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62
훈수 두는 천마님 60편
‘얘는 뭐야?’
존재 자체가 꺼림칙하다는 건 이런 애를 두고 하는 말일까?
그전에, 사람은 맞는 걸까?
새까만 몸은 흑인이란 표현도 부족할 완전한 어둠이었고, 핏빛 같은 두 눈은 아무리 충혈돼도 저렇게까지 빨개지진 않을 것이다.
박현수는 아이가 쥐고 있는 단검을 보았다.
“그거 네 거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럼 네가 이곳 주인?”
이런 조그만 아이가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호수를 이루는 이런 끔찍한 곳의 주인?
농담으로도 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단검의 주인을 자처하는 이상 아니라고 하기에도 이상했다.
그런 박현수의 생각이 맞다는 듯,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에 대한 호기심이 올라왔지만, 억눌렀다. 지금은 호기심보다 먼저 해야 할 게 있었다.
“부탁 하나만 하자.”
-그만두면.
아이가 단검을 품에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박현수는 아직 뻗고 있던 손을 밑으로 내렸다.
두 개로 나뉜 것 같던 생각이 하나로 합쳐졌다.
동시에, 의념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손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됐지?”
-응. 부탁이 뭔데?
아이는 순진무구한 목소리로 물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아이가 안심하는 게 느껴졌다.
“날 이곳에서 내보내 줘.”
-…….
“못해?”
-할 수 있어.
“그럼 해 줘.”
-근데, 하면 안 돼.
할 수 있지만 해 줄 수 없다는 말이었다.
박현수가 눈썹을 찡그렸다.
-누군가가 너를 죽이기 위해 나를 썼어. 그러면 너는 여기서 못 나가.
“뭐?”
-그런데, 너는 쉽게 죽지 않네?
“그렇지. 나는 쉽게 죽어 주지 않아.”
-두 번째야.
“뭐가?”
-나한테서 죽지 않는 거. 두 번째야.
아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대답했다.
그리곤 혼잣말하듯이 중얼거렸다.
-아저씨 말고도 있었구나.
“그 아저씨가 뭔지 모르겠지만, 나갈 방법은 있는 거지?”
-있어. 하지만 안 된다니까?
“그럼 나도 어쩔 수 없어.”
상대가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상대의 부탁도 들어주지 않으면 그만.
“지금부터 그걸 뺏을 거야.”
그러니 아이여도 봐주지 않는다.
-이것 뺏어도 의미 없어!
“그건 뺏어 봐야 아는 거 아니겠어?”
박현수는 아까 했던 것처럼 정신을 집중했다.
내공이 풀려 나오며 양손을 휘감았다.
그리고 의념을 사용했다.
생각이 갈라지며, 갈라진 생각이 기로 이루어진 두 손에 연결됐다.
박현수는 또 하나의 자아를 조종하듯, 새로운 손을 뻗었다.
컨트롤이 쉽지 않았다.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고 의념을 사용하게 되었으니, 완성도가 높을 리 만무.
아무리 깨달음을 얻었을지라도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천경이 봤다면 ‘그딴 게 무슨 이기어권이냐’라며 엉덩이라도 찼을 노릇.
하지만 이것으로도 충분했다.
애초에 박현수가 하려 했던 것은 허공섭물이었으니까.
-그만두라니까!
아이가 소리쳤다.
그 외침에 반응하듯 주변의 시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곳은 아이의 세계.
즉, 아이가 이 세계의 신이었다.
그러나 박현수는 입꼬리를 올렸다.
“고작 그것뿐이구나.”
-안 돼!
“돼!”
이기어권이 단검의 칼날 부분을 움켜쥐었다.
투명했던 기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뭐, 뭐야?!”
박현수의 머릿속으로 알 수 없는 기억이 파고들었다.
* * *
“이곳은?”
박현수는 어두컴컴한 지하실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아까는 시체의 산과 피의 호수로 얼룩진 세계로 가더니, 이번엔 딱 봐도 갑갑해 보이는 감옥 같은 곳으로 이동되었다.
“엄청 퀴퀴하네.”
지하실 특유의 습함과 곰팡내가 코를 찔렀다.
박현수는 이곳을 파악하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지하실은 실제로 감옥이었는지, 쇠창살로 가로막힌 방들이 잔뜩 있었다.
하지만 죄수로 보이는 사람들은 없었다.
간수도 없었고.
그냥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서 미약한 불빛이 보였다.
박현수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저건 뭐지?”
그리고 지하실 가장 끝에 있는 거대한 감옥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굉장히 두꺼운 쇠사슬 수십 개에 무언가가 묶여 있었다.
사람은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단검?”
아이가 들고 있던 단검이다.
저게 이곳을 탈출할 수 있는 단서가 될 것 같아 감옥 문을 잡았다.
끼익-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허술해.”
아니면, 이곳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나?
이유를 알 순 없지만, 박현수 입장에선 개꿀이었기에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현수는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그것은 아마도 단검의 기억.
‘저자는.’
새까만 털 망토를 두른 노인이 단검 앞에 서 있다.
아니, 단검은 더 이상 ‘단검’이 아니었다.
검은 피부에 붉은 눈을 가진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노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었다.
-시, 싫어요. 누군가를 죽이고 싶지 않아요!
[짐의 숨겨 둔 이빨이 되어라. 그게 너의 운명이다.]아이가 고개를 저으며 오열했다.
-하지 말아 주세요…….
노인은 아이의 말을 무시하고, 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아이가 고통을 느끼며 발작하듯 몸을 뒤틀었다.
“그만둬!”
박현수는 노인의 팔을 붙들기 위해 팔을 뻗었다.
하지만 그것은 허상.
아이의 통곡이 멈추었다.
아이의 몸이 먼지가 되어 으스러졌다.
그곳엔 한 부분도 녹슬지 않은 단검 한 자루가 남아 있었고, 노인은 단검을 들어 올렸다.
노인은 만족한 얼굴로 단검을 허공에 떠올렸다.
수많은 쇠사슬이 벽에서 튀어나와 단검을 속박했다.
그것이 노인의 마지막 말이었다.
허상이 사라지고 박현수는 현실로 돌아왔다.
그는 사슬에 묶여 있는 단검을 보았다.
녹슬어 붉은 기가 맴돌았다.
“……불쌍한 놈.”
처음 아이를 봤을 때가 떠올랐다.
단검을 가져가려 하자 그만두라며 비명을 지르던 아이.
단순히 자기 것을 빼앗기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한 번 빼앗겼기 때문에.
두 번은 그런 괴로움을 겪고 싶지 않아서.
“고통에서 해방돼라.”
천마신공의 내공이 흘러나왔다.
새까만 강기가 박현수의 두 손을 휘감았다.
“이걸 부수면 되겠지.”
그는 털 망토를 두른 노인을 떠올리며 쇠사슬 하나를 붙잡았다.
두꺼운 쇠사슬은 무척 단단했다.
그리고 얼음처럼 차가웠다.
이런 것에 얼마나 오래 묶여 있었을까.
은색의 칼날이 붉어질 정도이니, 그 시간이 절대 짧진 않으리라.
박현수는 강기를 담은 두 손으로 사슬을 잡아당겼다.
끼기기긱!
이어진 고리 사이에서 불똥이 튀어 올랐다.
“흐읍!”
양팔이 근육을 부풀어 올랐다.
펑-!!
사슬이 터지듯 끊어졌다.
“일단 하나.”
남은 건 앞으로 40여 개.
곧바로 다른 사슬을 붙잡았다.
* * *
아이는 단검을 잡은 채 안 놓는 박현수를 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저 상태로 꼼짝도 안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단검을 잡은 이 기묘한 손을 풀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
-이, 이거 놔.
대답이라도 한다면 좀 마음이 편할 텐데.
죽은 듯이 저러니까 오히려 더 불안했다.
시체들을 이용해 박현수를 어떻게 해 보려 했지만, 시체들은 사실 걸어 다니는 게 한계일 정도로 나약했다.
예전엔 저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아이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노인을 떠올리며 울상을 지었다.
-놓으라구…….
아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단검을 잡아당길 때였다.
-……!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자신의 가슴을 보았다.
그날 이후로 가시지 않았던 답답함이 사라졌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아이가 급히 고개를 들어 박현수를 보았다.
“후우. 힘들어 죽겠다.”
그가 씩 웃으며 손에 쥔 뭔가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건……?
“답답함은 좀 가셨냐?”
-네, 네가?
박현수의 손에서 떨어진 것.
그건 바로 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쇠사슬의 일부였다.
박현수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아이에게 말했다.
“형이 인마, 고생 좀 했다.”
-진짜, 진짜로?
“이제 널 구속하는 건 없을 거다.”
-말도 안 돼. 아저씨가 만든 걸 어떻게?
“안 되긴 왜 안 돼.”
꽤 힘들긴 했지만,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고생 많았다.”
-…….
“이제 넌 자유야.”
-자유.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 아이는 자유라는 말을 되뇌었다.
그리곤 동그란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자유……!
“그래. 자유!”
죽음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자유라는 걸 누리지 못했다.
항상 남을 위해 원하지 않은 힘을 사용했다.
괴로운 일이었다.
항상 태어남을 후회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저 남자가.
나를 뺏으려 했던 저 남자가.
-자유……!
그러다 문득, 자신을 이런 꼴로 만든 노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 안 돼.
“뭐?”
-안 돼. 자유는 안 돼. 아저씨가, 아저씨가 올 거야.
“그 노인을 말하는 거야?”
-아저씨는…… 아저씨는 진정한 죽음이야. 나는 그 사람을 거스를 수 없어.
뼛속 같이 스며든 압도적인 공포.
그것은 자유를 얻은 아이가 자유를 버릴 정도로 끔찍한 것이었다.
박현수는 허상으로 본 노인을 보았다.
얼굴은 정확히 보지 못했으나, 그 위압감은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났다.
하지만 그것이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괜찮아.”
-너는 몰라. 아저씨를 몰라.
죽음 속에서 태어난 아이마저 굴복시킨 진정한 죽음은 감히 필멸자가 평가할 수 있는 게 못 된다.
“대체 그 사람이 누군데?”
-아저씨는 왕이야. 모든 것을 지배하는 왕. 킹.
“킹……!”
지구에 포탈을 만들고, 인류를 위협하는 세력의 정점에 선 존재.
제례용이 그를 말하길.
‘엄청나게 강하다.’
제례용은 S급 헌터가 전부 달라붙어도 쉽게 쓰러트리지 못한 강력한 적이었다.
그런 존재가 엄청나게 강하다고 표현했다.
‘저 애를 그런 꼴로 만든 게 킹이란 말이지.’
손에 땀이 절로 맺혔다.
그런 것과 언젠가는 싸워야 한다.
문제는, 스승이 낙원의 파편에서 만났다는 의문의 존재도 있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킹보다 강할지도 모르는 그 존재까지 있다고 생각하니, 박현수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박현수는 고개를 털었다.
그건 당장 걱정할 게 아니다.
-아저씨한테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어.
“왜 없어.”
-너는 내 죽음을 견뎠지만, 킹은 죽음을 지배해. 차원이 달라.
“아니. 다르지 않아.”
지금은 박현수 자신이 더 아래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게 영원한 건 아니었다.
“놈은 내가 잡아.”
-불가능해.
“가능해. 나한텐 킹이란 자식보다 위대한 스승이 있으니까. 그분 아래서 계속해서 배워 나간다면, 킹 따위는.”
아이는 박현수가 이상한 말로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 올곧은 눈은 뭐란 말인가.
실제로 그렇게 될 거라고 믿고 있단 말인가?
“나는 사상 최강이 될 남자다.”
아이는 피부가 오싹함을 느꼈다.
“나랑 나가자.”
-하지만…….
“내가 울타리가 되어 주마.”
-나는…….
“대신 네 힘을 내게 빌려줘.”
박현수가 손을 내밀었다.
이 손을 믿어도 되는 걸까?
달콤한 말로 자신을 속이는 건 아닐까?
아이는 선뜻 손을 붙잡지 못했다.
오랜 경험이 아이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박현수는 자신의 손을 마주 잡는 작은 손을 보며 웃었다.
“이름은?”
-할리.
“좋아, 할리. 나가자.”
시체와 피로 얼룩진 세계에 한 줄기 빛이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