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88
훈수 두는 천마님 187편
혼돈의 군대가 다시 진군을 시작했다.
방향은 오직 한 곳, 중앙 대은하가 있는 곳이었다.
새까만 우주에서도 독보적인 어둠을 뿜어내는 대군이었다.
순환의 정의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들.
선과 악이란 법칙조차 혼돈으로 물들이는 괴물들.
그들은 태초의 신들이 빚어낸 세계를 파괴하기 위해 모든 빛을 게걸스럽게 빨아 먹었다.
“두 달 정도면 중앙에 도착할 수 있겠네. 흐흐, 천사들을 탐미할 날이 머지않았구나. 라베녹스의 성녀가 그렇게 아름답다던데.”
6인의 데스 마스터 중 하나인 ‘성마 오잔’이 기다란 혀를 뱀처럼 날름거렸다.
보라색 눈동자가 활처럼 휘었다.
오로지 성욕이란 본능만을 따르는 위험한 괴물은 성스러운 살결을 탐할 생각에 아랫도리가 빳빳해졌다.
“추잡한 새끼. 할 줄 아는 거라곤 허리 놀림밖에 없는 쓰레기 녀석.”
그러자, 등이 굽은 매부리코의 사내가 오잔을 향해 날 선 비난을 날렸다.
데스 마스터 중 하나인 ‘비난하는 제르다’였다.
그는 주인인 혼돈의 마왕을 제외한 모두를 막무가내로 비난했다.
그러나 오잔은 그의 비난은 익숙하다는 듯 웃기만 할 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쓰레기 같은 새끼. 죽어 없어져야 할 새끼. 거시기를 잘라도 모자랄 새끼!”
“하하. 마음대로 떠드시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꼽추보다야 낫지 않겠나?”
오잔의 하얀 건치가 별빛에 반짝였다.
“감히 누구보고!”
제르다가 빨개진 얼굴로 화를 냈다.
비난하는 제르다.
다른 말로는 ‘열등감의’ 제르다.
그는 강함 말고는 남들보다 나은 게 없어서, 자신보다 나은 자들에게 강한 열등감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은 감히 넘볼 수 없는 행위를 마음껏 저지르는 오잔을 무척 싫어했다.
비단 오잔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같은 데스 마스터는 물론, 혼돈의 마왕을 제외한 모두에게 열등감을 가졌다.
그래서 제르다의 부하들은 매일 매일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명이 죽어 나갔다.
“졸려…….”
옆에서 제르다가 시끄럽게 떠들든 말든, 시체처럼 누워서 혼자 중얼거리는 자가 있었으니.
“졸린 데 잠을 못 자…….”
데스 마스터 ‘못 자는 에드가’였다.
그는 퀭한 눈으로 우주선의 천장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마지막으로 잔 게 언제지.”
기억도 안 난다.
이젠 못 자는 이유도 떠오르지 않는다.
왜 못 잘까.
누운 방향을 바꿔 봐도 여전히 잠은 안 왔다.
“쓰레기 놈.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누워만 있는 게 전부인 쓰레기 놈.”
옆에서 제르다가 비난했지만, 남의 말은 귀에 안 들어오게 된 지 꽤 오래됐다.
유일하게 혼돈의 마왕만이 그에게 명령할 수 있었다.
“졸려…….”
“그어.”
그 옆에 엄청난 거구지만, 맹한 얼굴의 남자가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말을 할 줄 몰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두고 ‘벙어리 멜’이라고 불렀다.
멜은 명령을 받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제르다는 매번 아무것도 않는 그에게 공기 낭비하지 말고 죽으라며 비난했다.
“음식 더 가지고 와! 음식!”
쨍그랑!!
접시가 깨졌다.
제르다는 눈살을 찌푸리며, 꽤 먼 곳에서 미친 듯이 폭식하는 남자를 보았다.
“돼지 같은 새끼.”
대충 20명은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에 홀로 앉아, 수십 가지의 음식을 폭식하는 남자.
푸른 갈기 같은 머리칼에 양옆으로 자란 직각 뿔이 인상적인 그는 다 먹은 접시를 바닥에 내던지며 끊임없이 음식을 요구했다.
그는 ‘폭식의 비잔티’.
역시나 데스 마스터의 일원이었다.
“꺼억-!”
비잔티는 시원하게 트림을 하면서, 탄산이 튀어 오르는 음료를 한 번에 들이켰다.
그 양은 대충 어림잡아 봐도 1만cc가 넘어갔다.
몸집만 한 유리잔을 내려놓으니 쾅- 소리가 났다.
쿵-!
그때, 문을 박차고 한 남자가 걸어들어왔다.
광기로 범벅된 얼굴은 다섯 명의 데스 마스터를 쭉 훑었다.
“다들 주목!”
그가 목소리를 높이자, 5인의 시선이 돌아갔다.
“시끄럽게 소리치고 지랄이야!”
제르다가 이마에 힘줄을 돋으며 소리쳤다.
“나중에 합류한 새끼가 건방지게 목소리를 높……!”
“아가리 닥쳐! 버러지 같은 놈!”
‘전율의 라이거’가 무시무시한 안광을 내뿜으며 제르다의 말을 뚝 끊었다.
제르다의 표정이 볼 만해졌다.
그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힘을 일으키며 라이거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마왕님의 명령이 떨어졌다!”
우뚝-!
제르다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아무리 그라도, 주인인 혼돈의 마왕의 명령 앞에서 함부로 굴 수 없었다.
어째서 저 쓰레기 같은 신입 놈이 마왕님의 명령을 들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짜증 나!’
이것 또한 열등감이리라.
아무튼, 대충 돌아가기만 했던 모두의 시선이 이제는 완벽하게 라이거에게 집중되었다.
“마왕님께서 말씀하시길.”
라이거는 그들을 보며 마왕에게 전달받은 명령문을 읊었다.
“지금부터 데스 마스터 전원, 가장 빠른 속도로 중앙 대은하에 날아가 전쟁의 포문을 열라.”
끼익-!
두꺼운 포크가 반으로 접혔다.
폭식의 비잔티가 즐겁게 웃으며 손가락에 묻은 소스를 빨았다.
“오랜만에 신선한 피 맛을 보겠군.”
“흐흐흐흐흐흐흐흐흐.”
성마 오잔도 얼굴을 반쯤 가리곤 흐느끼듯이 웃었다.
“으음, 졸리지만 어쩔 수 없지.”
못 자는 에드가도 이부자리를 대충 정리하며 일어났다.
“으어.”
벙어리 멜은 명령에 충실히 따를 뿐이었다.
“버러지들! 버러지들을 사냥한다!”
제르다는 떨어진 명령에 희열이라도 느끼는지, 적들을 유린할 온갖 방법을 떠올렸다.
그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데스 마스터에게 내려온 명령은 중앙 대은하까지 빠르게 날아가 전쟁의 포문을 열라는 것.
그 방법과 방식까지 요구되진 않았다.
“서쪽은 좀 지루했는데, 과연 중앙은 어떠려나.”
누군가의 스쳐 지나가는 듯한 말을 신호탄으로, 라이거를 제외한 모든 데스 마스터의 신형이 푹 꺼졌다.
“흠.”
라이거는 사라진 그들을 보다가 입술을 위로 길게 끌어당겼다.
“보여 주마, 아이오닉스. 네가 바라던 세계가 멸망하는 모습을.”
그 말을 끝으로 그 역시 자취를 감췄다.
* * *
박현수는 초대 천마가 말하는 계승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을 더 계승한단 걸까.
자신은 천마신공을 극성으로 익혔고, 유난의 기억을 손에 넣으며 더욱 완전해졌다.
이 이상 발전할 게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 자신의 생각을 읽은 듯, 초대 천마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의미심장한 목소리.
더 나아갈 구석이 있다는 걸까?
“그렇습니다.”
박현수는 잠자코 대답했다.
“저는 극한에 이르렀습니다. 더 노력한다면 지금보다 한 단계 나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은 하지만, 당장 이보다 더 높은 수준은 불가능합니다.”
그는 확신에 차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비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박현수의 경지는 이미 하늘에 닿아 있었다.
천계에서 만들어 낸 최강의 병기조차 그에겐 아무런 상대가 되지 못했다.
사탄이 되살아나도 삼초지적에 불과했다.
스승님을 희생하게 만든 ‘소설가’라도 마찬가지다.
그땐 답도 없는 괴물이었지만, 지금이라면 어렵지 않게 쓰러트릴 것이라 확신했다.
결단코 오만이 아니었다.
자신감도 아니었다.
초대 천마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초대 천마는 박현수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한다.
[너는 천마신공을 완성했고, 유난 님의 기억까지 손에 넣으며 격을 완성했다.]지금의 박현수는 과거 유난과 동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당연히 부족하지 않은가.] “……무엇이 부족하단 말입니까?”[몰라서 묻는 건가?]
서리가 내린 듯한 초대 천마의 눈썹이 슬쩍 들렸다.
유난은 그를 쫓아내는 정도에서 그쳤다.
그리고 그날의 여파로 결국 목숨을 잃었다.
혼돈의 마왕은 어땠나?
그는 유난에게 가로막혀 적 세계로 쫓겨났지만, 살아남은 건 그였다.
실제로 둘의 싸움에서 우세를 보인 건 혼돈의 마왕이었다.
박현수는 35대 천마였다.
보통 한 세대를 30년이라고 치면, 천 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문제는, 천마의 수명은 보통 사람보다 아득히 길었다는 점이다.
평균으로 어림잡아도 최소 60년이다.
천마의 역사는 2천 년을 가뿐히 넘겼다.
당연히 몰랐다.
[최소 2만 년 전이다.]2만 년 전부터 유난의 의지는 끊임없이 재조립되어 ‘천마신공’이란 이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그 아득한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천마신공은 유난의 힘을 극한으로 발전시킨 형태.
[그리고 넌 천마신공의 극성으로 익혔지만, 그것은 결국 너만의 천마신공이 아닌가?]박현수가 눈을 부릅떴다.
초대 천마가 하는 말의 뜻을 이해했다.
‘나만의 천마신공.’
그의 말처럼, 박현수는 천경에게서 이어진 천마신공은 자신의 입맛대로 여러 변형을 거쳤다.
솔직히 처음 배웠던 천마신공과 지금의 천마신공은 틀이 많이 달라졌다.
그렇다면 그것은 ‘진정한’ 천마신공이라고 할 수 있는가.
초대 천마의 몸에서 흑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를 뒤따르는 역대 천마들의 몸에서 비슷한 기운이 일어났지만, 그 형태는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물처럼, 누군가는 바람처럼, 누군가는 단단하게, 누군가는 끈적거리게.
‘나는…… 먹을 푼 것 같은.’
역대 천마들의 천마신공은 모두 달랐다.
그러니 그들의 것을 계승하여 진정한 천마신공에 이르렀다.
천마들의 힘이 박현수의 단전 안으로 빨려 들어온다.
머리에서 광활한 우주가 펼쳐진다.
빛이 눈밭을 뒤덮었다.
[다녀와라, 35대여.]우주가 격동하기 시작했다.
* * *
모나미는 막 잠에서 깬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방 안엔 아무도 없었다.
다들 어디 간 걸까?
“아빠.”
아이는 아빠를 부르며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복도 역시 한산했다.
다들 어디로 간 걸까?
일단 밖으로 나가 보자는 생각에 작은 날개를 열심히 움직였다.
잠이 덜 깨 축 늘어진 꼬리가 귀여웠다.
모나미는 크게 하품을 했다.
눈물이 살짝 맺혀 작은 손으로 눈가를 비볐다.
“으음……. 졸려요.”
최근 몇 달 사이 부쩍 잠이 많아진 모나미였다.
그만 자고 싶은데, 가만히 있으면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빠는 성장기라 그런 거라고 했는데.
많이 자면 아빠만큼 클까?
‘그 아저씨처럼 무섭게 크면 어떡하지.’
모나미는 꿈속에서 사탄을 만난 적 있어서,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었다.
우주엔 많은 드래곤이 살아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실제로 본 건 사탄이 끝이었다.
아빠의 연인인 하유락이란 여자도 드래곤이라곤 하지만, 그녀는 반인반룡이었다.
그렇다 보니, 자신이 컸을 때의 모습을 사탄의 외형으로만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
“히잉…….”
그렇게 얼마나 날았을까.
모나미의 기감에 뭔가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몸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들고, 동공이 풀리며 어딘가를 향했다.
라베녹스 교의 총본산은 우주 최고의 방비를 자랑한다.
관리자가 아니라면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를 정도로, 소음과 에너지 차단 역시 훌륭한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기감이 민감한 모나미가 여태까지 밖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힘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 본능까지 억제하지 못했다.
“……아빠.”
아이는 아비의 힘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다시 날갯짓했다.
황금빛 입자가 복도를 뒤덮는 걸 알지 못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