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65
훈수 두는 천마님 63편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있구나.]“오랜만은 무슨 오랜만이에요? 그저께 먹었으면서.”
박현수는 깔끔하게 비워진 냄비를 치우며 딴지를 걸었다.
[그저께면 오랜만이구만.]-현수! 나도 먹어 보고 싶어. 라면! 라면!
“너는 만지지도 못하잖아.”
-힝.
할리가 시무룩한 얼굴로 빨간 국물이 조금 묻은 식탁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으로 국물을 훑어봤지만, 그대로 통과할 뿐 손가락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할아버지. 무슨 맛이에요?
[무슨 맛이라. 흠…… 짭조름하고, 살짝 달면서, 감칠맛이 기가 막히지. 면발은 생각보다 통통해서 씹을 때마다 쫀득쫀득해. 방금 먹었는데도 상상했더니 한 그릇 더 먹고 싶은데?]“나중에 드세요, 나중에. 건강에 나빠요.”
[이미 죽었는데 건강에 나쁠 건 또 뭐냐?]그건 그렇다.
가끔 까먹었다.
천경은 귀신이었고,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지구에 와 있는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처음 그의 제자가 될 때가 떠올랐다.
‘잊고 있었네.’
천경이 자신을 가르치는 이유는 단 하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S급 헌터가 되면 최우선으로 방법을 찾겠다고 하며 얘기를 끝냈었다.
박현수는 설거지를 하며 스승을 보았다.
S급이 되었건만, 천경은 그날의 약속을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았다.
자신처럼 까먹은 걸까?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귀신이 치매가 왔을 리는 없을 테고, 고향을 잊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먼저 말을 꺼내야 하나?’
하지만 스승이 돌아가게 된다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니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천경은 그에게 있어 든든한 버팀목이요, 자신감을 심어 주는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아군이었다.
현재 박현수의 삶은 천경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더 이상 스승이 옆에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하하하! 간지러워요!
천경은 세상 편한 얼굴로 할리를 비행기 태워 주고 있었다.
그 위에서 까르륵거리는 할리는 평화롭지 않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평화로워 보였다.
지금이 계속 유지된다면.
‘그럴 수는 없겠지.’
박현수는 고무장갑을 벗어놓고 스승 앞에 앉았다.
“스승님.”
[갑자기 왜 그러냐?]“그때…….”
[그때?]천경이 할리를 옆에 내려놓고 되물었다.
박현수는 약속을 말하려는데 입술이 떼어지지 않았다.
“아, 아니에요. 저 수련 좀 할게요.”
결국, 말하지 못했다.
박현수는 도망치듯 검은 구멍으로 들어갔다.
천경은 검은 구멍을 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현수 멍청해?
[그래. 아주 멍청한 놈이다.]-박현수는 멍청이!
천경은 까르륵 웃는 할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왠지 졸립구나.]졸립다?
이런 상태가 된 후 단 한 번도 졸린 적이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명상은 해도 수면은 하지 않았다.
한데, 오늘은 이상하게 졸음이 몰려왔다.
당장이라도 눈을 감으면 잘 수 있을 것처럼.
-안녕히 주무세요.
꾸벅 고개를 숙이는 할리가 보였다.
천경은 대충 바닥에 누워 눈을 감았다.
* * *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는 해안가.
천경은 모래사장 위에서 철썩거리는 파도를 보았다.
“이곳은?”
뿌연 안개와 어둑한 하늘은 언제라도 비를 뿌릴 것처럼 습했다.
천경은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출렁이는 파도가 발목에 닿자 하얀 포말이 되며 으스러졌다.
한데, 신발도 옷도 젖지 않았다.
물 위로 발을 올렸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은 바다였지만, 그 위에 서는 건 천경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땅을 걷는 것처럼 바다 위를 걸었다.
어디로 향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왠지 머나먼 수평선 끝으로 가면 답이 있을 것 같았다.
‘그보다, 익숙하군.’
처음 와 보는 장소인데 왜일까.
살면서 바다를 가 본 적은 손에 꼽을 수 있기에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낯섦과 익숙함이 공존하는 곳.
천경은 앞으로 걸으면서 수면 아래를 보았다.
날씨의 영향인지, 바닷물은 탁해 보였다.
허리를 숙여 바다에 손을 담갔다.
바닷물은 미지근했다.
손을 털고 다시 걸으려 하는데.
“주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천경은 커진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얼굴에 굵고 긴 흉터가 새겨진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서일아!”
오래전 자신을 지키기 위해 희생했던 충성스러운 부하 강서일.
그가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강서일이 죽은 지 벌써 5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의 슬픔은 세월의 풍파를 못 이기고 사라졌었다.
한데 이렇게 보니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며, 사라진 줄 알았던 슬픔이 되살아났다.
“정말 서일이냐?”
“예, 주군.”
“이곳은 저승이냐?”
저자가 진짜 서일이라면 이곳은 저승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 역시 죽기 직전이었고, 서일은 이미 죽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졸음은 죽음이었나.’
하지만 서일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의 생각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었다.
“아닙니다, 주군.”
“그럼 이곳은 어디인 게냐. 너는 그날 분명히…….”
“네. 주군을 피신시키기 위해 정파 놈들의 습격을 혼자서 막아 내다가 그대로 목숨을 잃었지요.”
담담하게 말하는 강서일의 모습에, 천경은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천경이 막 곤륜파를 봉문시키고, 청해 땅을 점령했을 때였다.
그날도 이곳처럼 비는 내리지 않지만, 안개가 자욱하고 먹구름이 하늘에 잔뜩 낀 날이었다.
천경은 다음 목적지인 사천을 살피기 위해 천마신교의 악호대(惡虎隊)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악호대는 천마신교의 정찰대로, 십마(十魔) 중 창마(槍魔) 강서일이 이끄는 부대였다.
처음 사천 땅에 발을 디뎠을 때만 해도 정파 놈들에게 기습당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정파 무림의 총체인 무림맹에서 자신들을 잡기 위해, 사천에서 치밀한 준비를 끝마쳐 놓은 상태였다.
아비규환이 펼쳐진 건 순식간이었다.
수백 명의 고수가 펼친 천라지망은 아무리 천경이라도 쉽게 뚫을 수 없었다.
동귀어진의 각오로 들이닥친 무림맹의 고수들은 하나 같이 무림에서 내로라하는 자들이었다.
개중엔 정파 무림의 최고수라 익히 알려진 진천패 역시 있었다.
비록 천경과 비교하면 한 끗발 떨어진다지만 그 실력은 진짜였고, 악호대는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천경은 죽음을 각오하고 그곳에 있는 모두를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주군이 이곳에서 돌아가신다면 천마신교는 그날부로 역사에서 지워질 겁니다. 그러니 후퇴하십시오. 제가 전력으로 막겠습니다.’
천마신교가 곧 천마였다.
천마를 잃는다면 거대한 전력을 상실하는 것은 물론이고, 믿고 따르는 모두를 잃게 된다.
그런 대혼란 속에서 무림맹의 공습을 막아 낼 수는 없는 노릇.
천경은 어쩔 수 없이 강서일을 놔두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천경의 처음이자 마지막 도망이었다.
그 후 천경은 군대를 일으켜 사천과 서안, 섬서까지 밀어붙여 강서일과 악호대의 넋을 위로했다.
그때가 벌써 50년 전.
“어떻게 된 건지 말해 다오!”
강서일은 천경이 아끼는 여러 부하 중에서도 유독 아꼈던 부하였다.
그의 죽음에 얼마나 괴로워하고, 또 얼마나 분노했던가.
직접 진천패의 사지를 뽑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강서일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먹구름이 낀 하늘을 보았다.
“주군.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무슨 뜻이냐?”
“그날이 된다면, 절대 주저하지 마십시오.”
“서일아!”
“절대로.”
강서일의 신형이 서서히 흐릿해졌다.
* * *
천경의 눈이 부릅떠졌다.
벌떡 일어나 주변을 보았다.
천장 구석에 잔뜩 난 곰팡이와 어질러진 방, 이불 위에서 혼자 놀고 있는 할리가 보였다.
‘방금 그 꿈은 뭐였지?’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했다.
시간을 확인하니 한 시간 정도가 지나 있었다.
박현수는 없는 걸 보니, 아직 수련 중인 듯했다.
천경은 할리를 놔두고 검은 구멍으로 들어갔다.
“흡!”
파천마권 후반 6식을 차례대로 펼치고 있는 박현수가 보였다.
내공은 예전보다 정갈해졌으며, 필요한 부분에 내공을 흘리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두르고 있는 강기도 단단해 보였다.
정말 많이 성장했다.
천경은 뒷짐을 지고 제자의 수련을 조용히 지켜봤다.
‘현수가 천마신교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많은 후기지수의 도전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번의 패배와 승리를 겪으며, 차츰 차기 천마로서 입지를 다졌겠지.
살짝 걸리는 것은 녀석의 성격.
마도(魔道)를 걷기에는 너무 유약했다.
가끔 보여 주는 투쟁심 또한 마도보다는 정도(正道)에 가까웠다.
‘녀석은 이곳에 있는 게 옳다.’
천마의 제자지만, 박현수는 천마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함께 그곳으로 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어라? 언제부터 와 계셨어요?”
막 수련을 끝낸 박현수가 땀을 뻘뻘 흘리며 천경에게 달려왔다.
[좀 전에 왔다.]“방금 어땠어요? 숙련도는 꽤 올랐는데.”
박현수는 숙련도 그래프를 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나이트와 일전에서 실전 감각을 익혀서인지 숙련도가 제법 상승했다.
천경은 박현수가 칭찬해 달라고 꼬리 흔드는 강아지처럼 보였다.
“예?”
천경이 웃으며 칭찬하자, 박현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잘했다고.]“아, 아니. 뭐 잘못 드셨어요?”
[뭐라?]“평소엔 칭찬도 거의 안 하시는 양반이 오늘은 왜 이래요? 닭살 돋게.”
박현수는 팔뚝을 문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천경은 어이없는 얼굴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전 당연히 욕할 줄 알았죠.”
[이놈이 하도 욕을 먹더니 변태가 다 됐구나? 에라이, 자식아.]“이제야 좀 스승님 같네.”
[뭐라? 푸하하하!]“하하. 스승님 다가오진 마세요.”
박현수는 서서히 다가오는 스승을 보며 천천히 뒤로 걸었다.
[좋다. 아니, 네놈의 그 취향에 좀 맞춰 볼까?]“아니요. 굳이.”
[이리 와라!]“으악!”
박현수는 스승을 피해 저 멀리까지 도망쳤다.
천경은 뒤따라가지 않고 피식 웃으며 팔짱을 꼈다.
언제까지 이런 삶이 계속될까.
서일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거냐.’
주저하지 말라는 그 말.
대체 무엇을.
* * *
“마스터, 정말로 가시는 겁니까?”
“못 갈 것도 없죠.”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가 당황한 얼굴로, 150cm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의 뒤를 졸졸 쫓아가고 있다.
여자는 양 갈래 만두 머리에 빨간 치파오를 입고 있었는데, 높이가 굉장한 힐을 신고 있었다.
그 모습은 어린아이가 어른을 흉내 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자의 정체를 아는 이라면 절대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것이다.
“마스터 칭란! 재고해 주십시오!”
남자의 끈질긴 요청에 칭란이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가겠다는데 당신이 나를 막는 건가요?”
“그, 그것이 아니라.”
“나도 압니다. 대한민국이 어떤 상태인지. 그게 뭐 어쨌다고요? 위험이 남아 있을지 모르니까 잠잠해질 때까지 있다가 방문하자고요?”
칭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가 대체 누구던가.
세계 최대 규모의 길드인 흑룡회의 회주이자, S급 헌터의 1인이며, 중국의 최고 권력자였다.
중국에서는 그녀가 왕이었으며, 주석조차 그녀 앞에선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포대위에서 이미 모든 테러리스트를 잡아들였다고 발표했어요.”
“자, 잠재된 위험이 있을지도…….”
“갈!”
칭란의 몸에서 호랑이와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그들이 있는 곳은 베이징 국제공항.
제법 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그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칭란에게 쏠렸다.
“조용히 가려는데 괜히 시끄럽게 만들지 말아요.”
남자는 이미 시끄러워졌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칭란의 성격을 알기에 입을 다물었다.
“가죠.”
“네.”
중국에서 칭란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작지만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대한민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