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4
훈수 두는 천마님 23편
[배 안 고프냐?]“먹긴 해야죠.”
[역시 라면이지?]“요즘 들어 라면이 정말 싫습니다, 스승님!”
박현수가 빽 소리쳤다.
오늘 아침에도, 어제 저녁에도 라면, 라면, 라면!
차라리 요 이틀이 다였다면 박현수도 맛있게 라면을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경이 음식 먹는 방법을 알아낸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사이에 박현수는 라면 끓이는 기계가 되어 버렸다.
심지어 인스턴트 라면을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끓일 수 있는지 공부까지 해야 했다.
질린다.
꼴도 보기 싫다.
살다 살다 라면이 이토록 싫어질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천경은 정말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순진무구한 노인의 표정에 박현수는 할 말을 잃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잖아요. 사람이 어떻게 매일 똑같이 라면을 먹습니까?”
[본좌도 말했잖느냐. 못 먹을 건 또 뭐냐고.]“이렇게 물어보죠. 스승님은 그 무림이란 곳에 살 때 똑같은 음식만 먹고 살았습니까?”
[그건 아니지.]“지금 우리가 그러고 살고 있다고요!”
[뭐 어떠냐. 맛있으면 된 거지.]말이 통하지 않는다.
박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전 오늘 밥 먹을 겁니다.”
[뭘 먹을 건데?]“제.육.덮.밥!”
라면과 더불어 박현수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라면과 달리 한 그릇이 6천 원 정도 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먹을 수 있었다.
한동안 천경 때문에 제육 덮밥을 먹지 못했다.
오랜만에 제육덮밥 먹을 생각을 하니 군침이 돌았다.
지구의 음식은 무림과 비슷하면서도 또 달랐다.
라면만 해도 무림의 면 요리 중 비슷한 것만 수십 가지는 되리라.
“잘 생각하셨어요. 사람이 어떻게 똑같은 것만 먹어요?”
[시끄럽다! 맛없으면 바로 라면이야!]“예예~ 그러세요~”
박현수는 곧장 단골 분식집으로 향했다.
“어머, 총각! 엄청 오랜만이네~”
분식집으로 들어가자 주인아줌마가 박현수를 알아보고 마중을 나왔다.
평소라면 ‘왔어~’ 정도로 끝났을 텐데, 박현수는 살짝 당황스러웠다.
“아, 오랜만이에요.”
“정말 못 본 사이에 왜 이렇게 유명해졌어! 정말 놀랐다고, 정말!”
주인아줌마는 그의 팔을 찰싹찰싹 치면서 친한 척을 했다.
그러자 식사하고 있던 손님들이 박현수를 쳐다봤다.
그리곤 눈이 휘둥그레지며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박현수 헌터다.”
“그 헌터님 맞지?”
“영웅 박현수?”
“사, 사인 받을까?”
그제야 박현수는 주인아줌마가 왜 이렇게 반응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전국에 대대적으로 그가 한 일이 알려지며 박현수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일약 스타가 되었다고 사람들이 그를 쉽게 알아보진 못했다.
일단, 뉴스에 올라간 사진은 한창 전투하면서 피폐해진 몰골이었다.
평소엔 그런 몰골이 아니니,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쉽게 알아보지 못했다.
몇 번 있긴 했지만, 말 그대로 ‘몇’ 번이었다.
박현수에겐 익숙하지 않은 시선이었고, 호의였다.
박현수는 멋쩍은 얼굴로 손님들을 보았다.
천경이 뒤에서 가부좌를 튼 상태로 말했다.
“일로와 총각. 총각 덕분에 내 동생네가 무사했지 뭐야.”
“네?”
“내 동생네가 송파구에 살 거든. 정말 큰일 날 뻔했는데, 총각이 그 뱀 같은 괴물을 쓰러트려 줘서 멀쩡할 수 있었어. 정말 은인이라니까 은인!”
그러면서 주인아줌마는 호호 웃으며 박현수를 자리로 안내했다.
박현수는 조금 놀랐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자신이 구했던 사람의 가족이 있을 줄이야.
그녀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며 계속해서 신에게 기도했다고 한다.
“오늘은 다 공짜로 줄게. 먹고 싶은 거 다 말해. 내가 고마워서 그러는 거니까 사양하지 말고. 알았지?”
“가,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사양할 수가 없어 박현수는 자리에 앉았다.
주인아줌마가 주방으로 쌩 달려갔다.
박현수는 자리에 앉은 채 느껴지는 여러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천경은 천마신교의 주인이었고, 천마신교는 무림에서 거악(巨惡)으로 군림했다.
마교도들한테 천경은 신이었지만, 다른 이들한텐 마신이었다.
하지만 영웅은 아니었다.
마교도들은 그를 신이라 두려워했고, 마교도가 아닌 자들은 그를 마신이라 두려워했다.
모두가 그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천경은 누군가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어본 적 없었다.
그 사실이 우스워 대소를 터트렸다.
박현수는 뜬금없이 웃는 스승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주인아줌마가 푸짐한 뚝배기에 담긴 제육덮밥을 가져왔다.
김밥도 종류별로 여섯 줄이나 가져왔다.
포장은 안 되어 있었다.
“어, 포, 포장해 가려고 했는데.”
“아! 포장한다고 했었지! 금방 해 줄게.”
“아녜요. 공짜로 먹는데, 여기서 먹고 갈게요. 그리고 제육 하나만 포장해 주세요.”
“알겠어~”
“이건 돈 낼 겁니다!”
주인아줌마는 들은 척도 안 하고 빠르게 주방으로 사라졌다.
박현수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함에 실소를 흘렸다.
그때 천경이 음식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네. 맛있겠죠?”
붉은 윤기가 좔좔 흐르는 고기 덩어리들 위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그 아래 기름진 양념이 묻은 하얀 밥알이 번들거렸다.
“아줌마가 모르고 바로 내와서, 전 여기서 먹어야 할 것 같아요. 포장 주문했으니 가서 드세요.”
[스승을 두고 혼자서 잘도 넘어가겠구나?]“물론이죠.”
박현수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천경이 못된 놈이라며 타박했지만, 박현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첫술을 떠 입에 넣었다.
맵고, 짜고, 달고.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MSG의 풍미가 입안, 코 안을 가득 채웠다.
오랜만에 맛보는 제육 덮밥의 맛에 박현수는 숟가락을 쉬지 않고 놀렸다.
무공의 묘리로 현란하게 움직이는 왼손은 김밥을 입안으로 신속하게 집어넣었다.
천경은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혀를 찼다.
* * *
집으로 돌아온 박현수는 빵빵해진 배를 손으로 문질렀다.
“꺼억! 꺽!”
[스승 앞에서 체통 머리 없이!]시원하게 트림하던 박현수의 뒤통수에 불이 났다.
“우, 우웩!”
[더러운 놈.]갑작스러운 충격에 열심히 먹은 것들이 한꺼번에 넘어올 뻔했다.
박현수는 붉어진 눈으로 컥컥거리며 제 스승을 노려봤다.
“무슨 짓이에요!”
[스승 앞에서 어떤 제자 놈이 대놓고 트림을 하느냐? 왜 방귀까지 뀌어 보지?]“젠장. 사람이 트림도 할 수 있는 거지. 너무 고지식한 발상이십니다.”
[고지식은, 이 자식이!]“으악!”
천경이 때리는 척 시늉을 하자, 박현수는 맞은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에휴. 어서 음식을 풀기나 하거라.]“칫.”
괜히 무안해진 박현수는 상을 펴고, 포장해 온 제육덮밥과 김밥을 펼쳤다.
식당에서 혼자 먹은 터라 스승은 옆에서 구경만 해야 했다. 그 때문인지 빨리 먹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여기요.”
박현수는 포장지를 한번 만지고, 식기를 천경에게 건넸다.
천경은 히죽 웃으며 제육덮밥을 한술 떴다.
“전 씻고 올게요.”
[그러던가.]“음식 앞에서 제자는 안중에도 없죠?”
[시끄럽다.]박현수는 속으로 ‘못된 노인네’라고 중얼거리며 아까 맞은 뒤통수를 문질렀다.
박현수가 화장실로 들어가고 혼자 남은 천경은 식사에 열중했다.
짭조름하고, 달콤한 맛이 천경의 혀를 강타했다.
이곳에 와서 라면과 핫도그 말곤 먹어 본 적이 없는 그였다.
천마신교에서 먹던 호화스러운 식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애당초 이곳에서 그런 식사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우스웠다.
또, 천경 자체가 ‘맛있으면 장땡’이라는 주의였다.
제육덮밥은 그의 입맛에 아주 잘 맞았다.
시장통에서 팔 것 같은 느낌이라, 조금이지만 무림 생각도 떠올랐다.
젊었던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무림을 활보하던 때, 끼니를 때우기 위해 시장통을 누비고 다녔다.
교주 시절에도 느끼지 못했던 오랜 향수를 이곳에서 느끼게 될 줄이야.
천경은 말없이 제육덮밥을 즐겼다.
* * *
씻고 나온 박현수는 식사를 마치고 명상하고 있는 천경을 보았다.
식사를 끝내고 나면 항상 30분씩 명상을 했는데, 이때는 절대 말을 걸면 안 되었다.
그는 조용히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하유락에게 받은 서류 봉투를 뜯었다.
서류 말머리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박현수는 젖은 머리를 손으로 탈탈 털고 자리에 앉았다.
그는 계획서에 적힌 내용을 천천히 정독했다.
그리고 정독이 끝났을 때 그의 고개는 30도 정도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낙원의 파편?”
박현수 역시 ‘낙원’에 대해 알고 있었다.
솔직히, 전 세계 사람 중 모르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최초의 S급 포탈이며, 그 어떤 포탈보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최악의 포탈.
그러나 내부가 어땠는지, 등장한 몬스터와 보스 몬스터는 어땠는지, 민간에 공개된 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은 왜 ‘낙원’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이름이 붙었는지 알지 못했다.
“파편이 있었어?”
계획서를 보니, 지금도 꽤 많은 파편이 남은 모양이었다.
“잠깐. 서해상에 포탈이 있었던가?”
모든 포탈은 민간에 공개되었다.
언제 포탈이 개방되어 재앙이 발생할지 모르니 모두가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한데, 자신이 알기로 서해상에 포탈은 존재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한반도 포탈 목록을 검색해 봤지만,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비밀리에 존재하는 포탈.”
그 말은 즉, 낙원의 파편을 아는 이가 극소수라는 얘기였다.
하유락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렇다 해도 포탈의 존재를 민간에 알리지 않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아무리 비밀스러워도 포탈은 포탈.
언제 개방될지 모르는데 그걸 숨긴다는 건, 최소 수백에서 최대 수백만까지의 목숨을 업신여기는 행위였다.
“대체 뭐길래?”
박현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들었다.
궁금한 게 생겼으니 물어보는 게 인지상정.
그가 다이얼을 누르는 순간.
삐리리리리리!
그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수신자를 보았다.
타이밍 좋게 연락이 왔다.
박현수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귀로 가져갔다.
“여보세요?”
-당장 그곳에서 도망쳐!
“예? 갑자기 무슨…….”
-빨리! 안 그러면 죽을 수도 있……!
뜬금없는 소리에 박현수가 인상을 찌푸리는 순간.
오싹-!!
명상을 끝낸 천경이 눈을 떴고, 박현수는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콰아아아앙!!
무지갯빛의 무언가가 벽을 꿰뚫었다.
박현수는 난데없이 몰려오는 빛을 향해 정권을 질렀다.
펑!!
공기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빛이 해일처럼 갈라졌다.
그 뒤로 누군가 서 있는 걸 발견했다.
새하얀 머리칼과 피부, 회색 눈.
마치 한 마리의 하얀 늑대를 의인화시킨 것 같은 모양새.
“Stirb(죽어라).”
학센 발두르가 손을 펼쳤다.
박현수는 본능적으로 죽음을 감지했다.
그래서 앞으로 내달렸다.
학센의 손에서 강한 에너지 덩어리가 분출됐다.
집은 물론이고, 그 뒤까지 침범할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박현수는 피하지 않았다.
오른손을 위로, 왼손을 아래로.
태극이 그려진다.
천마신공의 숙련자인 그가 태극의 묘리를 사용하는 것은 우습지만, 그의 몸은 누구보다 태극과 가까운 음양지체.
박현수는 힘의 저항을 느끼며 땅을 박찼다.
에너지 덩어리가 흩어졌다.
그가 이를 악문 채 발악하듯 소리쳤다.
“뭐라는 거야 이 외국인 새끼가!”
[파천마권 제1식] [종파(種破)]학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