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77
훈수 두는 천마님 75편
아무리 작고 앙증맞게 생긴 여우 소녀라지만, 박현수의 눈엔 도저히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이건 너무 강한데?”
서 있을 뿐인데도 상상을 초월하는 기운을 줄기차게 뿜어내고 있다.
심지어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이니,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설명해 봐야 입만 아팠다.
박현수는 조용히 자세를 잡았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죽을 수도 있었다.
여우 소녀의 동공이 세로로 찢어졌다.
“내 숲…… 그만 파개해!”
아직 앳된 목소리였지만, 기를 담고 뿜어져 나오는 그것은 가히 음공이라 표현하는 것이 옳았다.
박현수는 전면에 기막을 펼쳤지만, 소리는 진동.
그의 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고막이 터졌어.’
다행히 반고리관은 건드리지 않아 균형은 잃지 않았다.
여우 소녀가 열 개의 손톱을 세우고 박현수를 향해 돌진했다.
그 속도가 무지막지해 ‘가속’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코끝을 스쳤다.
피 두 방울이 눈 위로 떠 올랐다.
박현수는 왠지 시간이 멈춘 듯한 감각을 느끼며 주먹을 뻗었다.
그러나 여우 소녀는 몸을 빙그르르 돌리며, 손톱으로 박현수의 오른팔을 휘저었다.
-끄윽!
튀어 오르는 불똥과 함께 할리의 비명이 새어 나왔다.
천마비행으로 허공을 밟아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소녀의 눈이 진짜 짐승처럼 어둠 속에서 파란 안광을 흘렸다.
작은 발이 허공을 밟으며 박현수가 몸을 튼 방향으로 같이 몸을 틀었다.
운산천으로 허공을 격했다.
공기가 찌르르 울리며,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소녀는 하는 수 없이 거리를 벌렸다.
바닥을 뒹군 박현수는 잽싸게 일어나 다시 자세를 잡았다.
스승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대응했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숲을 파개하능 거는 용서모태.”
소녀의 발음은 어린 외모처럼 아직 어눌했다.
그래서 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아직 어린 개체인 것 같은데, 짧은 순간 자신을 이 정도로 압도한단 말인가?
자존심이 상한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강한 상대에 절망해야 하나.
소녀가 다시 손톱을 세워 돌진할 준비를 했다.
소녀가 땅을 박찼다.
“어디……!”
박현수는 시야에서 사라진 여우 소녀를 찾기 위해 눈알을 빠르게 굴렸다.
[파천마권 후반 3식] [루천]주변에 검은색 강기로 이뤄진 공들이 떠올랐다.
휙휙- 바람 소리가 주변을 할퀴었다.
의념을 일깨워 천마신회류로 루천을 조종했다.
강기 공들은 비바람이 휘몰아치듯 박현수의 주변을 휘몰아쳤다.
아직 의념의 수준이 낮아 여러 방향을 타격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적의 노선을 방해하기에는 충분했다.
콰가가강!
루천이 바닥을 때리며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뇌광천은 루천과 이어지는 무공.
루천의 궤적 속에서 검은 번개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의념과 천마신회류를 통한 강화 형태였다.
“내 숲을 빼서 노코! 이젠 나도 주기려 해?!”
“뺏어?”
“주거!”
박현수가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수십 개의 투명 칼날이 루천과 뇌광천을 찢어발기며 박현수를 향해 쇄도했다.
다급히 태극마를 사용해 칼날들을 흘려보냈지만, 위력이 강해 모두 흘려보내지는 못했다.
칼날들이 박현수의 전신을 헤집었다.
“크악!”
박현수는 전신이 난도질 되는 아찔한 상황 속에서 왼손을 들어 올렸다.
검지에 끼워져 있는 은반지가 은은한 빛을 뿜었다.
몸에서 회색빛 탁기가 빠져나와 반지에 스며들었다.
칼날에 베여 불타는 것 같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사라진 건 통증뿐만이 아니었다.
약간의 피로마저 완전히 사라져, 컨디션이 최고조로 상승했다.
“신기한데?”
지금 할 말은 아니었지만, 거짓말 같은 효과에 저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모든 상처가 사라지자 소녀가 살짝 당황했다.
“모, 모야?”
“뭐기는!”
박현수는 소녀를 향해 은반지를 겨누었다.
소녀의 머리카락과 여섯 개의 꼬리가 부풀어 올랐다.
박현수가 받았던 데미지가 은반지를 통해 고스란히 쏘아졌다.
그녀가 준 데미지였기에, 그 힘은 당연히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소녀가 반사된 데미지를 피하는 순간, 박현수는 방향을 예측해 빠르게 몸을 날렸다.
가속 상태의 박현수는 그녀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여우 소녀의 눈에 당황이 어렸다.
붉은색 하늘이 추락하고 있었다.
아니, 저것은 하늘이 아니다.
붉은 고철에 덮인 손바닥이었다.
정신을 차린 소녀가 이를 악물고 일장을 떨쳤다.
크고 작은 손바닥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따앙-
쇳덩이가 충돌하는 소리였다.
박현수는 천마신회류로 마나를 끌어모았다.
모든 감각이 예민해지며, 온몸에 힘이 넘쳐 올랐다.
천마신공의 내공이 마나로 강화된 육체를 한 번 더 강화했다.
할리의 형태가 더욱 난폭하게 바뀌었다.
박현수는 그대로 발을 땅에 박아, 밀려나는 속도에 제동을 걸었다.
신발이 모조리 찢겨 나갔다.
몸이 멈추자마자 다시 앞으로 튀어 나갔다.
오른손으로 땅을 짚고 왼쪽으로 강제로 몸을 틀었다.
스악-!
섬뜩한 소리가 코앞을 지나쳤다.
박현수는 바닥을 몇 차례 구른 뒤 잽싸게 일어났다.
두 손바닥이 격돌한 지점에서 피어오른 먼지 속으로 여인의 실루엣이 일렁였다.
아무리 그림자라도 소녀와 여인은 구분할 수 있었다.
실루엣은 적어도 성인은 되어 보였다.
‘여우 꼬마는?’
기척은 하나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박현수가 주변을 경계하고 있을 때였다.
여인의 위로 여섯 개의 꼬리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하나 더.
꼬리가 추가되었다.
“이 모습은 오래 유지하지 못하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홀릴 것 같은 매혹적인 소프라노였다.
[설마.]천경이 믿지 못하겠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연기가 걷히며 일곱 개의 꼬리를 단 여인이 모델처럼 걸어 나왔다.
머리에는 꼬리와 같은 하얀색 여우 귀 두 개가 달려 있었다.
“순식간에 죽여 주마.”
“……젠장, 변신도 할 줄 알아?”
열 개의 손톱이 커다란 칼날을 쏘아냈다.
* * *
박현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현재 숲의 커다란 나무 뒤에 숨어 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안 베인 곳이 없었고, 성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과다출혈로 죽으면 어쩌나 걱정될 정도였다.
“어쩌죠?”
박현수는 여우를 보고 있는 스승에게 물었다.
여인이 된 여우는 느긋한 걸음으로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중이었다.
“예?”
경지라는 건, 넘고 싶다고 해서 쉽게 넘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스승이 틀린 말은 한 건 아니었다.
‘젠장.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객관적으로 봐도 지금의 자신은 강해졌다.
까놓고 학센이 미친 짓을 하러 또 온다면 제대로 혼내 줄 자신도 있었다.
물론 해봐야 알겠지만.
아무튼, 그 정도로 강해졌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고, 꼬리를 늘려 성인의 모습이 된 여우는 박현수보다 강했다.
“미치겠네.”
일단, 이런 꼴로는 제대로 된 싸움을 못 한다.
몸부터 회복시켜야 했다.
‘데미지 리플렉션’을 또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30분에 1회라는 조건이 붙어 있어 당장 쓸 수는 없었다.
재사용까지 앞으로 10분 정도.
하는 수없이, 세계에 몇 없는 A+급 치유 아이템을 사용했다.
순식간에 모든 상처가 아물고, 활력이 되돌아왔다.
효과 자체는 ‘데미지 리플렉션’이 더 좋지만, ‘클리어’는 그보다 재사용 시간이 짧았다.
무려 10분.
10분에 한 번씩 모든 상처가 회복된다.
“이거 완전 셀프 자학 아니야?”
지금 10분마다 이 짓을 하고 있는데, 10분이면 전신이 걸레짝이 되기엔 충분했다.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죽는다. 한계를 뛰어넘어라.]“어디서 들어본 대사 같긴 한데.”
숨어 있는 건 의미 없었다.
애초에 여우는 박현수가 숨어 있는 곳도 알고, 원한다면 아무리 거목이어도 종잇장처럼 베어 숨는 곳을 없앨 수도 있었다.
지금 박현수를 데리고 노는 것과 다름없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박현수의 두 눈이 푸르게 빛나며, 일대의 공간이 입체 지도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힘이 부족하다면 최대한 지형지물을 이용해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회를 봐서 치명타를 입힐 수 있으면 충분했다.
박현수는 호흡을 가다듬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죽으러 나왔어?”
여우는 5m 정도 떨어진 곳에 요염한 자세로 서 있었다.
박현수는 그녀를 보다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미쳤냐?”
[파천마권 전반 5식] [지파]주먹으로 땅을 내려쳤다.
천마신회류로 모은 마나가 주먹을 타고 땅속을 헤집었다.
“허튼짓……!”
순식간에 균열이 생긴 지반은 그대로 무너졌다.
“또 내 숲을!”
가뜩이나 높은 톤인데 소리까지 치니,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박현수는 기막이 아닌, 호신강기와 마나로 몸을 감쌌다. 그리고 위에 인비져블 실드를 둘렀다.
소리가 차단되었다.
그대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커다란 바위 뒤로 숨었다.
현재 박현수는 숲을 완전히 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강기 공들이 숲 이곳저곳으로 퍼졌다.
의념이 복잡한 사고를 가속화 했다.
“이놈이!!”
소리 없는 칼날이 나무들과 풀들을 모조리 베었다.
‘숲 망가트리지 말라면서, 지가 더 망가트리고 있네.’
자기 숲이니까 자기는 망가트려도 된다 이건가?
물론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긴 하다.
박현수는 바위마저 가르는 칼날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좋은 생각?”
[들어봐라.]천경이 입꼬리를 올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 * *
[훈수 듣기가 발동합니다!]스승의 설명이 모두 끝나자 기분 좋은 알림이 들려왔다.
그 방법이라면, 일격을 가할 가능성이 매우 커질 것이다.
“심플 이즈 베스트라니까.”
박현수는 의념을 이용해, 퍼트려 놓았던 루천을 최대한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검은 강기 공들이 여우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헛짓이야.”
여우가 쌍심지를 켰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현수는 조용히 모든 루천을 여우에게로 움직였다.
여우는 날아오는 루천들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이깟 거, 헛짓이라고!”
여우가 그곳에 신경이 팔리는 동안 최대한 기척을 숨기고, 멀쩡한 나무를 타고 위로 올랐다.
여우는 루천을 어렵지 않게 막아 내고 있었다.
박현수는 그 광경을 보며 혀를 찼지만, 애초에 루천은 눈속임용.
“어디 갔어!”
루천을 어렵지 않게 막은 여우가 박현수를 찾기 시작했다.
박현수는 하나 남은 루천으로 그녀 뒤에 있는 나무를 쓰러트렸다.
“흥!”
당연히 나무는 그녀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애초에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았다.
박현수가 노린 건 처음부터 그녀의 시야였다.
‘여우의 눈을 속이고, 또 속여, 단 한 번 천령인을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떻겠느냐?’
박현수는 스승이 말했던 작전을 떠올렸다.
정면 승부는 어렵다.
그러니 최대한 시야를 돌리고 돌려서, 딱 한 번이라도 최고의 기회를 만든다.
그리고 여우가 자신을 완전히 놓쳤을 때.
“헉!”
여우가 나무를 박살 내는 순간, 그 뒤에서 박현수가 튀어나왔다.
[천마신공 의념기] [오의]“한 방을 노린다.”
[천령인]의념으로 강화된 박현수의 최강 무공이 여우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격차가 크다지만, 그 힘은 여우에게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천령인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여우가 공포에 젖은 눈으로 비명을 질렀다.
“두 번은 싫어!!”
그러자 하얀 거품과 함께 꼬리 하나가 더 늘어났다.
[현수야!]여우의 머리카락이 길어지며, 은빛으로 반짝거렸다.
거대한 힘이 그녀를 휘감았다.
그 힘은 천령인마저 뭉개 버렸다.
박현수는 이를 악물고 왼 주먹을 내질렀다.
내 힘으로 부족하다면.
‘스승님의 것을 빌리겠다.’
[‘훈수자 천경’의 능력 천령인을 흉내 냅니다.]박현수 자신의 천령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빛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천지가 하나가 되듯 음양의 균형이 붕괴했다.
빛의 폭풍 속에서 가느다란 손이 튀어나와 박현수의 왼 손목을 붙잡았다.
“두 번은…… 싫어!”
빛이 폭발했다.
세상의 모든 색이 탈색되는 것 같았다.
엄청난 힘이 몸을 밀어냈다.
저항할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내공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위기 속에서 집중력은 극대화된다고 하던가.
시간이 느려진 듯한 세상 속에서, 박현수는 아래를 누르듯 손바닥을 휘저었다.
그리곤 수백 미터를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쿨럭!”
사고가 잠깐 정지되었다.
곧이어, 전신에서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끔찍한 고통이 발생했다.
모든 뼈가 박살 나고, 오장육부가 찢긴 것만 같았다.
그쯤 되니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혀, 현수!
할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불렀다.
[박현수!]멀리서 천경이 빠르게 다가왔다.
“스…… 스승……님.”
박현수는 스승을 보며 일어서려고 하다가 그대로 의식을 잃고 다시 쓰러졌다.
천경은 제자의 상태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박현수의 몰골은 겉으로 보기에도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대한 두 힘이 지척에서 충돌했다.
심지어 박현수가 두 번째로 쓴 천령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것이었다.
박현수는 빛이 폭발하는 순간, 타천으로 최대한 힘을 밀어냈다.
힘이 부족해 빛의 격류에 휘말려 엉망진창이 됐지만, 그렇게라도 안 했다면 즉사했을 것이다.
천경은 의식을 잃은 제자를 보다가, 큰 사달이 난 숲을 보았다.
엄청난 크기의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여우는 살아 있을까?
‘마지막 순간에 늘어난 꼬리.’
그땐 천경도 당황을 금치 못했다.
8개의 꼬리가 되자, 여인은 천경 입장에서도 놀랄 수밖에 없는 힘을 발휘했다.
‘화경 수준의 힘을 발휘할 줄은 몰랐군.’
꼬리가 7개일 때만 해도 화경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도 여우는 구미호였을 것이다.
물론, 이곳에도 구미호란 게 있는지 의문이지만, 꼬리 개수나 머리에 귀, 그리고 박현수는 못 느낀 모양이지만, 여우는 시도 때도 없이 색기를 발산했다.
그것은 구미호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능력 ‘유혹’이었다.
천경은 거대한 구덩이로 걸어갔다.
아마도 죽지 않았을 것이리라.
천경의 예상대로 여우는 죽지 않았다.
다만.
여우는 다시 꼬맹이로 돌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