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81
훈수 두는 천마님 180편
박현수는 뜬금없는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분명 뜨끈한 욕탕 안에서 여독을 풀고 있었다.
한데, 눈앞에 어째서 정복의 마왕이 있단 말인가?
그것도 예전처럼 몸을 말고 자는 모습도 아닌, 어디서 났는지 의자 하나를 구해 그곳에 앉아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보다시피, 네가 나와 독대를 하고 있다만.]
“그러니까 왜 내가 이곳에 있냐고 묻는 건데.”
[내가 불렀으니까.]
뻔뻔한 마왕의 말에 박현수는 뭐라 받아치려다가 한숨으로 마무리했다.
“몸은 완전히 깨어난 거냐?”
[그 역시 보다시피.]
정복의 마왕이 양팔을 느슨하게 들며 여유를 보였다.
‘그때인가.’
루치엘의 희생으로 이성의 끈이 끊어졌을 때, 자신의 몸을 지배한 것은 정복의 마왕이 가진 마기였다.
아무래도 그때 놈의 확실히 부활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을까?
그 부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딱히 마음을 읽지 않아도 이 정도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지.]
하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복의 마왕은 잠에서 깬 지 한 달여가 흐른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박현수도 부활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부활이 확인된 지금, 가장 먼저 ‘왜?’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속마음을 읽을 필요도 없이 쉽게 내릴 수 있는 추론이었다.
“내게 복수할 생각은 아닌 것 같고.”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네가 복수할 생각이었다면, 깬 직후 바로 내 몸을 차지하려고 들었을 테니까.”
그는 ‘정복’의 이명을 가진 마왕.
당연히 그의 복수는 정복이란 것에서 비롯할 터.
그 말이 정답인지, 정복의 마왕이 비릿하게 웃었다.
[어려운 말이 아니야. 애초에 내가 왜 네 몸 안에서 잠들었다고 생각하나?] “그건……”
모른다.
그냥 정신을 차렸을 때, 정복의 마왕은 자신의 몸 안에서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뿐이었다.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 반응에 정복의 마왕, 오베르크는 즐겁다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네놈의 당황한 몰골, 어찌 웃지 않고 배길쏘냐!]
박현수의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놈의 의중을 모르겠다.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조금도 예측이 안 되었다.
무슨 생각으로 자신의 몸에 들어온 건지, 그리고 이제 와서 저러는 이유가 뭔지.
‘그러고 보면, 떠나기 며칠 전부터 계속 놈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들리긴 했어.’
혼돈 어쩌고 하며 정신 사납게 했던 목소리.
“혼돈의 마왕. 그놈 때문이냐?”
[흐흐흐.]
“웃지만 말고 말 좀 하지?”
[넌 혼돈의 마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
[대중에게 알려진 정보를 제외하면, 알고 있는 게 있을 리가 없지.]
“그럼 너는 뭔가를 안다는 거야?”
[넌 네가 가진 힘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하나?]
주제를 벗어난 질문이었다.
박현수는 그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딴소리하지 마.”
[왜 딴소리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군.]
“혼돈의 마왕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 물어 놓고, 갑자기 내 힘의 근원을 물어보는 게 딴소리가 아니면 뭐야?”
[그러니까 왜 그걸 딴소리라고 생각하냐는 말이다.]
“하?”
이상하게 말꼬리를 잡는다.
박현수는 이 대화를 더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갑자기 이곳으로 끌려오긴 했지만,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었다.
예전의 자신이 아니었다.
“더 할 말 없으면 아예 방을 빼 줬으면 좋겠는데.”
[날 내보내겠다는 건가?]
“못할 것도 없지.”
단전에서부터 시커먼 내공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베르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역시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뜬 소리 적당히 하지?”
[왜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마왕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네가 가진 그 힘. 그 힘이 어디서 시작된 건지, 그리고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나?] “네놈이 천마신공에 대해 뭘 안다고 아까부터…….”[천마신공. 언젠가 나타날 신을 끌어내리기 위한 힘, 아닌가?]
박현수는 경악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오베르크가 천마신공에 대해서 알 리 없었다.
그가 사용하는 힘은 무공이 아니었고, 일말의 내공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천마신공을 익힌 자가 아니라면 무슨 짓을 해도 알아낼 수 없는 비밀이었다.
한데, 그 비밀을 마왕인 자가 어찌 안단 말인가?
[이제야 제대로 대화를 나눠 볼 생각이 들었나?] “네가 천마신공의 비밀을 어떻게, 왜 알고 있는 거냐고!”
[자. 다시 질문해 보지. 천마신공의 근원이 어디서 시작됐다고 생각하나?] “……그건.”
그것까지 알고 있진 않았다.
그저 천마신교의 교주이자 천마에게 계승되는 무공으로, 언젠가 나타날 신을 끌어내리는 무공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 역사에 관해선 자세히 들은 적 없었다.
[하긴. 알았다면 그런 반응을 보였을 리도 없나.]
오베르크는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주억였다.
“넌 안다는 거냐?”
[모른다면 이런 질문을 했겠나?]
“……네놈, 그냥 마왕 같은 게 아니로군.”
[그걸 이제 알다니, 대단하군.]
그 이죽거림에도 박현수는 대꾸할 수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기도 했지만, 지금 말싸움이나 할 때가 아니었다.
“천마신공의 근원이 대체 뭐냐?”
[질문자의 태도가 영 꽝이로군.]
“고개라도 숙여 주길 바라나?”
[그것도 재밌겠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별로 없단 말이지.]
오베르크는 별이 빼곡하게 박힌 우주를 바라보았다.
[그래. 정말 시간이 없어.]그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미소를 거두었다.
[나는 세간에 정복의 마왕이라 불렸고, 또 그렇게 불릴 만큼 많은 파괴와 정복을 일삼았다.] “뜬금없이 왜 자기소개야?”[그렇다면 나는 왜 그런 짓을 일삼았을까?] “……수수께끼라도 하자는 거냐.”
오베르크의 차가운 눈동자가 박현수를 응시했다.
[사명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사명? 어떤 개 같은 사명이기에 수많은 생명을 죽이고, 그들의 터전을 정복한단 말이냐!”정복의 마왕 오베르크가 저지른 짓은 ‘극악무도’란 표현조차 무색했다.
그의 손에 죽어간 생명은 셀 수 없을 정도였고, 파괴된 행성과 차원은 세 자릿수를 돌파했다.
그는 정복이라는 일념으로 우주를 피로 물들인 잔악한 죄인이었다.
“네 입에서 감히 그딴 말이 나와?”
무지막지한 살기가 박현수의 몸에서 폭발했다.
성역 세피로트가 불타는 광경은 아직도 생생했다.
불타 죽는 천사의 비명과 그의 군대에 짓이겨지는 천사의 시체는, 도저히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그런데 그런 끔찍한 짓을 사명이란 이름으로 덮어씌우겠다고?
그러나 오베르크의 표정은 담담할 뿐이다.
[혼돈의 마왕을 죽이려면 내겐 그 수밖에 없었어.] “뭐?”
[혼돈의 마왕을 막아 낸 초월자가 있었다는 건 알고 있겠지?] “주제 바꾸는 거 하나만큼은 거의 뭐.”
[질문에 답해라.] “알고는 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의 이름은 유란. 혼돈의 마왕을 막고, 얼마 안 가 목숨을 잃은 초월자다. 그리고.]
오베르크가 눈을 감으며 말을 잇는다.
[나의 선조이자, 천마신공의 기반을 만드신 분이다.]* * *
“……언제쯤 출발할 겁니까?”
녹색 단발의 미남자가 저 높은 곳에 놓인 태사의를 보며 물었다.
커다란 태사의엔 한 인물이 뒤돈 채 대충 누워 있었다.
새하얗게 샌 백발은 바람이 불 때마다 살랑살랑 흔들렸다.
“저기요?”
“고놈 참 시끄럽구만.”
그때 태사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남자, 산사는 머리를 긁적였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귀찮다고 했잖으냐?”
“하지만…….”
“갈!!”
산사가 뭐라 대꾸하려 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산적처럼 생긴 중년인이 소리쳤다.
넓은 장내가 진동할 정도로 심후한 공력이었다.
그가 산사 앞으로 걸어와 무서운 얼굴로 노려보았다.
“주군께서 귀찮다고 하지 않으신가!”
“하루가 급하다니까요오…….”
“허허- 이놈의 정녕!”
“그만해라.”
노인의 목소리에 산적 같은 사내가 휙 올렸던 손을 조용히 내렸다.
노인이 내리는 명령은 사내에게 있어 신의 말씀과도 같은 것.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따라야 했다.
“이놈아. 본좌가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지 고작해야 몇 해도 채 안 되었다. 한데 왜 이렇게 재촉하고 지랄이야?”
“혼돈의 마왕과 그가 이끄는 군대가 전 우주를 휩쓸 겁니다. 엄청난 생명이 죽어나갈 것이고, 이곳이라도…….”
“이곳?”
사내가 눈을 부릅떴다.
산사가 몸을 움찔했다.
도대체가 말이 안 되는 세상이다.
넓은 우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강자들이 이곳엔 왜 이렇게 많단 말인가?
당장 이 산적 같은 사내를 보라.
태사의의 노인만큼은 아니지만, 부조리할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 자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현재 이곳에 모인 인간은 둘을 제외해도 일곱.
그들 전부 산적 같은 사내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이었다.
바깥에도 이들만큼은 아니지만, 절대 경시할 수 없는 강자들이 수두룩하게 널려 있었다.
저 멀리 중원이란 곳에도 여기 못지않은 강자가 한참이나 더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이들을 데리고 가야 해!’
소설가를 죽인 태사의의 노인.
그 휘하에 있는 강력한 초월자들.
그들과 대척하고 있긴 하지만, 확실한 전력이 되는 중원의 고수들까지 전부.
대은하 하나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는 전력이 아니었다.
“우주의 멸망을 좌시할 생각이십니까?”
“어허! 이놈이!”
“좌시고 자시고, 때가 되면 본좌가 나서지 않겠느냐?”
“대단한 박자감이십니다!”
“역시 지존!”
노인이 단순한 말장난을 했을 뿐인데 주변 인간들이 믿을 수 없다며 손뼉을 쳤다.
산사는 그 광경이 더 믿을 수 없었다.
그만큼, 노인의 권세가 흔들림 없이 굳건하다는 증거였다.
그러니 노인만 움직이게 한다면 저들은 공짜로 딸려올 것이다.
“불편함은 전혀 없을 겁니다. 오히려 이곳보다 편할 수도 있습니다.”
“감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능멸하느냐!”
“이건 가만히 들을 수 없구나! 건방진 잡초놈!”
“지존이시여, 저놈의 수급을 취하겠나이다!”
그냥 편하다고 했을 뿐인데, 무슨 피해의식이라도 있는지 장정들이 무서운 안광을 내뿜으며 산사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만.”
“존명!”
그러나 노인의 한마디에 거짓말처럼 제자리로 돌아갔다.
노인은 태사의에 비스듬히 앉아 턱을 괴었다.
그리곤 귀찮음이 묻어나는 눈으로 산사를 보았다.
“본좌에게 뭘 해 줄 것이냐?”
“에, 예?”
“본좌가 그 혼돈의 마왕인지 하는 놈을 때려잡는다면, 본좌에게 무엇을 해 줄 거냐 묻고 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모든 걸 다 해 드리겠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할 수 있지?”
“제가 속한 레베녹스 교는 우주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원하는 게 있다면 모든 걸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허언이 아니었다.
산사는 라베녹스 교의 대신관.
최고 주교는 아니었지만, 교의 기능 중 9할 이상 마음대로 사용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처럼 문명이 덜 발달한 행성을 최첨단 기술로 도배해, 문명 단계를 10단계 이상 진보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뭐든지라고 하였다.”
“라베녹스 교에서 가능한 일이라면 뭐든지, 입니다.”
“흐음, 흥미로운 제안이로다.”
노인의 얼굴이 즐거움이 묻어났다.
“여흥은 여기까지만 즐길까.”
“지존이시여, 정말 저 잡초의 부탁을 받아들일 생각이십니까?”
‘왜 자꾸 나보고 잡초래?!’
머리가 녹색일 수도 있지!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낼 만큼, 산사는 멍청하지 않았다.
“슬슬 쉬었으니, 가볍게 몸을 풀 때가 되었다.”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이는 이곳에 산사를 제외하곤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전원 노인을 향해 부복했다.
“신교천세(神敎千歲) 만마앙복(萬魔仰伏)! 지존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장정들의 목소리.
노인이 씩 웃었고, 산사는 장내를 집어삼킨 거대한 기운에 마른침을 삼켰다.
이것이, 이곳 무림 최강의 세력.
천마신교(天魔神敎).
그들이 태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