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76
훈수 두는 천마님 74편
티베트 고원의 녹색 초목 위로 헬기 한 대가 착륙하고 있었다.
무성한 잡초가 헬기 바람에 사방으로 흩날렸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헬기가 완전히 착륙했고, 프로펠러가 서서히 회전을 멈추었다.
헬기에서 내린 천경의 첫 감상평이었다.
박현수 역시 스승과 같은 생각이었다.
반지하와 연결된 의문의 들판과 이곳은 꽤 닮아 있었다.
물론, 이곳처럼 광활한 들판은 어딜 가나 비슷하긴 할 것이다.
“그런데 포탈은 어디 있어요?”
박현수는 뒤늦게 내린 칭란에게 질문했다.
그녀는 아직 멎지 않은 바람에 머리카락을 붙잡고 조심히 내려오고 있었다.
“열심히 만진 머리가 완전 엉망이 됐네.”
“그건 탈 때부터 이미 엉망이 됐었잖아요.”
“안에서 다시 만졌잖니.”
“어차피 엉망이 될 텐데.”
“넌 어제 밥 먹었다고 오늘은 안 먹어?”
이건 또 무슨 비유인가.
박현수는 억지스러운 칭란의 비유에 태클을 걸고 싶었지만, 괜히 말이 길어질 것 같아 참았다.
“아무튼, 포탈은요?”
“여기서 5km 떨어진 곳에 있어.”
“예? 그럼 왜 여기에서 내렸어요?”
“A급 이상이 아니면 못 견뎌.”
칭란은 상세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왠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포탈의 압력 같은 건가요?”
“그런 것 같아. 가까워질수록 숨을 못 쉬더군. 딱 이 정도가 가장 영향을 적게 받는 거리야.”
낙원의 파편은 불길한 모양을 했지만, 근처에 있다고 안 좋은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새로운 타입이라 이건가?
“그럼 저랑 회주님만 가나요?”
“굳이 다 끌고 갈 이유는 없으니까.”
“그럼 빨리 가시죠.”
굳이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몸에 걸치고 있는 것들이 거치적거려서 얼른 사용해 버리고 싶었다.
‘불편해.’
현재 박현수는 흑룡회 측에서 지급한 B급 이상의 아이템 5종을 착용하고 있었다.
2종은 방어형, 2종은 공격형, 마지막 하나는 회복형으로, 그중 네 개가 A급 이상의 아이템이었다.
특히 회복형 아이템 클리어(Clear)는 A+급으로, 세계에서도 몇 존재하지 않는 등급이었다.
‘나한테 이런 걸 다 줘도 되는 건가?’
칭란은 공략만 할 수 있다면 모두 망가져도 괜찮다고 했지만, 받는 입장에선 약간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왜 멍청한 표정으로 있어? 빨리 가자며.”
어느새 이동할 준비를 마친 칭란이 박현수를 재촉했다.
“아, 네.”
그는 따로 준비할 게 없었기에 바로 포탈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 * *
[확실히, 가까워질수록 사악한 힘이 가득한 게 느껴진다.]-현수……. 여기 무서워.
할리가 반지에서 겁먹은 소리를 냈다.
박현수는 반지를 문지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녹색으로 물들어 있던 땅이 까맣게 죽었다.
듬성듬성 솟아 있던 나무들도 비쩍 말라, 주변엔 부러진 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확실히 이전보다 심해졌어.”
기존의 공략 일정이 미뤄진 결과였다.
다행히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이라 아직 피해는 없었다.
“저기 보인다.”
칭란의 작은 손가락이 먼 곳을 가리켰다.
아직 수백 미터는 더 가야 하지만, 박현수의 눈엔 코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작네요.”
여러 번 얘길 들었지만, 막상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았다.
진짜 성인 한 명이 딱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다.
포탈을 본 천경은 가늘게 뜬 눈으로 수염을 쓸며 말했다.
박현수가 힐긋 스승을 보았다.
낙원의 파편을 직접 봤을 때, 스승은 ‘죽음이 도사린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불길함을 느꼈었다.
이곳이 낙원의 파편만큼 위험하진 않다는 뜻일까?
그런 박현수의 생각을 부정하듯 스승의 말이 이어졌다.
그 말에 박현수의 눈이 살짝 커졌다.
스승은 지금까지 상대를 꽤 짜게 평가했다.
후하게 말해도 ‘제법 강하다’ 정도였다.
한데 이번에는 ‘아주 강하다’란 표현을 썼다.
-응. 조심해야 해, 현수.
주변 환경에 겁을 먹었던 할리도 이번만큼은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죽음에서 태어난 아이는 누구보다 죽음에 민감했다.
-정신 차려야 할 거야.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죽을 거다,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어느새 그들은 포탈 앞에까지 도착했다.
박현수는 코앞에서 검게 타오르는 포탈을 보며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이것은 불안함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두려움?
아니, 그런 류의 감정은 아닌 것 같았다.
“너, 얼굴이 왜 그래?”
포탈을 보고 있던 칭란이 그의 표정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왜 웃고 있어?”
“네?”
박현수는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웃고 있다니?
갑자기 천경이 크게 웃었다.
그리곤 제자를 흥미롭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이곳에서 죽을 수도 있는데 설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박현수는 부정하려고 했지만, 입술이 벌어지지 않았다.
‘무인.’
천경이 말하길, 무인이란 무를 갈고 닦는 자들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투쟁을 좋아하고, 서로의 힘을 확인하고 싶어 하며, 고수와의 싸움에 설레한다고 표현했다.
박현수는 자신의 뺨을 문질렀다.
정말 웃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불안함도 두려움도 아니야.’
포탈 너머에 있을 엄청난 강자와의 싸움.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투쟁심이란 것이 들끓고 있다.
박현수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그려졌다.
“희한한 놈.”
칭란이 별꼴 다 보겠다며 피식 웃었다.
그녀는 옆구리에 손을 올리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다녀와.”
“다녀올게요.”
“꼭 살아와라.”
“걱정하지 마세요.”
박현수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검은 기운이 그를 옭아맸다.
칭란은 저런 식으로 사라져간 부하들을 떠올렸다.
‘진짜 꼭 살아서 돌아와라. 그땐 내 모든 걸 줄 테니까.’
박현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칭란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이 상태로 박현수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 * *
향긋한 소나무 냄새가 풍겨 왔다.
박현수는 우거진 수림 안에 있었다.
“콘셉트는 숲이네.”
포탈은 고유의 콘셉트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은, 숲을 배경으로 하는 포탈인 모양이었다.
천경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박현수도 진입하자마자 느꼈다.
거대한 무언가가 저곳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현수.
“부탁해.”
할리가 건틀렛의 형태로 변했다.
그리고 흑룡회에서 받은 방어형 B급 아이템 ‘인비져블 실드’를 활성화했다.
투명한 큐빅이 박힌 목걸이가 반짝이더니, 투명한 막이 몸 주변을 덮었다.
“흠. 이건 나한테도 좀 거치적거리겠는데?”
투명한 막을 손가락으로 두드려보았다.
퉁퉁-
딱 플라스틱을 두드리면 나는 소리였다.
이런 게 제대로 된 방어가 되긴 할까?
아닌 말로, 주먹으로 진짜 세게 치면 그냥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박현수가 실험해볼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서억-
박현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른쪽 위를 쳐다봤다.
투명한 막이 대각선으로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에?”
[또 온다!]스승의 다급한 음성에 박현수는 호신강기를 있는 힘껏 끌어올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무형의 살기가 느껴졌다.
박현수는 강기로도 쉽게 막지 못한다고 판단, 몸을 아래로 휙 숙였다.
투명한 막의 절반이 잘렸다.
박현수는 기울어져 떨어지는 막을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농담 아닌데요?”
[가까이 붙어야 한다. 이곳에선 일방적으로 공격당할 뿐이야.] [훈수가 발동합니다!]“라져.”
박현수는 곧장 앞으로 튀어 나갔다.
무형의 칼날 몇 개가 그의 주변을 스쳐 지나갔다.
주변 나무와 풀이 소리 없이 잘려나갔다.
‘어디지?’
천마신회류를 사용해 기를 주변으로 넓게 퍼트렸다.
포탈은 1인용인 주제에, 공간은 생각보다 넓었다.
“칫.”
높이 뛰어올라 투명한 칼날을 피했다.
아깐 정면에서 날렸는데, 이번엔 뒤에서 노렸다.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은 거리라는 걸 생각하면 약간 소름이 돋았다.
“한 마리가 아닌 거 아니야?”
애초에 이곳에 몬스터가 몇이나 있는지 알지 못했다.
둘 이상이라면 뒤에서 날아온 공격도 이해되지만, 한 마리뿐이라면 속도전을 포기해야 했다.
박현수는 양옆에서 날아오는 투명 칼날을 피하고, 일단 앞으로 전력 질주했다.
칼날들이 그의 주변을 스쳐 지나갔다.
공격을 피해 숲을 벗어나자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숲의 나무들이 잘려나가며, 쇄도해 오는 투명 칼날들이 느껴졌다.
발을 뒤로 끌며 양팔로 태극을 그렸다.
[태극마]천마신회류로 운용되는 내공들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날아오는 칼날들의 방향을 틀었다.
땅이 팔(八)자로 긁혔다.
“나와.”
대답 같은 건 들려오지 않았다.
박현수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숲 어딘가에 있을 적에게 경고했다.
“안 나오면 숲을 날려 버린다.”
그리 말하며 왼 팔목에 두른 팔찌를 발동시켰다.
A-급의 공격형 아이템 ‘흑룡포’였다.
세 개의 검고, 길쭉한 소형 미사일이 팔 전체를 감쌌다.
박현수는 그대로 숲을 향해 미사일을 겨누었다.
“일단 한 발.”
주먹을 쥐자, 가운데 있던 미사일이 바람 소리를 내며 조용히 쏘아졌다.
미사일이 숲속으로 사라졌고, 3초 정도가 흐르자.
꽈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녹색 초목을 휘감다 못해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천경은 아이템의 힘에 살짝 감탄했다.
할리도 조금 놀랐는지, 밖으로 나와 입을 크게 벌리며 좋아했다.
“장난 아닌데?”
박현수는 꽤 깊어 보이는 크레이터를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크레이터에선 빨간 불씨와 함께 검은 연기가 솟구쳐 나오고 있었다.
폭발 범위에 들어가지 않은 숲에서 투명 칼날이 튀어나왔다.
“안 나온다 이거지?”
칼날을 가볍게 피하고 다시 미사일을 조준했다.
왼쪽 미사일에 가운데로 옮겨지며 장전되는 소리가 들렸다.
“한 발 더.”
미사일이 다시 쏘아졌다.
이번에도 소리 없이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꽈아앙!!
이전보다 더 큰 폭발이 발생했다.
“워후.”
박현수는 몰랐지만, 흑룡포는 사용할수록 위력이 두 배씩 증가했다.
마지막 미사일이 가운데로 옮겨져 장전됐다.
“마지막 기회다. 나와.”
칼날 세 개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싫으면 말든가.”
마지막 미사일은 조용하지 않았다.
쿠와아아아!!
괴수가 울음을 토하듯 화려한 불꽃과 함께 굉음이 터져 나왔다.
“안대!!”
그때, 작은 솜뭉치 같은 게 숲에서 튀어나왔다.
“솜뭉치가 아니야.”
[여우……?]작은 솜뭉치처럼 생긴, 인간의 모습을 한 꼬리 여섯 개의 여우 소녀가 흑룡포를 향해 앙증맞은 두 손을 펼쳤다.
“내 숲 부수지 마!”
여우 소녀의 손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지막 흑룡포의 위력은 숲의 절반을 날려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
저렇게 작은 녀석이라면 폭발에 휘말리는 것만으로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
박현수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여우 소녀가 바닥에 착지했다.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폭발이 일어나기 전, 마지막 흑룡포가 사라졌다.
그녀는 손을 탁탁 털며 화난 얼굴로 박현수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조차 앙증맞았지만, 박현수는 단순히 귀엽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저거 뭐예요?”
[……아무래도 영물(靈物) 같구나.]S등급 포탈의 주인은 흉악한 괴물이 아니었다.
“왜 내 숲을 엉망으로 만드러!”
아주 작은 여우 소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