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86
훈수 두는 천마님 84편
“염원? 그 말은 2년 전, 테스크 포스 팀이 봤던 광경은 전부…….”
“그렇다. 예언이 아니었다.”
“너 이 새끼……!”
마레의 몸을 밀쳐 넘어트리고 그 위에 올라탔다.
“모두가 그 예언 하나만 믿고 있어! 근데 그게 다 거짓말이라고? 나랑 장난하냐!”
“……그래서 말했잖아. 염원이라고.”
“그걸 말이라고!”
“실현시키면 된다.”
마레에겐 표정이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엔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모두의 염원을 실현시키면 되는 거다.”
“말이면 다인 줄……!”
“나이트와 비숍을 네 손으로 죽였다.”
마레를 한 대 치려던 박현수는 그의 마지막 말에 내뻗던 주먹을 멈추었다.
“아리스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나이트의 군대는 막강했고, 비숍의 언데드 군단은 압도적인 물량 공세를 펼쳤다. 다가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지.”
나이트와 비숍보다 강한 능력자들도 존재했지만, 만전의 적들은 쉽게 죽어 주지 않았다.
“한데, 네가 둘을 죽였다. 수많은 아리스인을 고통스럽게 만든 두 괴물을 직접 치워 버렸어. 심지어 네 명의 폰 중 하나도 생포했지.”
“…….”
“염원이 실현되고 있다. 모두 네가 해낸 것이다.”
“그건…….”
“지구인에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킹이 지구를 노리는 이상, 발버둥이라도 쳐야 하지 않겠나?”
지구는 아리스의 유지를 이어받았다.
그렇기에, 마레에게 지구는 아리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아리스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커다란 희망이 이곳에 있었다.
박현수는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벤 씨라면 예언을 확인하려고 미래를 봤을 것 같은데.”
“볼 수 없었다. 내가 관여되어 있으니까. 시간의 단면을 보는 능력은 분명 대단하지만, 신이란 한 차원 위에 있는 존재다. 비록 많은 힘을 잃었다고 해도, 타고난 본질은 시공간으로 파악할 수 없다. 너희 특이점 또한 같은 원리이고.”
“킹의 군세는?”
“마찬가지다. 내가 아닐 뿐인 거지.”
그러고 보니, 마레는 ‘어떤 초월자의 개입’으로 인해 아리스의 멸망을 막을 수 없었다고 했다.
“대체 그 초월자란 놈은 누군데?”
“모른다.”
“몰라?”
마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절대 평범한 초월자는 아니라는 거지.”
박현수는 예전에 스승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낙원의 파편에서 탈출하던 당시, 어떤 존재로 인해 잠깐 다른 공간으로 이동되었다고 했다.
그 존재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는데, 마레가 말하는 초월자가 그인 것 같았다.
“초월자란 놈은 킹이 지구를 엉망으로 만드는 데 관여하지 않아?”
“놈은 순수하게 관찰자였다. 그저, 내가 방해하지 못하도록 막았을 뿐이야. 킹 역시 초월자였지만, 아리스는 나의 영역. 내가 나섰다면 그 지경이 되지 않았을 거다.”
원래 공성보다 수성이 쉬운 법이었다.
심지어 홈그라운드라면, 아무리 킹이라도 마레를 어쩌지 못했다.
“그놈은 대체 목적이 뭐야? 그 이전에 킹의 목적은?”
그러고 보면 킹의 목적을 알지 못했다.
놈은 그저 지구에 포탈을 열고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 뿐이었다.
마레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모른다. 놈은 그저 약탈하고 또 약탈할 뿐이다.”
“무엇을. 세계를?”
“그래.”
“역겨운 새끼.”
박현수는 씹어뱉듯 말했다.
“목적이 무엇이 됐건 상관없어. 그 자식은 내가 반드시 죽일 거니까.”
킹을 죽일 수만 있다면 놈의 목적 같은 건 알 바 아니었다.
마레가 말했듯, 나이트와 비숍을 죽였다.
그 위로 룩과 퀸, 그리고 킹이 있지만, 계속해서 강해진다면 놈들을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구엔 박현수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많은 각성자들이 있었고, 못 미덥지만 같은 특이점인 아이작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면서 말해 주지 않은 세 번째 특이점도 있었다.
“인류는 승리한다.”
박현수가 마레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의 염원은 실현될 거야.”
“그렇게 말해 주니 든든하군.”
왠지 마레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박현수는 주머니에 손을 꽂고 가만히 있다가 마레에게 물었다.
“동생 상태에 관해서나 얘기해 봐.”
“아까 질문은 마지막이라고 하지 않았나?”
“시끄러워.”
“아까 했던 말 그대로다. 킹이 시작한 포탈 임팩트로 인해 박현태는 죽을 위기에 처했고, 내가 그의 몸으로 들어가서 살렸다.”
“내 동생은 왜 살린 건데?”
“살려도 뭐라고 하는군.”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네 입장에선 내가 필요한 거고, 동생이 필요했던 건 아니잖아.”
가족이라고 하기엔, 박현수가 각성하기 전부터 마레가 동생을 살펴 주었다.
“네가 자살했을 테니까.”
“…….”
“동생마저 죽었다면 너는 무조건 자살했을 거다.”
이미 부모를 여읜 박현수였다.
그런데 동생까지 잃었다면, 박현수는 절망감을 견디지 못하고 마레의 말처럼 됐을 것이다.
“처음부터 나를 상정해 뒀던 거냐?”
“너도 느끼지 않나? 자신에겐 재능이 있단 사실을.”
스승은 칭찬에 인색했지만,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자신의 성장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건 꽤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내게 걸기엔 너무 모험 아니야?”
“킹은 모험 없이 잡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마레의 단호함에 박현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킹에게 자신의 별을 잃은 자다.
얼마나 많은 생각과 행동을 해 왔을까.
“너와 아이작, 그리고 세 번째 특이점은 내가 심혈을 기울여 선택한 희망이다.”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건데, 아이작은 왜? 그 꼬맹이는.”
“약하지. 알고 있다.”
아이작은 박현수에 비하면 한참 약했다.
“하지만 그는 폭발적으로 강해질 거다.”
“어떻게 확신하지?”
“로벤이 죽었으니까.”
* * *
아이작은 퀭한 눈으로 영안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앞엔 하얀 천으로 얼굴이 덮인 로벤이 침대 위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로벤이 죽었다.
아이작에겐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고, 지금도 눈앞에 그의 시체가 있지만 믿고 싶지 않았다.
다정하진 않았지만, 언제나 자신을 신경 써 준 사람이었다.
부모가 없는 아이작에게 로벤은 아버지나 다름없었다.
“마스터…….”
그는 품에 쥔 검을 꼭 껴안았다.
이끌어 줄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이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킹……. 용서하지 않을 거야.”
로벤은 물론이고, 세상을 엉망으로 만든 존재.
아이작은 어떻게 해서든 킹의 목에 이 검을 박아 넣을 것을 다짐했다.
그다음, 놈을 데려와 로벤 앞에서 사죄하도록 무릎을 꿇릴 것이다.
죽이는 건 다음이었다.
아직 어린 소년의 가슴에서 거대한 분노와 증오가 소용돌이쳤다.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누구야!”
아이작은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시야가 뿌연 상태였다.
“젠장, 어디 숨어 있는 거야!”
[숨어 있지 않다.]“개 같은 소리를!”
[네가 쥐고 있지 않나.]“무슨…….”
욕하려던 아이작이 고개를 숙였다.
손에 들린 검이 불그스름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검이 불길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불길함을 넘어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무, 무슨 힘?”
[네 입으로 얘기했잖아. 킹을 용서하지 않겠다면서. 설마, 지금 수준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허억!”
검신에서 미소를 그리고 있는 보라색 입술과 날카로운 송곳니가 나타났다.
[나라면, 너한테 그만한 힘을 줄 수 있다.]“……진짜로?”
[물론이지. 나는 너에게 모든 걸 해 줄 수 있다.]아이작이 꿀꺽 침을 삼켰다.
그저 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일 뿐이었지만, 왠지 그 말에 알 수 없는 믿음이 갔다.
“죽이고 싶어. 마스터를 죽인 킹을 내 손으로 죽이고 싶어.”
[그렇다면 힘이 필요하겠군.]“맞아. 내게 힘을 줘. 내게 힘을……!”
[무슨 일이 벌어져도 감당할 수 있겠어?]“감당……할 수 있어.”
아이작의 두 눈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의 앞에 피로 적힌 계약서 한 장이 떠올랐다.
“좋아.”
아이작이 엄지를 세게 깨물었다.
줄줄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혈서에 찍었다.
피로 이루어진 인장이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계약서를 뒤덮었다.
그리곤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본래 계약서로 돌아왔다.
검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
피는 아이작의 작은 몸을 거칠게 집어삼켰다.
영안실이 크게 흔들렸다.
“무슨 일이야!”
그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르망이 영안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이게 무슨.”
그는 천장까지 솟구친 피의 소용돌이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소용돌이가 서서히 멎어 갔다.
그리고 그곳엔, 붉은 갑주를 걸친 한 남자가 검 한 자루를 든 채 서 있었다.
“너는, 누구지? 아이작을 어떻게 했어!”
“나는…….”
남자가 검을 들지 않은 손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의 입꼬리가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
핏빛 눈동자가 아르망을 향했다.
“아이작.”
“뭐, 뭐? 네가 아이작이라고? 내가 아는 아이작은…….”
성인 크기가 된 아이작이 씁쓸하게 웃으며 주먹을 쥐었다.
“모두에게 안부 전해 줘, 아르망.”
그의 육신이 핏방울이 되어 그대로 사라졌다.
“아이작……?”
아르망은 멍하니 아이작이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 * *
“마, 마검?”
“너도 본 적 있을 텐데.”
그 말처럼, 박현수는 아이작의 검을 본 적 있었다.
스승은 그 검을 보고 분명 마검이라고 했다.
하지만 말만 그럴 뿐, 실제로 마검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한 차원을 지배하는 강력한 마왕이 손수 제작한 마검이다. 그 힘은 완전 각성 시 나라 하나를 베어 버릴 수 있다고 하지.”
“그 정도라고?”
“마검과 계약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긴 하지만, 계약만 성사시킨다면 그 정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물론, 숙련도가 상당히 올라야 하겠지만.”
“계약?”
“영혼이다. 마검의 소유자가 목적을 달성하면, 마검은 대가로 소유자의 영혼을 먹어치운다. 실로 마검다운 계약이지.”
“이 미친놈!”
박현수가 마레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아이작은 아직 어린애야. 그런 애한테 대체 뭘!”
“어리지만 누구보다 독기가 있고, 로벤을 아비처럼 따랐지.”
“……설마, 로벤 씨의 죽음을 꾸민 건 네놈이었냐?”
“이상한 오해는 하지 마.”
마레가 박현수를 밀어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툭툭 쳤다.
“로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느만의 유지를 이은 이상 언젠가 죽게 돼 있었다. 그게 이번일 거라곤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로벤 씨가 죽을 거란 걸 기정사실로 하고, 아이작에게 마검을 줬단 거잖아.”
“그건 맞다.”
“잔인한 놈.”
박현수는 혐오스럽단 얼굴로 마레를 보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선을 넘을 줄은 몰랐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냐?”
“알고 있다. 내가 한 짓은 용서받을 수 없단 걸.”
“……개새끼.”
“모든 일이 끝나면, 그때. 그때 가서 죽음으로 용서를 갚겠다.”
박현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의 잘못을 타박할 수 없단 사실이 답답했다.
그만큼 인류가 처한 상황은 절벽 끝자락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일이 끝났을 때 네 죽빵을 가장 먼저 치는 건 나여야 할 거야.”
“조용히 기다리고 있겠다.”
“제길. 날 돌려보내.”
마레가 손가락을 튕겼다.
* * *
박현수는 감겨 있던 눈을 떴다.
[늦었구나.]“스승님.”
천경은 꽤 일찍 와 있었는지 가볍게 명상을 하고 있었다.
“모든 얘길 들으셨습니까?”
[흥미롭더군.]그는 감았던 눈을 뜨며 박현태를 보았다.
정확히는 그 안에 있는 마레를 보고 있었다.
“내 동생은 어떻게 되는 거야.”
“박현태는 완전히 다 나았다. 하지만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눈을 뜨려고 하지 않아. 그 부분만 해결된다면 자연스럽게 일어날 거다.”
“그럼 너는 언제 그 몸에서 나오는데?”
“네가 묘한 기술로 내가 이 몸에 걸어 놓은 봉인식을 반쯤 깨 버렸으니까, 슬슬 나와도 되겠지.”
사실 마레가 박현태의 몸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박현수가 천언단절로 심장에 걸린 사슬에 강한 충격을 준 덕분이었다.
그런 게 없었다면 마레는 아직도 박현태의 몸 안에 갇혀 있어야 했을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내 동생 몸에서 나와. 네가 동생 몸 안에 있다는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니까.”
“노력하지.”
“가시죠, 스승님.”
“네.”
박현수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경도 더는 할 말이 없었기에 제자와 함께 병실을 빠져나왔다.
혼자 남은 마레는 천천히 자리에 누웠다.
“나의 염원.”
이제야 가시권에 들어온 느낌이다.
그는 스르르 감기는 눈을 막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