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6
훈수 두는 천마님 25편
학센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제고 넘쳐흐르던 힘이 콘센트를 뺀 것처럼 뚝 끊겼다.
힘을 과하게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가 마음먹으면 이런 마을 따위, 수백 번은 먼지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화력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민간의 피해를 생각해 오로지 박현수를 죽일 수 있는 정도로만 힘을 사용했다.
그러니 지금도 힘은 넘쳐흘러야 정상이었다.
“큭!”
박현수의 마구잡이식 주먹이 학센의 볼을 스쳤다.
‘각성자의 힘이 사라진 건 아니야.’
육체 능력은 그대로였다.
학센은 박현수를 보았다.
힘을 못 쓰는 상태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쉽게 놓아 줄 것 같지도 않았다.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쯤 협회 한국 지부의 헌터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을 터.
상황에 점점 골치가 아파왔다.
“죽어!”
힘을 못 쓰기는 박현수도 마찬가지였지만, 박현수는 천경이라는 위대한 스승에게 무공을 배웠다.
초식이란, 쉽게 말해 ‘싸우는 기술’이다.
내공이 있어야 그 진가를 드러내지만, 평범한 싸움에서도 초식을 접목시키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박현수는 아직 능숙하지 않았지만, 천경에게 맞아가면서 배워 왔다.
학센이 뒤로 물러나며 왼 다리를 위로 올려 찼다.
박현수는 오른팔을 반시계 방향으로 틀어 학센의 다리를 바깥으로 흘려보냈다.
파천마권의 제2식, 근파의 묘리를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왼 다리를 앞으로 내밀며 기수 자세를 취했다.
팔꿈치를 뾰족하게 세워 학센의 얼굴을 향해 그었다.
학센은 고개를 뒤로 젖히는 것으로 공격을 피해냈다.
‘아까의 그 베기 공격이다.’
허벅지에서부터 옆구리까지 석둑 갈라 버린 무시무시한 공격.
박현수는 제3식 엽파의 묘리를 이용했다.
‘곤란하군. 싸움은 저쪽이 능해.’
학센은 막대한 에너지를 바탕으로 적을 압도하는 싸움을 해 왔다.
박현수처럼 근접전에서 치고받은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어찌 보면, 에너지를 쓰지 못하는 학센에게 있어 박현수는 천적이었다.
박현수는 천경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공격의 위력은 무게를 얼마나 싣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주축이 되는 앞다리로 바닥을 강하게 내리눌렀다.
허리를 최대한 회전시켰다.
몸의 체중이 회전하는 방향으로 쏠리며 관성이 몰려든다.
그대로 정권을 내질렀다.
학센은 양팔을 교차했다.
언제고 뒤로 공격을 흘려보낼 수 있도록 몸을 살짝 위로 떠올렸다.
“목파!”
그렇기에 박현수는 침투경의 수법을 사용했다.
그 힘은, 내공이 접목됐을 때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지만.
“흡!”
에너지를 쓰지 못하는 건 학센 역시 똑같았다.
학센은 힘을 뒤로 흘려보냄에도 팔 안쪽으로 찔러 들어오는 고통에 눈살을 찌푸렸다.
박현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 한발 나아갔다.
그는 허리를 숙여 학센의 가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중심을 잡지 못한 학센은 팔을 십자로 교차시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랬으면 안 됐다.
박현수의 몸이 팽이처럼 빠르게 회전했다.
좁은 거리에서 최대한 구부려진 다리가 낫처럼 학센의 팔과 가슴 사이를 파고들었다.
한 번 당했던 수법.
학센은 아차 싶어 교차한 팔을 풀었지만, 팔에 실리는 무게에 본능적으로 힘을 주게 되었다.
인간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물며 무인도 아니라면야, S급 헌터건 아니건 결국 똑같은 법이다.
박현수는 땅에 딛고 있던 다리마저 공중으로 띄웠다.
팔은 다리보다 약하다.
학센의 양팔이 박현수의 다리에 감긴 채 아래로 내려갔고, 박현수의 또 다른 다리가 무릎을 뾰족하게 세워 학센의 얼굴을 찍었다.
일련의 과정은 고작 1초 만에 벌어졌다.
‘이겼다.’
박현수가 승리를 확신했다.
그 순간이었다.
학센의 몸에서 무지갯빛 기운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천경은 그리 소리치며 박현수가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하나뿐인 제자를 이곳에서 잃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허상이나 다름없는 그가 뜬금없이 터져 나오는 폭발을 막는 건 불가능했다.
박현수는 달려오는 스승의 뒤로 희뿌연 빛이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시간이 느릿하게 흐르며 알 수 없는 기억이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흑룡이 새겨진 피풍의를 입은 중년인이 적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강함을 뽐냈다.
손발에서 뻗어 나가는 무공은 익숙했고, 공격을 허용한 적들은 풍선처럼 터져 나갔다.
무슨 기억일까.
그보다, 저 피풍의는 어디서 많이 본 옷이었다.
‘아.’
스승의 젊은 시절.
이 알 수 없는 기억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런 것처럼 보였다.
박현수는 스승의 투로와 몸의 궤적을 눈에 새겼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 높은 고강한 무공.
훈수 듣기가 3레벨이 되며 개방된 능력.
특정 인물의 능력은 하루 1회 흉내 낼 수 있는 힘.
후반 6식에 대해 스승인 천경은 아직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다.
천마지체 이후 남아 있는 잔여 기억 속에서도 후반 6식의 기억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사용할 수 있었다.
박현수는 천마신공의 계승자이기 이전에 각성자이며, 헌터였다.
그의 무기는 무공만이 아니었다.
특정 스킬은 내공(에너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폭발이 주먹 안으로 말려 들어간다.
학센은 경악했다.
거대한 힘이.
하늘과 땅이 박현수를 선택한 듯 천지가 진동한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더 무서운 것은, 오로지 타깃인 학센 본인만이 그 황당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위험……!’
저것에 직격당하면 아무리 자신이라도 온전치 못할 것이다.
저 힘은 물리력에 구속되어 있지 않았다.
학센은 확신했다.
‘두렵구나. 고작해야 이제 막 각성한 루키 주제에 나를 이 정도로 압박하다니. 시간이 흐른다면.’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말은 즉.
‘아직은 내가 월등히 강하다.’
박현수가 사용하려는 기술은 무섭지만, 그것이 승리를 약속하지는 못한다.
학센은 지금까지 힘을 조절하고 있었다.
갑자기 힘이 뚝 끊겨 일방적으로 얻어맞았지만, 힘이 돌아온 이상 패배는 용납되지 않았다.
민간인의 피해는 필연적일 터.
그 부분은 마음의 짐으로써 평생 안고 가면 그만.
‘살을 주마.’
대신, 뼈를 취하겠다.
샛노란 힘이 그의 심장에서부터 펌핑되며 뿜어져 나왔다.
천경의 외침.
박현수는 사용하고 있되 이해할 수 없는 천령인을 보며, 그저 주먹을 직선으로 뻗었다.
학센은 그에 맞춰 샛노란 힘을 방출했다.
그리고 둘 사이에, 완벽한 원을 그린 투명한 거울이 나타났다.
위잉-!!
거울은 거짓말처럼 두 힘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거기까지다!”
그리고.
불의 기둥이 역으로, 하늘에서 땅을 향해 떨어졌다.
콰아앙-!
불의 기둥은 정확히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부서진 아스팔트 파편이 허공을 난자했다.
그 틈을 타고, 네 명의 인원이 재빨리 학센을 포위했다.
네 개의 도검이 그의 목과 팔다리를 지그재그로 포박했다.
반면 박현수의 목에 드리운 검은 한 자루였는데, 청룡팀의 대장 가온이었다.
박현수와 학센은 난데없이 나타난 인물들을 보았다.
박현수와 달리, 학센은 그들을 알고 있었다.
“청룡팀인가?”
“미안하지만 독일어는 못 알아듣습니다, 발두르 씨.”
대답한 건 개미였다.
그는 특유의 처진 눈 때문에 평온한 듯 보였지만, 실제론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현재 움직임을 제지하고 있는 상대는 S급 헌터.
그중에서도 ‘두 번째’로 강하다고 알려진 아스트랄 위저드(Astral Wizard), 학센 발두르였다.
긴장하지 않는 게 이상하리라.
학센 역시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건 마찬가지였다.
대신 그의 눈이 가온이 들고 있는 거울로 향했다.
새까맣게 그을린 거울에선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거울 세계로 힘을 흡수했군. 한국 협회가 무리를 했구나. A급 아이템을 이런 곳에 소모하다니.”
“그 입 닥쳐, 이 개자식아!”
떨어져 내리는 불기둥이 펑 하고 꺼지며, 그 안에서 붉은 머리를 흩날리는 여자가 걸어 나왔다.
여자는 잔뜩 화가 난 상태였는데, 풍성한 머리카락이 허공에 떠오르는 것으로 감정을 표출하고 있었다.
“감히 내 사랑스러운 부하를 건드려?”
하유락은 불꽃으로 뒤덮인 양 주먹을 와락 쥐었다.
학센은 전에 없는 살기 띤 눈으로 하유락을 노려봤다.
“마녀.”
“죽고 싶지 않으면 닥쳐라.”
하유락의 주먹이 빨간색에서 점차 하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불은 하얘질수록 뜨겁다.
그 열기는 일대를 모조리 녹여 버릴 정도였다.
그렇게 되지 않는 이유는 하유락이 열기의 범위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스가 여긴 어떻게? 그보다 이 사람들은 누구죠?”
박현수는 가온을 힐끗 보며 하유락에게 물었다.
“얘기는 나중에. 지금은 이 녀석부터.”
“계획은 실패로군. 이 이상은 난센스. 그만 돌아가지.”
“누구 마음대로!”
하유락은 독일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학센에게 돌진했다.
말이 돌진이지, 허공에 픽 하고 꺼졌다가 그의 앞에 툭 튀어나온 것이었다.
공간 이동의 일종으로, 열의 본질을 가진 하유락만이 할 수 있는 이동 기술이었다.
네 명의 청룡팀원이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이곳에서 학센을 잡는다.
하유락은 그럴 작정으로 이곳까지 전력으로 온 것이다.
“너와 나의 차이는 그날 알려 줬을 텐데.”
학센은 가소롭다는 듯 주먹을 달려오는 하유락을 보았다.
“넌 날 어쩌지 못한다.”
“내 전력을 본 적도 없는 주제에.”
상체를 왼쪽 아래로 휙 돌린 하유락이 전력을 다해 왼 주먹을 휘둘렀다.
하얀 불꽃이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학센의 몸 주위로 보호막이 펼쳐졌다.
‘아스트랄 위자드’란 이명은 그의 능력이 알 수 없는 마법과 같다 하여 지어진 것이다.
학센은 자신의 전력을 알지 못한다.
어떤 힘을 다룰 수 있는지도 정확하게는 몰랐다.
그 말은 곧, 어지간한 건 다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하유락처럼 단일 속성에만 극대화된 각성자는 학센을 이길 수 없다.
절대로.
“소란은 여기까지다. 이 말썽꾸러기 보스.”
낯선 목소리가 공간을 장악한 건 그 순간이었다.
박현수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선을 보았다.
마치 공간 전체가 입체 도면이 된 것 같았다.
상황이 종결되어 가는 낌새를 느낀 천경은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무복을 닮은 복장을 한 동양인이 일본도를 쥔 채 밑으로 추락하고 있다.
동양인이 일본도를 휘둘렀다.
공간이 쪼개졌다.
“빨리 따라왔군, 타케시.”
“타케시?!”
학센과 하유락이 저마다의 반응을 보이며 뒤로 물러났다.
쪼개진 공간이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바닥을 검으로 벤 것처럼 기다란 검상이 그어졌다.
그곳으로 가볍게 착지한 야마모토 타케시가 일본도를 도집에 반듯하게 집어넣었다.
“미안하게 됐군, 하유락. 우리 보스가 실례가 많았다.”
“단순히 실례가 많았다고 하기엔, 그 녀석은 선을 너무 많이 넘었어.”
“그건 내 얼굴을 보고 넘어가 주면 안 되겠나?”
그때, 허공에 투명한 문이 열리며 흑인 남자가 걸어 나왔다.
“질, 너까지?”
“3달만인가?”
하유락이 눈살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