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31
훈수 두는 천마님 30편
사막은 끝을 모르고 이어져 있었다.
박현수는 바뀌지 않는 배경에 지친 상태였다.
육체적으로 지친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지친 것이다.
“후우. 어떻게 해야 나갈 수 있는 거야?”
[아주 강력한 환각이다. 하지만 모든 함정이 그러하듯 완벽한 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지만, 인위적인 것엔 항상 비틀림이 있기 마련. 너는 그것을 찾아야만 한다.]“그게 쉽지가 않다구요.”
[쉬웠으면 지금 이 고생을 하고 있겠느냐?]천경의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라서, 박현수는 입만 대빨 내밀 뿐이었다.
다시 계속 걸었다.
이 광범위한 수준의 환각을 어떻게 파훼한단 말인가.
박현수의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했다.
그리고 천경 역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이곳은 대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가.’
천경은 오래 살아 온 만큼, 많은 것들을 봐 왔다.
당연히 환각에도 여러 번 당해 봤다.
그중 젊은 시절, 천호자(天號子)라는 기인의 기문진에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기문진에는 천경조차 사경을 헤맬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천호자의 기문진 속에서 본 환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했다.
‘환각이 아닐 수도 있겠어.’
그렇다면 뭐란 말인가.
무엇이든 평범할 순 없으리라.
그리고 답 없는 그곳에서 두 사람은 누군가와 마주쳤다.
“어?”
“어?”
“이거 박현수 씨 아닙니까!”
그는 바로 이지스 길드의 길드장 최재혁이었다.
* * *
“히야~ 이거 정말 천만다행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아, 네. 뭐.”
박현수는 옆에 시끄러운 남자를 보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남자, 최재혁은 그런 것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는지 계속해서 할 말을 이어 갔다.
“처음 여기 떨어졌을 땐 눈앞이 까마득했다니까요? 으아, 증말 얼마나 깝깝하던지! 그때 박현수 님이 딱!!”
“하하…….”
“답이 없었는데. 이제 둘이니까 조금 더 수월하게 나가는 출구를 찾을 수 있겠네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박현수는 대충 대답하며 최재혁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보다, 하얀 늑대를 상대로 밀리지 않고 싸웠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진짜 오져요 오져!!”
[굉장히 시끄러운 놈이로구나.]천경은 쉬지 않고 나불대는 최재혁을 질린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괴물 뱀을 처죽일 때도 ‘와 대단한 슈퍼 루키 나타났구나! 한국에도 누님 다음으로 강력한 헌터 나타나나’ 싶었는데, 크! 역시나. 제 눈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후. 진짜 그때 제 첫 데뷔 무대가 떠오르더군요. 5m가 넘어가는 예티였는데. 아, 제가 각성한 게 약 1년 3개월 쯤 됐는데…….”
박현수는 이젠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입에 모터라도 달았는지, 진짜로 달았다면 아가리를 벌려 떼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박현수는 최재혁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렸다.
그래도 감당하기 어려운 소음이었지만, 지금은 그것만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박현수는 기분 나쁜 동행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광활한 모래사막은 그의 바람을 들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말이죠, 제가 그 예티 녀석의 관절을 이리 꺾고, 저리 꺾고! 아주 꼼짝도 못하도록 사지를 그냥!”
최재혁은 옛 회상이 신나는지 몸을 들썩여가며 설명을 했다.
[정신 사납구나. 고놈 확 모가지를 쳐서 입도 뻥긋 못하게 해라.]‘?!’
천경의 무식한 요구에 박현수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쳐다봤다.
천경은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말한다.
농담이 아니었다.
천경은 진심으로 그리 요구하고 있었다.
박현수는 이곳에 제정신인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며, 한편으론 천경의 말이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신 또한 모래사막에서 미쳐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박현수를 최재혁이 보고 있었다.
눈동자만 굴려, 떠들어 대는 입은 가만히 멈추지 않은 채 그렇게 보고 있었다.
‘왼쪽 위를 봤어.’
최재혁은 단 한 번도 박현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말을 하며 사람을 보는 건 예의라고들 하지만, 그가 한 것은 단순히 본 게 아니었다.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관찰’했다.
그것은 최재혁의 특기였고, 어디에나 내세울 수 있는 장기였다.
물론 아무도 그의 장기를 알지 못했다.
‘누님, 누님’거리며 친한 척 구는 하유락에게조차 말한 적이 없었다.
‘방금 그 눈. 놀랐을 때의 표정이었어. 무엇에 놀란 거지? 그리고 고개를 정면으로 돌리며 약간 한심해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단 말이지. 왜? 나 때문은 아닌 것 같고. 자책하는 듯한 느낌인데.’
입으론 알량하게 꼬리나 흔들어 댈 줄 아는 여우들이나 좋아할 법한 말을 뱉으며, 머리로는 박현수의 표정을 기반으로 한 생각을 추측해 나갔다.
하유락은 최재혁을 ‘능력 있는 난봉꾼’ 정도로 생각했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최재혁은 누군가를 해하는 데 있어 단 한 번도 즉흥적으로 움직인 적이 없었다.
행동과 말투가 가볍고 천박하면, 대게 그 사람은 무시당하기 마련이고, 좋든 싫든 한 번쯤은 그 앞에서 방심하게 된다.
박현수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전에, 박현수란 인간을 아는 게 우선이었다.
‘운이 좋았어. 이런 미친 곳에 떨어졌을 때만 해도 답이 없어 보였는데.’
최재혁은 박현수가 알 수 없는 모래사막의 탈출구를 만들어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찾아낼 가능성을 높여 줄 거라고는 믿었다.
지금까지 보여 준 그의 행보는 충분히 그런 기대감을 불러일으킬 수준이었다.
‘시간은 꽤 많아.’
박현수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것들은 부하들과 떨어지며 전부 증발했지만, 준비야 새로 하면 그만.
‘이 녀석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다루는 각성자가 아니다.’
근접.
그중에서도 무투.
우연히 구한 하얀 늑대와의 전투 영상에서도 특별한 힘을 보여 주지는 않았다.
필히 이능, 혹은 이능에 가까운 능력은 존재하지 않을 터.
그렇다면 충분히 한 수를 꽂을 수 있었다.
성공만 한다면, S급 반열에 올랐다고 추정되는 박현수도 충분히 무릎 꿇릴 수 있으리라.
다만, 최재혁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숱한 경험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온 노인이.
[살의가 담겨 있는 눈이다.]폭력과 억압, 지배의 세계에 군림해 온 천마가.
[연기하고 있었나?]애송이를 관찰한다는 사실.
[재밌군.]그리고 그걸 제자가 듣는다.
박현수의 눈에 푸른 귀화가 일렁였다.
* * *
하유락은 새빨간 노을이 내리쬐는 수평선 위에 서 있었다.
이글거리는 그것은 물조차 불태워 버릴 것처럼 수면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다.
있는 거라곤,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붉은 바다뿐.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파편의 포탈로 들어갈 땐 모두가 함께였다.
들어온 직후에 그녀는 혼자였다.
하유락은 높이 날아올랐다.
한계를 모르고 날아올랐지만, 육지로 보이는 건 어디에도 없었다.
사방위조차 파악할 수 없는 상황.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정처 없이 떠도는 것뿐이었다.
하유락은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계속해서 비행했다.
발끝을 따라붙는 불의 꼬리는 언제나처럼 폭발적이었지만, 어쩐지 외로워 보였다.
“아무것도 없다고?”
아무것도 없다.
3시간의 비행 끝에 하유락은 인근에 자그마한 돌섬조차 없음을 깨달았다.
더 가면 무언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그녀는 왠지 세상의 끝을 가도 이곳과 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저 아래는?
하유락의 시선이 붉게 타오르는 수면을 향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석양이란 본디, 해가 질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보통 석양의 반대편은 어둠이 내려앉고 있어야 정상이다.
한데 이곳은 어떤가.
“왜 온통 빨간 거야?”
바다 전체가 빨갛다.
하늘 전체가 빨갛다.
그 위화감을 이제야 눈치챘다.
하유락의 붉은 머리칼이 해풍에 흩날렸으나, 붉은 석양 아래 머리칼은 아름다움을 잃었다.
“귀찮게.”
심각한 상황 속에서 위기감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공포를 느끼진 않았다.
하유락의 손바닥이 하늘을 향했다.
그 위로 노란색 불길 수십 줄기가 한데 뭉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엄청난 크기로 부풀어 올랐다.
비유 대상을 찾기 힘들 정도로, 하유락의 손바닥에 뭉쳐지는 노란 화염 구체는 어느새 하늘을 덮어 버릴 정도가 되었다.
“증발시켜 보면 알겠지.”
바다를 증발시킨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깨트리는 것보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유락은 배움이 깊었다.
그러니 그런 상식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증발시킬 수 있었다.
꼭 모든 걸 증발시키리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하유락은 바다 일부분이라면 증발시킬 힘을 가지고 있었다.
헤아릴 수 없는 크기의 불덩이가 수면으로 낙하했다.
그리고 폭발했고, 그 규모는 열기가 닿는 모든 곳이었다.
붉은 바다 한복판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인페르노 밤은 멈출 생각이 없는지, 수 킬로미터의 바다를 가로질렀다.
하유락은 동그랗게 증발한 바다의 구멍을 보며 그대로 낙하했다.
증발한 바닷물은 곧 다른 바닷물로 채워진다.
그 전에 가장 아랫바닥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확인해 볼 만한 곳은 그곳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마 못 가, 그녀는 발견할 수 있었다.
끼리리릭
끠리리리리이이익!
동그랗게 펼쳐진 수중의 벽 안쪽에서 번뜩이는 붉은 안광을.
그것은 감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수중의 벽을 가득 메울 정도로 전위적이었다.
그중 하나가 벽 바깥으로 머리를 쑥 내밀었다.
“……장어?”
핏빛 피부를 가진 장어였다.
장어만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상어?!”
한 10미터는 되어 보이는 상어 머리에 장어의 꼬리가 박혀 있었다.
상어의 눈은 죽어 있었다.
지느러미와 꼬리도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러나 장어가 고개를 바짝 들었을 때.
크오오오오오오오!
상어가 울부짖으며, 물속도 아닌 허공을 꿰뚫고 돌진했다.
하유락은 보고도 믿기 힘든 기이한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그저, 양손에 불을 움켜쥐었다.
* * *
레드 라이온의 헌터들은 파 먹힌 듯한 거대한 암벽의 산을 보고 있었다.
드넓은 황야에 숨을 곳 따위는 없었고, 그들은 현재 상당히 많은 몬스터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성명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가 아무리 베테랑 A급 헌터라고 불리고, 숱한 절망을 맛봤다고는 하지만, 오늘처럼 죽음이 바로 옆에 도사리는 느낌은 난생처음 받아 봤다.
그건 다른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성명진까진 아니어도, 길드의 위상을 높이는 데 많은 업적을 세운 이들이었다.
그들 모두가 등을 마주한 채 둥글게 포지션을 잡고 있었다.
레드 라이온은 언젠가 벌어질지도 모를 제2의 포탈 임팩트를 대비해 주 2회씩 꾸준히 합동 훈련을 해 왔다.
덕분에 그들의 호흡은 명령권자가 없어도 일시적으로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크르릉…….
끼요오오옷!!
우효오오오!
그리고 그런 생각을 무참히 짓밟을 기세로 몬스터들이 끔찍한 울음을 토해냈다.
“여기서 죽겠군.”
“무서운 소리 하지 마라. 진짜 그렇게 되면 어쩔래?”
“낄낄. 쪼셨습니까?”
“선배한테 말하는 뽄새하곤. 크크큭.”
“시발 지릴 것 같다.”
“나도.”
헌터들은 비현실적인 광경에 저마다 농담 따먹기를 했다.
그 목소리는 체념의 빛을 띠고 있었다.
대화를 들으며 성명진은 자신의 애검을 바짝 쥐었다.
“지랄들은. 살아 보자고.”
던지는 듯한 그의 한 마디에 모두가 낄낄 웃었다.
“보스가 슬퍼하겠어.”
“젠장. 나중에 고백 좀 해 보려고 했는데.”
“욕심이 과하십니다.”
“시발.”
몬스터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레드 라이온의 헌터들은 그 아득한 광경을 보며 각자의 능력을 발출했다.
* * *
둥-!
“음?”
“왜 그래요?”
기이한 소리가 들렸다.
박현수는 물어보는 최재혁을 무시하고 소리가 들린 방향을 쳐다봤다.
둥-!
“어?”
이번엔 최재혁에게도 들렸는지, 그의 시선도 박현수와 같은 곳을 향했다.
둥-!!
박현수는 달렸다.
최재혁도 달렸다.
아무것도 없고 끝을 모르게 펼쳐진 광대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두 사람은 모래에 발이 콱콱 박히는 것도 무시하고 계속해서 달렸다.
그리고 발견했다.
둥-!!
“포탈.”
“포탈이다.”
그곳엔 적광의 포탈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 안으로.
“뭡니까? 저 중세풍의 성은.”
회색 벽돌로 뒤덮인 성벽이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