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34
훈수 두는 천마님 33편
박현수와 천경은 해골을 따라 고성의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엄청나게 습하네요.”
[지하니까.]“좀 후끈하기도 하고.”
[후끈하다?]“네. 보통 지하면 서늘해야 하잖아요.”
천경은 유령체라서, 한기나 온기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니 박현수에게 후끈하단 말을 듣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흐흐. 아직도 열기가 남아 있는 모양이군.
“아직도라뇨?”
-짐의 피륙이 아직 남아 있을 때, 그대처럼 짐 역시 지하의 열기를 느꼈었지. 지금은 보다시피 이런 꼴이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만 말이야.
“그 말은, 원래는 이렇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박현수가 천경을 돌아보자, 천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우리를 데려가는 곳과 연관이 있는 모양이군.]-눈치가 빨라.
[무엇이 있는 거지?]-가보면 안다네. 아까 그대가 말하지 않았나. 신용이 필요할 때라고.
그러니 군말 말고 따라오라고.
해골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박현수는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지만,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그는 아래로 둥글게 이어진 돌계단을 보았다.
‘음?’
고르지 못한 벽돌 사이에 낀 이끼는 습한 지하라면 응당 있기 마련이다.
한데, 박현수는 거기에서 알 수 없는 어색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어색함이 무엇인지 금방 알아챌 수 없었다.
‘벌레가 하나도 안 보여.’
지금까지 내려가면서 단 한 마리의 벌레도 보지 못했다.
아주 작은 벌레라도 벽에 붙어 있기 마련인데, 이곳은 기이할 정도로, 좁쌀 벌레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이게 불길함의 이유일까?
박현수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연관이 아예 없진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10여 분을 더 내려가자 그들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 너머에 너희가 원하는 걸 이뤄 줄 가능성이 존재한다.
[열어라.]-그러지.
해골은 척 보기에도 잔뜩 녹슬어 쉽게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철문에 손을 댔다.
달리는 것도 여의치 않다고 한 사람이 저걸 밀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그런 박현수의 생각을 부정하기라도 하듯.
해골의 손에서 보랏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동그란 원이 그려지며, 알 수 없는 문자가 소용돌이 형태로 원 안을 꽉꽉 채우기 시작했다.
해와 초승달이 각각 위아래로 이동하고, 로마 숫자 같은 문자가 철문 전체에 퍼졌다.
해골의 입에서 알아듣기 어려운 언어가 흘러나온다.
“잘은 모르겠지만 기(氣)랑은 완전히 다른 힘이라는 건 알겠네요.”
줄기차게 뿜어져 나오는 보라색 광채는 기는 물론이고, 하유락의 불꽃이나, 학센의 기묘한 에너지와도 전혀 달랐다.
오히려 질 로드먼이 다루는 어둠과 흡사했다.
흡사하다는 거지, 같은 힘은 분명히 아니었다.
오히려 해골의 보라색 광채가 압도적으로 불길했다.
-문이 열린다.
쿠궁-!!
철문이 진동하며 틈새로 먼지가 터져 나왔다.
끼이익-!
듣기 싫은 귀곡성에 두 귀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박현수는 눈앞에 넘쳐흐르는 것들을 보며, 해골의 역겨운 목소리를 들었다.
-미안하군. 신용을 못 줘서.
가슴 속으로 허락 없이 파고드는 수많은 절망.
고성의 가장 높은 곳에서 보라색 광채를 휘두르는 사악한 노인.
끔찍한 아비규환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살려 달라는 수많은 사람들.
보라색 광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셀 수 없이 많은 영혼까지.
물밀듯 밀려들어 오는 기억의 소용돌이 속에서, 박현수는 악에 받친 외침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너 이 개새끼이이이!!”
-용서하지 말게.
끔찍하게 썩어 버린 영혼들이 가시 박힌 사슬에 구속된 채 비명을 지른다.
끼에에에에엑!
꺄아아아아아아악!!
사람의 형상을 한 얼굴들이 뭉크의 절규처럼.
영원한 고통에 휩싸여 이곳으로 손을 뻗는다.
하지만 손은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가시 박힌 사슬이 그들의 목에 족쇄처럼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박현수는 참담하다고도 표현할 수 없는 광경에, 더는 생각하는 걸 그만두었다.
그 모습에 해골, 마도왕 엔트로피는 신기한 걸 본다는 듯 말한다.
-흠. 이만한 절망 덩어리를 ‘공감’하며 버티는가? 인지를 초월한 정신력이로다.
“아가리 해!”
[천마군림보 제1보] [천마출도]탕-!
총성이 들린 것 같은 건 착각일까?
땅을 박찬 박현수의 신형은 엔트로피와의 거리가 몇 미터 안 됨에도, 그 사이를 찰나라 해도 좋을 속도로 주파했다.
스승의 외침이 뒤따랐지만.
“뒈져!”
저 끔찍한 공간에서 흘러나오는 악의와 절망이 박현수의 감정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해(大海)와 같은 감정의 파도 속에서 천경의 목소리가 들려올 리 없었다.
그저, 승천하지도 못해 악령이 되어 버린 이들의 고통 섞인 기억을 살피며.
주먹을 찔러 넣을 뿐이었다.
[근파]뻐엉-!
하지만, 그런 공격조차 넘어설 수 없는 벽이었다.
-애송이치곤 제법이구나. 그러나 짐에게 도달하기엔 너무도 작은 반딧불이지 않은가?
엔트로피는 한때 마도왕이라 불리며 하나의 세계를 지배한 군주.
-너의 스승이라면 해볼 만했겠으나.
보라색 광채가 오른쪽 손뼈 위에 머무른다.
-젖비린내가 나는 꼬마는 질색이구나.
그대로 뻗는다.
[우습구나.]그리고 스승이 움직였다.
[안타깝게도 네놈 뜻대로는 되지 않아.]비록 천경이 할 수 있는 건 없었으나, 그에겐 나름 쓸 만한 아바타가 있었다.
[일어나라. 충분히 할 만하니까.]“흐읍!”
엔트로피가 쏘아낸 공격을 피한 박현수가 벌떡 일어나며 대답했다.
한 번 당하니, 머릿속을 헝클어트리던 끔찍한 잡념들이 조금이지만 사라졌다.
박현수는 주먹을 말아 쥐고 기수식을 취했다.
-그 정도로는 짐의 털끝조차 건드리지 못…….
[닥쳐라. 고작 그따위 힘을 가지고 나대지 말라, 이 말이다.]엔트로피의 말을 잘라먹은 천경이 전에 없이 차가운 눈을 한 채 쏴붙였다.
[본좌라면 해볼 만하다?]그리고 피식, 비웃는다.
[어디 버러지 같은 힘을 조금 가졌다고 본좌와 비벼 볼 생각을 하느냐?]-무, 무엇이?
[2천 년을 혼자 살아왔다? 정말 버러지같이 시간을 날려 먹은 셈이구나.]“스, 스승님?”
[버러지 주제에 하늘을 올려다보지 마라.]천경은 제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말을 멈추지 않는다.
[본좌가 곧 하늘이니.]-오만하구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영혼체 따위가!
[하늘은 그래도 된다.]엔트로피가 참지 못하고 힘을 방출했다.
보라색 광채 주변으로 검은색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오냐. 짐이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음을, 네놈의 제자를 죽여 깨닫게 해 주마.
[3보로 시작한다. 이젠 할 수 있겠지.]“충분히요.”
-죽어라!!
[가라.]고성의 지하 깊은 곳에서 목숨을 건 사투가 시작되었다.
* * *
“가론 고원. 전멸이 확인됐습니다.”
“그곳으론 벌레만도 못한 것들만 보냈으니, 고원의 괴물들에겐 맛있는 한 끼 식사였겠지. 흠, 그런데 굴락은 안 나왔나?”
“예. 굴락은 아직 동면에서 깨지 않았습니다.”
“시시하게. 아니, 오히려 굴락이 깨어나지 않았으니 덜 시시했던 건가?”
나이트는 레드 라이온의 A급 헌터들이 떨어진 가론 고원의 주인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농담으로라도 결코 ‘약하다’ 할 수 없는 끔찍한 괴물 굴락.
나이트조차 놈을 상대로는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것도 ‘본 모습’을 했을 때의 얘기였다.
지금 상태라면 그 헌터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꼴이 됐으리라.
아무튼, 처음엔 차라리 모든 헌터들을 그곳으로 보낼까 했지만.
‘그러면 애초에 계획이 진행되지 않지.’
엔트로피는 사라져야만 한다.
앞으로의 장대한 계획을 위해서라도.
“그보다, 성채 쪽은 어떻지?”
“마도왕이 박현수를 끌고 지하로 내려가는 중입니다. 그자의 계획이 시작된 모양입니다.”
“흠. 박현수가 악령들의 절망에 잡아먹힐 일은 없을 테니, 누가 이기느냐가 관건이겠군.”
그들은 이미 박현수가 엔트로피의 시련에 굴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누가 이길까?”
“십 중 십, 마도왕입니다. 그는 굴락과 붙여도 살아남을 정도로 강합니다.”
“제일 귀찮은 변수가 예상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 변수에게 잡아먹히겠군.”
나이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광활하게 펼쳐진 핏빛 바다에서 붉은 머리의 여자가 기생 생물 ‘오볼’에 맞서 힘겹게 싸우고 있다.
“역시 가장 골칫덩이는 저 여자인가?”
“박현수가 이무기를 잡을 때의 역량을 이번에도 보여 준다면 모를까, 당장은 하유락이 ‘겹치기’에서 가장 위험한 대상입니다.”
“가장 위험하다라. 솔직한 감상으론, 다 개소리 같단 말이지.”
S급 헌터는 분명히 강하다.
그렇다 해서 한계가 없는 건 아니었다.
스태미나는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S급 헌터도 결국 다른 헌터들보다 스태미나가 많을 뿐이다.
고갈되면 힘을 쓰지 못하는 건 어린애나 하유락이나 똑같았다.
“나설 필요도 없겠어.”
“그래도…….”
“괜찮아. 그러니까 짜증나게 보채지 마. 확 죽여 버리고 싶으니까.”
“…….”
나이트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대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여자는 화염 지옥을 연상케 하는 하유락의 전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 * *
[훈수를 성공적으로 들었습니다.] [1회 공격력이 30% 증가합니다.]세 줄기로 날아드는 광선을 피하며, 박현수의 왼 다리가 아래에서 위로 올랐다가 다시 아래로 낙하했다.
-느리구나!
그러나 박현수의 다리는 허공만 가를 뿐, 검은 연기가 되어 뒤로 물러난 엔트로피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왼쪽으로 돌아 놈에게 접근해라.] [훈수 듣기가 발동합니다!]현재 박현수는 천경의 꼭두각시였다.
시키는 대로 움직이며 시키는 대로 공격하고, 시키는 대로 피한다.
-쥐새끼 같구나.
그렇다 보니.
-이만 사라져라!
아직까지 단 한 대도 맞지 않았다.
바로 지금처럼.
“흡!”
비록 그 요구가 쉽지만은 않았지만.
[훈수 듣기가 발동합니다!]콧등 위, 땅을 짚고 있는 오른팔과 옆구리 사이로 엔트로피의 광선이 지나갔다.
박현수가 다시 벌떡 일어나자, 동시에 천경의 지시가 떨어졌다.
-어딜!
[이건 네놈이 알아서 피해!]“예!”
역겨운 보라색 기운이 채찍처럼 휘둘러져 왔다.
박현수는 채찍의 궤도를 읽고, 천마비행으로 허공을 밟듯이 움직여 피했다.
하지만 모든 공격을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큭!”
놈의 채찍이 오른쪽 허리를 훑었다.
참을 수 있는 정도였기에 박현수는 멈추지 않고 천장으로 도약했다.
-짐도 귀가 있다. 네놈들이 떠드는 소리를 짐이 못 들을 거라 생각하느냐!
“알아도 안 돼.”
[파천마권 제5식]“너 같은 뼈다귀 새낀 무슨 짓을 해도 못 피할 기술이거든.”
[지파(地派)]내공이 양 손바닥에 몰려들었다.
박현수는 그대로 천장을 때렸다.
내공이 천장 속으로 파고들었다.
쿠구구궁!
-이곳을 무너트릴 셈이냐? 멍청하구나. 설마 짐이 그런 방비도 안 했을 거라…….
엔트로피가 천장에 난 균열로 손을 뻗는 순간.
“말했잖아. 너는 못 피한다고.”
시선이 천장에 쏠린 그 작은 틈을 박현수는 놓치지 않는다.
[파천마권 초반 제6식] [오의] [골통을 부숴라.] [훈수 듣기가 발동합니다!]“네, 스승님.”
[영파(靈破)]영혼을 깨트리는 주먹이 엔트로피의 골통을 깨트렸다.
-안타깝게도.
하지만 당연하게도.
-짐에겐 영혼이 없구나?
뼈밖에 없는 두개골의 입 부분이 위로 길게 찢어졌다.
“이런!”
[천마탈혼!]-짐이 빠르다!
엔트로피가 손을 뻗었다.
박현수는 이를 악문 채 몸을 뒤로 뺐다.
천마탈혼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스텝이 엉켜 버렸다.
‘이런 젠장!’
-크하하하…… 하……. 어? 어……. 으어어억!
승리를 확신하던 엔트로피가 갑자기 비명을 내지르며 심장도 없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리곤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누, 누가 내…… 내 라이프배슬을……?
엔트로피의 알 수 없는 행동.
박현수는 당황했지만, 천경은 당황하지 않았다.
“네?”
[능력을 써라! 천령인이다!] [절망적인 순간에 한 줄기의 희망적인 훈수를 들었습니다!] [훈수 듣기의 효과로 해당 공격의 공격력이 200% 증가합니다!]눈앞에 떠오르는 알림을 보며 박현수는 지체하지 않고 능력을 사용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파천마권 후반 제6식] [오의]“죽어어어어!”
[천령인(天靈印)]고성이 무너질 기세로 진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