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49
훈수 두는 천마님 48편
“크헉!”
나이트의 몸이 허공을 가르곤 벽에 처박혔다.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나이트는 다급히 양팔을 교차시켰다.
쿵!!
“끄윽!”
교차한 팔 위로 파고드는 주먹이 나이트의 입에서 잇소리를 나오게 했다.
“네놈은 무능하다.”
어둠 속에서 보라색의 안광이 번뜩였다.
나이트는 공포 어린 눈으로 안광의 주인을 보았다.
“눈앞에서 특이점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호언장담했던 임무는 또다시 실패했다.”
반대편에서 검은 팔이 튀어나와 나이트의 얼굴을 짓눌렀다.
벽이 무너지며, 나이트는 그대로 밀려났다.
“쿨럭!”
목구멍을 타고 피가 역류했다.
꿀렁이듯 쏟아지는 피는 검은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고작해야 그 정도였던 것이다.”
“사, 살려 줘…….”
나이트가 애절한 목소리로 자비를 구했다.
“차라리 네놈을 치우고 새로 그 자리를 채우는 편이 나아.”
“하, 한 번의 기회를…….”
“킹께서 실망하셨다.”
어둠이 걷혔다.
보라색 안광이 나이트를 움켜쥔 채 빛 속으로 향했다.
멋들어진 수염을 한 흑인 남자였다.
남자의 근육으로 뒤덮인 상체엔 기괴한 문신이 도배되어 있었다.
남자가 말했다.
“하지만 네놈에게 기회를 또 주라 하시더군. 그래서 말했다. 무의미한 짓이라고. 네놈은 또 실패할 거라고.”
“제발…….”
“감사해라. 킹의 자비에.”
남자, 룩이 손을 놓았다.
나이트의 몸이 물웅덩이 위로 널브러졌다.
룩은 차가운 눈으로 나이트에게 명령했다.
“마지막 기회다. 특이점을 잡아 와. 진화를 해서라도.”
“……알겠다.”
룩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가만히 서 있는 여자에게 말했다.
“너의 임무가 무엇이라 생각하지?”
“…….”
“너에게도 두 번은 없을 거야. 가지.”
“네.”
아직 남아 있는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여자가 걸어 나왔다.
나이트를 보필하는 여자처럼 하얀 드레스에 우산을 들고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장신구를 잔뜩 달고 있다는 점이었다.
룩과 여자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이트는 각혈을 토해내며 힘겹게 기어, 벽에 등을 기댔다.
여자가 다급히 나이트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보이나?”
“아니요.”
“그럼 뭘 물어? 후우…… 돌아가서 회복부터 한다.”
“알겠습니다.”
“룩, 이 미친 새끼.”
나이트는 자신을 걸레짝으로 만든 룩을 떠올리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하지만 힘의 격차는 압도적이기에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여자가 우산을 펼치자, 그 안에서 광활한 우주가 떠올랐다.
나이트를 부축하고 우산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머, 많이 아파 보이네?”
나이트가 가장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자, 그곳엔 눈꼬리가 축 처져 시종일관 웃는 것 같은 얼굴의 여인이 서 있었다.
“비숍……!”
“룩이 입은 안 때렸나 봐? 주둥이는 산 것 보니까.”
“여긴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 나랑 싸우고 싶어서 찾아온 거면, 정말 잘못 찾아왔다고 말하고 싶구나.”
나이트가 손가락을 쥐락펴락하며 강한 살기를 일으켰다.
살기에 반응한 대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비숍은 조소 어린 얼굴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수준 낮기는. 내가 지금 너랑 싸우게 생겼니?”
“그럼 왜 찾아왔어!”
“으르렁대지 마. 약해 보여.”
“이 미친년이.”
“입만 험해 가지곤.”
“왜 왔냐고! 말 안 하면 당장 죽여 버린다?”
“그럴 수나 있고? 에혀, 너란 애는 어쩜 예나 지금이나 똑같니?”
“일단 그 아가리부터 확!”
“재밌는 소식을 알려 줄까 하고 왔더니.”
재밌는 소식이란 말에 나이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소식?”
“네가 너무 불쌍해서, 누나가 조금 도와줄까 싶어서 말이야.”
“네가 왜 내 누나야?”
“그래서, 듣기 싫어?”
비숍의 눈이 곡선으로 휘었다.
나이트는 저 표정을 알고 있었다.
무언가 재밌는 일이 생겼을 때 그녀가 항상 짓던 표정이었다.
“뭔데?”
“맨입으론 안 되고.”
“방금 도와준다고 했잖아.”
“도와는 주지만, 그래도 오가는 게 있어야지?”
“뭘 바라는데.”
“네가 이번 임무를 성공시키고 살아남는다면 내 부탁을 한 번 들어줘.”
“그거면 돼?”
“그거면 되냐니. 내가 원하는 부탁을 무조건 들어주는 거야. 거부권은 없어.”
비숍이 원하는 것.
그녀는 예전부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항상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는 여자.
킹과 퀸이 아니라면 그녀의 속내를 알진 못할 것이다.
지금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좋아.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그 재밌는 소식이 뭔지 빨리 말해.”
“다크 스피릿이 움직일 거야.”
다크 스피릿.
그들은 각성자이지만, 헌터들의 총체인 포탈대책위원회와 반하는 검은 세력이었다.
쉽게 말해 헌터는 아니지만, 초인적인 힘을 가진 범죄자들을 총칭하는 말이었다.
그들이 움직인다는 말은 하나였다.
“테러인가?”
“여기.”
비숍이 종이 하나를 나이트에게 던졌다.
종이를 받은 나이트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그것은 명함이었다.
“이 명함은?”
“검은 번개의 명함이야.”
“검은 번개?!”
다크 스피릿 특성상 헌터 등급 측정은 받지 않아 정확한 수준은 알 수 없지만, S급 헌터에 준하는 힘을 가졌다고 알려진 초인의 별명이었다.
‘검은 번개’는 다크 스피릿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테러의 주체가 바로 그 작자야. 그에게 가 봐. 너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 테니까.”
비숍의 말에 나이트의 입꼬리가 위로 길게 솟구쳤다.
* * *
“으으…….”
아이작이 무거운 눈꺼풀을 열었다.
뿌연 시야 사이로 강렬한 빛이 쏟아졌다.
손이 저절로 움직여 눈을 가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걸까?
마지막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자신과 박현수가 동시에 움직였다.
기억은 거기서 끝이었다.
머릿속으로 전투 설계는 어느 정도 해 놓았는데, 그 기억들이 어둠으로 침몰했다.
설마 진 건가?
정황상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되었다.
아이작은 앉으려고 몸을 일으켰다.
“윽!”
왼쪽 옆구리에서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누워 있어.”
그때, 바로 옆에서 박현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뿌옇던 시야가 정상으로 되돌아오자, 가부좌를 틀고 있는 박현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긴. 네 갈비뼈가 박살 났지.”
“가, 갈비뼈?”
옆구리 통증은 갈비뼈가 부러진 통증이었다.
그렇다는 건.
“내가 졌어?”
“졌으니까 거기 엎어져 있었겠지? 그보다 갈비뼈 걱정은 안 하냐?”
“뼈야 금방 붙으니까……. 내가 졌다니.”
아이작은 큰 상실감을 느꼈다.
그를 보며 박현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갈비뼈가 부러졌다는데, 승부에서 진 게 더 억울한 모양이었다.
저 나이쯤의 소년이면 아파서 엉엉 울어야 정상일 텐데.
물론, 갈비뼈를 박살 낸 장본인은 박현수였지만.
“로벤 씨가 오고 있어.”
“……내가 졌다고 말했어?”
“이봐, 꼬마야. 너는 지금 그게 걱정인 거냐?”
“당연! ……으윽.”
아이작은 저도 모르게 큰소리를 쳤다가 갈비뼈 통증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를 보며 박현수가 조소를 지었다.
“그 꼴을 보고 잘도 네가 이겼다 생각했겠다?”
“이, 이기고 지고가 문제겠냐?”
“그보다, 너는 진 놈이 뭐가 잘나서 그렇게 주둥아리가 산 거야? 바다에 던지면 주둥이만 뜨겠네.”
“시끄러…….”
아이작이 옆구리를 부여잡고 꾸역꾸역 상체를 세웠다.
그러더니 얼굴이 급속도로 빨개졌다.
“젠장……. 지다니.”
“어떻게 이길 거라고 생각한 거야?”
“너 정도는 이겨야…… 이겨야지만…….”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뭐라고?”
갑자기 혼잣말하는 박현수를 보며 아이작이 인상을 구겼다.
아차 싶었다.
저도 모르게 스승의 말에 대꾸해 버렸다.
“몰라도 돼.”
“이상한 놈.”
“아니, 너는 진 놈이 왜 이렇게 시건방지냐니까?”
“남이 시건방지든 말든. 그쪽이 보태 준 거라도 있어?”
“있지. 네 옆구리 부숴 줬잖아.”
“꼬우면 다시 한번 붙……!”
“아이작!”
그때, 열린 문 앞에서 로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작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어떻게 연 거야?’
박현수는 열린 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잠갔는데, 도둑이 들어와도 모를 정도로 활짝 열려 있었다.
로벤이 연 것 같은데, 정작 로벤은 그런 것보다 무서운 눈으로 아이작을 노려보고 있었다.
“특이점 간의 교감이 있을 수도 있어 억지로 데려가지 않았는데, 기어코 현수 씨에게 싸움을 걸어?”
“아, 안 싸웠어요!”
“다 봤어.”
“…….”
로벤이 봤다고 한 거면 본 거다.
그의 능력은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았다.
“내가 이곳에 올 때 뭐라고 했지?”
“죄송합니다.”
“하아. 현수 씨 정말 죄송합니다.”
로벤의 정중한 사과에 박현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너도 사과드려.”
로벤의 무서운 목소리에 아이작이 떨떠름한 얼굴로 미약하게나마 고개를 숙였다.
“거, 미안합니다.”
“아이작!”
“죄송합니다.”
결국, 꾸벅 사과하는 아이작.
박현수는 터질 것 같은 웃음을 꾹 참았다.
“뭐, 다음부턴 그러지 말고.”
그리곤 대인배처럼 아이작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인자한 얼굴로 답했다.
아이작의 표정이 일그러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쉬십시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민폐 끼쳐 죄송합니다.”
“아뇨, 아뇨.”
“그럼. 따라와라.”
“넵.”
로벤과 아이작이 반지하를 떠났다.
박현수는 멀뚱히 열린 문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부자지간처럼 보이네요.”
[건방진 아해도 저 남자 앞에선 물에 젖은 생쥐 같구나.]“나름 귀엽네.”
[그보다, 어쩔 생각이냐?]“글쎄요.”
인류의 존망이 걸린 사안이었다.
당연히 오케이를 해야 맞겠지만.
“길드장님의 의견도 들어봐야겠죠.”
박현수는 아직 레드 라이온 소속이었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역시 길드장님이랑 상의하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그럴 거라고는 생각했습니다.”
로벤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제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는 건가요?”
“미래까지 읽지는 못합니다. 미래를 읽으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거든요. 다만, 무슨 말을 할지 정도는 예측이 됩니다. 앞서 현수 씨가 해 온 생각 등은 알 수 있으니까요.”
“아하…….”
직접적으로 그리 말하니 왠지 불쾌해졌다.
“불쾌하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좋은 기분은 못 느낄 테니까요.”
“아, 예.”
로벤의 말이 정곡을 찔렀다.
하지만 민망하진 않았다.
실제로, 로벤은 허락을 받지 않고 일거수일투족을 본 게 아니던가?
로벤이 미안한 얼굴로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사과하셨으면 됐어요.”
“능력을 다룬 지 2년이 됐으나, 아직도 컨트롤이 미숙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수 씨의 행동을 읽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만, 관심이 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발동되더군요.”
“능력이 강해서 그런 건가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각성자의 능력이란 것 자체가 제대로 밝혀진 게 많지 않으니.”
“그렇군요.”
“아무튼,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유락 군이 일어나면 그때 다시 뵙도록 하죠.”
“네.”
“그럼 이만…… 아차차. 말씀드리는 걸 잊고 있었군요.”
자리에서 일어나던 로벤이 막 생각났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곤 박현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돌아가는 대로 현수 씨의 등급을 S로 승급시킬 예정입니다. 10번째 S급 헌터로서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네. 자, 잘 부탁드립니다.”
박현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의 손을 맞잡았다.
정식으로 S급 헌터가 된 순간이었다.
* * *
“그렇게 된 거예요.”
“내가 의식을 잃은 사이에.”
이민아의 말이 끝나자, 하유락은 자조 섞인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로벤이 움직였다.’
1년 전, ‘낙원’의 공략 이후로 대외적인 활동을 모두 멈춘 로벤이었다.
로벤이 가진 능력을 알았기에 모두가 그의 행동에 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한데, 박현수를 만나기 위해 직접 움직였다.
“현수에게서 뭔가를 봤구나.”
“아무래도 그렇겠죠?”
두 사람은 로벤의 능력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들이었다.
지금이야 측근이라 할 수 없지만, 한때 한 팀으로 묶여 서로의 등을 맡기는 사이였다.
“현수는 지금 뭐 하는데?”
“그날 이후로, 한 번도 집 밖으로 안 나왔어요.”
“뭐?”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주일 째 은둔 생활 중이에요.”
“내 병문안도 안 왔어?”
“제가 알기로는?”
길드장님이 이렇게 쓰러져 계시는데 한 번도 얼굴을 들이밀지 않았다니.
로벤의 관심을 받는 건 받는 거고, 부하란 녀석이 코빼기도 안 보였다는 사실이 괘씸했다.
“안 그래도 연락했어요.”
“맞아요. 연락받았어요.”
그때, 이민아의 뒤에서 박현수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왁!”
이민아는 깜짝 놀라 기겁했고.
“……어떻게 들어왔어?”
그가 들어온 줄도 모른 하유락은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박현수는 대수롭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문 열고 들어왔죠.”
S급 헌터도, A급 헌터도 그의 기척을 읽지 못했다.
박현수만이 무슨 문제가 있냐는 얼굴을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