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61
훈수 두는 천마님 59편
단검은 전장에서 태어났다.
수없이 많은 시체의 산에서 굳어 버린 피의 호수에서 태어났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저절로.
자연스럽게.
단검은 그렇게 태어났다.
죽음 속에서 태어난 단검은 죽음을 품고 있었다.
단검이 향하는 곳엔 항상 죽음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단검을 가졌지만, 주인이 된 자들은 모두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
죽음 속에서 태어난 단검에 새로운 죽음이 겹겹이 쌓였다.
한 초월자가 있었다.
초월자는 단검의 위험한 힘을 눈치채고, 그 위험을 가리기 위해 치장했다.
금으로 된 아름다운 검집을 만들고, 그 위에 반짝이는 보석들을 치장했다.
겉으로 봤을 때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아무것도 모른 채 사용하도록.
그리고 초월자 또한 죽었다.
초월자는 죽어 가며 생각했다.
‘아. 이 물건은 진짜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손을 거쳤다.
그리고 모두 죽었다.
하지만 단검 또한 죽일 수 없는 자가 있었다.
그는 죽음을 몰고 오는 자였고, 죽음을 지배하는 자였다.
죽음 속에서 태어난 단검은 죽음을 지배하는 자를 죽일 수 없었다.
단검은 그렇게 정착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지금, 단검은 죽일 수 없는 또 하나의 생명체를 마주했다.
‘이 녀석은 도대체…… 특이점이란 대체?!’
나이트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의 종말을 가져다주는 단검 ‘앱솔루트 데스(Absolute Death)’.
그것의 힘은 이름처럼 절대적이었다.
자신 역시 이 단검을 잠시 대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거쳤던가.
초월자조차 피하지 못한 그것을 일개 인간 따위가 견딘다?
‘개소리!’
아무리 각성자라도, 멸망룡의 대적자라 불리는 ‘특이점’이라고 해도!
아직 완성되지 못한 지금, 그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어떤가.
“그으으으으윽!!”
박현수의 두 눈에 선 핏발은 모조리 터져, 피눈물이 되어 흘렀다.
땅을 찍은 다리의 힘줄은 대부분 끊어진 것 같았다.
전신의 피부가 파랗게 변했다.
다 죽어 가는 몰골.
그러나 죽지는 않았다.
‘앱솔루트 데스는 죽음을 발현할 수 있는 단계까지 올랐다. 한데, 이놈 하나를 죽이지 못한다고?’
마음 같아선 무방비한 박현수를 직접 죽이고 싶었지만, 박현수를 뒤덮은 보랏빛 기둥은 앱솔루트 데스의 영역.
아무리 나이트라도, 그런 곳에 손을 집어넣으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천경이 애처로운 눈으로 박현수를 불렀다.
한평생 지금 같은 표정을 지은 적은 없었다.
첫 번째 제자이기 때문인가?
고통스러워하는 제자를 보고 있자니, 천경은 자신이 저곳에 있는 것처럼 괴로웠다.
당장에라도 꺼내 주고 싶은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영체이기 때문에?
애가 탔다.
아끼던 부하를 잃어도 이렇게까지 괴롭진 않았다.
무력함에 화가 치밀었다.
천경의 기파가 황무지 전역에 휘몰아쳤다.
* * *
박현수는 피바람이 부는 벌판에서 눈을 떴다.
썩은 시체부터 따끈따끈한 시체까지.
‘시산혈해’라는 표현에 걸맞은 곳이었다.
주변에 날아다니는 날파리는 죽음을 맞으러 온 저승사자처럼 느껴졌고, 시체를 파먹고 있는 짐승들은 붉은 눈을 빛내며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여긴 어디야?”
박현수는 난생처음 맡아 보는 악취에 코를 틀어막았다.
먹은 게 모두 넘어올 것 같았다.
비위가 약한 편은 아니었지만, 이곳을 보니 비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박현수는 1m 정도 앞에 놓인 시체를 보았다.
상체와 하체가 정확하게 두 동이 난 시체였는데, 잘린 부분에 구더기가 들끓었다.
차라리 이 시체는 나았다.
머리의 3분의 1이 날아간 시체에선 들쥐가 살을 파먹고 있었고, 지네가 코와 눈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분명히 나이트와 싸우는 중이었는데.”
나이트뿐만이 아니었다.
하얀 드레스의 여자와 스승인 천경도 보이지 않았다.
천경과 이렇게 헤어졌던 적은 여태까지 두 번 정도 있었는데.
바로, 강제적인 힘으로 다른 세계에 끌려갔을 때뿐이었다.
지금도 그때와 같은 상황인가?
그렇다면 자신을 이곳에 부른 주체가 있을 터.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아.’
단전을 열고 기를 대량으로 꺼내, 핏빛 들판 전역으로 퍼트렸다.
짐승이며, 벌레며, 많은 것들이 기에 감지되었지만,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박현수는 방향도 알지 못한 채로 시체의 산을 넘으며 정처 없이 걸었다.
하지만 시체로 이뤄진 산만 계속 이어질 뿐,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박현수는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식으로 돌아다니다간 늙어 죽을지도 모른다.
“마나를 사용해 볼까?”
기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마나를 사용해 보면 될 노릇. 이것도 안 된다면 정말 답이 없겠지만, 지금은 기적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박현수는 차분히 숨을 내뱉고, 천천히 들이마셨다.
주변에 떠다니던 정제되지 않은 마나가 허공에서 푸른빛을 빛냈다.
전신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호흡을 한 번으로 멈추지 않고, 연달아 쉼 없이 반복했다.
입자 수준이었던 마나가 끊임없는 호흡을 통해 냇가처럼, 강처럼, 호수처럼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박현수의 전신에서 푸른빛이 흐를 정도가 되었을 때.
“흐합!”
박현수가 양 주먹을 아래로 쭉 뻗으며 기합을 외쳤다.
마나가 쾅!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법사들이 본다면 경악할 만한 마나 활용법이었지만, 상식이 없는 박현수였기에 할 수 있는 시도였다.
막대하게 모인 마나는 꽤 넓은 범위까지 퍼져 나갔다.
그리고 박현수의 눈이 떠졌다.
기에 감지되지 않았던, 사악하고 불길하기 그지없는 무언가를 박현수가 퍼트렸던 마나가 포착했다.
“탐색할 때는 기보다 마나가 탁월하네.”
정제됐느냐 안 됐느냐의 차이일 뿐, 근본은 똑같을 텐데, 왜 이런 차이가 있는지 의아했다.
이런 분야는 아는 게 영 없었기에 이곳을 나간다면 스승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박현수는 마나가 포착한 그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 * *
헌터들이 상공을 보고 있었다.
블랙홀처럼 생긴 검은 뭔가가 그곳에 떠 있었다.
“저곳으로 들어갔다는 말입니까?”
“그래.”
가온의 질문에 아르망이 담뱃불을 붙이며 답했다.
자신이 있었는데도 박현수가 저곳으로 사라지는 걸 보고만 있어야 했다.
박현수가 원한 거긴 하지만, 상대는 자신조차 이런 꼴로 만든 강적이었다.
그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나, 이제 막 S급이 된 박현수가 괴인을 이길 것 같진 않았다.
“들어갈 방법이 아예 없는 겁니까?”
“해 봤는데, 안 됐어.”
반쯤 빨아들인 담배를 탈탈 털었다.
초염력을 한계치까지 발동시켜 블랙홀을 어떻게 해 보려고 했지만, 저것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르망이 씁쓸하게 웃었다.
“천하의 내가 이런 모욕을 당할 줄은 몰랐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담배를 피웠기 때문일까?
입맛이 썼다.
가온은 아르망을 보다가 시선을 하늘로 옮겼다.
그때, 이번 작전에 포함되지 않은 헌터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당신들은 누구지?”
“협회에서 나왔습니다.”
관리자로 보이는 헌터가 가온에게 명함을 건넸다.
“특전부대장 김필태?”
“보조하라는 명령을 받고 이곳에 왔습니다.”
“……늦었군.”
“그래 보이는군요.”
김필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남의 마천루들이 줄지어 불길에 휩싸였다.
몇 채는 폭발을 버티지 못하고 도로 위로 떨어졌다.
엄청난 혼란이 일어났지만, 아무도 죽지 않았다.
김필태의 시선이 아르망에게로 향했다.
그는 잘 붙지 않은 라이터를 바닥에 던지며 불어로 욕을 하고 있었다.
‘초염력.’
현재 강남 일대가 아르망의 영역 안에서 모두 컨트롤되고 있었다.
무너지던 건물은 물리법칙에 위배되듯 허공에 반쯤 떠 있었고, 연쇄 추돌 직전의 차들은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제 자리를 찾았다.
죽을 뻔한 시민들은 몸 주변에 투명한 막이 쳐져 떨어지는 모든 것들을 막아 내고 있었다.
이 모든 걸 단 한 사람이 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엄청난 일을 벌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태우고 있다는 점이다.
김필태가 경이로운 눈으로 보고 있을 때 아르망이 그를 휙 하고 쳐다봤다.
그리곤 말했다.
“뭘 봐?”
불어였지만, 자동통역기를 거치니 구수한 한국말이 나왔다.
김필태는 당황한 얼굴로 얼버무렸다.
“부, 부협회장님을 뵈어 영광입니다.”
“영광은 개뿔.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지금 그 덕분에 수많은 인명이 구조되고 있었다.
한데, 한 게 없다니?
김필태가 그의 말을 정정하려고 하자.
“지금 그럴 때가 아닐 텐데?”
“아. 그럼 받은 명령을 이행해야 해서. 실례했습니다.”
가온의 일침에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아르망은 사라지는 김필태를 보며 코웃음 쳤다.
“성실하군.”
“김필태라면 저도 들은 적 있어서 알고 있습니다. 굉장한 FM이라더군요. 피곤한 성격이지만, 제법 유능하다고 합니다.”
“한국은 미래가 밝군.”
아르망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그러나 옷 전체가 더러운 걸 보곤 터는 걸 멈추었다.
“박현수가 제발 살아서 돌아왔으면 좋겠어.”
“저도 그러길 바랍니다.”
“안 그러면 정말 면목이 없을 것 같거든.”
조금만 더 잘했다면.
조금만 더 버텼다면.
많은 후회가 머릿속을 후볐다.
‘로벤. 너는 이 미래를 본 거냐?’
물어본다고 알려 줄 놈이 아니지만, 아르망은 진심으로 그에게 묻고 싶었다.
* * *
“단검?”
상당히 녹슬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자세히 보니 분명 단검이었다.
이것이 마나에 감지된 살벌하고, 불길한 무언가였다.
겉으로 봐도 살벌하고, 불길해 보였다.
이 단검이 악취 가득한 이곳의 핵이 틀림없다.
“만져도 되나?”
단검에 손을 뻗던 박현수는 멈칫하며 손을 회수했다.
왠지 만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신, 단전을 열고 기를 일부 뽑아 손에 덮어씌웠다.
천경은 숨 쉬듯 편하게 허공섭물을 사용했다.
사실, 천경이 사용한 것은 허공섭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이기어의 수법이었지만, 따로 알려 준 적이 없었으니 박현수가 알 리 없었다.
“이런 느낌으로.”
하지만 배우지 않았다고, 그 원리까지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스승은 대부분의 일에 허공섭물(이기어의 수법)을 사용했다.
경지가 낮을 때라면 몰라도, 경지가 오르며 조금씩이지만 그 방법이 느껴졌다.
박현수는 정신을 집중하고 손을 덮은 기를 천천히 부풀렸다.
그리곤 쥔다는 생각으로 허공에 손을 뻗었다.
지잉-!
단검이 아주 미약하게 진동했다.
뭔가 머릿속에서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
“으음.”
약간의 두통이 일었다.
머릿속 일부분이 잘려나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생각이 두 개로 나뉜 것처럼, 방금 뽑아낸 기에 분리된 생각 하나가 담긴 것 같았다.
내가 둘이 된 것 같은 기묘한 감각.
의념(意念).
아직은 이해할 수 없는 사고이자,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었다.
한데, 박현수는 천경을 따라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의념’을 깨우쳤다.
본인은 아직도 의식하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의념을 다룬다는 것은 초절정을 넘어 화경의 문턱에 선 것을 의미했다.
그와 함께 신체의 변화가 찾아왔다.
박현수는 무의식 속에서 내공을 뿜어냈다.
머리 위로 세 개의 검은색 꽃이 만개했다.
꽃은 점점 거대해졌다.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 잎을 점차 불려 나갔다.
-그만둬.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박현수의 귀를 파고들었다.
박현수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검은 그림자로 된 어린아이가 그를 보며 말했다.
-그만둬.
아무것도 없는 검은 얼굴에서 두 개의 핏빛 눈동자가 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