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5
훈수 두는 천마님 4편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달려오던 김학성은 가만히 선 채 멍한 얼굴로 박현수를 보았다.
박현수는 내뻗은 정권을 천천히 회수했다.
주먹 위로 툭 튀어나온 뼈가 욱신거렸다.
손가락을 펼치자 살짝 뻑뻑한 느낌도 들었다.
천경의 말이었다.
멍들 수도 있겠다.
박현수는 그리 생각하면서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B급 헌터를 쓰러트렸다.
그것도 일격에.
최중성은 인성과 별개로 B급 중에서 강한 부류가 아니었다.
그렇다 한들 B급이 어딜 가는 건 아니었다.
“현수 씨.”
김학성이 다가와 그를 불렀다.
그는 흰자를 부릅뜬 채 기절한 최중성을 보았다.
“어떻게……?”
모두의 궁금증을 김학성이 대표해서 질문했다.
오늘 막 각성한 자가.
인성 파탄자로 소문나긴 했지만, 나름 실적을 쌓은 베테랑 헌터를 쓰러트렸다.
김학성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최중성은 방심했다.
헌터로 각성했다 해도 누군가에 대한 인식이 쉽게 바뀌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에게 박현수는 막 각성한 서포터였을 뿐이다.
‘그렇다 해도 한 방에 기절시켰다?’
B급 헌터 중 상위권이라는 김학성도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전투 계열 A급 헌터라면 혹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확신은 아니었고, 단순 추측에 불과했다.
B급 헌터의 피부는 여간 단단한 게 아니었으니까.
박현수는 김학성을 보았다.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의 눈빛이었다.
그를 이해했고, 생각에 공감했다.
그래서 대답할 수 있었다.
“제가 더 센가 봐요.”
* * *
공략대는 포탈을 탈출했다.
김학성은 나오자마자 헌터 협회 한국 지부에 오늘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최중성은 의식을 되찾지 못해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사망자와 중상자 역시 최우선적으로 이송되었다.
이아린은 멍하니 한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멀리서 허공에 떠들고 있는 남자.
그러면서 주변 눈치를 살피며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다.
무슨 대화를 하는 걸까?
그녀는 궁금했지만, 아마 진실을 안다면 꽤 실망할 것이다.
박현수가.
아니, 그들이 떠드는 대화는 이랬다.
“끄윽.”
[각성인지 뭔지가 아니어도 본좌가 없었으면 어차피 죽었을 테지만. 결과적으로 본좌 덕에 목숨도 건지고, 힘도 얻고 아주 다 얻었네?]“…….”
[그럼 앞으로 본좌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알고 있겠구나?]박현수는 눈앞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어차피 다 말해야 하는 것들이었지만, 천경의 반응을 보자니 차라리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마, 맞습니다.”
[묻는 말에 따박따박 대답도 열심히 하고. 아주 무시하는 게 습관이 됐어. 나 때는 말이야~]저 ‘나 때는 말이야’를 벌써 몇 번째 듣는지 모르겠다.
아니, 지금 나누고 있는 대화를 몇 번째 반복하는 건지 모르겠다.
포탈에서 나오고 진실을 밝힌 뒤로 계속 저런 상태였다.
박현수는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았다.
그러나 강해지려면 천경이 꼭 필요했다.
-타인의 훈수를 성공적으로 듣게 되면 해당 효율이 0~60%까지 증가합니다. (능력의 레벨이 오르면 비율이 일정하게 증가합니다.)
-훈수 두는 이의 숙련도에 따라 훈수 내용이 일정 확률로 머릿속에 각인됩니다. (숙련도가 높은 이일수록 각인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훈수에 특화된 특정 인물을 총 한 명까지 설정할 수 있습니다. (능력의 레벨이 올라도 한 명 이상 증가하지 않습니다.) [특정 인물 목록] -천경
사실상 천경의 훈수만이 이 능력을 최대 효율로 발휘할 수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박현수는 결심했다.
갑과 을이 정해졌다면 차라리 존중받는 을이 되자.
솔직히 이 방법으로 존중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박현수가 천경을 똑바로 바라봤다.
“어차피 할아버지 없으면 전 죽도 밥도 안 돼요.”
[흐흐. 드디어 주제 파악을 한 거냐?]“예. 주제 파악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제 스승이 되어 주세요.”
[……스승?]박현수의 제안에 천경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120년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제자를 둔 적이 없었다.
제자를 기를 시간에 수련해 더 강해지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말년엔 귀찮아서 제자를 기르지 않았다.
한데 눈앞에 애송이가.
주먹 한 번 제대로 써 본 적 없는 어린놈이 스승이 되어 달란다.
이런 적이 없던 건 아니지만, 너무 갑작스러워 천경은 살짝 당황했다.
“어차피 제 고유 능력은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발동하잖아요. 그럼 차라리 제자가 돼서 할아버지의 기술을 이어받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천경은 박현수와 떨어질 수 없다.
박현수가 죽으면 천경은 자기가 어떻게 될지 몰랐다.
그리고 천경의 훈수로 인해 박현수는 각성했다.
천경과 박현수가 만난 건 절대 우연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천경 역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은 박현수뿐이라는 것을.
“무공이란 걸 저한테 가르쳐 주세요.”
그걸 배울 수 있다면 조금 더 천경의 요구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고,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것이다.
박현수는 확신했다.
가만히 그를 응시하던 천경이 입을 열었다.
장난기 가득하던 천경의 목소리가 진중해졌다.
[그럴 시간에 내 수련에 몰두하고 싶었고, 경지에 이르렀을 땐 귀찮았기 때문이다.]박현수는 말없이 천경을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네놈이 그런 것처럼, 본좌 역시 네놈이 답일 수도 있겠구나.]박현수가 스승 운운하지 않았다면, 한동안은 별생각 없이 지냈을 것이다.
그리고 나름 재밌을 것 같았다.
박현수에게 무공을 알려 주지 않았다.
그저 공격을 피하고, 공격을 하라고.
필요하다면 도구를 쓰란 정도만 옆에서 지시했다.
동네 왈패도 할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제대로 싸워 본 적 없는 박현수가 완벽하게 해내었다.
쉽게 말해 재능은 있었다.
그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천마인 자신이 가르친다면 적어도 어디 가서 맞진 않으리라.
그 전에 박현수에게 한 가지 확인했다.
“포탈 내부에서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냥 다.]“음, 잘은 모르겠지만.”
박현수는 헌터가 아니었다.
내부 사정은 잘 모르지만, 서포터로서 보고 들은 건 많았다.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A급 이상만 된다면 모든 곳을 상당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거예요. S급이 된다면 같은 조건의 헌터나, 군단 정도가 아니라면 언터쳐블이 될 겁니다.”
[언터쳐블이 뭐야?]“건드릴 수 없다고요.”
천경이 이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말했다.
“어떤 거요?”
[본좌가 널 그 수준까지 만들어 주마. 대신 넌 본좌가 돌아갈 방법을 최우선으로 찾아야 한다.]천경은 오래 살았다.
삶에 미련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죽을 땐 고향에서 죽고 싶었다.
그러니 박현수에게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박현수에게 나쁠 건 없었다.
평생을 이 고약한 노인네와 살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것과 별개로 박현수 역시 한 가지를 확인했다.
“절 그 수준까지 만들어 줄 수 있습니까?”
박현수는 S급 헌터들이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
실제로 본 적도 없었다.
텔레비전에서 그들의 활약만 들어왔을 뿐이다.
문제는 그 활약상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이었다.
백두산만 한 거대 황소를 토벌했다던가, 바다에서 하늘까지 이어진 뱀을 찢어 죽였다던가.
그런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힘을 S급 헌터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천경이 말했다.
그 목소리엔 대단한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그 말에 한 치의 의심도 담겨 있지 않았다.
박현수는 모든 걸 믿진 않았다.
그러나 눈앞의 노인, 천경이 강하다는 것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구배지례를 하거라.]“예?”
[아홉 번 절을 하라고.]“여, 여기서요?”
[그럼 꿈속에서 하리?]박현수는 주변을 둘러봤다.
짐을 정리하고 있는 헌터와 서포터들이 잔뜩 있었다.
* * *
“혀, 현수 씨?”
“묻지 말아 주세요.”
박현수는 마지막 절을 끝내고 무릎을 탁탁 털었다.
김학성은 그가 왜 절을 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묻지 말아 달라고 했기에 그렇게 했다.
그냥 각성한 능력과 관계됐다고만 대강 추측했다.
“무슨 일이세요?”
“뭐, 헌터로 각성했으니까. 아까 협회에 보고하면서 현수 씨 얘기 같이했어. 그리고 이제 말 편하게 해. 최소 B급 헌터일 텐데. 아, 나보다 높을 수도 있겠는걸? 하하하 그때가 되면 내가 존대를 해야겠네.”
헌터는 등급이 높을수록 상관이다.
협회에 소속돼 있는 한 그 규율을 반드시 지켜야 했다.
모든 서포터가 헌터들에게 존대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헌터 협회는 지구 방위를 책임지는 군대나 다름없었다.
“하하하……. 제가 뭘 하면 되나요?”
“내일 5시 전까지 협회에 가면, 그쪽 인사가 현수 씨 맞이해 줄 거야. 테스트를 거치고 등급 판정을 받으면 헌터 자격증을 발급받겠지. 그때부턴 진짜 헌터가 되는 거야.”
“진짜 헌터.”
꿈에도 그리던 헌터.
박현수는 아직 병실에 누워 있을 동생을 떠올렸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헌터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서포터 때 벌던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으리라.
“가면 전녹수 과장과 약속 잡혔다고 말하면 돼. 그럼 안내해 줄 테니까. 그리고 나중에 따로 한번 보자고.”
“전녹수 과장.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
김학성은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직후 천경이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스승한테 말버릇이?!]따악-!
뒤통수에서 불이 났다.
“포, 폭력 반대!”
[시끄럽다!]따악-!
* * *
집으로 돌아왔다.
황량한 반지하 원룸은 곰팡내가 퀴퀴하게 났다.
“남자 혼자 사는 집이 그렇죠, 뭐.”
[본좌는 깔끔한 걸 좋아한다.]“그렇군요.”
[그렇군요?]“치울게요…….”
박현수는 돌아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방부터 치웠다.
천경 가라사대.
무공이란 맑은 마음에서 비롯되니, 맑은 마음은 깨끗한 공간에서 시작된다.
“물론, 뻥이겠지.”
그딴 건 없다고. 그냥 지저분한 방이 꼴 보기 싫었을 뿐이라고 했다.
박현수는 투덜거렸지만, 돌아오는 건 뒤통수를 노리는 손바닥뿐이었다.
작은 원룸이라 청소는 금방이었다.
“지저분한 걸 정리한다고 원룸이 투룸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원룸, 투룸이 무엇이냐?]“방 하나가 원룸, 두 개가 투룸. 그런 겁니다, 스승님.”
[흠. 스승이란 말이 꽤 낯간지럽구나?”]“구배지례할 때 전 얼굴이 터져 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자리에서 서서 자신만 본 건 확실했다.
그 압도적인 수치심이란!
“솔직히 일부러 시킨 거죠? 제자 쪽팔리게 만들려고.”
[그걸 이제 알았누? 하하하하!]“빌어먹을, 젠장할!”
천경은 꺽꺽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백 살도 더 넘게 살았다면서, 성격은 깃털처럼 가볍다. 그편이 박현수에게 더 편하긴 했지만, 놀림당할 때만큼은 끔찍했다.
“그래서 수련은 언제부터 하나요?”
[몸부터 쉬어라. 수련은 그다음이다.]“그런데 수련은 어디서…… 아.”
[좋은 곳이 바로 옆에 붙어 있잖느냐.]천경이 씩 웃으며 벽에 뚫린 구멍을 보았다.
텅 빈, 광활한 들판이 펼쳐진 이계가 저 안에 존재했다.
“무, 무슨 짓거리를 하실 건데요?”
[그건 기대해도 좋아. 크크큭.]천경이 음산하게 웃었다.
박현수는 전신에 소름이 쫙 돋았다.
* * *
다음 날 아침 7시.
박현수는 한창 꿈나라였다.
어제 피곤했기 때문일까?
그는 드르렁 쿨쿨쿨, 드르렁 쿨쿨쿨 열심히 코를 골아 재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위에서 지켜보던 한 남자가 있었으니.
천경이었다.
천경은 화장실을 쓱 쳐다봤다.
바가지 위로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모여 어느새 가득 채워져 있었다.
다시 박현수에게 돌아왔다.
그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내공을 일으켜,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를 허공에 떠올렸다.
허공섭물의 수법이었는데, 사람 하나를 들어 올리는 건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천경은 열심히 코를 골아 대는 박현수를 화장실로 끌고 갔다.
그리고 거꾸로 세우고.
그대로 물 가득 있는 바가지에 머리부터 담가 버렸다.
“푸롸라라, 푸풀르으으! 후악!”
천경이 다시 들어 올렸다.
뜬금없는 상황에 숨을 몰아쉬던 박현수가 천경을 보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보았다.
“이 영감탱이가!”
소란스러운 하루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