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84
훈수 두는 천마님 183편
거대한 우주를 가로지르는 순백의 빛무리가 있었다.
마치 별똥별 무리가 날아가는 듯한 형상.
그러나 빛무리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것은 별똥별이 아니었다.
수만에 달하는 백색 함선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앞에서 날고 있는 거대한 백색 함선은 전 우주에서도 보기 힘든 코스모스급 대전함이었다.
현 우주 세력 중 코스모스급 대전함을 가진 곳은 총 네 곳이었다.
혼돈의 마왕에게 패배한 후 사방으로 흩어진 용왕의 테트로니아 차원.
본 우주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진 라베녹스 교.
레비니안 종족의 카르마 차원.
마지막으로 모든 천계의 위상, 찬란한 천계.
그중에서도 백색으로만 이루어진 선단을 가진 것은 찬란한 천계였다.
“용왕의 죽음은 꽤 충격이야.”
파란 물결 같은 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 말했다.
그녀의 등엔 세 쌍의 날개가 드레스처럼 그녀의 몸을 가리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 색과 같은 눈동자를 빛내며 우주 저편을 보았다.
“결국, 그것뿐인 녀석이었다는 거겠지.”
등에 거검(巨劍)을 맨, 갈색빛이 도는 단발을 한 근육질 남자가 비아냥거렸다.
그 역시 여인과 같은 세 쌍의 날개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런 말 하지 마. 그 덕분에 상대의 전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회색 머리를 하나로 묶은 소년이었다.
한쪽 가슴이 다 보이는 하얀 토가를 입고 있었는데, 등에 달린 날개가 활짝 펼쳐져 있었다.
“흥.”
거구의 대천사 우리엘은 작은 소년의 모습을 한 대천사 라파엘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전력이라. 설마 도마뱀 따위가 정말 우리와 대등한 선에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오만한 소리다.”
그때였다.
피부가 탈 것만 같은 열기가 그들이 있는 장소를 뒤덮었다.
실제로 허공에 불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흩날리는 불꽃은 마치 길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곳으로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용왕의 힘은 우리 못지않으니, 우리엘, 직접 보지 않았다면 말을 삼가라.”
“……미카엘.”
불꽃이 꺼졌다.
황금색 머리칼이 열풍으로 미약하게 흔들렸다.
그가 천천히 눈을 뜨자, 머리 색과 같은 황금빛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아름다운 미남자였다.
세상에 이런 존재가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그가 가진 미(美)는 천상에 닿아 있었다.
“언제 도착했지?”
“방금.”
“메타트론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먼저 왔구나.”
가브리엘이 콧노래를 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엘은 그녀를 지나쳐 선상 가장 앞에 섰다.
광속을 넘어 질주하는 함선은 어느덧 라베녹스 교의 총본단이 아른거리는 위치까지 도착해 있었다.
“저들과 손을 잡게 되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군.”
“사탄을 죽인 녀석도 있대.”
“그런가.”
사탄.
그런 녀석도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 보는 이름이다.
치졸하고, 비굴한 쓰레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가물가물하지만, 사탄 역시 한때 천계의 대천사였던 존재.
“놈이 마왕이 됐다고 했을 땐 웃기긴 했지.”
가브리엘이 그때를 회상하며 이죽거렸다.
두 대천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 전부 오래전 지구를 경험했던 이들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가이아 출신이겠군. 메타트론이 놈을 처박은 무저갱이 그곳이었으니.”
“맞아. 그리운 곳이지.”
“가이아라.”
그들에게 가이아는 오래된 추억의 장소였다.
한때 ‘낙원’이라 불리었던 땅.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사탄을 쓰러트릴 정도의 초월자가 탄생했다면 아직 살 만한 곳이리라.
“그나저나 그 사탄을 죽였단 말이지?”
우리엘이 흥미롭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과거 사탄은 ‘사티엘’이라 불리며 그들의 신에게 가장 총애받는 천사였다.
그러나 신의 특별한 대우가 그를 오만하게 만들었고, 해선 안 될 짓을 저질러 날개를 잃고 지상으로 쫓겨났다.
그렇게 타락 천사가 된 사티엘은 스스로 ‘사탄’이라 지칭하며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그것은 일종의 땡깡이었다.
그들의 신은 선과 악이라는 우주의 법칙을 만들었다.
선과 악은 말 몇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있는 게 아니었지만, 선과 악 중 무엇이 더 나쁜지 아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탄은 자신을 만든 부모가 싫어하는 것을 함으로써 자신이 부당하다고 행동으로 표현했다.
그것은 신의 노여움을 샀고 결국, 한때 형제였던 자들에게 무저갱 깊은 곳에서 억겁의 세월 동안 봉인 당했다.
하지만 사탄은 오만하고 치졸한 성격과 달리, 당시 천사 중에서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난 놈에게 한 번 졌었지.”
사탄이 사티엘이던 시절, 둘은 에덴의 수호자 자리를 걸고 결투를 벌였다.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싸웠다.
결과는 패배.
최선을 다했지만, 당시의 사티엘은 메타트론을 제외하면 최강의 천사라고 불리었다.
당시엔 미카엘이 초신성으로 막 떠오르던 시절이라 그가 최강자 반열에 오르기 전이었다.
“기억났어. 근데 그 녀석 결국엔 에덴 안 맡았잖아.”
“처음엔 맡았다가 일주일 정도 하고 재미없다면서 때려치웠지. 그때부터 아버지의 눈 밖에 났고.”
라파엘의 부가 설명에 가브리엘이 확실히 기억났는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보다야 약해졌겠지만, 그래도 사탄을 쓰러트렸다는 건 꽤 하는 놈인 건 확실하겠군.”
우리엘이 보기 드물게 인정하는 말을 꺼냈다.
“나쁘지 않은 전력이야.”
미카엘의 말에 모두가 눈동자만 굴려 그를 보았다.
사탄을 쓰러트렸는데도 나쁘지 않단다.
우리엘에게 오만한 말은 하지 말라고 한 주제에, 그가 한 말이 가장 오만했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었다.
분명 오만해 보이는 말일지라도, 실제로는 오만하지 않다는 것을.
천계의 왕은 메타트론이다.
그리고 천계에서 가장 강한 것도 메타트론이다.
……세간에선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미카엘. 넌 이번 전쟁의 승산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해?”
“승산이라.”
찬란한 천계가 만들어 낸 가장 완벽하고, 가장 강력하며, 가장 위험한 존재.
“해 봐야 알 것 같군.”
그것이 ‘심판자’ 미카엘.
“지진 않을 것 같다.”
그가 천계 최강이었다.
* * *
“미, 미안해요.”
아이센트가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박현수는 아직도 얼얼한 것 같은 뺨을 문질렀다.
그녀의 힘으로 완벽하게 치료됐지만, 심리라는 게 그런 거다.
“흠흠.”
뒤에 있던 카본이 괜히 헛기침을 했다.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존재감은 또 어떻게 된 거고?”
“하나씩만 물어봐라, 하나씩만.”
“둘 다 결국 같은 질문인데, 뭘 하나씩 물어보냐?”
“그것도 그렇긴 해.”
박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아이센트를 보았다.
손으로 눈을 가린 주제에 손가락은 살짝 벌려서 다 쳐다보고 있다.
그럴 거면 대체 왜 가린 건지 모르겠다.
“미안한데 옷 좀 입으면 안 될까?”
“네?”
“옷 말이야.”
박현수가 손가락으로 중요 부위를 가린 수건을 가리켰다.
“아아앗-! 미, 미안해요!”
그녀가 다급하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박현수는 고개를 저으며 옆에 놓인 옷을 입었다.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렸고 아이센트가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다 입었나요?”
“들어와.”
그녀가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저런 모습만 보면 아무도 그녀가 성녀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성녀는 왜 부른 거야?”
“그야 네가 기절했으니까 불렀지.”
“그렇다.”
아이작이 묵묵히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카본이 한 발 앞으로 걸어 나오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너, 완전히 다른 사람 같거든?”
분명 기절하기 전만 해도 그들이 아는 평소의 박현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외형만 같고, 속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별건 아니야.”
아니, 별거인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지금 자신에겐 그 무엇도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혼돈의 마왕도, 그로 인해 위험에 처할 우주의 미래도, 그게 무엇이 됐건 지금 자신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박현수는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머릿속을 대충 정리한 후 말을 꺼냈다.
“유난의 기억이 떠올랐어.”
정적이 흘렀다.
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박현수를 보았다.
그중 두 사람은 실제로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고, 한 사람만이 유난이란 이름에 격하게 반응했다.
“네에에에에엑?!”
성녀 아이센트였다.
그녀의 입은 턱이 빠질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
그의 입에서 유난이 나올 줄은 몰랐다.
유난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건가?
하지만 어떻게?
유난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곳은 라베녹스 교가 유일했다.
그마저도 사후 정보는 알지 못했다.
“다, 다, 다, 다, 당신이 어떻게 그분을……?”
“반응을 보니까 역시 아는 모양이네?”
라베녹스 교의 성녀라면 알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로 아느냐는 다른 문제다.
“너희는 유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
그래서 대놓고 물어봤다.
아이센트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녀는 박현수를 바라보다가 힐끔 뒤를 돌아봤다.
“둘은 잠깐 나가 있어 줘.”
“우린 들으면 안 돼?”
“성녀가 그렇다네.”
“제, 제가 언제!”
“그럼 모두 들어도 돼?”
“……으음.”
아이센트는 깊은 고민에 잠겼다.
박현수에겐 무조건 얘기를 들어야 한다.
그가 유난을 어떻게 아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유난의 기억이 떠올랐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걸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자신이 아는 유난의 정보를 풀어야 하는데, 과연 뒤에 있는 두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옳을까?
‘굳이 말할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지만, 엄청난 세월을 비밀로 지켜 온 정보다.
아이센트는 도저히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애초에 자신 혼자 결정을 내릴 만한 사안인가?
유난의 정보는 교내에서도 중요한 기밀 아니던가!
“두 사람은 믿을 만하지.”
그때, 박현수가 스쳐 지나가듯 말했다.
고개를 들어 그를 보니, 애먼 벽을 바라보고 있다.
‘말해도 되나.’
그가 믿을 만하다고 했다.
‘애초에 주도권은 그가 가지고 있잖아.’
결국, 가장 필요한 정보를 쥔 건 박현수였다.
고민할 거리인가?
그녀의 눈이 차분해졌다.
“좋아요.”
“그럼 먼저 말해. 내가 더 많이 알고 있을 테니까.”
“……그걸 어떻게 확신해요?”
“말했잖아. 유난의 기억이 떠올랐다고. 3자가 본 유난이 아니라, 유난 본인의 기억.”
“그, 그렇다면 이것부터 좀 확인할게요.”
“뭔데?”
“당신은 어떻게 유난에 대해 알고 있는 거죠? 그리고 유난의 기억을 어떻게 손에 넣었죠?”
“그건.”
“이건 기억에 관한 내용을 묻는 게 아니니까 이 정도는 대답해 줘요!”
아이센트가 간절한 얼굴로 그에게 매달렸다.
박현수는 갑자기 붙어오는 아이센트의 얼굴을 본능적으로 밀어냈다.
“이거 왜 이래? 나 임자 있는 몸이야!”
“가르쳐 줘요!!”
그러나 지지 않겠다는 듯 아이센트는 짧은 팔을 바둥거리며 매달리기 위해 애썼다.
뒤에서 지켜보던 카본과 아이작은 그들을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새까만 어둠으로 뒤덮인 거대한 감옥.
그곳엔 황금빛 몸체를 가진 거룡이 가시 박힌 쇠사슬에 포박되어 있었다.
의식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간헐적으로 숨을 쉬는 걸 보면 죽진 않은 모양이었다.
딱 그 정도.
죽지도 살지도 못한 그런 상태였다.
“크흐흐! 이거, 용왕의 꼴이 어쩌다 이렇게 됐대?”
그 앞에 한 남자가 즐거워 죽겠다는 얼굴로 서 있었다.
“그보다 나 기억하나?”
그는 거대한 창살 쪽으로 걸어가 죽어가는 용왕 아이오닉스를 향해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응? 기억나냐니까?”
그 집요함에 아이오닉스가 눈을 힘겹게 떴다.
그리고 남자를 바라본 그는 피식- 웃었다.
“……너 같은 조무래기는 일일이 기억하고 있지 않다.”
남자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그래, 기억 못 한다 이거지?”
그리곤 일그러진 얼굴을 다시 펴 활짝 웃었다.
그 일련의 변화가 몹시 소름 끼쳤다.
“크큭. 그래. 뭐. 기억 못 할 순 있…… 있…… 있을 수 없어!! 감히 이 몸을 잊어?! 감히!!”
혼돈의 마왕 휘하 최강의 6인 중 1좌를 차지하고 있는 전율의 라이거가 참지 못하고 분노를 폭발시켰다.
모든 힘을 봉인하는 물질로 만들어진 감옥이 그의 기파에 움찔거렸다.
아무리 본 우주에서 최강을 논하던 용왕이라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이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 지어지는 것은 조소뿐이었다.
“웃어?!”
라이거는 당장이라도 그를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주인의 명령이 있었기에 감히 그런 짓은 저지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이 감정은 도저히 식힐 수가 없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의 일그러진 얼굴이 다시 미소로 뒤바뀌었다.
“아이가 있다지?”
“…….”
“크크큭. 네놈의 아이를 어떻게 해서든 네 앞에 데려와 머리와 몸을 분리하는 쇼를 보여 주마.”
아이오닉스의 금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때도 과연 그런 얼굴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차가운 성정의 용왕이라도 혈육의, 그것도 친자식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크흐흐흐, 크하하하하하하!”
라이거는 광소를 터트리며 감옥을 떠났다.
다시 혼자가 된 아이오닉스는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렸다.
“라이거.”
사실 그를 알고 있었다.
한때 자신과 서은하의 패권을 두고 전쟁을 벌인 자다.
전쟁에서 패배하고 적 세계로 도주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혼돈의 마왕 휘하로 들어갔다는 사실까진 알지 못했다.
‘골치 아파졌군.’
라이거는 아주 강하다.
최강자를 논하는 수준은 아니라도, 전 우주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임은 확실하다.
혼돈의 마왕에겐 그놈 수준의 강자가 다섯 더 있었다.
혼돈의 마왕 하나로도 전장의 밸런스가 깨졌다.
‘빌어먹을…….’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도저히 상상되지 않았다.
아이오닉스는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