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38
훈수 두는 천마님 37편
“죄송합니다만, 멈춰 주셔야겠습니다.”
“……당신은 뭐야?”
박현수는 자신의 주먹을 우산으로 막아 낸 여자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새하얀 드레스가 인상적인 미인이었는데, 얼굴엔 약간의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아 마치 인형 같은 사람이었다.
박현수는 그녀에게서 꺼림칙한 이질감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뒤에선 최재혁이 각혈을 토하며 죽어가는 중이었다.
“어디서 나타난 거지?”
“그건 알 필요 없습니다. 당신도…… 이곳에서 죽게 될 테니까요.”
천경이 다짜고짜 말했다.
그 뜻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엔트로피는 말했다.
곧 포탈을 열고 누군가 들어올 거라고.
그녀가 엔트로피가 말한 누군가가 분명했다.
‘저 여자를 쓰러트려야 해.’
그렇다면 방법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쉬울 것 같진 않았다.
최재혁의 머리를 으깨기 위해 펼친 주먹엔 내공이 크게 담기지 않았지만, 여자는 고작 우산으로 막아 냈다.
그것도 한 손으로 손잡이를 쥔 채.
심지어 자세랄 것도 없었다.
무엇이 기괴한가?
설명을 듣고 싶었지만, 여자는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다.
팟!
여자의 신형이 높이 뛰어올랐다.
드레스 자락이 펄럭이며 눈을 어지럽힌다.
박현수는 오른손을 그러모아 하박을 허리에 붙였다.
여자가 우산 끝으로 허공을 격했다.
공기가 쩡- 하고 울리며 무형의 송곳이 공간을 쇄도했다.
“흡!”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을 향해.
[MANA를 호흡합니다!]새로이 얻은 능력을 활용해 본다.
펑-!!
허공에서 작은 폭발이 발생했다.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반대편으로 날아올랐다.
천경은 허공에 주먹을 뻗은 제자를 보며 작게 탄성을 흘렸다.
‘마나를 호흡했어. 아니, 이 수준이면 흡수라고 해야 옳다.’
짧은 시간 안에 흡수할 수 있게끔 소량만 호흡했다.
그리고 기공화시켜 발출했다.
그것은 일종의 마법이었으나, 기존의 마나 활용법이 아닌 ‘내공 활용법’을 접목한 박현수만의 오리지널 기술이었다.
그랬던 탓에.
“오, 되네?”
당사자도 꽤 놀라 버렸다.
천경은 제자의 믿을 수 없는 재능에 기가 찰 지경이었다.
분명 마나 호흡은 내공 활용보다 긴 시간을 요구한다. 한데, 박현수는 그런 상식조차 깨 버릴 정도로 빠른 호흡을 사용했다.
심지어 흡수한 마나를 기공 형태로 방출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5초도 되지 않았다.
“이거 쓸 만하겠는데?”
이게 고작 쓸 만한 정도라니.
천경은 제자가 어느새 이만큼 큰 건지, 아니면 자신이 적응하게 되어 버린 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상대는 그 정도에 당해 줄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스승의 호통에 박현수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박현수 역시 상대가 범상치 않다는 걸 알아, 대꾸하지 않고 자세를 잡았다.
제법 멀리 자리를 잡은 여자가 박현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설마 마나까지 다루시다니. 그것도…… 그렇게 짧은 시간에 호흡하고, 방출까지 한다. 당신은 대체 뭐죠?”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너는 여길 어떻게 들어온 거야?”
낙원의 파편은 침입자가 뭉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당장 박현수와 최재혁만 해도, 마주친 건 순전히 운이었다.
하유락이나, 다른 길드원들이 어디로 떨어졌는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 저 여자는 박현수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고 찾아온 것이다.
여자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우산을 펼쳤다.
“그것까진 몰라도 됩니다. 중요한 건, 당신이 저희의 계획이 너무 큰 방해라는 거죠.”
펼쳐진 우산 안쪽으로 초록색 형광이 모여들었다.
“임시일 뿐이지만, 제 주인께서 그걸 원하지 않으시니.”
묵색의 우산대를 어깨에 걸쳤다.
형광이 그녀를 집어삼켰다.
“당신을 이곳에서 제거하겠습니다.”
“헛소리.”
범상치 않다는 건 인정하겠다.
하지만 자신이 쉽게 제거될 정도로 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스승님.”
[일단은 네 뜻대로 움직여라. 파악할 시간이 필요하다.]천경의 눈이 가늘어졌다.
‘파악이 필요하다’라.
스승이 적을 두고 저런 말을 했던 적이 있던가?
악의 엔트로피조차 스승의 훈수로 어렵지 않게 승리를 거두었다.
물론, 도중에 최재혁이 불사를 책임져 주는 라이프배슬을 흡수하면서 엔트로피가 급격히 힘을 잃기는 했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지는 싸움은 아니었다.
그만큼, 천경도 저 여자가 알 수 없다는 말이리라.
‘강함의 문제가 아니야.’
강함을 논하자면, 여자는 엔트로피에 비교해도 그리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그녀의 움직임은 괴상했다.
박현수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왼 다리를 앞으로, 오른 다리를 뒤로 슬슬 밀어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형광이 사라지는 순간.
“큭!”
“호. 이걸 반응하시다니.”
여자의 무릎이 교차된 박현수의 양팔에 가로막혔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해요.”
형광이 그녀의 무릎에 모여들었다.
박현수는 위험하다고 판단.
즉시 무릎을 밀어냄과 동시에 아래로 몸을 확 숙였다.
꾸와아앙!
광선이 그가 서 있던 자리를 꿰뚫고 지나가 반대편 벽에 충돌했다.
콰아아아앙!!
상당한 폭발과 함께 벽이 무너져 내리며 천장이 크게 흔들렸다.
박현수는 숙인 상태로 몸을 돌렸다.
동시에, 왼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회전력이 실린 오른 다리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여자가 몸을 틀어 회피하자, 박현수는 회전력을 잃지 않고 튕기듯 뛰어올라 한 번 더 돌려차기를 시도했다.
팡!
우산이 방패처럼 넓게 펼쳐졌다.
박현수는 우산 막에 공격이 막히자, 그것을 디딤대 삼아 멀찍이 거리를 벌렸다.
그는 두 번의 공격이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엽파와 목파를 모두 막아 냈어.’
방금 박현수의 두 발차기는 각각 파천마권의 3식 ‘엽파’와 4식 ‘목파’였다.
엽파는 피했다 쳐도, 목파는 가로막혔다.
목파는 겉이 아닌 내부를 뒤흔드는 침투경의 수법이었다.
막았어도 피해는 있어야 할 터.
한데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보고 있었다.
“재밌는 공격이네요. 당신이 사용하는 힘이겠죠?”
박현수는 대답하지 않고 적을 향해 화살처럼 쏘아졌다.
여자가 우산을 접었다.
그리고 우산 끝으로 바닥을 가볍게 쳤다.
“크악!”
달리던 바닥이 가시처럼 솟구쳤다.
박현수는 황급히 반대로 몸을 돌렸지만, 옆구리가 찢기는 걸 면치 못했다.
큰 상처는 아니었다.
가시를 밀어내며 반대쪽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두어 바퀴 구른 뒤,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반응속도가 꽤 좋네요.”
“닥쳐!”
“또 그건가요?”
“아니.”
엔트로피의 세계의 모든 마나를 흡수했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되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해.”
팡-!
총탄이 나가는 소리.
여자의 눈이 점점 커졌다.
‘빨라.’
방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그러나 그 속도는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아까와 달리, 잠깐 흡수한 마나를 모조리 가속에 쏟아부었기 때문이었다.
마법사들이 본다면 까무러칠 장면.
여자는 마법사가 아니었지만, 마나 활용법에 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기운을 쐈을 때도 그렇고.’
처음.
여자의 공격을 박현수가 막았을 때.
마나를 호흡하고 방출하는 건 그렇다 쳐도, 저런 식의 육체 강화는 듣도 보도 못했다.
심지어 저렇게 빠르게 전환할 수가 있던가?
천재란 말도 부족할 지경이다.
‘난감하네요. S급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어요.’
진짜 S급이라면 여자에겐 승산이 없었다.
여자는 전투 전문이 아니었고, 전력을 다한다면 S급 헌터를 놀라게 할 수는 있어도 이기진 못했다.
여자는 뒤로 반 발자국 물러나며 다시 우산을 펼쳤다.
“목파가 안 통한다면!”
[파천마권 제5식]바닥을 한 번 밟은 박현수는 높이 직선으로 도약했다.
여자는 공격이 들어오지 않자, 눈살을 찌푸리며 우산을 들었다.
정면에 있어야 할 박현수가 없었다.
쩡-!!
위로 들어 올린 우산 막 위로 묵직한 충격파가 펼쳐졌다.
“으윽!”
여자의 두 다리가 돌바닥 안으로 움푹 파고 들어갔다.
“이건 통하네?”
넓은 범위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지파’라면 통할 거라 생각했다.
박현수는 바닥에 내려와 동시에 천마군림보의 첫 번째 걸음을 펼쳤다.
동시에 중심을 잃은 여자를 향해 ‘종파’를 찔렀다.
그 순간, 머릿속에 손등이 칼날에 꿰뚫리는 이미지가 흘러들어 왔다.
박현수는 다급히 주먹을 빼며 가속된 몸을 억지로 틀었다.
콰당탕탕!
힘과 무게가 실린 탓에 바닥을 구르는데 땅이 들썩거렸다.
“감이 좋군.”
박현수는 어지러운 시야와 꺼림칙한 이명 사이로 보이는 한 남자를 보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백발은 길이가 한참 짧았고, 피부는 중동 사람처럼 진한 갈색이었다.
꽤 멋진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손엔 얇은 레이피어를 쥐고 있었다.
나이트는 한심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를 보며 혀를 찼다.
“쯧. 죽을 뻔했구나?”
“가, 감사합니다.”
“멍청한 것. 현재 ‘겹치기’가 진행되고 있단 것도 느끼지 못한 모양이군.”
“시작됐습니까?”
“일단 두 세계부터 시작됐다. 이곳은 아직이야.”
박현수는 두 사람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어지러운 시야가 서서히 돌아오며, 시끄럽게 울리는 이명도 점점 가라앉았다.
“설마 내가 이곳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박현수.”
“……날 알아?”
“알다마다. 네놈을 이곳으로 보낸 게 나인걸?”
“뭐라고?”
“원래라면 엔트로피 녀석에게 죽었어야 했는데. 설마, 쓰러트릴 줄은 몰랐어. 이상한 날벌레 녀석이 끼어들기는 했지만.”
나이트의 시선이 죽어가는 최재혁에게 향했다.
“저놈 안에 있는 거 회수해 놔.”
나이트가 턱짓으로 여자에게 명령했다.
여자가 짧게 대답하고, 최재혁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움직이지 마!”
쿠우웅-!!
박현수의 내공이 들끓으며 사방으로 분출되었다.
음양지체의 영향으로 양기의 음기가 뒤섞인 데다, 천마신공의 영향으로 마(魔)의 힘까지 엉켜 대단히 화려한 형상을 자랑했다.
나이트가 코끝을 찡그렸다.
“이게, 고작 한 달밖에 안 된 각성자가 가진 힘이라고?”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역시 박현수는 현재 자신의 계획에 가장 방해되는 변수.
“지금 죽여 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나이트는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박현수를 향해 전진했다.
박현수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레 나타난 남자를 향해 전진했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저들은 중요한 걸 모르고 있었다.
천경은 여자의 움직임을 읽지 못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분명 강한 것은 아닌데, 여자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저놈은 달랐다.
여자보다 확실히 강해 보였지만, 놈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훤히 보였다.
지금부터 박현수의 움직임이 달라질 것이다.
“후우…… 저는 아까부터 됐는데, 스승님이 안 되셨잖아요.”
[자식이 대꾸하기는.]“하하.”
그 웃음에 천경도 마주 미소를 지었다.
[일단 천마추혼으로 뒤통수부터 후리려무나. 선빵필승이다.]스승이 어디서 저런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훈수 듣기가 발동합니다!]스승의 훈수가 있는 한, 자신은 절대 지지 않는다.
박현수의 신형이 픽- 하고 꺼졌다.
* * *
하유락은 앞에 펼쳐진 비현실적인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광활한 고원 위로 바다가 쏟아졌다.
바닷물이 쏟아지는 게 아니다.
표현 그대로, ‘바다가’ 쏟아지는 중이었다.
이런 연출은 지금까지 나온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 중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여태껏 본 적 없는 몬스터들이 압도적인 질량에 짓눌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건 기생 생물 오볼과 그 숙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바다에서 사는 생물이라도, 소용돌이라고도 표현하기 어려운 물의 휩쓸림은 천재(天災)였다.
“낙원의 파편은…… 뭐라고 표현을 못 하겠구나.”
‘낙원’조차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제례용’조차 이 정도로 끔찍하진 않았다.
오리지널을 넘어서는 분신이 있을 수 있는가?
‘겹치기’를 모르는 하유락으로선 그런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저건…….?!”
그녀의 눈에 수면 위로 떠 오른 물건들이 들어왔다.
부러진 검과 익숙한 파편들이었다.
그것들을 발견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고, 바닷물에 휩쓸리며 다시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하지만 하유락은 똑똑히 보았다.
“…….”
그것들은 분명 레드 라이온 헌터들의 장비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저 바다 아래 어딘가.
고원이라 할 수 없게 된 저곳의 밑바닥에.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하유락의 동공이 세로로 길게 찢어졌다.
눈동자가 파충류의 그것처럼 노랗게 물들었다.
“안 돼.”
동료를 다시 잃고 싶진 않다.
“안 돼.”
그때처럼.
소중한 동료이자, 부하들이 눈앞에서 스러져 가는 걸 보고 싶지 않다.
“안 돼애애애!!!”
불이 폭주했다.
동시에 흑색과 녹색이 뒤섞인 광선이 바다를 꿰뚫고, 비명을 지르는 하유락을 집어삼켰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수면을 뚫고 거대한 몬스터가 날아올랐다.
둥지를 잃고, 수면을 완전히 방해받은 가론 고원의 지배자 ‘굴락’이었다.
그런 굴락을 향해.
“네놈이냐!!”
피범벅이 된 하유락의 신형이 쾅! 소리를 내며 쏘아졌다.
전신에 난 상처가 불타오르듯 재생했다.
하유락은 이성의 끈을 놓아 버렸다.
그녀의 치아가 날카로워지고, 전신에서 용암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불과 뒤섞인 용암은 새까만 연기를 뿜어냈고, 머리엔 주홍빛의 왕관이 뿔처럼 솟아났다.
굴락은 자신의 공격에도 멀쩡한 적을 보며 다시 입을 벌렸다.
두 괴물이 서로를 공격했고, 충돌한 힘은 그들을 기점으로 고원을 잠식한 바다를 둥글게 증발시켜 버렸다.
두 재앙의 격돌을 선포하는 총성이었다.
* * *
“아, 안데르센 농도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83…… 84…… 86…….!! 포탈 개방까지 14% 남았습니다!”
“방금 1%가 또 상승했습니다!”
이민아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는 검붉은 포탈을 보았다.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곧 포탈은 열리고 ‘낙원의 파편’이 재앙의 형태로 현세를 덮칠 것이다.
과연 이곳에 모인 인원으로 재앙을 막아 낼 수 있을까?
회의적이었다.
지금이라도 S급 헌터 모두에게 구조 요청을 보내야 하는 게 옳은 방법 아닐까?
아니, S급 헌터가 모두 모인다고 해서 작금의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가?
모두 다 부정적이었다.
이쯤 되니, 이민아는 오히려 날뛰던 심장이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
“언니……. 현수 씨…….”
이민아는 두 손을 끌어모은 채 기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