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87
훈수 두는 천마님 85편
“킹이시여, 룩이 왔습니다.”
“들어와라.”
룩이 조심스럽게 킹의 침소에 들어갔다.
커다란 침대엔 초췌한 몰골의 노인이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옥체는 좀 어떠신지요.”
“나쁘지 않구나.”
“정말 다행이십니다. 어쩌자고 그렇게 무리한 행동을 하셨습니까.”
룩이 이계의 균열로 아이리스를 죽이러 갔을 때의 일이었다.
그곳의 시간은 지구와 비교하면 아주 느렸기에, 알 수 없는 존재에 의해 밖으로 나왔을 땐 보름이란 시간이 흘러 있었다.
그리고 그 보름 사이에 킹이 일을 저질렀다.
“느만을 죽이시다니요. 아무리 킹이시라도 제약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꼴이 되지 않았느냐.”
킹을 비롯한 그의 군세에 내려진 제약.
룩은 아쉬운 얼굴로 2년 전을 언급했다.
“만약 그때 처음이 잘 풀렸다면, 이런 꼴이 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들이 영리했을 뿐이다.”
포탈 임팩트 당시, 킹의 군세는 타 행성을 침략할 때처럼 대량의 포탈을 전 세계에 개방했다.
원래라면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고, 킹이 원하는 것을 취했어야 정상이었다.
한데, 지구인들이 분명 멸망하고 사라졌어야 할 아리스인의 능력을 각성했다.
특히 아리스에서도 그들을 골치 아프게 했던 11인의 왕의 유지를 이은 자들은 다른 지구인을 이끌고 거세게 저항했다.
특히 파울의 유지를 이었던 인간.
“최상호라고 했던가. 그 인간은 정말 흥미로웠지.”
아리스에선 파울이 느만을 보조했지만, 지구에선 느만의 유지를 이은 로벤이 파울을 보좌했다.
그의 리더십은 킹이 보기에도 놀라웠으며, 비록 최후 항쟁이라 불리는 ‘더스트 커맨드’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인류의 미래를 존속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인류가 아는 건 거기까지였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이죠.”
최상호는 목숨을 잃기 직전 킹과 마주했다.
킹은 계획이 실패한 것에 매우 분노했고, 그를 단숨에 죽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최상호는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설마 놈이 멸망룡에 관해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인간의 숫자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오래전.
지구에는 멸망을 부르는 용 한 마리가 존재했다.
그 용은 매우 사악한 존재로, 모든 것을 파멸시키려는 목적으로 지구에 있었다.
당연하게도, 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강했다.
하지만 용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초월적인 힘 앞에 봉인되었다.
용은 봉인당하는 순간, 봉인은 절대적이지 않을 것이며, 자신은 언젠가 부활할 거라는 예언을 남겼다.
그리고 그 예언은 머지않은 미래였다.
킹은 그 미래의 전에 ‘데스기가’라 명명한 멸망룡을 포획할 생각이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 첫 계획도 사실 무의미했어. 굳이 짐이 아니더라도, 너희나 퀸을 먼저 내보냈다면 지구는 금방 끝장이 났을 테니.”
킹의 잘못이 있다면 그들을 얕봤던 것뿐이었다.
그리고 두 세력의 힘 차이는 얕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아리스의 유지를 이었다고 한들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아리스 때에도, 킹은 단 한 번도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리스는 멸망했는데, 지구라고 멀쩡하겠는가?
문제는 최상호라는 인간이었다.
“설마 멸망룡의 봉인을 강화할 수단이 있었을 줄이야.”
“킹이시여.”
“파울의 능력을 간과했다.”
파울의 능력이 약하진 않아도, 전투적인 측면에서 강한 편은 아니었다.
문제는 유용성에 있었다.
“녀석은 봉인 능력이 없지만, 타 능력을 강화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지. 그리고 어떤 힘이든 간에 느낄 수 있었지.”
최상호가 마음먹고 행했다면, 킹은 아주 오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을지도 몰랐다.
대신 그는 킹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용의 봉인을 강화하지 않겠다. 대신 앞으로 5년. 절대 너희는 인간을 건드리지 마라.’
‘그게 무슨 말이지?’
‘포탈은 계속 생성해도 좋으니, 너희는 절대 지구에서 힘을 쓰지 말란 말이다.’
당돌한 제안이었다.
‘5년을 준다면 너희 인간이 짐의 군세를 막을 정도로 강해질 것 같으냐?’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거니까.’
킹에게 멸망룡은 언젠가 다가올 그 날을 위한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었다.
그러니 최상호의 제안을 받지 않았다면 킹은 못해도 수십 년, 많게는 수백 년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됐을지도 몰랐다.
그에게 그만한 여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5년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무엇보다, 킹은 그의 제안이 우스워 견딜 수 없었다.
고작해야 티끌에 불과한 힘을 가진 주제에, 자신과 대등한 선에 서려는 것이 그를 즐겁게 만들었다.
‘좋다. 짐이 너의 제안을 수용하노라. 대신, 너의 목숨은 내놓아라.’
‘너희도 기간 동안 지구와 지구에 만들어진 포탈 내에서 긴 시간 힘을 쓴다면 제약을 받아야 할 거다.’
둘은 영혼의 계약서를 작성했고, 최상호는 죽음을 겸허히 받아드렸다.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서 인류는 5년의 유예를 손에 넣었다.
하지만 이번에 킹은 로벤을 죽이기 위해 계약을 어겼다.
“제 잘못입니다. 처음부터 비숍을 보내지 말고 제가 해야 했는데…….”
박현수가 이계의 벽에 구멍을 뚫는 바람에 킹이 로벤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로벤을 죽인 이유는 간단했다.
손실을 메꿀 정도의 이득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인류는 포탈 속 이계를 부술 방법을 연구할 것이다.
아이리스의 숲은 소형 이계였기에 다른 포탈들은 그곳처럼 벽이 쉽게 부서지지 않겠지만, 알비자가 있는 이상 분명 답을 찾아낼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대표인 로벤을 죽여야 수지타산이 맞지 않겠나?
“퀸을 내보내지 그러셨습니까.”
“결전 병기를 어찌 로벤 따위를 죽이는 데 쓴단 말이냐?”
“제 말이 그 말입니다. 로벤 따위, 아무리 느만의 유지를 이었다지만 킹께서 그를 죽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킹은 손해를 메꾸기 위한 더 큰 이득이라고 하였지만, 룩이 보기엔 킹이 제약으로 약해진 게 더 손해라고 생각했다.
“짐은 회복된다. 무엇보다 로벤을 죽이기 전에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무슨 준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박현수를 죽일 준비.”
킹은 지구 침략을 시작하고 단 한 번도, 뭔가를 한 적 없었다.
그런 왕이 직접 박현수를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
“박현수는 반드시 죽는다.”
“…….”
“그러니 룩이여.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로벤에 이어 세 특이점 중 하나인 박현수마저 죽일 수 있다면.
‘네가 무엇을 계획하든 무의미할 것이다.’
킹은 이름 모를 아리스의 신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 * *
집으로 돌아온 박현수는 수련장에서 반나절을 보냈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들판 위에 누워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말이냐.]“모든 게 다 말입니다.”
마레와 나눴던 대화들을 떠올렸다.
그의 행동 대부분이 납득되었지만, 몇 가지는 지금도 찝찝함이 되어 가슴 한구석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아이작 녀석은 어디로 갔을까요?”
박현수는 돌아오자마자 협회를 통해 포대위와 연락을 취했다.
통화를 한 이는 아르망이었다.
마레에게 아이작의 상태를 들었던 터라 그의 상태를 물어보았다.
‘녀석은 다른 모습이 되더니, 잘 있으란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현재 포대위는 아이작 추적에 나섰지만, 흔적도 없이 살아진 터라 아무래도 쉬워 보이진 않았다.
정말 마레의 말처럼 되었다.
“그 자식.”
박현수는 짧게 한숨을 쉬며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불 가릴 수 없던 상황인 건 이해한다. 하지만 과한 것 역시 사실이지.]“역시 그렇죠?”
[그렇다고 당장 그를 비난할 순 없다. 너도 알고 있잖느냐.]“그렇죠…….”
서로의 입장이란 것이 있다.
마레는 결과적으로 지구에 득이 되는 행동을 한 것이었다.
비록 소수의 희생을 낳는 행위더라도.
실제로 마레가 특이점을 실현하지 않았더라면, 인류에게 미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류의 미래 중 하나인 박현수는 진실을 알게 된 후부터 커다란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제가 해낼 수 있겠죠?”
[모자란 놈.]“이럴 땐 제자를 위해 따뜻한 말 좀 해 주면 덧납니까?”
[누누히 말하지 않았느냐. 네놈은 본좌의 제자다. 그리고 본좌는.]“사상최강이죠. 알죠, 알다마다요. 그런데.”
[그런데라는 말이 왜 필요하지? 본좌가 너를 가르쳤고, 너는 솜처럼 빠르게 빨아들이고 있다. 퀸이라고 했던가? 그 여자는 아주 강하더군. 실로 놀라울 정도였어. 그렇지만, 그 정도일 뿐이다.]천경은 빈말을 하지 않았다.
[당장의 네놈이라면 부족할 수 있겠지만, 계속해서 경험을 누적하고,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못 넘을 것도 없는 벽이다.]박현수의 재능은, 과장해서 말한다면 ‘숨만 쉬어도 강해지는’ 수준이었다.
한 번의 경험은 그를 다음 경지로 인도했고, 깨달음을 알려 주면 곧바로 흡수했다.
이제부턴 고독한 시간이 되겠지만, 천경은 제자를 걱정하지 않았다.
“젠장. 우리 스승님 왜 이렇게 멋있는 거야?”
[하루 이틀이냐? 껄껄!]박현수는 호탕하게 웃는 스승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난 천마의 제자야.’
어깨에 짊어진 것들이 무거웠지만, 그걸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돌아가죠. 내일은 포대위에 가야하니까 일찍 자야죠.”
내일, 그가 없던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들어볼 예정이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세계에 퍼져 있는 모든 S급 헌터가 소집될 예정이기도 했다.
“배고픈 것도 모르는 양반이 뭐가 출출합니까?”
[스승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콱!]* * *
하유락은 풍성한 붉은 머리칼을 하나로 묶었다.
요 한 달, 그녀의 힘은 모두 회복되었다.
모든 힘이 회복되니, 오히려 이전보다 강해진 것 같았다.
기분탓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는 낙원의 파편에서 목숨이 다할 뻔했지만, 박현수 덕분에 붕괴하던 이계의 마나 일부를 흡수할 수 있었다.
“준비 끝났어요?”
그녀가 옷을 다 입고 준비를 끝낼 무렵이었다.
이민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포대위 측에서 포탈을 열어 놨대요.”
“너는 노크도 없이 들어오니?”
“뭐 어때요? 여자끼리.”
이민아는 깔끔하게 차려입은 하유락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징그럽기는. 현수는?”
“곧 도착이래요. 뭔가 기분이 묘하네요.”
“뭐가?”
“한국에 S급 헌터가 둘이라니.”
“원래 둘이었어.”
그 말에 이민아가 실언했단 얼굴로 사과했다.
“미안해요.”
“틀린 말은 아니니까. 둘이었다가 하나가 되었고, 다시 둘이 됐지.”
하유락은 최상호를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2년 전, 인류를 위해 모든 걸 바친 그가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어떤 심정일까.
과연 박현수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녀는 내심 궁금했지만, 이룰 수 없는 소망이란 걸 알기에 문고리를 잡았다.
“가자.”
“네.”
* * *
“뭔가 오랜만이네요.”
“실제로도 오랜만이거든?”
박현수는 다시 새빨간 머리가 된 하유락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지만 해도 힘이 되돌아오지 않았었는데, 완전해진 모습을 보니 조금 남아 있던 걱정이 싹 사라졌다.
“저게 포대위에서 만든 포탈이래요.”
박현수가 턱짓으로 가리킨 기계 장치엔 그녀가 익히 알고 있는 포탈이 유지되고 있었다.
“안데르센 녀석. 천재란 건 알았지만 진짜 포탈까지 만들어 낼 줄은 몰랐네.”
“전에 듣긴 했는데, 직접 보니까 놀랍네요.”
이런 장치를 만들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기술이 필요할까?
문과 출신인 박현수가 그걸 알 방법은 없었다.
“그보다, 괜찮겠어? S등급 포탈을 공략하고 온 지 하루밖에 안 됐잖니.”
“멀쩡하진 않지만, 포탈에 관한 건으로 할 말이 많아요.”
포탈 안에서 직접 경험했던 것과 마레에게 들었던 것 중 일부를 공개할 생각이었다.
대파란이 일어날 것이다.
“길드장님은.”
“이젠 누나라고 불러.”
“에? 어색한데.”
“어색해도 익숙해져. 유락이 누나라고 불러 봐.”
“크흠.”
“부끄러워하긴.”
하유락이 낄낄 웃었다.
뒤에서 보고 있던 이민아가 그녀의 등을 밀쳤다.
“현수 씨한테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어서 들어가세요.”
“질투하긴.”
“지, 질투는!”
이민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하유락은 키득거리며 포탈 쪽으로 걸어갔다.
“다녀올게~”
“안 돌아와도 돼요.”
이민아는 괜히 새침한 얼굴로 고개를 휙 돌렸다.
박현수는 두 사람을 보다가 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갔다 올게요.”
“조심히 다녀와요.”
“올 때 기념품 사 올게요.”
“맛있는 거로 부탁해요.”
그녀와 짧게 대화를 나누고 하유락 옆에 섰다.
“가죠?”
“그래.”
먼저 포탈에 발을 들인 건 박현수였다.
그리고 뒤이어 하유락이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눈에 환한 빛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땐.
“오랜만이군, 유락.”
거구의 백인 사내가 무표정하게 그들을 맞이했다.
하유락이 웃으며 사내의 이름을 불렀다.
“마찬가지로 오랜만이야, 모드.”
미국의 자랑, 버펄로 모드 알렉산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