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7
훈수 두는 천마님 6편
한 줌의 내공을 얻은 박현수는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경악했다.
“시, 시간이?!”
[왜 그러느냐?]뒤따라 나온 천경이 난데없는 비명에 눈썹을 찡그렸다.
“왜 지금 4시인 거죠?”
구멍에 들어간 게 오전 9시 무렵이었다.
그런데 벌써 7시간이 흘렀다.
체감 시간은 고작해야 2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이런 빌어먹을!”
박현수는 이럴 때가 아니라며 급히 샤워했다.
온몸이 엉망이라 씻지 않으면 더러운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비누칠할 시간은 없었다.
대충 물로 씻고, 머리만 샴푸질했다.
수건으로 대충 닦고 급히 옷을 입었다.
그 와중에 천경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텔레비전도 안 끄고 수련하러 들어갔던 모양이다.
심지어 입체적이기까지 하니, 무림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진보된 세상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현수는 옷을 다 입고 신발까지 신은 상태였다.
“갑시다, 스승님. 늦었어요!”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끄고 이불 위로 대충 던졌다.
천경이 아쉬워했지만,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천경도 군말 없이 박현수의 뒤에 따라붙었다.
텔레비전만큼이나, 바깥 역시 천경에겐 아직 생소하고 신기했다.
오늘은 협회란 곳을 간다고 했다.
그곳에 사람도 많고, 그때보다 다양한 것도 많이 구경할 수 있다는 박현수의 말에 천경은 약간 들뜬 상태였다.
어제, 집합 장소로 향할 때 두 사람은 택시를 탔다.
급한 요청이었기에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여유는 없었지만, 택시보다 대중교통이 더 빨랐다.
도로가 막힐 시간은 아니지만, 협회로 향하는 길은 새벽이 아닌 이상 항상 막혔다.
“오늘은 버스랑 지하철을 탑니다.”
[버스랑 지하철? 발음도 어렵구나.]“커다란 쇠 마차 기억하세요? 왜, 녹색이랑 파란색이랑 빨간색이랑 다양하게 있었잖아요.”
[아아, 기억한다. 엄청나게 큰 마차였지.]“그걸 타고 지하철로 환승을 할 건데, 지하철은 버스보다 훠어어어얼씬 크고, 긴 열차예요.”
[훨씬 크다? 얼마나?]“직접 보시면 압니다.”
문명이 발달한 현대 세상은 천경을 무지한 어린애로 만들었다.
천경은 정말 어린애처럼 눈을 반짝였다.
새로운 세상!
신문물!
한평생 타 본 것이라곤 말이나, 가마, 마차 정도가 끝이었다. 그나마도 직접 움직이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 탈 것을 이용하지 않은 지 꽤 되었다.
한데 쇠 마차들.
그러니까 ‘자동차’라 불리는 것들은 대단했다.
최고 속도는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평범하게 달리는 게 말의 최고 속력과 비슷했다.
오히려 더 빨랐다.
박현수는 최고 속도로 달리면 그보다 몇 배는 빠르다고 하였다.
천경은 두근거릴 수밖에 없었다.
“예예~ 제가 모시겠습니다.”
두 사람은 기분 좋게 길을 나섰다.
둘 모두에게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었다.
* * *
천경은 신세계를 겪은 것처럼 멍한 얼굴이었다.
버스를 탈 땐 조금 신기해하고 말았다.
한데 지하철을 타러 지하로 내려가면서부터, 그는 지금 같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스승님?”
박현수는 제 스승을 보며 피식 웃었다.
지하철은 객관적으로 봐도 대단한 과학과 건축의 위대한 합작품이었다.
자동차만 봐도 놀라는 천경에게 지하철은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을 것이다.
‘비행기나, 기차를 타시면 까무러치시겠네.’
지금은 포탈의 등장으로 예전처럼 많은 나라를 오갈 수는 없지만, 이웃 나라 일본이나 중국 등은 충분히 갈 수 있었다.
문제는, 푯값이 2년 전과 다르게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이것도 최근에나 다시 가능해진 거지, 불과 3달 전까지만 해도 그 누구도 항공을 이용할 수 없었다.
S급 헌터들의 활약이 컸다.
기차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늘보단 낫지만 2년 전, 한반도에 최초로 나타난 포탈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이 실컷 날뛰었다.
이미 타국에서 많은 선례가 있어 초기 대응이 빨라 몬스터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몬스터들의 수준이 낮은 탓도 있었다.
하지만 몇몇 도시는 커다란 피해를 보았고, 기차 레일 역시 상당 부분 파손된 지역이 많아 기차 운행이 까다로워졌다.
그만큼 한국 경제가.
아니, 세계 경제가 퇴보했다.
수도권과 몇몇 광역시에만 예산이 몰빵 되어 정상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을 뿐이었다.
“도착했습니다.”
둘은 어느새 헌터 협회 한국 지부에 도착했다.
건물은 총 12층으로 외관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말끔했다.
“깔끔해 보이고, 미래지향적이라 멋지잖아요.”
둘은 협회 안으로 들어갔다.
외관만큼이나 내부 역시 대리석 바닥으로 쫙 깔려 있어 반들반들 깨끗했다.
카운터에 있는 여직원이 박현수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전녹수 과장님과 약속이 잡혀서 왔습니다.”
“잠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박현수입니다.”
박현수가 여직원과 얘기를 하고 있을 때, 천경은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특히 투명한 벽 안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상자를 보고 있었다.
안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딱 봐도 매우 편리해 보였다.
타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박현수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박현수는 대답 대신 그에게 눈치를 주었다.
앞에 사람이 있으니 대답할 수 없는 노릇.
천경은 쩝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났다.
“10층으로 올라가셔서 좌측 두 번째 복도로 쭉 가시면 됩니다.”
“네.”
카운터를 떠나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 곳에 온 박현수는 천경을 다그쳤다.
“스승님. 사람이 앞에 있는데 말 걸면 안 된다니까요? 제가 실수로라도 대답해 버리면 제자 꼴이 아주 우스워진다고요.”
“후우. 그래요. 이해합니다. 스승님에게 현대 세상은 신기한 것투성이니. 그냥 바깥에선 조금만 조심해 주세요. 어지간하면 원하는 거 다 들어드릴 테니까.”
그게 박현수가 제자로서 해 줄 수 있는 도리였다.
그 대답이 썩 싫진 않았는지 천경이 활짝 웃었다.
“네네. 정말입니다.”
박현수는 진심으로 좋아하는 스승을 보며 피식 웃었다.
둘은 위아래로 움직이는 상자,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띵- 소리와 함께 양옆으로 문이 열렸다.
천경은 쏜살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 역시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바깥이 모두 보였다.
박현수가 10층을 눌렀고, 엘리베이터는 빠른 속도로 10층에 도달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높구나.]협회 건물은 중심부가 천장까지 뻥 뚫려 있었고, 엘리베이터를 기점으로 좌우로 길이 트인 형태였다.
박현수와 천경은 좌측 길로 이동했다.
두 번째 복도에 들어서 쭉 걸어가자, 끝에 ‘등급 조정 부서’라는 팻말이 보였다.
“계십니까?”
“아, 박현수 씨?”
안으로 조심히 들어가자, 중년인 하나가 웃으며 박현수를 반겨 주었다.
“아, 넵. 박현수입니다.”
“전녹수입니다. 일단 앉으시죠.”
등급 조정 부서라지만, 이곳에 상주하는 직원은 전녹수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하, 썰렁하죠? 직원이 두 명 더 있는데, 지금 지하에서 등급 측정이 진행 중이라 그곳에 가 있습니다.”
“아, 지하에서 하나 보군요.”
“여러 가지 테스트가 필요하니까요. 학성이한테 현수 씨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제 각성을 했고, B급 헌터 최중성을 일격에 기절시켰다고요.”
보통은 못 믿을 이야기지만, 김학성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진실일 것이다.
“방심했다지만 B급 헌터를 기절시키는 파괴력만 따져도 최소 B는 확정일 테고, 그 이상을 노려볼 수 있을 테니…… 이러지 마시고 바로 측정실로 가시죠. B급 헌터 둘이 보증했으니, 서류 작업은 필요 없을 것 같으니까.”
“둘이요?”
“아, 이아린 양도 따로 연락을 해 왔습니다. 그녀도 현장에서 봤으니까요.”
의외였다.
각성했을 때도, 최중성을 쓰러트렸을 때도.
이아린은 그에게 한 마디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박현수를 위해 보증을 해 주었단다.
“가실까요?”
전녹수가 서류를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떨떨하던 박현수도 따라 일어났다.
“측정실은 지하 5층에 통째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저희의 자부심이니 보시면 아주 놀라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박현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오늘 이곳에서 내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천경이 실실 웃는 제자에게 물었다.
제자는 짧게 답했다.
“예.”
“네?”
“아, 아니에요.”
전녹수의 반응에 박현수가 어색하게 웃었다.
* * *
헌터 협회 한국 지부 지하 5층엔 200평 규모의 등급 측정실이 있었다.
각성자는 단순히 전투에만 특화되어 있지 않았다.
누군가는 보조에 특화되었고, 누군가는 지키는 데, 누군가는 정보 수집 등으로 종류가 다양했다.
그 안에서도 세부적으로 분야가 나뉘었다.
그렇다 보니 넓은 공간엔 체계적으로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들이 다양했다.
전녹수는 박현수를 가장 넓은 공간으로 안내했다.
“으아아아압!”
문을 열기가 무섭게 누군가의 커다란 기합 소리가 들렸다.
“아, 아직 측정이 끝나지 않았군요.”
“측정하고 있는 각성자가 있다고 했죠?”
박현수는 현재 펀치 머신 같은 기계를 열심히 두드리는 여자를 보았다.
뒤로 질끈 묶은 말총머리 여자였는데, 팔다리가 가늘어 힘을 쓸 것 같진 않았다.
한데 들리는 소리는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았다.
쾅!
주먹으로 치는 건지, 포탄이 터지는 건지 모르겠다.
“한울 양입니다. 이틀 전에 각성한 분이신데, 일정이 생겨 지금 테스트 중이에요.”
펀치 기계 위로 점수가 떠 올랐다.
[742점!!]높은 점순지는 모르겠다.
박현수가 천경을 보자, 그는 신기한 얼굴로 펀치 기계를 볼 뿐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전녹수가 말했다.
“오! 공격력은 상당히 높게 나왔네요. 저 정도면 한국에 B급 헌터가 하나 더 추가되겠는데요?”
“높은 점수인가요?”
“보통 전투 계열 C급 헌터들이 600점 이하에요. 그 이상부턴 당연하겠지만 B급 헌터죠. 900점 이상이면 A급, 1,500점부터는 S급인데 사실 1,500점은 거의 볼 일이 없죠. 1,400점만 나와도 A급 헌터 중에서 순수 공격력만 따지면 최상급이거든요. 저것만으로 B급이 책정되진 않지만, 가능성은 매우 커지죠.”
“아하.”
한울이란 이름의 여자를 다시 보았다.
그녀는 나름 만족한 얼굴이었다.
그때, 대기하고 있던 직원 하나가 다가왔다.
“과장님 오셨어요? 뒤에 분은.”
“인사해요. 박현수 씨.”
“아, 그! 반갑습니다. 김장훈입니다.”
김장훈은 박현수를 아는 눈치였다.
박현수가 손을 맞잡았다.
“박현수입니다. 반갑습니다.”
“크…….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예?”
“아아. 말씀 안 드렸군요. 지금 현수 씨는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 꽤 스타십니다.”
“어, 어째서요?”
“최중성 씨를 참교육하셨잖아요. 그분은 협회 사람들한테도 인식이 매우 나쁘거든요. 당한 사람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쾌재를 불렀더라죠.”
서포터들한테만 그런 줄 알았는데, 협회 사람들에게도 매우 못되게 군 모양이었다.
아니, 그냥 비각성자라면 일단 괴롭히고 봤을 수도 있다.
“저도 당한 게 많아서 갚아 준 것뿐입니다.”
“하하하.”
“아, 나오시네요. 들어갈 준비 하시죠.”
한울이 측정실에서 나왔다.
그녀는 수건으로 땀을 닦다가 박현수와 눈을 마주쳤다.
박현수가 얼떨결에 인사하자, 멀뚱히 보던 한울도 마주 인사했다.
“옷은 이걸로 갈아입으시고.”
김장훈이 딱 붙는 전신 타이즈를 주었다.
한울이 입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였다.
“바로 측정실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박현수는 탈의실로 들어갔다.
두 사람에게 다가온 한울이 박현수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분도 각성자이신가요?”
“그렇습니다. 박현수 씨라고 해요.”
“아하. 다음에 볼 땐 동료가 되어 있겠네요.”
“그렇겠죠? 하하.”
한울이 웃으며 탈의실로 들어갔다.
* * *
박현수는 민망한 얼굴로 펀치 기계 앞에 섰다.
[하하하하하! 정말 가관이로구만! 은밀함을 가장 중요하게 삼던 암살자들도 그 정도로 입진 않았거늘. 푸하하하!]“웃지마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바로 들어가고 싶으니까.”
박현수는 양손을 조신하게 모아 중요 부위를 가리고 있었다.
나름대로 자신 있는 그였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다니고 싶지 않았다.
-쳐 주세요.
바깥에선 소리가 들리지 않아 실내 음성으로 전녹수가 신호를 보냈다.
[별것 아니다. 차분하게, 주먹을 내뻗어라.]“알겠습니다.”
[정권 지르기다. 한 번 해 봤으니, 두 번은 알려 주지 않아도 되겠지?]“물론이죠.”
기록된 정권 지르기의 완벽한 자세가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박현수는 왼발을 앞으로, 오른발을 뒤로, 허리를 오른쪽으로 살짝 비틀고, 오른 주먹을 올곧게 쥔 채 옆구리에 찰싹 붙였다.
내공을 일으켰다.
티끌 수준이었지만, 충분히 주먹에 맴돌았다.
허리를 회전시켰다.
주먹을 일직선으로 내뻗었다.
퉁-!
크지 않은 소리였다.
점수는 그렇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