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74
훈수 두는 천마님 172편
“어디 가려고?”
카본은 읽던 잡지를 내려놓으며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그는 나갈 채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누굴 좀 만나고 오려고.”
“네가 만날 사람도 있어?”
“없지는 않지.”
앞으로 일주일 후면 지구를 떠난다.
언제 돌아올지 몰랐다.
그곳에서 죽을 수도 있고, 살아서 돌아와도 과연 지구의 시간이 그대로일지 확신할 수 없었다.
박현수는 우주에서 40년을 보냈다지만, 지구는 고작 2년밖에 흐르지 않았다.
그건 그가 지냈던 우주의 시간대가 지구보다 상대적으로 빨랐을 뿐이었다.
모든 곳이 그럴 리 없으니, 분명 한참 더디게 가는 세계도 있을 터.
만약 그런 곳을 잠깐이라도 스친다면, 지구의 시간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흘러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구로 돌아오더라도 그리운 얼굴들은 보지 못할 것이다.
‘안 봐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봐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마스터한테 들러야겠지.’
로벤의 묘지를 찾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가기 싫어서 안 간 건 아니었다.
그냥 고집이었다.
복수를 완수할 때까진 찾아가지 않겠다는 고집.
다행히 고집은 고집으로 끝나지 않았다.
자신이 킹을 죽이지 못한 게 아쉽지만, 이제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다녀오겠다.”
“그래라.”
카본은 다시 잡지를 집었다.
커피를 홀짝이며 패션 잡지에 다시 집중했다.
* * *
아르망은 미친 듯이 바빴다.
지금 자리를 던져 놓고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바빴다.
그러나 이 자리를 던져 버리면 진행 중인 프로젝트 등이 모두 꼬여 버릴 게 분명해서 그럴 수 없었다.
“……피곤해 미치겠군.”
S급 헌터인 아르망이었지만, 닷새 정도 잠을 자지 못했더니 미칠 지경이었다.
각성자든 비각성자든, 잠을 못 자면 나약해지긴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빨리 끝내자.”
당장 급한 것은 신도시 프로젝트.
세계수는 대단한 식물이었다.
괜히 신의 나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그저 심었을 뿐인데 드넓은 아프리카 대륙에 생기가 차올랐다.
생명을 허락하지 않았던 땅도 이전의 모습을 빠르게 되찾아갔다.
아르망은 그곳에 신도시를 추진하며, 새로운 이주민을 찾고 있었다.
많은 전문가가 함께하긴 하지만 최종 결정은 그가 하는 것.
“이 정도 서류면 벽을 쌓아도 될 것 같단 말이지.”
아르망은 한숨을 쉬며, 염동력으로 가장 위에 있는 서류를 내려놓았다.
볼펜을 딸깍이며 서류에 적힌 내용을 빠르게 훑는다.
오늘 바쁘게 일하면 서류의 3분의 1 정도는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많이 바쁜가?”
그때,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아르망을 불렀다.
아르망은 눈을 크게 뜨며 서류 옆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이작!”
아이작은 자연스럽게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
항상 갑옷만 입고 있었는데, 평상복을 입으니 사람이 달라 보였다.
“바쁘면 가고.”
“그런 말은 보통 앉으면서 하지 않아.”
아르망은 펜을 내려놓으며 그가 있는 쪽을 걸어갔다.
“어쩐 일이냐?”
“그냥. 얼굴 한 번은 봐야 할 것 같아서.”
“네가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뭐.”
무뚝뚝한 얼굴로 말하는 아이작의 표정은 꽤 가관이라고, 아르망은 생각했다.
“그래서 요즘 어때?”
“매일 수련하고 있다.”
“수련?”
“응.”
혼돈의 마왕군과 우주의 존망을 건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지구에서 벌어진 전쟁과는 궤를 달리할 것이 분명했다.
하루하루 게으르지 않고 수련에 매진해도 시간이 모자랐다.
“전쟁도 다 끝났는데 무슨 수련이야? 아니, 수련하는 건 나쁘지 않은데 좀 쉬어도 되지 않아?”
아르망 입장에선 전쟁이 끝난 지 고작 일주일이었다.
자신이야, 위치가 위치이니 쉴 수 없지만, 아이작은 원하는 만큼 휴식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아이작을 비롯한 박현수 일행에겐 최고 훈장이 지급될 예정이었다.
그들이야말로 세계를 구한 영웅이었으니까.
“난 지구를 떠난다.”
“……엥?”
“말 그대로다. 지구를 떠날 거다.”
혼돈의 마왕군과의 전쟁은 언급하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다.
하지만 우주로 떠난다는 사실까지 말하지 말라고 하진 않았다.
물론, 아르망 입장에선 그조차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구를 떠난다는 말이…… 당최 무슨 말이냐?”
“어렵게 말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지, 진짜로 지구를 떠난다고?”
“그렇게 됐다.”
아르망은 뜨악한 얼굴로 아이작을 보았다.
저런 말을 무슨 전날 먹은 저녁 리스트 말하듯 말한단 말인가?
“떠난다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니까. 그래서 한 번 보러 왔다.”
“……굳이 지구를 떠나야 하는 거냐?”
“그렇게 됐다.”
“네 선택이라면 말리진 않겠다만.”
아이작은 단호해 보였다.
그를 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안데르센한테도 인사하고 가라.”
“그럴 생각이다. 한때 내 선생이었으니까.”
그에게 상식을 배웠다.
물론, 안데르센 자체부터가 상식과 거리가 먼 인물이긴 하지만.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니었다.
아니, 자신이 일방적으로 안데르센을 싫어했다.
그땐 퉁명스럽고 차가운 그가 살짝 무서웠다.
지금은 어떠려나.
아이작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
“영영 헤어지는 사람처럼 말하지 마.”
“그럼.”
“아, 녀석한테도 들를 거지?”
‘녀석’이라면 한 사람밖에 없었다.
아이작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나간 뒤 아르망은 소파에 몸을 푹 뉘이며 피식 웃었다.
오래된 듯, 그러나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 * *
안데르센은 한창 실험 중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남은 군세의 우주선은 새로운 것 천지였다.
비록 과도한 폭격과 박현수가 보유한(실제로는 셀리의 우주선이다) 우주선과의 충돌로 엉망이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문명은 몇 단계나 진보할 발판을 손에 넣었다.
덕분에 안데르센도 아르망과 마찬가지로 전쟁이 끝나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안데르센과 달리 이쪽은 진심으로 즐기는 중이었다.
“지구엔 없는 물질입니다.”
“호오.”
부하 연구원이 청색 형광 물질을 보여 주자, 안데르센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계속 새로운 게 나왔다.
과학자에겐 정말 미치도록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그가 연구소 전체에 펼쳐 놓은 역장에 새로운 생체 신호가 감지되었다.
아니.
연구소 입장에선 처음일지언정, 안데르센에겐 꽤 친숙한 생체 신호였다.
“잠시.”
안데르센은 부하 연구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연구소를 나갔다.
입구엔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남자가 서 있었다.
“오랜만이군.”
“오랜만이다.”
아이작과 안데르센은 무뚝뚝한 얼굴로 몇 초간 서로를 쳐다봤다.
둘은 전쟁에서 직접 만나지 못했다.
안데르센은 지상군이었고, 아이작은 우주선을 통해 직접 내부로 침투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였는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았다.
“무슨 일로 찾아왔지?”
안데르센은 가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물었다.
급한 게 아니면 돌아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아이작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몇 년이 지나도 안데르센은 안데르센이었다.
역시 이 녀석이랑은 안 맞는다.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얼굴이나 볼까 하고 왔지.”
“떠난다?”
“일주일 후에 지구를 떠날 거다.”
“그런가.”
안데르센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망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지만, 그가 아르망처럼 반응하면 오히려 소름끼칠 것 같았다.
“이만 가지.”
더 할 말도 없기에 아이작은 금방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예상치 못한 말이 들려온 것은.
“잘 다녀와라.”
아이작이 휙 뒤를 돌아봤다.
이미 안데르센은 몸을 돌려 연구소로 들어가고 있었다.
잘 다녀와라.
“하하. 다녀온다라.”
부디.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아이작은 웃으며 마지막 목적지로 향했다.
* * *
깔끔하게 제초한 작은 묘지였다.
열 개의 비석은 최근까지 관리되고 있었는지 깨끗했다.
비석엔 공통으로 오드먼(Odman)이란 성씨가 들어가 있었다.
오드먼 가문의 작은 묘지였다.
아이작은 구석에 놓인 가장 깔끔한 비석 앞에 섰다.
그곳엔 로벤 오드먼(Robben Odman)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마스터.”
아이작은 한쪽 무릎을 꿇고 헌화를 앞에 내려놓았다.
“지금까지 못 와서 미안합니다.”
3년이나 흘러 버렸다.
도중에 갈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가지 않았을 뿐이다.
아이작은 비석을 보다가 풀 위에 편하게 앉았다.
“평화로워졌어요.”
딱딱한 말투는 서서히 풀어졌다.
“킹 역시 쓰러트렸어요. 놈의 부하들이 막강했지만, 어떻게든 끝을 볼 수 있었어요.”
오래되지 않은 기억은 추억이 되었다.
“옛날에, 기억나요? 당신이 날 처음으로 데리고 왔을 때.”
그때 아이작은 고아였다.
그냥 고아도 아니고 제대로 된 사고뭉치였다.
동네에서 말썽만 일으키고, 도둑질만 일삼는 그런 답도 없는 꼬맹이였다.
그런 자신을 구원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로벤, 바로 그였다.
“처음엔 억압받는 생활 같아서 싫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나이 차는 거의 안 나지만, 그땐 정신적으로 많이 미성숙한 상태라 매일매일 투정의 연속이었다.
로벤은 그런 자신을 혼내기도, 또는 투정을 받아 주기도 했다.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그에게 자신은 못난 자식이었다.
“……당신이 그립습니다.”
감정이 말소된 것만 같았던 아이작의 눈에서 조금씩 눈물이 흘렀다.
그리운 과거.
평화롭지 않지만, 그 당시는 자신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늦게 찾아와서 정말…… 정말 미안해요.”
아이작은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그저 울타리에 기대어 무릎을 모으고 비석을 보며 울고 또 울었다.
로벤 오드먼은.
자신의 아버지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알고 있던 사실은 이곳에 오게 됨으로써 더욱 실감 났고,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들었다.
‘괜찮다.’
아이작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다 괜찮아.’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
그것은 환청일까?
‘행복해라, 아이작.’
“아버지! 아버지!!”
아이작은 흩어지는 목소리를 붙잡기 위해 팔을 뻗었지만,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버지…….”
그날.
아이작은 보이지 않던 울타리에서 독립했다.
* * *
카본은 다리를 꼰채 우주선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떠다니는 구름은 몽글몽글 귀여웠다.
당연하지만 카본이 그런 아기자기한 감상을 가지고 있을 리 만무했다.
그냥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는 것이다.
그에겐 따로 만날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엄청 심심하네.”
셀리는 꼭 이럴 때 자리를 비웠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나갈 이유도 없는 녀석이 대체 어디를 쏘다니는 것일까?
잠깐 궁금했지만, 궁금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무리 심심하다고 해도 그녀와 노는 건 미친 짓이었다.
엉덩이가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미친 토끼 녀석.’
카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때였다.
위잉-!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뜩이나 심심했던 터라 누구보다 빠르게 입구로 튀어 나갔다.
“누구십니까?!”
“나다.”
아이작은 퀭한 얼굴로 우주선에 돌아왔다.
카본은 심심함을 달랠 수 있는 인물이 아닌 걸 확인하곤 한숨 쉬었다.
“너였냐? 빨리 왔네.”
“뭐, 그렇지.”
아이작은 자신의 방으로 터덜터덜 돌아갔다.
왠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많이 다운되어 보였다.
카본은 어깨를 으쓱이곤 다시 조종실로 향했다.
그냥 하늘 구경이나 하는 게 제일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