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88
훈수 두는 천마님 86편
[덩치가 엄청나군.]천경의 말처럼, 모드 알렉산더의 덩치는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커 보였다.
2m를 가뿐히 넘는 키와 우락부락한 근육은 보디빌더처럼 보였다.
포탈 임팩트 전에 미식축구 선수였단 얘기를 들은 적은 있는데, 이 정도로 체격이 좋을 줄은 몰랐다.
‘이 사람이 다이아몬드 몸뚱이.’
마레의 말에 따르면 ‘키자르’란 아리스인의 유지를 이은 게 모드 알렉산더라고 했다.
키자르가 비록 퀸에게 죽긴 했으나 직접 본 바에 따르면, 키자르의 덩치도 만만찮았지만 모드의 신체 능력이 훨씬 좋아 보였다.
‘그가 능력을 쓰면 키자르보다 훨씬 단단할 것 같아.’
박현수가 그를 뚫어지도록 바라보자, 시선을 느낀 모드가 박현수를 보았다.
그리곤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반갑다, 모드 알렉산더다.”
하유락에게 인사했을 때처럼 유창한 한국어였다.
따로 통역기를 낀 것 같진 않았다.
아니면 질 로드먼처럼 언어와 관련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지도.
“반갑다, 박현수다.”
박현수가 똑같이 반말로 인사하자 옆에 있던 하유락이 입꼬리를 올렸다.
모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굵은 입술로 호선을 그렸다.
“너와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군.”
모드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 몰랐기에 살짝 당황했지만, 티를 내지 않고 그의 손을 맞잡았다.
“잘 지내면 좋지.”
크고 작은 손이 가볍게 흔들렸다.
살면서 손 작단 소리는 못 들어봤는데, 저 정도 손이면 망치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았다.
“다들 도착했다는군.”
“그리운 얼굴을 한꺼번에 보겠네. 아, 그립지 않은 놈도 껴 있지만.”
하유락은 학센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모든 S급 헌터가 소집된 만큼 당연히 학센 또한 이곳을 방문했을 것이다.
그녀는 몇 달 전 학센이 저지른 박현수 습격 사건을 떠올렸다.
가뜩이나 악감정이 가득한데, 그때 선을 완전히 넘었다.
마음 같아선 학센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하유락이 고운 미간을 찌푸리자, 박현수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괜찮아요.”
“뭐, 뭐가?”
“이젠 다 괜찮아요.”
정확히 뭐가 괜찮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하유락은 괜히 바람 새는 소리를 내었다.
그 모습을 본 모드가 말했다.
“잘 어울리는군.”
“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그 반응에 박현수는 피식 웃었다.
포대위 본관 문이 열리며 세 사람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 * *
본관에서 안내인을 따라 지하로 내려오자, 커다란 홀이 나타났다.
홀에는 방이 여러 개 있었는데, 모두 외국어로 적혀 있어서 해석이 안 되었다.
“이곳입니다.”
안내인이 정중앙에 있는 문을 열었다.
“와우.”
문을 열자 나타난 건 방이 아니라 무지갯빛이었다.
세 사람이 안내인을 동시에 쳐다봤다.
이게 뭔지 알려 달라는 무언의 질문이었다.
안내인은 웃는 얼굴로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회의실로 통하는 아공간입니다.”
“회의실을 왜 굳이 아공간으로…… 그보다, 이런 건 어떻게 만든 겁니까?”
“기술적인 부분은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녀는 일개 안내인일 뿐이었다.
박현수는 자신이 많은 걸 바랐다는 걸 깨닫고는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홀과 연결된 문 전체가 아공간으로 이루어졌단 뜻이었다.
자체 공간 이동 포탈을 제작하더니, 이젠 이계까지 구현할 기술력을 손에 넣은 모양이었다.
“먼저 가지.”
모드 알렉산더가 문으로 들어갔다.
그다음 하유락이 들어가고, 박현수가 바로 뒤를 따랐다.
“좋은 시간 보내시길.”
그리고 문이 닫혔다.
박현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내부를 살폈다.
“뭐야 이거.”
“엄청 넓잖아?”
하유락도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높이의 천장엔 커다란 샹들리에 세 개가 걸려 있었고, 전구가 아닌 포탈에서 구할 수 있는 야광석이 부유 상태로 허공에서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그 중심엔 열 명의 인원을 위한 원탁이 놓여 있었다.
그곳엔 일곱 명의 인원이 앉아 있었다.
모드는 두 사람을 놔두고 그곳으로 걸어갔다.
“가자.”
하유락이 정신을 못 차리고 구경 중인 박현수에게 손짓했다.
[별세계에 와 있는 것 같구나.]박현수는 그녀의 뒤를 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포탈을 경험했지만, 이곳만큼 마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은 없었다.
‘아니, 낙원의 파편도 장난이 아니긴 했지만, 이런 동화풍과는 거리가 멀었지.’
하늘에서 세 개의 세계가 겹치는 광경이 압도적이긴 했지만, 그건 공포스러운 광경이었지, 아름답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때, 듣기 싫은 목소리가 오랜만에 피어오르는 동심을 깨부수며 들려왔다.
“늦었군.”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보니,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는 학센이 있었다.
좌우로 타케시와 질 로드먼이 가볍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흥.”
하유락은 그에겐 관심도 안 주고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반면 박현수는.
“운이 좋네. 이런 곳에서 날 다 만나고. 여기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 났을 텐데.”
고개를 비스듬히 꺾고, 차가운 얼굴로 그렇게 쏴붙였다.
갑작스러운 박현수의 발언에 좌중이 얼어붙었다.
모두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말하리라곤 생각도 못 했었다.
그냥 불편한 분위기 정도만 유지되리라 생각했었다.
학센이 큭큭 소리를 내며 웃었다.
“기억하고 있다. 다음에 만나면 목 닦아 놓고 있으란 말.”
그는 낙원의 파편 앞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박현수도 그때를 떠올리며 아쉬워했다.
“아쉬워. 정말 아쉬워. 다음번에 만나면 진짜 제대로 혼내 줄 자신이 있었는데.”
“힘에 자신이 생겼나 보군.”
“너 하나 털어 버릴 정도는 되지 않을까?”
박현수의 여유로운 미소에 모두가 마른침을 삼켰다.
“헤이, 헤이~ 다들 진정하라고.”
질 로드먼이 식은땀을 흘리며 두 사람을 중재하려고 했지만.
학센이 손가락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시험해 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이봐, 학센.”
“자리가 자리인지라 어지간하면 싸우기 싫지만, 정 원한다면 못 해 줄 것도 없지.”
“헤이, 보이!”
“보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두 남자가 서로에게 달려들 기세로 매서운 기세를 내뿜었다.
그를 지켜보고 있던 작은 소녀, 칭란이 쯧쯧 혀를 찼다.
“첫째는 고인을 위한 자리이며, 둘째로 세계의 대소사를 논하는 자리다. 둘 다 뭣들 하는 짓이냐?”
“둘 다, 싸우려면 끝나고 싸워라.”
타케시가 앞에 놓인 차를 홀짝이며 그녀의 말에 덧붙였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던 활화산이 두 사람의 말에 어느 정도 사그라졌다.
흥이 식은 학센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박현수도 쯧 혀를 차곤 하유락 옆에 자리했다.
“좋은 선택이야. 만약 싸웠으면 두 사람을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 버릴 생각이었거든.”
그때 문이 열리며 하얀 가운 차림의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아니면 내가 엉덩이를 걷어차 줬겠지. 이곳이 무슨 자리인지는 까먹은 거냐?”
그 뒤로 아르망이 두 사람에게 타박하며 나타났다.
박현수는 연이은 타박에 괜히 헛기침했다.
안데르센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정 싸우고 싶으면 다 끝나고 싸워. 두 사람을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시설을 만들어 놨으니까. 괜찮은 기회로군. 특이점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학센이 안경을 고쳐 쓰며 박현수를 보았다.
이 사람이 천재 과학자, 안데르센 워커.
미디어의 노출을 극도로 꺼려 다른 S급 헌터들과 달리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생각한 모습은 나이가 있을 줄 알았는데 상당히 젊은 남자였다.
“시작부터 소란이 있긴 했지만 다들 오랜만.”
이번 소집을 주도한 아르망이 자리에 앉으며 모두에게 인사했다.
그는 며칠 못 잔 사람처럼 얼굴이 꽤 피폐했다.
칭란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괜찮나?”
“괜찮고 자시고 할 게 있나.”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턱을 괴었다.
“이미 가 버린 놈, 안 괜찮다고 궁상떨기엔 우리가 짊어진 짐이 한두 개가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하유락이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각국의 대표이자, 인류의 희망이었다.
비록 로벤이 킹에게 당해 버렸지만,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도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에 헌신하고, 몇몇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리더로서 여러 가지 잘해 주었던 녀석이야. 이 정도 추모 자리는 해 주는 게 예의일 거라고 생각해서 모두를 소집했다.”
“네가 부르지 않았어도 왔을 거다.”
모드가 특유의 무뚝뚝한 얼굴로 말하자, 아르망이 피식 웃었다.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그 녀석 시체는 어디 있지? 얼굴을 보고 싶군.”
학센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볼 땐 그는 하유락과 가장 갈등이 많아 보였겠지만, 실제론 로벤과 갈등이 가장 많았다.
두 사람은 인류를 구원하려면 강한 힘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했지만, 그 수단이 서로 달랐다.
로벤은 소수의 희생이 있더라도 특이점을 모두 찾아 그들을 성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학센은 특이점을 찾을 시간에 우리들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좁혀지지 않은 의견은 서로를 거의 없는 수준으로 취급하게 되었다.
그런 그가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영안실에 있다.”
“장례는 아직 치르지 않았나 보군.”
“모두가 모이면 치를 생각이었다.”
“그게 오늘이군.”
학센은 모드와는 다른 느낌의 무표정이었지만, 왠지 슬퍼 보였다.
회의실 분위기가 침울하게 변했다.
칭란이 어두워진 얼굴들을 보며 손뼉을 짝짝 쳤다.
“자자, 이런 분위기가 나쁘단 건 아니지만, 좀 더 근본적인 얘기를 해 보자고.”
“그 말이 맞다. 장례는 산 사람의 몫이니, 조금 늦게 치른다고 녀석이 뭐라 하진 않을 거야.”
“그래서,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하유락이 아르망과 안데르센에게 물었다.
두 사람과 가장 가까이 있던 그들이니, 로벤이 어쩌다가 킹에게 죽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러 나라에 숨어 있을 놈들의 간첩을 색출하고 있었다. 굉장히 바쁜 나날이었지. 모두 피로가 짙은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딱 그날, 아주 잠깐의 여유가 생겼지.”
보름 전, 간첩 색출 작전에 약간 지장이 생기며 그들도 조금만 휴식을 하기로 했다.
로벤은 그사이에 산책 좀 다녀오겠다고 평소 즐겨 찾는 항구로 갔던 것이다.
누구도 그가 혼자 움직이는 것에 걱정하지 않았다.
대체 어떤 이가 S급 헌터 중에서도 독보적이라고 해도 좋을 능력을 갖춘 로벤을 건드린단 말인가?
아무도 킹이 직접 나설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위기란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뜬금없이 로벤을 덮쳤다.
“킹이 움직인 이유는 아직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놈은 그냥 나타나서 로벤만 살해했다. 인질을 데려가려고 한 것도 아니고, 간첩 색출하는 걸 막으려고 한 것도 아니야. 그냥 로벤만 죽였다.”
현재 포대위엔 박현수에게 사로잡혔던 찬이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구속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간첩으로 추정되거나, 확정이 난 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그만한 힘을 가졌으면서 왜 로벤만을 노렸냐는 거야.”
아르망과 안데르센은 사건이 벌어졌던 항구를 찾았었다.
그들이 본 광경은 처참하단 말로도 부족했다.
“우리가 추정한 바로, 킹의 능력은 로벤과 같은 시간 계열이었다. 로벤을 살해하고 유유히 그 장소를 떠난 걸 보면 시간 능력이 로벤보다 월등했다는 건데, 그 정도 능력이라면.”
“포대위도 멀쩡하진 않았겠지.”
타케시의 말에 안데르센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변덕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위원장님과의 일전에서 많은 힘을 소모했을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제약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우리는 거의 제약 쪽으로 생각하고 있어.”
“제약이 맞을 겁니다.”
대답은 박현수에게서 나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칭란이 대표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이트도, 비숍도 모두 제약이 걸린 상태였거든요.”
“……비숍?”
“아, 급한 일이 생겨서 그때 바로 말 못 했었는데, S급 포탈에서 비숍을 죽이는 데 성공했어요.”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란 얼굴이 되었다.
표정이 없기로 유명한 모드마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박현수는 그들의 반응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지금 말할 타이밍이 아니었나?”