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82
훈수 두는 천마님 181편
천마신공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건, ‘유난’이란 자가 초대 천마라는 말인가?
그럴 리 없었다.
박현수는 천마지체를 완성하면서, 초대부터 10대 천마의 정보까지 열람할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유난이 아니었다.
구혼경.
그것이 초대 천마의 이름이었다.
[유난은 천마신공의 기반을 만들었다고 했지, 천마신공을 사용했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렇다는 건……!”
[선조는 제자를 두지 않았다. 그저, 남겼을 뿐이다.]
천마신공의 기반이 되는 힘을.
즉, 초대 천마 구혼경은 그 기반이 되는 힘을 손에 넣어 ‘천마신공’이란 이름의 무공으로 개량한 것이다.
천마신공을 배운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스승님이 해 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초대 교주이자, 천마께서 천마신공을 무공의 기억이 이어지도록 만드신 이유는 오로지 그것 때문이다.’
‘본좌 역시 거대한 적이란 게 무엇인지 모른다. 본좌의 스승께서도, 사조께서도 알지 못하셨다.’
‘그저 선대에서 후대로, 계속해서 전승되어 유지를 이을 뿐이다.’
‘사실 초대 교주께서 말씀하신 그 적이란 게 뭔지 모르기에 진짜로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하지만 의심이 들어도 따라야 한다.’
‘그것이 천마신교의 존재 의의이며, 천마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런데 네놈은 본인의 능력으로 천마지체가 된 게 아니다 보니, 본좌가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던 거다. 결국 무공의 기억을 일부 기억하고 있으니,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말해 버렸다만.’
언젠가 나타날 거대한 적.
신을 끌어내리기 위해 창안된 파천마권 후반 6식.
이제야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천마신공은 혼돈의 마왕을 쓰러트리기 위해 만들어진 무공.
그러니, 전 우주에서 혼돈의 마왕을 쓰러트릴 수 있는 인물은 오직 천마라 불리는 자들뿐!
[너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운명의 종착지가 너라는 것을.] “그래서 내게 일부러 패배해서 몸속으로 들어왔던 거냐?”
[일부러 패배했다라.]
오베르크가 조소했다.
[어째서 일부러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군.] “세피로트에서 너와 싸울 때 확실하게 느꼈어. 넌 그때의 나 따위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그랬지.] “그랬지, 라고?”
[넌 의식을 잃고 난 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잖나.]
그렇다.
박현수는 오베르크와의 싸움 도중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오베르크는 상처투성이였고, 패배를 시인한 다음 자신의 몸속에 봉인됐다.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오베르크는 자신에게 ‘천마’란 이명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엔 천마를 있는 그대로 풀이한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야. 저 녀석은 천마에 대해 알고 있던 거야.’
박현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두통이 일었다.
새까만 연기로 둘러싸인 기억이 서서히, 아주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큭…….”
어둠 사이사이로 보이는 기억의 편린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두통이 한층 더 심해졌다.
시야가 어지럽혀지고, 흰자위에 탁기가 올라왔다.
그런데도 서서히 떠오르는 기억은 멈추지 않았다.
‘그 힘은……!’
‘아, 그런가. 내가 아니었단 말인가.’
‘나는 잘못되었던 거군.’
오베르크의 목소리.
그의 당황한, 그리고 체념한 얼굴.
앞을 가로지르는 시커먼 어둠.
그 위로 떠 오른 붉은빛.
그 순간-
[‘천마신공’이 발동합니다.]의지와 상관없이 단전에서 천마신공의 내공이 폭발했다.
* * *
그것은 아주 아주 오래된 기억이었다.
그 기억 속에선 처음 보는 두 남자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크하하하하!”
검은 갑주에 금색으로 수실이 새겨진 붉은 망토를 걸친 호쾌한 남자가 호탕하게 웃었다.
“유난이라고 하였던가! 정말 대단한 놈이로구나?”
남자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시커먼 마기가 공간을 들끓게 했다.
유난이라 불린, 하얀 장포에 머리를 반쯤 딴 장발의 남자는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우리 사이에 긴말은 필요 없어 보인다만.”
“크흐흐- 그렇지. 그렇고말고.”
남자, 몰티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들었다.
“우주의 미래를 건 싸움, 굳이 수다를 떨 필요는 없지.”
“와라.”
유난이 손을 까닥였다.
그의 몸에서 새하얀 기운이 물씬 흘러나왔다.
몰티가 뿜어내는 마기에 비하면 왜소했지만, 담고 있는 힘만큼은 전혀 꿇리지 않았다.
“그래, 그거다!”
콰아아아아-!!
마기가 채찍처럼 공간을 꿰뚫으며 손바닥으로 모여들었다.
동서남북의 대은하를 모두 손에 쥔 거악에게 어울리는 강력하면서도, 끔찍한 마기였다.
유난의 눈이 가늘어졌다.
상대가 뿜어내는 마기가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마.”
몰티가 즐겁게 웃으며 공격을 ‘선언’했다.
유난이 미간을 좁혔다.
상대를 앞에 두고 공격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그만큼 얕본다는 뜻이었다.
당연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에겐 그럴 자격이 있었다.
누가 뭐래도 저자는 ‘혼돈’이라 불리는 괴물이니까.
‘하지만.’
상대가 강하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법.
몰티가 유난을 향해 손을 뻗었다.
동시에.
순백의 기운이 몰려오는 마기를 향해 몸을 부풀렸다.
두 기운이 광활한 우주에서 충돌했다.
전 우주가 둘의 충돌에 조용히 진동했다.
* * *
“유난 님! 유난 님!”
“조용히 하십시오.”
유난은 서럽게 우는 성녀의 눈물을 닦아 주며 힘겹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 운다고 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유난 님…… 흐윽…….”
“부탁이 있습니다.”
“……들어드릴 수 있는 부탁이라면 뭐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몰티는…… 후으.”
누워 있는데도 가빠지는 호흡이 야속했다.
그만큼 혼돈의 마왕 몰티는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의 강적이었다.
그는 숨을 고르며 하던 말을 이어 했다.
“몰티는 언젠가 반드시 돌아올 겁니다.”
“……네?”
“전 놈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오히려 제가 이런 꼴이 되었군요.”
다행인 것은, 놈이 자신의 상태를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 알게 된다면 곧장 침공해 올 게 분명했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그러니 모두를 속여야 합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살아나셔야죠…….”
“당신께서도 알잖습니까.”
“하, 하지만.”
성녀의 눈에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손을 들어 닦아 주고 싶지만, 이젠 힘도 나지 않았다.
“제 죽음을 비밀로 해 주십시오.”
“…….”
“절대로 비밀로 해야 합니다. 절대로.”
사라진 것과 죽은 것은 다르다.
‘사라졌다’라는 것은 언젠가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몰티는 한동안 본 우주를 노리지 않을 것이다.
울음을 참는 탓에 성녀의 턱에 잔뜩 주름이 잡혔다.
“알겠, 알겠어요.”
울먹거림에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성녀는 그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말씀하세요.”
“앞의 조건이 충족되려면, 제가 진짜로 사라져야 합니다.”
“……네?”
“그러니까.”
유난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단순히 일어날 뿐인데도 오장육부가 짓이겨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숨이 목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이젠 숨조차 쉽게 토해낼 수 없었다.
“허억…….”
간신히 숨을 토한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곤 성녀를 보았다.
“제가…… 제가 사라져야 합니다.”
“그런 몸으로 대체 어딜 가시려고요!”
성녀가 애타는 목소리로 그를 말리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유난은 독하게 마음먹으란 말을 반복했다.
“길게 봐야 합니다. 진정 우주의 평화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그래도…… 그래도 그건 너무 잔인하잖아요…….”
어떻게든 울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흘러나오는 눈물은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서럽게 우는 성녀는 그의 무릎이 얼굴을 파묻었다.
유난은 씁쓸하게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합니다.’
그녀도, 자신도, 너무 무거운 짐을 졌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사람 역시 두 사람뿐이었다.
다음 날, 유난은 쪽지 한 장 남기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
성녀가 서글피 우는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 지금도 그렇게 울고 있을 것이다.
가슴이 아팠지만, 역시나 어쩔 수 없었다.
유난은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작은 행성에 도착했다.
문명의 발전이 거의 되지 않은 세계였다.
“이곳에서…….”
자신의 마지막이 될 세계.
그곳에서 자신의 심득을 종이에 적어 내려갔다.
언젠가 나타날 후인이 자신의 심득을 깨우쳐 먼 미래에 혼돈의 마왕을 쓰러트려 주길 바라면서.
“반드시. 반드시 꼭.”
후인이 될 자가 어떤 인물인지 모르겠지만, 정의로운 자라면 분명 자신의 심득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나아가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릴 것이다.
“부탁합니다.”
그는 아직 나타나지도 않은 후인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천마신공’이 종료됩니다.]“…….”
박현수는 어느 순간, 볼이 축축해진 걸 느꼈다.
손으로 닦아 보니 물기가 묻어 있었다.
그것은 천마신공이 만들어지기 전, 그의 심득에 새겨진 기억.
한 남자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 후대에 전한 희망.
손이 벌벌 떨렸다.
오베르크는 박현수의 이상 현상에 의문을 표했다.
박현수는 그 의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손을 타고 흐르는 내공을 느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몇 세대를 거쳐 이제야 도달했단 말이냐.
오베르크가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현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천마신공이 완성되었다.”
[뭣이?]
무공에 변화는 없다.
하지만 많은 것이 달라졌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설명하는 것은 무의미.
“너는 유난의 후손이 아니야.”
[……감당할 수 없는 말은 하지 마라.]
“유난은 결혼 같은 건 하지 않았어. 당연히 아이를 뒀을 리도 없고, 누군가를 입양하지도 않았지.”
[네가 뭘 안다고……!]
“넌 그저 소문이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다.”
오베르크의 눈이 부릅떠졌다.
가공할 만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유난의 유지 좀 이었다고 건방지게……!] “넌 그의 유지를 잇지 못했기에 볼 수 없는 거야. 실제로 피가 이어졌다고 해도 말이지.”
오베르크가 그의 혈육인지 아닌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혈육일 리도 없거니와, 만약 혈육이 맞았다고 해도 그는 그저 혈육에 불과하다.
천마신공을 익히지 못했다면, 그는 애초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오베르크는 화가 났지만, 도저히 대꾸할 수 없었다.
“그래도 네 덕분에 진실에 도달할 수 있었어. 그건 고맙게 생각한다.”
그와의 싸움에서 잊혔던 기억도 모두 돌아왔다.
“난 더 발전할 수 있어.”
오베르크는 급변한 박현수의 분위기에 이를 악물었다.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겠지만, 방금까지의 박현수랑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래.
저 느낌은.
‘절대자.’
아직 절대자가 된 것은 아니겠지만, ‘격’만큼은 확실히 도달했다.
주인공이 자신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와의 싸움에서 보여 준 진정한 ‘천마신공’의 힘을 봤을 때 이미 깨달았다.
그땐 그래도 절망적이진 않았다.
‘지금은 절망스럽군.’
자신이 지금까지 해 온 일은.
박현수의 몸에 봉인됐던 시간은 전부.
‘전부 저 녀석을 위한 것이었단 말인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한때 정복의 마왕이라 불렸던 사내는 차가운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