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46
훈수 두는 천마님 45편
‘낙원의 파편’이 공략된 지 하루가 지났다.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일상을 회복했다.
물론, 많은 시민이 낙원의 파편을 여태껏 숨겨 온 협회와 정부를 향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는 비단 대한민국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포대위를 중심으로 낙원의 파편이 비밀에 부쳐졌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협회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사과했지만, 사과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인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던 협회가 아니던가.
많은 사람이 기만당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와 별개로.
“드디어 집이네요.”
[왠지 오랜만인 것 같구나.]“그러게요.”
세계의 영웅 박현수는 지친 몸으로 반지하 방에 들어섰다.
얼마나 많은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는가.
거기서 끝나지 않고, 협회 고위 관계자들에게 보고했으며, 의식을 잃은 하유락을 대신해 유족들에게 얼굴을 비추었다.
레드 라이온의 많은 사자들이 죽었다.
모두가 박현수가 존경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유족을 마주할 땐 정말 면목이 없었다.
구하는 건 불가항력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변명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고생은요. 가족을 잃은 그분들이 더 고생이죠.”
[밥이나 먹자.]“오랜만에 라면이나 먹을까요?”
[엊그제 먹었잖냐.]“아까 전엔 오랜만인 것 같다더니.”
[스승의 마음은 갈대인 법이다.]“어울리지 않게 농담하지 마세요.”
[이놈이?]박현수는 피식 웃으며 냄비에 물을 받았다.
그러다가 벽에 난 검은 구멍을 보았다.
생긴 건 영락없이 포탈이었다.
심지어, 완전한 검은색이었다.
‘낙원의 파편’은 검붉은 색이었다.
포탈은 등급이 높아질수록 검은색에 가까워진다는데.
“왜 여태까지 저 포탈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을까요?”
[미안하지만, 본좌는 계속해서 이상하게 여겼다만.]“엥? 말한 적 없잖아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지.]박현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다시 포탈을 보았다.
새까만 포탈.
저 안에는 끝이 어딘지 모를 광활한 평원이 존재했다.
보통 포탈 안의 공간이 한정적이라는 걸 생각하면.
‘등급을 매기면 대체 몇 등급이라는 거야?’
몬스터만 없다뿐이지, 정말 무지막지한 곳 아닌가.
아니, 있는데 모르는 것일 수도 있었다.
이걸 협회에 공개해야 하나?
그런 고민이 들 때.
마치 박현수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천경이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말 그대로다. 오늘 하루 휴식하고, 내일부터 네놈에게 가르칠 게 많아.]“드디어 후반 6식입니까?”
아직 박현수는 파천마권의 전반 6식밖에 다룰 줄 몰랐다.
파천마권의 오의인 ‘천령인’의 경우는 스킬의 힘을 빌려 사용한 것이었다.
천경이 박현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포탈에서 나오고부터 대화할 여유가 없어,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제례용과의 이별 이후, 잠깐 떨어진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을 겪었기에 이만한 힘을 손에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격을 충족했다.]“오오!”
박현수가 흥분한 목소리를 내었다.
파천마권의 전반 6식은 땅(地)을 기반으로 한 무공이었다.
그러나 후반 6식은 하늘(天).
듣기만 했을 뿐, 스승은 그 앞에서 단 한 번도 무공을 선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전반 6식의 경우는 메커니즘을 완벽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장법이나, 때로는 각법으로 바꿔 가며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하나, 천령인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는지 짐작조차 안 되었다.
오의라고 하니 당연하게 여겨, 방법을 강구해 본 적도 없었다.
스승이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라면부터 끓여 오거라.]김이 팍 샜다.
* * *
로벤은 노란빛의 포탈 앞에 서 있었다.
포탈 위엔 ‘SEOUL’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이런 건 최소 이틀 전에 말해줘야 한다고.”
“미안해.”
로벤이 갈색빛이 도는 곱슬머리 남자를 보며 사과했다.
남자는 심드렁한 얼굴로 사과를 대충 받고 동그란 무테안경을 고쳐 썼다.
“일단은 테스트 제품이라 좌표가 불안정할 수도 있습니다.”
“자네가 만든 거니까 문제는 없겠지.”
“절 너무 맹신하진 마십시오. 저 안쪽 시공간에서 육체가 갈기갈기 찢겨나갈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명색이 안데르센인데, 그런 실수를 했으려고?”
“그건 그렇습니다.”
안데르센이 즉각적인 대답에 로벤이 픽 웃었다.
포탈대책위원회의 과학부 최고 연구소장이자, 9인의 S급 헌터 중 한 명이 바로 그였다.
세계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그가 실수할 리는 전무.
안데르센은 과학자들이 늘 입는 하얀 가운을 매만졌다.
“그 남자를 만나러 가시는 거죠?”
“아, 이용 목적도 말 안 해 줬나?”
“제게 내려온 지시는 서울로 하루라도 빨리 가야 한다는 말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네가 그랬지. 그럴 거면 로드먼한테 부탁하라고.”
“이 포탈 기술도 로드먼의 능력을 보고 만든 거니까요.”
“로드먼이 본다면 까무러칠 거야.”
“표절로 고소나 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안데르센이 킬킬 웃자, 로벤도 피식 웃었다.
“아무튼, 요즘 가장 핫한 남자라니 저도 궁금하군요.”
“같이 갈 텐가?”
“그것도 좋지만, 전 아직 할 게 많은 몸인지라.”
“이거, 우리 연구소장님의 시간을 뺏은 거로군?”
“그런 거죠.”
“푸하하! 미안하네. 올 때 코리아 치킨이라도 사 오지. 예전에 먹고 좋아했잖나.”
“그립고도 슬픈 추억이군요.”
두 사람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맴돌았다.
갑자기 다운된 분위기에 침묵이 잠깐 자리 잡자, 로벤이 급히 침묵을 깼다.
“내가 없는 동안 그 아이를 잘 부탁해.”
“쉐리가 있잖아요.”
“그 아이는 자신보다 강한 사람의 말만 따르잖나.”
“귀찮은 녀석입니다.”
“누가 귀찮다고?!”
“아이작!”
그때, 뒤에서 두 개의 익숙한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그중 하나는 로벤의 비서 쉐리였고, 다른 하나는 이제 막 열일곱 정도 되어 보이는 주근깨가 가득한 소년이었다.
약간 붉은빛이 감도는 머리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삐죽삐죽 솟아 있었다.
“아이작. 네가 이곳엔 웬일이지?”
“마스터, 그 남자를 만나러 간다면서요?”
로벤의 물음에 아이작이 당돌하게 질문으로 답했다.
로벤이 쉐리를 보자, 그녀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
“너는 아직 이르다.”
“뭐가 이릅니까? 까놓고 말해서, 저보다 강한 사람이라 봐야 S급 헌터인 당신들 정도 아닙니까?”
“강함을 말하는 게 아니야.”
“또 예절 운운하십니까?”
아이작이 한쪽 다리를 내민 전형적인 삐딱한 자세로 물어왔다.
로벤은 절로 나오는 한숨에, 눈앞의 답답한 꼬마를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안데르센은 노답 꼬맹이를 보며 로벤에게 말했다.
“그냥 데려가시죠.”
“자네 일 아니라고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는 거 아닌가?”
“상대를 앞에 두고 그런 말 하는 게 더 예의 없는 일 아니에요?”
아이작의 일침에 로벤이 입을 다물었다.
“예절이란 건 실제로 겪으면서 배우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아.”
“마스터는 저를 너무 못 믿는다구요.”
“너라면 믿겠니?”
“당연!”
아이작이 당당히 가슴을 내밀며 대답했다.
로벤은 쉐리를 보았다.
그녀 역시 별다른 수는 없었기에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후우. 그래. 그러자꾸나.”
“오케이!”
“대신, 이거 하나 약속해라. 절대 타인에게 사나운 어투로 말하지 말아라. 애초에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을 테지만.”
“물론이죠. 맡겨만 두시라구요.”
아이작이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로벤은 그게 더 불안했지만, 그가 이토록 원하는데 계속 거절하는 것도 미안했다.
“안데르센. 바로 출발할게.”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로벤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작에게 손짓했다.
두 사람은 그대로 포탈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포탈은 아주 빠르게 수축하더니, 그대로 점이 되어 사라졌다.
“괜찮겠죠?”
“아니.”
쉐리의 질문에 안데르센은 단호하게 대답하곤 자리를 떴다.
* * *
박현수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 평원에서 가부좌를 틀고 조용히 명상하고 있었다.
그의 몸 주위로 검은 기운이 차분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전처럼 음양지체에 영향을 받은 적·청색의 기운이 아니었다.
‘천마신공의 내공이 완연한 색을 이루었군.’
천마신공의 경지가 오를수록 내공의 색은 점점 흑색을 띠었다.
그전까지의 박현수는 천마신공의 내공보다 음양지체의 영향이 더 컸기에 완연한 흑색을 띠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낙원의 파편을 이루던 마나를 대거 호흡해, 30%에 가까운 마나를 내공으로 정제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다섯 번이라는 경이로운 수준의 환골탈태를 겪었다.
‘상당히 심후하다. 이 정도면 3갑자 가까이 되겠어.’
천경은 짧은 시간 만에 변한 제자의 모습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체 그사이에 무슨 일을 겪었기에 저 정도로 심후한 내공을 손에 넣었단 말인가?
환골탈태도 한 번 겪은 게 아닌 모양새였다.
경지가 극단적으로 올라갔다.
저럴 수가 있는가?
박현수의 몸 밖으로 흘러나온 내공은 마치 먹이라도 묻은 것처럼 허공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때처럼 두 눈이 검은 불꽃을 흘리고 있었다.
“후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무슨 일이라뇨?”
박현수는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진짜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아하. 제 몸에 생긴 변화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럼 네놈이 뒷간에서 본 일을 묻겠냐?]“지저분하게 그런 얘긴 왜 하십니까?”
[시끄럽고. 제례용과 헤어진 후 대체 무엇을 겪었느냐?]“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쉽게 말해서, 무너지는 세계에서 흩어져 나온 거대한 마나를 호흡했고, 일부를 내공으로 정제시켜 흡수했습니다.”
[……뭐라?]“제례용이 떠나기 전에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나가자마자 마나를 호흡하라고. 눈앞이 캄캄하던 상황이라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해 봤는데.”
박현수는 자신의 두 손을 보더니, 짧게 만세 하며 말했다.
“이렇게 됐어요.”
엄청난 기연을 마주했으면서 단순히 ‘이렇게 됐다’라니.
천경은 가끔 제자의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현수는 가볍게 점프했다.
“근데 뭐가 달라진 건지는 감이 잘 안 와요. 내공은 확실히 커졌는데, 신체 능력 같은 경우엔 아직 제대로 써 보질 못해서.”
[그럼 확인해 보면 되지.]“어떻게요? 또 수련이란 명목으로 절 두들겨 패게요?”
박현수는 옛 트라우마를 떠올리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천경이 피식 웃었다.
“그럼요?”
[땅을 발로 세게 찍어라.]“이렇게요?”
쾅!
발로 땅을 찍었을 뿐인데 사방으로 균열이 벌어지며, 돌조각들이 위로 치솟았다.
박현수의 눈이 동그래졌다.
“가, 가볍게 찍었는데.”
그는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스승을 보았다.
스승은 대수로울 것도 없다는 듯 뒤로 물러나라고 손짓했다.
“이게 테스트한 거 아니었어요?”
[저곳으로 가라고.]“넵.”
박현수가 총총걸음을 하며 뒤로 갔다.
천경은 이기어의 수법으로 수많은 돌조각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제자에게 말했다.
“네?”
[시작한다.]“자, 잠깐!”
돌조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였다.
그 속도는, 장담하건대 총알보다 빨랐다.
박현수는 당황했지만, 본인조차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침착을 되찾았다.
그리고 눈꺼풀을 미동도 하지 않고 날아오는 돌조각들을 주시했다.
처음 봤을 땐 피할 수 있는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깊게 집중하자마자 돌조각들의 궤적이 눈에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왼쪽.’
왼쪽 어깨를 뒤로 틀었다.
한 조각이 스쳐 지나갔다.
‘조금 더 아래.’
왼발을 뒤로 쭉 끌며 몸을 뒤로 더 눕혔다.
이번엔 두 조각이었다.
재빨리 상체를 들며 오른발을 뒤로 당겼다.
오른쪽 어깨와 팔꿈치 관절이 부드럽게 꺾였다.
그 틈으로 세 조각이 지나갔다.
박현수는 흐름에 몸을 맡기듯 날아오는 조각들을 회피했다.
거의 동시에 쏘아진 돌 조각들이었다.
피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천경은 현란하다 못해 분열한 듯한 제자를 보며 씩 웃었다.
천마신공의 보법이자, 신법인 천마군림보의 마지막 5보인 ‘천마군림(天魔君臨)’.
아직까진 4보 천마탈혼까지 밖에 가르쳐 주지 않았다.
‘천마군림’은 앞선 4보와 달리 높은 수준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하나, 지금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이마저도 가능성일 뿐, 지금의 박현수라도 익히지 못할 수도 있었다.
모든 돌 조각을 피했음에도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눈치인 제자를 보았다.
[저 녀석은 차기 천마로서 충분하다.]어쩌면 자신을 뛰어넘는 역대 최강의 천마가 될지도 모를 일.
말년에 지루하던 인생이 이렇게까지 즐거워지다니.
천경은 흐뭇한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스승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건 말건.
“어떻게 한 거지?”
박현수는 아직도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믿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