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75
훈수 두는 천마님 173편
바짝 선 하얀 토끼 귀가 씰룩거리며 움직였다.
마치 뭔가를 포착한 레이더처럼.
셀리는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저 멀리 보이는 동물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신기해. 신기해.”
그녀는 현재 지구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지구를 떠나기까지 남은 기간은 앞으로 일주일.
그동안 딱히 할 것도 없어서 박현수에게 허락을 구하니.
‘사고만 치지 마.’
라는 말만 남겼다.
작은 솜뭉치 같은 꼬리가 빠르게 움직였다.
현재 셀리가 보고 있는 것은 북극곰 무리!
그것도 어미로 보이는 북극곰 한 마리와 새끼 북극곰 세 마리였다.
그렇다.
그녀는 현재 북극이 와 있었다.
어떻게 왔느냐 하면, 간단했다.
달려서.
셀리에게 지구라는 작은 행성은 두 다리로 손쉽게 돌아다닐 수 있는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귀여웡!”
북극곰은 멀리서 보면 귀엽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공포 그 자체인 생물이었다.
그러나 셀리에겐 멀리서든 가까이에서든, 귀여운 생명체에 불과했다.
가서 저 보들보들한 하얀 털을 만져 보고 싶었다.
자신의 털도 하얗지만, 푹신푹신한 자신의 털과 달리 매끈해 보여 느낌이 좋을 것 같았다.
셀리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야만 하는 성격.
“히히.”
셀리의 눈에서 빛이 번뜩였다.
그녀는 숨어 있는 걸 그만두고 쏜살같이 북극곰 무리에게 달려갔다.
크어?
어미 북극곰은 갑자기 달려오는 셀리를 보며 크게 놀랐다.
새끼들도 엉덩방아를 찧으며 빠르게 어미 뒤로 몸을 숨겼다.
“너흰 이름이 뭐닝?!”
셀리는 펄쩍 뛰어 다가가곤, 말도 못 하는 북극곰들에게 이름을 물었다.
어미는 화들짝 놀라며 커다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과연 손에 꼽을 만한 맹수!
3m에 육박하는 신장과 700kg을 넘어가는 몸무게는 웬만한 헌터도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셀리는 상대적으로 따지지 않아도 왜소한 신체를 지녔다.
그러나 북극곰은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키잉…….
하지만, 자신이 진다면 새끼들은?
어미의 눈이 표독스러워졌다.
만약 지면 몰살이었다.
어미는 아래로 떨어지는 셀리를 향해 전력을 다해 앞다리를 휘둘렀다.
쇄애애액-!!
강풍이 불어닥칠 정도의 위력!
평범한 사람이라면 머리가 떨어져 나갈 것이고, 헌터라도 C급 이하라면 죽거나 혹은 중상을 면치 못할 세기였다.
성체 북극곰은 과거 지구에서 최고 수준의 포식자였던 만큼, 지금에 이르러서도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거대하고 강력한 북극곰의 앞발은 셀리의 머리를 정통으로 후려쳤다.
빡-!
시원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
제대로 들어갔다.
어미는 승리를 확신했다.
“히히.”
그 웃음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폭신폭신해.”
앞발을 뗀 어미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눈밭으로 가볍게 착지한 셀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고 있었다.
북극곰의 앞발은 어느 정도 편차가 있지만, 300~600kg의 위력을 담고 있었다.
어미 북극곰은 북극곰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개체.
아니, 최상위 수준이 아니라, 북극곰 수가 많을 때도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러나, 어미는 확신했다.
자신과 새끼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저절로 눈이 감긴 것은 그런 까닭일까?
“와아- 귀여워!!”
밝은 목소리였다.
살기 한 톨 담기지 않은 그런 목소리.
어미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아래를 보자 긴 귀를 쫑긋거리는 짐승은 자신의 새끼들을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컹?
“히히. 네가 얘네 엄마지?”
어미는 셀리의 말을 못 알아듣지만, 무슨 뜻인지는 얼추 알 것 같았다.
천천히 앞발을 땅에 대고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새끼들은 셀리의 손길이 좋은지, 벌러덩 누워서 팔에 매달리고 있었다.
“너흰 이름이 뭐야?”
큐웅!
끠잉!
“그렇구낭.”
알아듣지 못했으면서 알아듣는 척하는 뻔뻔함!
셀리는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다가 옆을 돌아봤다.
어미가 몸을 움찔했다.
“난 그만 갈겡.”
셀리는 새끼들 만지는 걸 그만두고 벌떡 일어나 몸을 돌렸다.
이번엔 저 멀리 하얀 털을 가진 여우가 보였다.
그녀의 눈이 또다시 번쩍였다.
“우왕!”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멀어졌다.
어미는 멀어지는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당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어미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새끼들은 그런 어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들끼리 뒹굴며 놀고 있었다.
* * *
셀리는 북극여우를 목도리처럼 두르고 눈밭을 활보하고 있었다.
이곳은 왠지 고향 생각나서 어쩐지 신이 났다.
“흐흐흥~ 흐흐흐흥~!”
절로 콧노래가 나올 정도!
“와!”
그러다 눈으로 하얗게 물든 나무를 발견했다.
극지방이다 보니, 중심부를 제외하면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든 곳이 바로 북극이었다.
셀리는 다람쥐처럼 나무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끼이!
엄청난 속도에 북극여우가 소리쳤다.
“미안, 미안. 헤헤.”
셀리는 혀를 빼꼼 내밀며 사과했지만, 북극여우는 화가 잔뜩 난 모양이었다.
캬악!
“미안…….”
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여우를 놔줬다.
쉽게 자유의 몸이 될 줄 몰랐던 여우는 멍하니 그녀를 보다가 총총걸음으로 점점 멀어졌다.
셀리가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잘 가~”
셀리는 여우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마저 나무를 올라갔다.
“시원행.”
피부가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었지만, 그녀에겐 선선한 정도였다.
그곳에서 한참 동안 새하얀 동토와 광활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생각 자체를 많이 안 하는 그녀였지만, 가만히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면 의외로 사색을 즐기는 걸 좋아했다.
지구는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군세의 침공으로 많이 황폐해졌지만, 황폐해져도 이 정도로 아름다운 푸른빛을 내뿜는다.
많은 별을 돌아다니진 않았지만, 레비니안의 본 행성 ‘레빗토’에는 여러 은하의 정보가 모여 있었다.
셀리는 옛날부터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전부는 아니라도 꽤 많은 문서를 읽었기에 다른 우주를 알고 있었다.
지구는 그중에서도 단연코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셀리가 환하게 웃었다.
만약 자신들이 지켜내지 못했다면 이 푸른 땅은 잿빛에 물들어 아름다움을 잃었을 터.
그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고작 몇 달 밖에 있지 않았지만, 가능하다면 이곳에 평생 살고 싶을 만큼 지구를 좋아하게 되었다.
“곧 떠나네……. 히잉.”
일주일 후면 지구를 떠나야 했다.
그 생각이 들자, 기분이 울적해졌다.
앞으로 갈 곳은 끔찍한 전쟁터.
그것도 우주의 존망이 걸린 아주 중요한 전쟁이었다.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지독한 악취가 풍겨올 것이다.
끔찍한 소음이 가득할 것이다.
누군가를 죽일 것이다.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전쟁 싫엉.”
뻣뻣하던 귀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
다시 지구에 놀러 올 수 있을까?
아빠랑 엄마한테도 지구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싶었다.
두 분도 분명 좋아할 거다.
“전쟁이 끝나면 꼭.”
살아남는다면, 이곳으로 가족여행을 올 것이다.
그날을 상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셀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동토에 자란 한 그루 메마른 나무 위에, 아름다운 토끼 한 마리가 저물어 가는 석양을 바라보는 장면은 무척 아름다웠다.
* * *
이민아는 녹초가 된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그녀는 옷을 대충 벗어 던지고 목욕부터 했다.
욕조에 물을 받고 그 안에 몸을 뉘었다.
“으으……. 살 것 같아.”
뜨뜻한 물에 들어가는 게 대체 며칠만인지 모르겠다.
살 전체가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그 정도로, 피로가 한계치까지 쌓여 있었다.
“S급이 된 게 그리 좋은 건 아니구나.”
체력의 한계치가 올라가니 정말 쉴 틈 없이 일했다.
육체는 강해졌을지언정, 그녀의 정신은 예전이랑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하아……. 한 네 시간은 잘 수 있으려나.”
한 시간만 자도 육체의 피로는 다 풀린다.
문제는 정신적 피로였다.
지금 상태로 보면, 최소 하루를 통째로 쉬어도 모자랐다.
콱 퇴사해 버릴까, 라는 생각은 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현재 그녀의 위치가 생각보다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하유락이 이 순간에도 일하고 있다.
‘언니는 정말 괴물이야.’
일에 미친 사람이라도 그 수준으로는 못할 것이다.
밥은 제때 먹으면서 일하고 있겠지?
괜한 걱정이 들었다.
“현수 씨는 뭐 하고 있으려나.”
그녀는 다리를 모으고 몸을 뒤로 서서히 뉘었다.
부글부글-!
물속으로 입까지 가라앉자 거품이 떠올랐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이젠 가망이 없다.
그런데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자신한테 부족한 건 뭐였을까.
아니, 애당초 그런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상대가 유락 언니니까…….’
질투가 안 난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상대가 그녀였기에 체념해야만 했다.
외모로 보나, 몸매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그녀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사실 이민아도 하유락 못지않은 미인에다가 꿇리지 않는 몸매를 가졌지만, 그녀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부족했다.
그걸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에휴.”
머리를 털었다.
박현수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왔다.
이민아는 마저 목욕을 끝내고 거실로 나왔다.
잠옷을 주워입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잠이나 자자.’
지금 급한 건 박현수에 관한 생각이 아니라 수면이었다.
자고 일어나서 다시 일을 나가야 했다.
차라리 일할 때가 나았다.
일할 때는 너무 바빠서 이런 잡생각은 하지도 못한다.
그때, 지이잉- 하고 핸드폰이 울렸다.
“누구야?”
전화도 아니고 문자라면 본부 쪽은 아닐 것이다.
급한 일을 문자로 보내지는 않으니까.
핸드폰을 켜서 문자를 확인했다.
쿵쾅-!
심장이 마구마구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잠이 싹 달아나는 걸 느꼈다.
뜬금없이 그에게서 왜 문자가 왔을까?
혹시 일 때문에 도움 같은 게 필요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현재 박현수는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들었다.
마지막으로 연락했던 게 언제였는지는 기억도 안 났다.
이민아는 침대에 걸터앉아 뭐라고 답장을 보내야 할지 고민했다.
“하하. 무슨 풋풋하던 20대 초반도 아니고.”
벌써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그렇다고 경험이 많냐면은…….
‘그건 아니지만.’
솔직히 모태 솔로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대로 된 연애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괜히 볼이 붉어졌다.
왠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뺨을 짝-! 때렸다.
“으…….”
뺨이 얼얼하다.
너무 세게 때렸다.
그녀는 입꼬리를 축 내리다가, 그럴 때가 아니라며 바로 답장을 보냈다.
“예전 기억?”
무슨 말을 했던가?
한참을 고민했지만 떠오르는 건 없었다.
“아!”
기억났다.
차윤 씨였나.
그녀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 주었더니, 분명 그런 말을 했었다.
그를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었다.
“현수 씨가 완전 신인이었던 시절.”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구나.
자신은 까먹고 있었는데.
왠지 자신을 신경 써 주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메뉴 따위,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를 사석에서 만날 수 있단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고 하고 싶지만…….
[이민아 : 내일 스케줄 확인하고 문자 드릴게요!!]그녀는 생각보다 일에 미친 사람이었다.
[박현수 : 일주일 안으로 일정 부탁드립니다(웃는 이모티콘)]“일주일?”
왜 일주일 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신이 나서.
“아악!!”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