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85
훈수 두는 천마님 184편
“마, 말할게요.”
결국, 밀린 건 아이센트였다.
그녀는 부루퉁한 얼굴로 박현수를 보았다.
진짜 말해도 되는지 아직 확신이 안 섰지만, 다른 대신관이라도 자신처럼 굴었을 것이다.
“……라베녹스 교의 성녀란 직책이 어떤 걸 뜻하는지, 알고 계세요?”
“라베녹스 교의 실질적인 상징 아닌가요?”
“보통은 그렇게 알려져 있죠. 실제로 커다란 행사 등에 교의 얼굴로 자주 나서기도 하고.”
라베녹스 교엔 신의 대리인으로 성황과 성녀가 있지만, 성황은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그를 대신해 성녀가 대부분의 대외 활동에 참여했다.
그 이유로 세간에선 성녀를 ‘라베녹스 교의 얼굴마담’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건 대외적인 이미지일 뿐이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따로 부여받은 직책이 있단 건가?”
“직책은 아니에요. 그냥…… 성녀는 모든 기억을 공유해요.”
“……?”
“최초의 성녀부터 전 세대 성녀의 기억까지, 모두 말이죠.”
“기억을 공유한다고?”
박현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기억의 공유라는 건 흔하지 않았다.
심지어, 핏줄도 아닌 관계에선 더더욱.
그런 점에서 성녀가 말한 기억의 공유는 역대 천마의 기억을 공유하는 자신과 비슷했다.
아이센트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라요.”
“그날이라면, 유난이 자기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하고 조용히 떠난 날 말이야?”
“역시, 진짜인 모양이군요.”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박현수가 한 말이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방금 그가 한 말이 확신을 주었다.
“보통은 지구를 구한 영웅이 소리소문없이 자취를 감췄다- 정도로 알려졌죠. 당연히 그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고요. 하지만 당신은 그의 이름부터 자세한 경위까지 파악하고 있어요.”
“말했잖아. 기억을 봤다고.”
“그러니까, 그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고 있었어요.”
‘유난’이란 이름 자체는 집요하게 파고든다면 못 알아낼 것도 없었으니까.
“아무튼, 제가 아는 건 그게 다예요.”
그 이후, 유난이 어디로 떠났는지, 어떻게 생각을 마감했는지는 몰랐다.
사방팔방으로 찾아다녔지만, 그는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이 아는 건…… 아니, 이 정도면 많이 아는 건가?”
박현수는 자기 기준으로 생각했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닌 것 같아서 말을 정정했다.
“……보통은 유난의 이름도 모른다고요.”
“그렇지.”
“이제 당신 차례예요. 아무래도, 그 이후의 일도 아는 모양이신 듯한데.”
“그의 기억을 얻었으니까.”
성녀는 당시 성녀의 기억을 가졌을 뿐이다.
반면, 박현수는 유난의 기억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그렇게 대단한 얘기는 아니야. 한 영웅이 미래를 준비하는, 아주 짤막한 과정이 담겨 있을 뿐이야.”
박현수는 천천히 유난의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 * *
모든 얘기가 끝났을 때, 아이센트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에…… 그러니까, 음…….”
“유난의 후계자라고? 네가?”
“그렇게 됐다.”
카본의 질문에 박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도 이번에 알게 됐어.”
“이번이라면.”
“욕탕에서 의식을 잃었을 때.”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정복의 마왕 녀석과 대담을 했다.”
아이센트가 커다란 눈을 더욱 크게 떴다.
카본과 아이작은 그의 몸 안에 정복의 마왕 오베르크가 봉인되어 있단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카본과 아이작이 놀라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그놈이랑 네가 유난의 후계자인 거랑 무슨 상관…….”
“상관이 없으면 말을 꺼내지도 않았겠지.”
카본의 말을 끊은 건 아이작이었다.
“아이작의 말대로야. 놈은, 어째서인지 자신이 유난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더군.”
“후손이요?! 그럴 리가요. 그는 빠르게 죽어 가고 있었어요. 후손을 남길 여유 같은 건…….”
“맞아. 유난에게 남은 핏줄은 없었어. 놈은 혼자 착각을 했던 거야.”
그렇게 말하며, 박현수는 오베르크가 착각하게 된 경위까지 알려 주었다.
“그의 의복과 유골이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갔었군요.”
“아무튼, 내 얘기도 전부 끝났어.”
“…….”
아이센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유난은 외딴곳에서 홀로 죽어 갔다.
죽어 가는 그 순간까지 미래를 생각했다.
그녀는 당시의 성녀가 아니지만, 녹아든 기억은 마치 당사자처럼 가슴이 아플 정도로 미어졌다.
“다행이에요.”
아이센트는 희미하게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다행이에요.”
그리고 박현수를 보았다.
“그가, 유난이 남겨 놓은 유산이 이곳에 있어서 정말, 정말로 다행이에요.”
그녀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저것은 그녀의 감정인가, 아니면 과거로부터 이어진 감정인가.
그것까진 알 수 없었다.
* * *
“찬란한 천계의 전투 선단이 곧 도착합니다.”
“알겠네.”
대신관 로터스는 촉수를 열심히 꿈틀거리며 정거장으로 향했다.
벌써 저 멀리 눈부신 광휘가 본단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언제 봐도 신성력이 넘쳐 흘렀다.
비록 라베녹스 교와는 섬기는 신이 다르지만, 저들의 신 역시 라베녹스와 같은 태초의 신.
규모는 작을지언정, 그 격만큼은 본교에 꿇리지 않았다.
“육성(六星)은 도착했나?”
“셀린느 님을 제외하곤 모두 도착하셨습니다.”
“4대 천사에게 꿇릴 수는 없지.”
이번 행렬에 천계의 왕인 메타트론은 없었지만, 그와 같은 격을 이루는 4대 천사가 전부 포함되어 있었다.
라베녹스의 육성이 없다면 기세에서 많이 밀렸을 것이다.
아무리 연맹을 맺었어도, 주도권을 넘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곧, 천계의 선단이 우주 정거장에 내려앉았다.
그 수는 세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거의 모든 병력을 끌고 온 모양이군.’
그들의 마음가짐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그때였다.
가장 거대한 함선의 문이 열리고, 두 쌍 이하의 천사들이 먼저 하선했다.
그들은 입구를 중심으로 두 줄로 나뉘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가장 앞에 선 두 천사를 제외한 모두가 검을 뽑아 가슴 앞으로 힘차게 내밀었다.
앞에 선 두 천사가 뿔피리를 입에 물었다.
뿌우우우-!!!!!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굉음이 뿔피리에서 터져 나왔다.
로터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청각이 예민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런 소음이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말릴 수도 없는 게, 저것은 4대 천사가 이곳에 강림한다는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웃긴 일이었다.
다른 종교의 총본단 앞에서 대놓고 이런 의식을 벌인다는 것은.
“불편하군요.”
신관 하나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신관들 역시 같은 마음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짜증 나는 일이긴 하지만, 본 우주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역지사지로 생각한다면, 자신들 역시 저들의 영역에 간다면 저렇게 했을 것이다.
“나오는군.”
로터스의 말에 모두가 입구를 쳐다보았다.
그곳에서 세 쌍의 날개를 가진 네 명의 천사가 차례대로 걸어 나왔다.
선두에 선 이는 갈색 머리에 근육질 몸매, 그리고 등에 멘 거대한 검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그 뒤로 푸른 물결 같은 머리카락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과 귀엽지만 점잖은 이미지의 소년, 마지막으로 눈부신 금발·금안의 청년이 나타났다.
‘우리엘, 가브리엘, 라파엘, 그리고…… 미카엘.’
앞선 세 명의 대천사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지만.
미카엘은 아니다.
그 역시 이젠 꽤 오랜 경력의 대천사였지만, 앞선 세 명의 비하면 아직 어린 천사였다.
그러나 그가 가진 힘은 다른 대천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어쩌면 그 이상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찬란한 천계에선 과도하게 그의 전력을 숨기고 있다.
‘강하면 좋은 거지.’
동맹이 강하다는 건 좋은 것이다.
로터스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흠. 4대 천사라.”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양이 눈을 한 소녀가 기분 나쁜 웃음을 지은 채 로터스 옆에 서 있었다.
“언제 온 거냐, 셀린느.”
“방금!”
라베녹스 교의 육성 중 하나인 셀린느였다.
“과연, 한 세력의 최강 전력이라고 할 만하군.”
그 뒤엔 5m가 넘어가는 거인이 서 있었다.
피부가 돌로 이루어진 그의 피부는 강철을 아득히 뛰어넘는 경도를 자랑했다.
거인 역시 육성 중 하나인 아오라이아였다.
“와, 저 남자 엄청나게 잘생겼잖아? 꼬시고 싶다.”
그런 아오라이아의 어깨 위엔 고혹적인 자태로 뇌쇄적인 분위기를 뿜어내는 미인이 앉아 있었다.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은 파스텔 톤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육성 리노였다.
그녀는 머리 색과 똑같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미카엘을 향해 노골적인 사심을 드러냈다.
“너희뿐이냐?”
“나머진 쉰대.”
다른 세 명의 육성은 이곳에 오지 않았다.
“상관없나. 준비해라, 그래도 손님들이니.”
로터스가 촉수를 꿈틀거리며 그들에게 명령했다.
육성은 라베녹스 교의 최강 전력이지만, 그렇다고 대신관보다 위에 있진 않으니 모두 그의 명령에 따랐다.
로터스를 필두로 교에 속한 인원이 찬란한 천계군을 향해 걸어갔다.
“대신관 로터스로군.”
우리엘이 곁눈질로 다가오는 라베녹스 교의 인물들을 보았다.
“저 양반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가브리엘이 조소를 머금었다.
“들릴지도 모르니 그런 언사는 조심해.”
라파엘이 가브리엘을 나무랐다.
가브리엘은 뾰로통한 얼굴을 했지만, 틀린 말은 하지 않는 라파엘이라 대꾸할 수 없었다.
“…….”
미카엘은 조용히 그들을 바라봤다.
아니.
그가 보는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먼 곳.
작은 행성이나 다름없는 거대한 라베녹스 교 본단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강한 힘을 느끼고 있었다.
‘뭐지?’
라베녹스 교에도 4대 천사처럼 강력한 무력 집단이 있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중 셋은 현재 대신관 로터스와 함께 이곳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다른 육성인가?’
아니다.
그들과 비슷한 힘을 가진 자가 본단 내부에 다섯 정도 존재했다.
다섯 중 단 한 명, 그는 나머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나와 비슷한 수준.’
천계에서 완성한 최강의 병기인 심판자 미카엘은 본 우주의 역사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의 강자였다.
현재 이 자리에 있는 초월자 중에서도 ‘독보적’이란 표현이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그런 존재와 대등한 존재가 이곳에 또 있었다.
단언컨대 육성은 확실히 아니었다.
그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자신은 그들보다 확실히 몇 단계 위에 섰다.
그건 3대 천사와 비교해도 마찬가지였다.
천계의 왕 메타트론조차 인정하지 않았던가.
“흥미롭군.”
“미카엘?”
“아주 흥미로워!”
미카엘의 몸에서 강렬한 신성력이 뿜어져 나왔다.
불길이 치솟았다.
엄청난 힘이 공간을 장악했다.
라베녹스 교, 찬란한 천계 가릴 것 없이 모두가 경악했다.
그만큼 미카엘의 행동은 돌발적이었고, 경악스러울 정도로 강력했다.
붉게 타오르는 불길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는 씩- 미소 지으며, 어딘가를 향해 날아올랐다.
그곳엔.
“뭐야?”
박현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