 우주.
기존의 우주는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의 대은하로 나뉘어 각 지배자의 관리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통상의 우주일 뿐, 우주 바깥의 우주 역시 존재했다.
그곳이 바로 적 세계였다.
“혼돈의 마왕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군.”
“그에 대해선 알고 있나요?”
“어느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어.”
“그렇다면 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고 있겠군요.”
우주 전체가 그의 손아귀에 떨어질 뻔했다.
그것만으로 설명은 충분했다.
“강한 힘, 뛰어난 통솔력, 위대한 카리스마. 모든 것을 고루 갖춘 괴물.”
아이센트는 그 당시엔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성녀는 이전 성녀의 기억을 공유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혼돈의 마왕을 잘 알고 있었다.
“한때 ‘진정한 신’에 가장 근접했던 사상 최강 최악의 마왕. 그가 바로 혼돈의 마왕 몰티입니다.”
“몰티…… 이름은 생각보다 평범하잖아?”
“이름만이요. 이름을 빼곤 모든 게 압도적인 공포예요.”
그런 존재가 다시 본 우주를 노린다.
성녀가 박현수를 찾아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저와 함께 가 주세요.”
“…….”
“혼돈의 마왕을 다시 적 세계로 쫓아내는 데 힘을 보태 주세요.”
박현수는 몸을 돌려 서울 시내를 보았다.
안정을 되찾아가는 세상.
혼돈의 마왕을 그대로 두면 이제 막 평화를 되찾은 세계는 다시 혼란으로 물들고 말 것이다.
어떻게 얻어 낸 평화인가.
“커다란 흐름을 종결지은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가는 건 나만 하도록 하지.”
“네?”
“시치미 떼지 마. 다른 녀석들도 포섭할 생각이었잖아.”
“……혹시 심안을 가지셨나요?”
“그딴 게 없어도 충분히 알 수 있어.”
지구엔 박현수를 제외해도 5명의 초월자가 있었다.
아무리 격이 낮은 초월자라도 자신만의 행성을 가질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이센트가 그들을 포기할 리 없었다.
“으음…….”
그녀는 실제로 검지를 입술을 문지르며 고민에 빠졌다.
혼돈의 마왕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쓰러트릴까 말까 한 상대였다.
또한, 적이 혼돈의 마왕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적 세계에 존재하는 마왕군은 추정하기로도 대은하 두 개와 맞먹었다.
초월자는 또 얼마나 보유하고 있을지 상상만 해도 두렵다.
한데 다섯 명의 초월자를 포기하라고?
아무리 박현수가 대단하다지만, 전 우주의 미래가 걸려 있는 중대한 사항이었다.
그때였다.
“우리의 안위를 왜 네 마음대로 결정하려고 들어?”
은은한 달의 마력이 아이센트의 피부를 자극했다.
“나도 간다.”
기분 나쁜 마기와 날 선 기운도 느껴졌다.
“오랜만에 아빠 보고 싶어!”
레비니안의 뛰어난 활력까지.
아이센트는 고개만 슬쩍 뒤로 돌렸다.
그곳엔 녹색 스태프를 어깨에 지고 있는 마법사와 마검을 등에 멘 검사, 그리고 어린 레비니안이 서 있었다.
박현수는 그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여긴 왜 왔어?”
“너야말로 누구 맘대로 우리의 안위를 정하느냐고.”
“다 너희를 생각해서…….”
“네가 왜 우리를 생각하지?”
아이작이 한쪽 눈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현수, 내 걱정해 주는 거야? 응? 응?”
셀리는 되레 자신을 걱정해 줬냐며 기뻐했다.
카본과 아이작이 한심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당연하지만 그녀가 둘의 눈치를 살필 성격은 아니었다.
“하아.”
박현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안 쉬고 싶어도 안 쉴 수가 없었다.
카본은 괜히 콧방귀를 뀌며 아이센트를 보았다.
“이봐, 성녀.”
“네?”
“혼돈의 마왕이 언제쯤 침공해 올지 알고 있나?”
“아마도 한 달 내로 침공해 올 거예요.”
“너희 측 전력은 어떻게 되는데?”
“각 은하의 지배자들이 모든 전력을 이끌 겁니다.”
과연 우주의 존망이 걸린 만큼 스케일이 상상을 초월했다.
카본이 히죽 웃었다.
“그 정도면 아주 재미있겠어.”
“카본!”
“시끄러워. 내 거처는 내가 정해. 솔직히 지금의 지구는 따분해.”
고작 일주일밖에 안 지났지만, 평화는 그에게 별로 즐겁지 않았다.
“나도 지금보다 강한 힘을 손에 넣고 싶다. 그러려면 힘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전장이 필요해.”
심검의 경지가 오르며 더 많은 가능성을 느낀 그였다.
지구에선 분명 한계가 존재했다.
그러니, 지구를 넘어 우주를 겪어야 했다.
혼돈의 마왕과의 전쟁이라면 아주 좋은 성장의 발판이 될 것이다.
셀리는…….
“가자!”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네놈들…….”
“보호자보단 당사자들의 의사를 따르는 게 맞지 않을까요?”
아이센트가 이 틈을 노리고 웃으며 말했다.
뒤에서 카본이 ‘누가 보호자냐!’라고 따졌지만, 그녀는 들은 체하지 않았다.
“……다들 죽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거다.”
“그건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거든.”
“나 역시…… 죽은 그놈을 위해서라도.”
아이작은 루치엘을 떠올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서로에게 가장 훌륭한 라이벌이었다.
그를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강해질 생각이었다.
셀리는…….
“히히.”
이번에도 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정 났군요. 나머지 둘에겐 접근하지 않겠습니다. 지구에도 수호자가 있긴 해야 할 테니까요.”
“그것참 눈물 나게 고맙군.”
“출발은 언제로 할까요?”
“……일주일 후로 하지.”
“그럼 일주일 후에 뵙겠습니다.”
아이센트는 빛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박현수는 이마를 긁으며 동료들을 보았다.
뭐가 좋은지 그들은 웃고 있었다.
“귀찮은 자식들.”
“남이사.”
“배고프군.”
“나도 밥! 밥 먹을래!”
세 남자는 신이 나서 펄쩍 뛰는 셀리를 보며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