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32
훈수 두는 천마님 31편
[기이하군. 본좌가 보기에 이 포탈은 환각의 매개체가 아니다. 그와 별개로 다른 세계와 연결된 통로로 느껴지는군.]박현수도 천경의 생각과 같았다.
천경의 말에 따르면, 환각의 매개가 되는 곳엔 강한 기의 비틀림이 있어야 했다.
잘 만든 기문진은 그조차 못 느끼게 만들 수 있지만, 이만한 규모의 환각 세계라면 술사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틈이란 게 존재할 수밖에 없다.
만약 숨길 수 있는 실력의 술사라면, 그는 인간일 수 없었다.
신에 가까운, 어쩌면 신일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이라면 애당초 답이 없는 것이니 배제하고 판단을 내리는 게 옳았다.
“들어가 보죠?”
먼저 말을 꺼낸 건 최재혁이었다.
“답도 없어 보이는데, 저 안에 나가는 탈출구가 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박현수는 꿍꿍이를 알 수 없는 최재혁을 보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인간과 함께 다니는 게 맞는 일인가?
천경이 말하길, 그의 눈엔 살기가 흐르고 있단다.
그 살기가 왜 자신에게 향하는지 알 수 없지만, 굳이 위험과 함께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최재혁의 말처럼, 답 없는 사막을 계속해서 횡단해 봐야 의미가 있을까?
붉게 일렁거리는 포탈을 보며 박현수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뱉었다.
“그러시죠.”
“뭔가 좀 떨떠름하신 것 같습니다만.”
“그냥 불길한 것 같아서요.”
최재혁은 그럴 수 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먼저 넘어가 보겠습니다.”
최재혁은 포탈을 보며 살짝 긴장한 얼굴을 했지만, 곧 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이러나저러나 그 역시 숱한 포탈을 공략해 온 A급 헌터였다. 어차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박현수는 그 뒷모습을 보다가 포탈을 넘었다.
포탈을 넘으며 천경이 말했다.
스승이 긴장을 놓으라고 해도 놓을 생각 같은 건 없었다.
* * *
천장이 반쯤 무너져 내리고, 왼쪽 측면 벽이 대각선으로 비틀려 중심부에 불규칙한 구멍이 뻥 뚫린 고성 안.
가장 안쪽 벽에 붙어 온갖 이끼와 덩굴 식물에 뒤덮인 왕좌 위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너무 오래 방치되어 생기를 잃은 고성은, 방치된 탓에 생기가 불어난 처지가 되었다.
왕좌의 주인은 찌르르 우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해골이었다.
두 눈이 뻥 뚫려 검은 구멍 중심에 푸른 안광이 일렁이는, 살아 있는 해골이었다.
해골은 이젠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커다란 문을 보았다.
굳건하게 닫힌 문의 경첩은 이미 한참을 녹슬어 새까매져 있었다.
그 위로 왕좌와 같이 이끼와 덩굴이 잔뜩 치장되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했으나, 해골의 눈엔 쓸모를 잃은 불쌍한 녀석이었다.
비단 문만이 아니었다.
한때는 세상에서 제일 거대하고, 위대한 나라의 중심이 된 고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말라비틀어졌으나 죽지 못하는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곳에.
-누구인가.
해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의 감각을 상실하고, 감정을 강제로 거세해 셀 수 없는 세월을 왕좌 위에서만 살아 왔다.
체감만으론 수백 년 만에 일어난 것이다.
뼈가 삐그덕 소리를 내는 건 정상이었다.
물론, 해골은 고통을 모르기에 그런 건 알 바가 아니었다.
해골은 일부나 다름없게 된 세계에 찾아온 외부인이 느껴지는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 * *
“신기하네요. 많은 포탈을 경험해 봤지만, 이런 곳은 처음입니다. 컨셉이 어떻게 되지?”
컨셉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없어 확인할 수 없지만, 이계의 형태만 보더라도 컨셉을 쉬이 유추할 수 없었다.
애당초, 지금까지 공략된 포탈 속 이계에선 문명의 흔적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이례적인 것이었다.
“설마 지성체가 살고 있나?”
“지성체요?”
“네. 그럼 말이 안 되잖아요. 누가 봐도 중세풍의 성벽인데, 이걸 말도 못 하는 몬스터가 만들었을 리는 없으니.”
지금까지 지성을 가진 몬스터가 없던 건 아니다.
당장 일자산 포탈 사태만 해도 어인들의 수장으로 보였던 어인 사제는 말이 통하지 않았던가.
“인간과 비슷한 종족이 있는 건가?”
최재혁이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건 엄청난 발견이었다.
동시에 새로운 종족과 교류를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이며, 포탈의 비밀을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반대로 그들을 적대할 가능성도 있었다.
“뭐가 됐든 위험한 상황이군요.”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죠.”
최재혁은 마음에 안 들지만, 지금 그가 하는 말은 하나 같이 맞는 말이었다.
일단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내야 했다.
“따로 움직이죠. 우리 둘 다 제 한 몸 정도는 감수할 힘을 가지고 있으니, 그게 맞습니다.”
“알겠습니다.”
“이거 받아요.”
최재혁이 폭죽 하나를 주었다.
“신호탄 쓰는 법 알죠?”
“네.”
“무슨 일 있으면 터트려서 합류하는 거로.”
베테랑답게, 최재혁은 미지의 세계에서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부분에선 박현수도 토 하나 달 수 없었다.
박현수는 손에 쥔 신호탄을 보다 주먹으로 꽉 쥐었다.
“뭘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의 경험을 이용해야겠죠.”
[녀석이 널 어쩌고 싶어 해도, 일단 이곳에선 탈출하고 싶을 테니, 혼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최대한 협력해야지.]“후우. 신경 쓸 게 뭐 이리 많은지. 일단 가시죠.”
박현수는 최재혁이 떠난 장소를 보다가 몸을 돌렸다.
이계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없던 모래사막을 걷는 것보단 나으리라.
* * *
“흠. 느낌이 묘하단 말이지.”
최재혁은 뒤를 힐끔힐끔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박현수 앞에서 티를 낸 적은 없다.
그런데, 자신이 뭘 하려는지 어느 정도 느낀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그게 이해가 안 됐다.
조금도 실수하지 않았다.
자신의 연기는 완벽했고, 중반까지만 해도 박현수는 자신을 귀찮고, 시끄러운 녀석 정도로만 취급했다.
“왼쪽 위를 본 것과 무슨 연관이 있나?”
그 눈은 대충 풍경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어떤 사물 혹은 누군가와 시선을 맞출 때의 눈이었다.
최재혁은 자신의 눈썰미를 믿었다.
그리고 수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아이템?’
‘스킬?’
‘공개된 고유 능력은 훈수 듣기. 훈수 듣기?’
‘무엇을 훈수 듣는 거지?’
‘박현수는 무투파.’
‘특이한 타입의 무술.’
‘마치 중국 무협 영화에나 나올 법한 동작들.’
‘무공.’
‘무공?’
최재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턱을 문질렀다.
무공이라.
지금 생각해 보니, 박현수의 전투 스타일은 무공과 흡사했다.
실제로 무공이 있다면 딱 그런 느낌일 것이다.
박현수는 각성하기 전에 서포터였다.
포탈 공략 경험은 많지만, 모두 B급 이하.
그나마도 B급은 거의 없었다.
무공 같은 걸 써 본 적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왜 박현수의 고유 능력은 ‘훈수 듣기’인 것일까?
‘훈수라면 누가 옆에서 가르치는 거잖아.’
‘그럼 누가?’
‘박현수 곁엔 아무도 없어.’
‘그런데 왼쪽 위를 봤단 말이지.’
‘설마 귀신이라도 있는 건가?’
‘에이 설마…….’
그리 생각하던 최재혁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귀신은 보통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귀신같은 게 세상에 있을 리 없다.
그런데 이계와 이어진 포탈과 몬스터는 존재한다.
귀신이라고 없으리란 법 없다.
귀신이 나를 관찰했다.
귀신이 내게서 살기를 읽었다.
최재혁은 소름이 끼쳤다.
만약 지금까지 세운 가정이 진짜라면, 박현수가 역으로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살면서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진짜라는 가정 하에 최재혁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재, 재밌는데?”
사실상 2 대 1.
전투력은 상대가 압도적.
계획은 초기부터 엉망.
살면서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최재혁은 어색하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문질렀다.
“상관없어.”
그는 바위 분쇄를 양손에 장착하며, 손가락을 쥐락펴락 반복했다.
“상관없어.”
그는 뇌까리듯 같은 말을 반복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엔 기이한 불길함이 일렁이고 있었다.
* * *
걸어도 걸어도 성벽은 끝이 없었다.
위로만 큰 게 아니라 넓이 자체가 어마어마했다.
“그냥 위로 올라가 볼까요?”
성벽을 넘는 건 여러모로 위험을 감수해야 하므로, 계속해서 성문을 찾기 위해 걸었다.
하지만 성문은 나올 생각은 하지 않고, 지겨운 회색 벽만이 그를 반겼다.
“그럼 넘어갈게요.”
끝이 안 보이는 높은 성벽이었지만 박현수에게 이 정도는 조금만 고생하면 오를 수 있는 벽이었다.
심지어 벽돌로 쌓은 벽이라, 집고 올라갈 때가 많았다.
“그럼 어디 한번!”
박현수는 거미처럼 벽에 찰싹 달라붙은 뒤, 빠른 속도로 벽을 타고 올랐다.
쉬지 않고 번갈아 움직이는 팔과 다리.
천경은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시끄러워요.”
‘올려 줄 것도 아니면서.’
박현수는 투덜거리면서도 팔다리 움직이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박현수의 속도가 엄청났던 건지, 성벽이 의외로 높지 않았던 건지.
“으아!”
그는 꼭대기에 올라 힘껏 만세를 했다.
[아무것도 없군.]천경은 뒷짐을 쥔 채 성 내부를 바라보았다.
다 낡은 건물들은 여기저기 망가져 있었고, 그 위를 이끼나 덩굴식물들이 덮고 있었다.
성 내부 마을은 꽤 오랜 기간 방치된 것처럼 보였다.
중심에 있는 회색과 초록색이 뒤섞인 고성도 마찬가지였다.
반쯤 무너진 고성은 그 높이가 성벽에 준할 정도였는데, 과거엔 꽤 화려했을 것 같았다.
“내려갈게요?”
[그래라.]박현수는 양발에 내공을 집중시켜 벽에 붙였다.
내공이 퍼져 나가며 끈끈이처럼 벽과 연결됐다.
그대로 살짝 눕듯이, 벽에 등을 붙이고 끈끈이 같은 내공을 뚝- 끊었다.
“우왓!”
순식간에 가속하며 아래로 낙하하자 저절로 비명이 나왔다.
박현수는 오래전에 타 본 ‘자이로드롭’이라는 놀이기구가 떠올랐다.
확실히 전투 중에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별 생각이 안 드는데, 여유가 살짝 있으니 이런 스릴도 만끽할 수 있었다.
박현수는 바닥에 거의 다다랐을 때 내공을 회수하고 훌쩍 뛰었다.
허공에서 두어 바퀴 회전하고 체조 선수처럼 착! 하고 착지하니.
천경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박현수는 떨떠름한 얼굴로 스승에게 대꾸했다.
“안전하게 내려왔으면 됐지. 왜 화를 내십니까?”
[으휴, 멍청한 놈. 아직까지 내공 분배하는 법도 제대로 모르다니.]“제대로 알려 준 적도 없으면서.”
[뭐라고!]“아, 아녜요.”
박현수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건물들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봤다.
“아무도 없네.”
“그건 성벽 밖이었잖아요. 안으로 들어왔는데도 아무것도 안 느껴질 줄은 몰랐죠.”
그 부분에선 천경도 동감이었다.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마을을 돌아다녀봐야 무의미하다.
이럴 때 가 볼 만한 곳은 한 군데뿐.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저 성에 분명 비밀이 있을 것이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그리고.
-그곳으로 갈 필요는 없느니라.
두 사제는 너나 할 것 없이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짐이 이곳에 왔노라.
그곳엔 다 썩은 천을 걸치고 있는 해골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